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156
제155화
프래넌과의 대화가 제법 길어졌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정보 한 가지.
“수색대가… 국경을 넘는다는 겁니까?”
“그래, 아마도 그럴 계획이지. 국경을 넘는 건 처음인가?”
“예, 전이된 이후로 줄곧 네베니아에서만 활동해왔습니다.”
“음… 뭐, 하긴. 전이자 대부분이 전이된 장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니까.”
강설은 어차피 강제적으로 모험을 떠맡게 된 이상, 정보를 최대한 모을 생각이었다.
“현재 천칭의 탑주님은….”
“보르누일 님이시지. 이름도 못 들어봤나?”
“전이자인 제가 12 마탑의 탑주님 이름을 전부 기억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요?”
“정론이지. 나도 다는 기억 못 해. 탑주를 오래 지내는 분들이 그렇게 많지 않거든.”
– 그건… 잘못된 게 아닐까요?
– 실례지만 우리 회사 회장님 성함이 뭐였죠?
– 김… 아 김… 뭐였는데…
“어째서죠?”
“격무, 노환, 연구 뭐 기타 등등이지. 탑주라는 자리가 짊어진 건 많은데 그리 편한 자리는 아니니까.”
“으음….”
“국경을 넘는 게 싫은가? 혹, 이곳에 기반이 있는 건가?”
강설이 턱을 긁적이며 답했다.
“딱히 그런 건 아닙니다.”
그저, 국경을 넘어서 어디로 향할 것이며 그곳에서도 지금과 같은 성장을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었을 뿐.
“근데 국경을 넘는 이유에 대해선 궁금하군요.”
“우선 수색대에 관한 얘기가 논의되는 곳이 천칭의 마탑이잖아? 천칭의 마탑은 당연하게도 네베니아에 있지 않고.”
“그렇죠.”
“그리고 보르누일 님이 향한 곳 때문이야. 알카트론이라는 곳에 대해 알고 있나?”
알카트론. 강설은 처음 듣는 장소였다.
“거기가 어디죠?”
“최근에 발굴된 유적지야. 다만, 발굴 도중 정체 모를 기운이 흘러나와서 발굴이 중단된 곳이지.”
“흐음….”
“뭐, 유적들이 으레 그러하듯 마물이 있을 수도 있겠지. 다만, 이 사안을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적어도 천칭의 탑주가 소식도 없이 실종될 정도로 나약한 존재는 아니니깐 말이야.”
“소식을 남기지 못할 정도의 일이 그곳에서 발생했을 수도 있다는 거군요.”
프래넌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리고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는데 천칭의 마탑까지는 쉽게 당도하더라도 알카트론까지 가는 길은 조금 버거울 수 있어.”
“…아!”
“이유를 아나?”
“마물들의 영역 때문이군요?”
“그래, 그 가운데 이종족들도 섞여 있긴 하지만… 그들이 길을 쉽게 터줄 리가 없지.”
“다른 국경을 우회해 가는 방법은 없습니까?”
“아쉽게도 그렇게 되면 의미가 없어져. 시간이 한참이나 걸릴 테니깐 말이지.”
호전적인 이종족과 마물들의 영역.
그곳을 지나쳐가야 한다는 것도 부담이었다.
‘이거… 어쩌면 엄청나게 위험한 모험일 수도 있겠는데?’
제 몸 하나 지킬 자신이야 얼마든지 있었지만, 이번 모험은 어째서인지 불안했다.
‘거절할 방법도 없으니… 준비라도 열심히 해야겠네.’
강설은 그렇게 생각하며 프래넌의 안색을 살폈다. 그런데 지금의 프래넌은 어쩐지 이상했다.
마탑으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데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인지 식은땀까지 흘려가며 끙끙 앓았다.
그 괄괄하던 프래넌이 이런 모습을 보이자 강설은 그의 과거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문제? 하하! 아니? 문제라니?”
“괜찮다면 상관없지만, 불안해하는 것처럼 보여서요.”
