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154
제153화
뿌직…
적갈색 눈을 한 까마귀가 터져나갔다.
‘으음, 이제 하루는 버티네?’
그의 피조물은 주인과 시야를 공유하는 까마귀.
이제 피조물을 창조하는 건 아주 찰나의 시간만 주어져도 가능했지만, 그것의 활용은 또 별개의 문제였다.
‘일단, 까마귀의 수가 늘어나면 시야가 조금 흐릿해지고… 소리도 잘 안 들려.’
소리까지 듣는 능력은 최근에 추가한 능력이라 그런지 효율이 엄청나게 별로였다.
그저 시야를 유지하는 것뿐이라면 수 마리의 까마귀도 운용이 가능한 게 지금 강설의 수준이었지만, 도청을 시도할 때는 까마귀를 단 한 마리 유지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점.
뿌직…
“으윽….”
집중하고 있는데 피조물이 터져버리면 강설에게까지 충격파가 전해졌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했다.
피조물이 움직이는 데 필요한 건 창조자의 의식이나 이지였고, 그것을 건네받은 피조물이 갑작스럽게 폭발한다면 창조주에게도 여파가 미칠 수밖에 없었다.
‘뭐 그래도, 이 정도면 양호한 수준이지.’
강설이 어지간해서 만족하지 않는 성격이라 그렇지, 단기간에 여기까지 피조물의 수준을 끌어올린 것만으로도 사실 굉장한 것이었다.
똑, 똑.
“스노우맨 님. 프래넌 님께 준비가 끝났다고 전달받았습니다.”
“나가겠습니다.”
끼이이익…
강설은 순례자를 따라나섰다.
미리 의식이 진행된다는 것이 전해진 건지, 지부는 한산했다.
끼이익…
큰 문을 양쪽에서 잡고 열자 굉장히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왔군그래.”
“예.”
“이쪽으로 오게, 그리고 그 마령도 꺼내놓고 말이야.”
주변을 경계하는 순례자 몇과 차멜리, 그리고 마르콘과 프래넌이 함께였다.
스윽.
강설이 그들의 가운데에 병에 든 비탄을 내려놓았다.
【멍청하긴! 너희는 전부 멍청이야!】
“호… 무엇이 멍청하단 거지?”
【아무튼! 나는 절대 협조할 생각 없어!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으니까!】
“왜 협력한 적이 없는 거지?”
【그야, 내가 다 이용했으니까!】
“또?”
【그야, 내가 마령이니까!】
프래넌이 말했다.
“마령아, 어리석은 마령아. 그건 대답이 될 수 없다. 내가 진짜 이유를 말해줄까?”
【말하지 마! 말하지 마!】
“넌 배우지 못한 거야. 남과 협력하는 것을, 그리고 그게 더 낫다는 것을.”
【아니야!】
“지금부터 네게 그 교육을 실행할 예정이니 잠자코 따라오려무나.”
프래넌이 머리를 쓸어넘기며 비탄을 내려놓았다.
마르콘이 나서며 말했다.
“저는 아직도 반대입니다. 마령을 일개 인간이 다루는 일은 아직 너무 위험해요!”
“그건 자네 생각이고.”
“…성위님은 확신하십니까?”
“나?”
“예, 스노우맨 님이 이 의식을 통해 마령을 굴복시키는 게 가능하다고 확신하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야….”
프래넌이 강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강설은 대수롭지 않게 그 시선을 받았다.
문득, 그는 오래전 베일이 자신을 거뒀을 때 이런 심정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니지, 그때랑은 다르겠지.’
그때의 어렸던 프래넌은 절박했고, 베일은 그의 가능성 대신 그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을지도 몰랐다. 정말로, 프래넌이 대성할지 어떤지는 확신하지 못했을지도.
그때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마령을 다루는 것?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드문 일이다.
그래서 불가능한가? 그건 또 아니다.
예상할 수 있는 변수가 너무 많아서 그렇지 이론상으론 가능했다.
그리고, 지금 그의 앞에 있는 청년은 그런 변수를 통제할 만한 능력이 있었다.
‘하룻밤 만에 창조의 묘리를 걸음마일지라도 깨우친 놈이다. 이런 놈이 불가능하다면 다른 놈들도 불가능하겠지.’
프래넌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신한다. 그러니까 우린 우리가 할 일이나 제대로 하자고.”
