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17
제16화
사람 한 명의 일생에는 많은 것들이 녹아 들어가 있다.
그의 가치관, 열망, 가치 등 일생은 말 그대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삶의 기록이고 죽음은 그 마침표이다.
“아니, 그러니까 말이야! 한 달 동안 쉰 다음에는 또 뭐가 어떻게 되는 건데?”
“내 생각에는….”
강설은 주변이 소란스럽다는 걸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가시죠. 너무 시끄럽네요.”
“그러지.”
둘은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어스름한 저녁.
죽음이라는 공포에서 해방된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인간은 그동안 수많은 죄악을 저질러 왔습니다. 이건 그 심판입니다!”
“정화하세요! 정화해야 합니다!”
거리에는 이상한 걸 덮어쓴 남녀가 이렇게 소리치고 다녔다.
평소에 어떤 걸 믿어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행동은 세계의 병합으로 난장판이 된 지금의 혼란에 일조했다.
“이런, 여기도 시끄럽군. 내가 조용한 곳을 아는데, 거기서 얘기를 나누는 게 어떻겠나?”
“거기가 어디죠?”
“…예전 내 작업실일세.”
“알겠습니다.”
노인은 작업실을 왜 예전 작업실이라고 표현하는 것일까.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건가?’
사이드 퀘스트에 관한 정보가 부족하니 강설이 노인의 제안을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의 말대로 강설은 노인의 작업실로 향했다.
노인은 어딘가 슬퍼 보이기도 하고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마치 슬픈 소식을 접하기 전, 마음의 준비를 하는 사람처럼.
“그런데… 작업실이라면 무슨 작업을 하는 공간인 겁니까?”
“말해 뭐하나. 가보면 알 것을.”
– 지금 말해도 알잖아요, 선생님….
– 그 화법 ㅋㅋㅋ
강설이 잠시 뒤따르며 생각하다가 말을 툭 하고 내뱉었다.
“시계 공방이군요.”
“눈치는 있군. 술집에서 말하지 않았나.”
노인이 강설의 회중시계를 다시 힐끔거린 후 한숨을 내쉬었다.
“그 시계, 내가 만든 것 같다고.”
노인을 따라 도착한 곳은 콩고리에서도 후미진 장소에 있는 곳이었다.
그렇다고 낙후된 빈민가 쪽은 아니었지만, 상권에서는 꽤나 멀어져 있는 곳.
철컹.
노인이 수중에 있던 열쇠로 굳게 닫힌 공방의 문을 열어젖혔다.
“아직… 그대로군.”
거미줄 진 내부, 약간의 곰팡이 냄새.
하지만 강설은 생각보다 불쾌한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냥 오랫동안 관리가 안 된 작업실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시계 공방이 맞기는 맞았네.’
사방을 빽빽이 메운 시계들.
괘종시계부터 여러 형태의 시계들이 작업 공간에 가득 차 있었다.
“반갑네, 내 이름은 빌 마커스. 빌이라고 부르게.”
“스노우맨이라고 합니다.”
“…뭐?”
“스노우맨…입니다.”
강설과 빌이 동시에 멈칫했다.
‘빌?’
어딘지 익숙한 이름.
하지만 특출 난 기억력을 가진 그로서도 빌의 이름이 왜 낯이 익는지 기억이 흐릿했다.
‘또 이러는군.’
오래전 일도 완벽하게 기억해내던 그가 어째서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마도 회중시계 사이드 퀘스트는 이미 한 번 경험한 퀘스트가 아닐까 싶었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친숙하게 빌의 이름이 귀에 박히지는 않았을 테니까.
‘문제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거다.’
빌은 뒤돌아서 시계들을 훑어보다가 강설에게 어깨 너머로 말을 던졌다.
“그렇군… 참으로 기묘한 일이야.”
“네?”
“아닐세. 이제 그 시계를 어떻게 얻게 된 건지 내게 얘기해 줄 수 있나?”
강설은 빌에게 이 시계를 얻게 된 사연을 조금 각색해서 이야기했다.
약초를 캐기 위해 뾰족 바위산의 절벽을 수색하다가 이 시계를 발견했다고.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앞뒤의 사연이 빠져있었을 뿐이지.