“…….”
“성위를 지낼 때 무슨 문제라도 있었습니까?”
“지낼 때라니?”
“네?”
“누가 물러났나? 난 여전히 성위를 지내고 있어. 아직 물러난 건 아니야. 단지… 휴식을 취하고 있었을 뿐.”
“성위를 관둔 거 아니었습니까?”
프래넌이 몽롱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쳐다보았다.
“글쎄, 정확히는 마법사를 관두고 싶었지.”
* * *
빛나는 견장을 착용한 두 남녀가 식사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저 견장에 박혀있는 문양이 무엇을 뜻하는지 안다면 이 자리에 얼마나 대단한 자들이 모여 있는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 함께 식사하는 건 천칭의 성위, 유린과 프래넌.
이제는 노인이라고 할 정도로 나이가 들어버린 둘이었다.
유린이 고기를 으적거리며 프래넌에게 말했다.
“이 골칫덩이야, 너 혼자만 알고 있는 게 마법이냐? 남들에게 논리가 닿지 않는 건 속임수를 쓰는 마술이나 마찬가지지.”
“그럼 마술사 하련다.”
“썩을 놈.”
“또 왜….”
“네가 가진 것들을 미래를 위해 물려줄 줄 알아야지. 보르누일 님이 얼마나 내 옆구리를 찌르는 줄 알아?”
“왜?”
“널 꼬셔서 제자를 들이게 만들라잖아.”
“글쎄 그런 건 거둘 생각 없다니까 노인네도….”
“너나 나나 노인네인 건 마찬가진데요, 뭐! 하여튼간 저 잘난 맛에만 살 줄 알지, 탑에는 도통 보탬이 안 돼요. 베일 님은 이런 거지 같은 자식을 뭐 하러 거두셔서 제 주름만 늘게 하시나이까.”
“허 참….”
프래넌은 마법 부여의 대가.
앞에 있는 유린은 정신 마법의 대가였다.
프래넌이 슬쩍 눈치를 보고 유린에게 말을 던졌다.
“오늘은 그 잘난 제자님 자랑은 오늘 안 하려나 보네?”
“듣고 싶어?”
“아니, 절대로. 하루가 멀다 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자랑질을 너무 해대니 오늘도 그 잘난 제자가 똥오줌을 가렸다고 자랑하지 않을까 했거든.”
“자랑하면 들어줄 거야?”
“미쳤냐! 이 할망구가!”
“품격 있게 관리해서 너랑은 달리 아직 중년의 고혹적인 향기가 풍기거든?”
“어련하겠어….”
프래넌은, 피식대면서 유린과의 대화를 즐겼다.
마법사란 고독한 삶을 사는 게 보통이었다. 본인만의 길에서 본인과의 싸움을 해야 했다.
하지만, 자신과 비슷한 경지의 마법사 또한 경지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안도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혼자가 아니라는.
유린에게는 에버니라는 17살짜리 제자가 있었다.
뭣하러 제자를 거둬 피를 보나 싶었지만, 유린은 그것을 즐기는 듯 보였다. 프래넌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재능도 없는 애를 뭐 하러 거둬서는….”
말이 조금 심했지만, 유린도 이 사실은 인정하는 바였다.
“멍청한데 애는 착해.”
“착한데 애는 멍청하다는 말과 똑같군.”
“그게 더 좋잖아? 안 그래? 인성이냐 실력이냐 우선순위에 관한 문제에서는 늘 마법사들끼리도 의견이 갈리지.”
“당연한 거 아니야? 실력이지.”
“인성이야. 너는 베일 님 밑에서 배웠으면서 어째 반대로 큰 것 같다?”
“그래서 널 따라잡고 이렇게 마주 앉아 영양가 없는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것 아닐까?”
“음… 분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야. 독종 자식….”
“그리고 변한 게 아니야. 현실을 깨닫는 것뿐이지. 후학을 양성해? 난 아직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인데?”
유린은 천으로 입을 닦으며 말했다.