“…알겠습니다.”
프래넌이 강설에게 다가왔다.
“어이, 무릎을 꿇어라. 곧 의식을 잃게 될 거니까.”
“…제가 이 뒤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진주의 계승식을 어떻게 치르는지는 이미 카렌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비탄을 억눌러야 하니 질문한 것이다.
“의식과 동시에 비탄이 너와 이 진주의 계승에 함께하게 할 거야. 창조의 권능을 통해 한번 배워봤지? 상상하고 꿈꾸는 것, 그리고 그걸 단순화해서 끄집어내는 것.”
“…네.”
“진주의 계승은 그런 방식과 똑같다고 보면 되고… 문제는 저 녀석인데, 의외로 단순하다. 사람을 홀리는 방법이랑 똑같아.”
“사람을… 홀리는 방법?”
“그래, 아마 들어가자마자 치고받고 싸우겠지. 놈은 정신세계가 곧 본인의 영역이나 마찬가지니, 필사적으로 널 괴롭힐 거다. 너는 그에 맞서 놈의 힘을 최대한 빼놔야 해.”
“그리고?”
“덫을 놓아. 고문당하는 이들이 가장 쉽게 비밀을 털어놓는 순간이 언제인 줄 알아?”
“모릅니다.”
프래넌이 씨익 웃었다.
“갑자기 고문을 멈췄을 때야. 그때 가장 많은 이들의 마음이 무너지지.”
“네?”
“아무튼, 의미는 안에 가서 잘 곱씹어보도록 하고. 내 마법이 널 보조할 테니 나머진 안에서 해결해. 자, 이제 시작하겠다.”
철컹. 철컹-!
마르콘이 주변에 성유를 듬뿍 바른 사슬을 쳤다.
“사악한 기운이 퍼지는 것을 막아줄 겁니다. 또, 밖에서 눈치챌 수도 없을 거고요.”
“하하… 그럼 나만 준비되면 시작이겠군. 어디….”
따악-!
프래넌이 손가락을 튕겼다.
지이이이이이잉…
강설과 비탄, 그리고 진주를 가운데 두고 마법진이 펼쳐졌다. 마법진은 한눈에 보기에도 엄청나게 화려했다.
“실패하면, 자넬 깔끔하게 죽여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부탁드립니다.”
“허허….”
짜아아악-!
카렌과 카루나가 알 수 없는 주문을 중얼거렸다.
철컥… 철컥…
진주의 모양이 변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커다란 보자기 형태로 변해 강설을 한입에 집어삼키려 했다.
그때, 프래넌이 손뼉을 쳤다.
짜아악-!
[프래넌이 절기 : 대규모 증폭 마법진을 사용합니다.]
[미리 설치된 모든 마법진이 단시간에 전부 발동합니다.]
지지직… 지직…
보자기가 가만히 멈춘 채로 더 크게 확장했다.
“으그극….”
이마에 핏줄이 돋은 프래넌.
마법진에서 신비로운 문자들이 빠져나와 강설, 그리고 비탄과 진주에 새겨지기 시작했다.
“크윽… 여기까지!”
휘리리릭-!
프래넌이 힘을 풀자, 진주가 원래 하려던 일을 마쳤다.
[진주의 시험이 시작됩니다.]
[스노우맨의 계승식이 진행됩니다.]
강설과 비탄이 진주 속으로 사라졌다.
“후우… 나오는 놈이 흉물일지 성물일지, 그도 아닌 놈일지… 일단은 지켜봐야겠군.”
* * *
세상엔 태어나면서부터 가야 할 길이 정해진 것들이 존재했다.
배는 물 위를 부유할 것이고, 새는 창공을 날 것이다.
그들은 날 때부터 그런 운명을 부여받았다.
그렇다면 여기 새로이 태어난 검은 존재는?
‘나는….’
떠돌 것이다.
영원히, 피와 송장으로 얼룩진 세상을.
“컥… 커어억….”
눈앞에서 억울하게 죽어가는 기사가 보였다.
안쓰럽기도 해라, 이곳은 전장이고 그는 패했다.
그와 함께 넝마가 된 송장들이 주변에 그득했다.
그는 전장에서 목숨을 잃을 것이다.
검은 존재와는 반대로.
‘나는… 이곳에서 태어났으니까.’