“장담하는데, 결코 첫 번째 마법사 말고는 어떠한 마법사도 바닥에서 시작한 적 없어. 인간은 약하지만, 지식을 축적하고 쌓는 종족이야. 마법이 발전해온 이유도 그것이고.”
“그러니까 최대한으로 앞서나가 기록으로 남기면 되지.”
“기록은 가르침과는 달라, 상냥함이 없잖아? 좌절하면 일으켜 세워 줄 힘이 없잖아. 네가 쌓는 건 그저 후대의 마법사들이 넘지 못할 삭막한 벽일 뿐이야.”
둘은 평소에도 이 같은 문제로 자주 싸웠다. 제자를 들이지 않는 프래넌은 천칭의 마탑에서도 골치였으니까.
프래넌은 조심스럽게, 속마음을 꺼내놓았다.
“내가…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 난 대단한 마법사가 아니니까.”
“…대단한 마법사라 미래를 꿈꾸는 게 아니야.”
유린의 눈은 선하고 따스했다.
“마법사니까야.”
“그래도 에버니는 무리야.”
“망할 새끼… 애는 착하다니까.”
더 말렸어야 했는데, 더 뜯어말렸어야 했는데.
저렇게 덜떨어진 제자는 유린, 네 앞길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프래넌은 그렇게 후회했다.
멀쩡했던 유린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유린! 미, 미친 거지? 안 돼! 하지 마!”
지이이이잉…
“물러나라고, 유린! 에버니는 틀렸어! 못 구해!”
“아니, 나는 구할 수 있어! 나는 성위의 마법사야….”
“마력이 폭주하고 있다고! 제길, 이미 한참이나 잘못됐어! 성위고 나발이고 젠장맞을 인간아! 제발 폭발하게 내버려 둬!”
“어떻게 그래….”
에버니의 연구는 단단히 실패했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대성하기엔 재능이 모자랐고, 실수를 남발했다.
그리고 그 결과, 체내의 마력이 폭주하는 결과를 맞이했다.
아마도 그녀의 수준으로는 폭주한 마력을 감당할 수 없기에 정신이 날아가 백치가 되어버릴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녀의 스승이 그녀를 대신해서 나섰다. 프래넌은 직감했다. 유린은 에버니의 실패를 대신 감당할 생각이라는 걸.
유린이 프래넌에게 말했다.
“내 제자잖아, 프래넌.”
“넌… 넌….”
“프래넌, 혹시라도 내가 실패하면….”
그녀는 프래넌에게 무언가를 부탁했다. 그 부탁은, 프래넌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부탁이었다.
“싫어! 안 할 거야!”
“떼쓰지 말고, 그럼… 부탁해.”
“유린! 왜…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유린은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마법사인걸.”
치지지지지지지지직…
번갯불이 튀는 소리와 함께, 정신 마법의 폭풍이 연구실을 휩쓸었다.
모든 사건은 순간적으로 일어난 것이었고, 천칭의 마탑 모두가 슬픔에 잠긴 일화였다.
그렇게, 프래넌은 마탑을 떠났다.
* * *
“그것 때문입니까?”
프래넌의 사연을 들은 강설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묻자, 프래넌이 술을 연거푸 들이켜며 답했다.
“그래, 난 아직도 그때의 악몽을 꾸지. 여전히 그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그랬군요.”
“우중충한 얘기 꺼내서 미안하게 됐군. 아무튼, 준비가 끝나면 출발할 테니 염두에 두고 있으라고.”
“알겠습니다.”
스윽…
그렇게 강설이 떠나고, 프래넌은 잠시 독백했다.
쨍그랑-!
술잔을 집어 던진 그는, 사고 당시 유린의 모습을 떠올렸다.
– 아저씨는 누구세요?
– …날 기억하지 못해?
– 나는 아저씨 처음 보는데요?
– …이곳에는 언제 왔어?
– 어제요! 어제 정식으로 입문했어요!
– …….
– 아저씨?
– 장하구나.