많은 이의 원한과 후회로 얼룩진 존재. 그들의 원념으로 똘똘 뭉쳐 태어난 악의 화신.
그것이 그였다.
이곳에는 사랑도 희망도 믿음도 없었다.
오로지, 죽음과 괴성뿐이었다.
“도와줄까?”
“쿨럭….”
“날 받아들여, 내가 도와줄 수 있어.”
“누구….”
“나야….”
쓰러진 기사가 헛것을 보며 읊조렸다.
“아아… 내 슬픔… 내 후회군.”
기사가 검은 존재의 손을 맞잡았다.
“비탄이여…. 나를… 조국으로 돌려보내다오.”
그렇게 검은 존재에게 이름이 생겼다.
비탄은 남자의 몸을 먹어 치운 후, 그의 부탁을 거절했다.
“싫어. 그런 건 할 줄 모르는데? 이제 마음껏 죽일 거야!”
지지직…
주변이 일그러졌다.
비탄은 자아를 되찾고 점차 커져만 갔다.
어느새, 전성기의 모습을 되찾은 그.
커다란 악마와도 같이, 근육질이 된 몸은 흉포하기 그지없었다.
“아아… 그렇구나! 그 망할 인간과 여기 갇혔지!”
“이제 왔어?”
“으?”
뒤에서 툭 하고 튀어나온 강설.
비탄이 소리쳤다.
“날… 기다렸나?”
“그래, 이런 일을 제법 겪어서 금방 와 있었지.”
“흐흐흐… 이봐, 나는 비탄이다. 너는 고작해야 인간이고.”
“나는 인간이고 너는 고작해야 비탄인데?”
“까불지 마라!”
우지지직!
비탄이 주먹을 휘두르자, 반경이 깨져나갔다.
강설에게 힘없이 붙잡혀 있었을 때와는 다소 다른 느낌이었다.
“이 힘! 이 우월한 힘! 느껴지나?”
“신이 났군.”
“그래! 이제 너와 나의 차이를 알겠나?”
콰아아아아앙-!
치이이익…
“크으윽….”
강설의 손에는 새하얀 검이 들려 있었다.
“그건 어디서 난 거지?”
“글쎄….”
“안타깝군, 검이 주인을 잘못 만났어.”
“내가 더 안타깝지. 주인이 무기를 잘못 만났으니까. 아무래도 검은 아닌 것 같아.”
“뭐?”
휘리릭-!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그의 새하얀 검이, 이번엔 날개 달린 지팡이로 변했다.
“널 으스러트려 주마!”
후우웅-!
비탄이 휘두른 주먹은 강설에게 닿지 않았다.
그는 허리를 꺾으며 비탄의 공격을 피해냈고 곧바로 지팡이를 휘둘러 주문을 쏟아냈다.
휘릭-!
그림자 손이 우수수 쏟아졌다.
퍼벅! 퍼억!
퍼버버벅!
“으으으윽… 으아아아아!”
얻어맞던 비탄이 진각을 굴러 강설을 노렸다.
콰아아앙-!
마찬가지로 가볍게 피해낸 강설이 지팡이를 휘저었다.
이번엔, 적갈색 눈을 가진 까마귀 떼가 나타났다.
푸드드득…
톡톡톡!
토토톡!
까마귀 떼는 이리저리 비행하며 비탄을 괴롭혔다.
“이이이… 너는 소환수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야!”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뭐?”
“너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잖아.”
비탄이 그 말이 충격이었는지, 까마귀를 전부 으깨고도 멍하니 강설을 잠시 쳐다보았다.
그의 몸집이 조금 작아졌다.
정신세계에서의 충격은 실시간으로 그에게 전해졌다.
강설이 지팡이를 보더니 낮게 읊조렸다.
“역시, 이게 편한 것 같아.”
휘리릭!
지팡이는 이제 투갑으로 변모했다.
“…너를 반드시 타락시켜주마. 피를 탐닉하고 생명이 꺼지는 것을 즐기게 만들어 주마!”
“그런 취향은 아닌데.”
콰지직!
콰직!
비탄은 맹공을 퍼부었다.
헛손질이 절반, 또 맞추더라도 강설이 성공적으로 방어한 게 절반.
그런데도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이 자시이이이익!”
휘릭…
강설이 공중에서 방향을 꺾어 비탄의 뺨을 후려쳤다.
뻐어어어억-!
투두둑…
비탄의 큰 덩치가 나가떨어지며 몸집이 조금 줄어들었다.
“커헉… 어어억… 아파아아!”
“나쁜 짓을 너무 많이 저질렀어. 이제라도 착한 일을 해보는 건 어때?”
“키킥… 날 설득할 생각하지 마라. 난 애초에 이렇게 태어났어!”
“…….”
– 넌 배우지 못한 거야. 남과 협력하는 것을, 그리고 그게 더 낫다는 것을.
비탄이 울부짖으며 돌격했다.
“날, 날 가르치려 하지 마!”
“하아….”
콰아아아앙-!
비탄은 마령이었지만 몇몇 지독한 마령들과는 달리 덩치만 크고 힘만 셌지, 그 힘을 다루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저 무작정 휘두를 뿐.
지금까지는 그래도 됐었다.
강설을 만나기 전까지는.
“후우….”
강설의 눈빛이 변했다.
줄곧, 쟈마드의 날 선 감각을 느껴오고 토키와의 수련을 통해 더욱 완숙의 경지로 다다른 그의 기술은 비탄이 범접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파박-
“이딴….”
퍼어어어억…
“우웁….”
그렇다.
콰직-!
“아아아악! 아파!”
으득…
“케에엑….”
정말로, 비탄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원념과 증오가 뭉친 덩어리. 그리고 그것이 운 좋게 강력한 힘을 거머쥔 존재였을 뿐.
“히히… 내가 질 줄 알고! 덤….”
퍼어억! 퍼억!
비탄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포기하면 끝이었다.
단순히 굴복하는 것이 아닌 마령이라는 존재 자체가 소멸해버릴 것이다.
‘존재를… 잃을 순 없어…. 자아를… 지켜야 해.’
비탄이 소리쳤다.
“으아아아아! 개자식아아아!”
비탄은 계속해서 작아졌지만, 계속해서 싸웠다.
마령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악착같은 존재인지, 강설이 감탄할 만큼.
그렇게 얼마나 싸운 것일까?
“허억… 허억….”
비탄은 잠시 정신을 놓았을 만큼, 엄청나게 얻어맞았다. 주변은 온통 새카맣고, 강설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비탄은 마침내 그의 폭력이 더는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 하하… 크하하하하! 역시, 지친 거겠지! 인간이니까! 내가 이긴 건가? 이긴 거겠지? 역시, 인간의 내면은 나약해! 조금만 기다려라, 네 정신을 금방 타락시켜….”
움찔…
“으윽… 몸이 너무 아픈데…. 제법 강단이 있는 인간이었어. 하지만 이걸 어쩌나? 결국엔 이 비탄 님께서 승리했으니… 산 채로 짓밟혀 보이지 않는 건가?”
움찔…
“으으… 조금 휴식이 필요한 거 같은데… 음?”
그런 비탄의 눈앞에, 따스한 불꽃이 나타났다.
“…불?”
그리고 그것이 담겨있는 악마의 방.
끔찍한 악마의 조각상이 문에 조각되어 있었다.
철컹-!
문이 개방되었다.
마치 비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흐흐… 나에게 딱인 장소군. 조금만 기다려라, 인간. 이곳에서 조금 쉰 후에… 아예 끝장을 내줄 테니까.”
조각된 악마가 속삭이는 것 같았다.
이곳이야.
네가 머물 곳은 이곳이라고.
“그럼, 조금 있다 보자고.”
비탄이 피곤한 기색으로 악마의 방에 들어갔다.
끼이익…
철컹-!
문이 닫히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런데, 갑자기 악마의 조각상 위로 커다란 손이 얹혔다.
손이 방을 빙글 회전시켰다.
한데, 어찌 된 일인지 악마의 방 반대편에는 자애로운 모습으로 눈을 감은 여인의 조각이 새겨져 있었다.
비탄이 생각했던 것과는 매우 다른, 신성스러운 느낌의.
사실, 강설은 숨지 않았으며 오히려 비탄이 작아진 것이었다.
“…등불 형태가 최선인가? 뭐, 아무튼….”
비탄이 악마의 방이라 생각하며 들어간 곳은, 강설이 진주를 이용해 만들어낸 등불 속이었다.
강설이 성스러운 기운이 흘러나오는 등불을 든 채로 미소 지었다.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