유린은 노파의 몸을 가진 채, 7살 소녀였던 과거의 정신을 가지게 되었다.
– 아저씨는 여기서 대단한 사람이에요?
– …아니.
다 늙은 할머니가, 어린아이의 말투를 하고 있노라면 그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돌아가기 싫어….”
그는 그날로부터 영원히, 도망치고 싶었다.
* * *
“형, 그럼 다음에 또 봐요!”
“그래, 짧게 봐서 미안.”
“바쁘잖아요, 그래도 네베니아로 돌아올 거죠?”
“봐서.”
“소미 누나가 확답 안 받으면 저한테 발광할 텐데, 확실하게 말해줘요.”
“연락은 할게.”
조경택이 안심했다는 듯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강설은 팀브리안에 머무는 중인 조경택과 회포를 풀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앞으로의 일정이 매우 빡빡했기에 길게 만남을 이어가지 못했다.
“휴… 그건 다행이네요.”
“일은 잘 마쳤지?”
“네, 근데 그때 그 귀족 나리가 형한테도 언제 한번 보답하고 싶대요.”
“내게?”
“그… 제가 그때 형한테 도움받았던 얘기가 나와서… 말하면 안 됐겠죠?”
“아니, 뭐… 네 마음이지.”
혹, 강설이 언짢아할까 우려했던 조경택은 강설의 반응에 미소를 띠었다.
“그럼, 알고 지내는 동생이 형 얘기도 좀 하고 그럴 수 있지 않나요?”
“…그렇지?”
“어, 말이야. 시계탑의 영웅이라는 둥, 종소리를 몰고 다니는 남자라는 둥 떠드는 데 뭐 입이 간지러워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
그 소리를 등불에 갇힌 비탄이 듣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가? 너는 이렇게 부르는 걸 싫어하는 건가? 좋아… 앞으로 다른 사람 있을 때 꼬박꼬박 그렇게 불러야지! 큭큭큭… 내가 생각해도 너무 나쁜 짓이야.】
– 이 녀석, 놀랍도록 맥을 정확히 짚었다.
– 이건 정말로 마령이 생각할 법한 나쁜 짓인데?
– 얘 길들여진 척 하는 걸지도 몰라.
비탄은 강설의 찌릿한 시선을 한 번 받아내고는 조용해졌다.
“아무튼, 또 봐.”
“그래요, 형. 몸 건강히 다녀오세요. 연락 꼭! 저보다 누나한테요!”
강설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철컥…
뒤편에 자리한 화려한 마차의 문이 열리고 프래넌이 몸 반쪽을 내밀었다.
“타라, 출발이다.”
“예.”
강설이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에는 의외의 인물이 타 있었다.
“…차멜리?”
“어… 그러니까… 또, 또 뵙네요?”
“어떻게 된 일입니까?”
프래넌이 심드렁하게 답했다.
“조디악에서 순례자들에게 요청했어. 아마 네베니아 교구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지원이 올 거야.”
“그 정도로 큰일입니까?”
“뭐,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아무튼 꽤 규모가 있을 것 같군.”
관련도 없는 순례자들을 끌어들일 정도라니, 강설은 이번 모험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관여되려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음?”
“…어?”
마차에는 또 다른 인원도 있었다. 강설이 모르는 인원 둘이 더 타고 있었는데, 묘하게 낯이 익었다.
강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습니까?”
남자와 젊은 여자였다.
강설은 특히, 남자 쪽은 확실히 본 적이 있었던 것 같았다.
“오랜만이군요, 스노우맨 님. 접니다.”
“그렇죠, 역시 본 적 있군요. 그러니까….”
남자의 시선이 강설의 허리띠로 향했다.
강설이 기억을 떠올려냈다.
지금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던 남자.
“아! 그때 그….”
싸늘한 표정과는 달리, 강설의 앞날을 위해 조언을 해주었던 남자.
당장 강설의 소지품에 있는 마탑의 초대장 또한 그가 건넨 것이다.
“블레인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