“그랬군, 그랬어…. 거기서 발견한 거군.”
“아시는 바가 있습니까?”
“알고 말고. 이제야 모든 게 어떻게 된 일인지 전부 알게 됐어. 그 시계를 이리 줘 보겠나?”
턱.
강설이 회중시계를 빌에게 넘겼다.
빌은 그 시계를 받고 뒤집더니 각인을 살폈다.
“확실히 내가 만든 시계가 맞아. 여기 각인 보이나?”
“각인? 아, 그게 각인이었군요.”
“세월이 흘러 흐릿해진 건지 고생을 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기 내 이름이 각인되어 있군.”
과연.
빌의 말대로 시계 뒤편에는 알아듣기 어려운 글씨체로 빌이란 글자가 각인되어 있었다.
워낙 흐릿하기에 강설도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나는 20년 전에 이 시계를 누군가에게 선물했었어. 내 손녀 때문이지.”
“손녀? 손녀라니요?”
“내 손녀가 20년 전에 뾰족 바위산의 트롤들에게 잡혀갔었거든. 공연 일정에 맞추기 위해 산을 넘었던 게 화근이었어.”
지끈.
강설은 두통을 느꼈다.
하지만, 중요한 얘기를 하는 중이니 통증을 참고 다시 물었다.
“손녀분은 어떻게 되었죠?”
“…….”
“…그렇군요.”
“아무도 나서지 않더군. 그 당시 이곳의 군주도, 자유 기사들은 물론이거니와 용병과 모험가들까지. 모두에게 부탁했지만, 모두 그럴 수 없다는 대답만 들려주었지.”
손녀는 사망했지만, 시계의 주인에 관한 얘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강설은 인내심을 가지고 경청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타난 거야. 내 손녀를 구하는 데 힘을 보태겠다면서.”
“그게 누구죠?”
“시계에 새겨져 있을 거야.”
“하지만 시계 어디에도 이름은….”
“그거야 안쪽에 숨겨져 있으니까 그렇지. 자, 보게나.”
딸칵.
빌이 시계의 귀퉁이를 대충 조작하더니 그 안에 숨겨진 공간을 드러나게 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멋들어진 문구와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 용기 있는 자의 앞날에 행운이 따르기를.
‘…이럴 수가.’
시계가 잃은 주인의 이름은 충격적이었다.
– 스노우맨.
빌이 강설을 쳐다보며 말했다.
“20년이 지나서, 그때와 비슷한 나이대의 남자가 똑같은 이름을 가지고 이 시계와 함께 나타나다니… 이게 과연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모르는 건 강설도 마찬가지였다.
빌의 말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시계의 주인은 돌아오지 못했어. 내 손녀도 마찬가지고. 난 그 후로 콩고리를 떠나 한동안 돌아오지 않다가 얼마 전에야 다시 이 도시를 찾았네.”
“으윽….”
“왜, 왜 그러나?”
“아, 아닙니다. 두통이 조금 있어서요. 계속하시죠.”
“얘기는 끝났네. 그냥, 과거에 그런 사연이 있었다는 말이지. 아, 참! 함께 들러볼 만한 장소가 있는데… 어떤가?”
“어디를….”
“내 손녀의 무덤이야. 그리고 그 모험가의 무덤이기도 하지.”
“…네?”
빌은 코를 긁적이며 말했다.
“불운한 내 손녀를 위해 나서준 유일한 사람인데, 시신은 찾지 못했더라도 옆에 작은 묘비 정도는 만들어두었지. 어떤가, 함께….”
“우웁… 우우웁….”
“자네 왜 그러나!”
기억났다.
빌과 손녀, 그리고 스노우맨이라는 이름의 모험가 사이에서 벌어진 모든 일이.
‘내 첫 번째 말이었어….’
사실은 스노우맨이란 이명을 사용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영원의 세계, 판데아에 처음으로 발을 들일 때 사용했던 적이 있었다.
바로 그가 육성한 30개의 말 중 첫 번째로 육성한 말이었다.
그의 이름은 스노우맨.
서리 마법사였다.
“내일… 내일 다시 이곳에 찾아와도 되겠습니까?”
“그, 그러지. 정오에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겠네.”
“감사합니다, 그럼….”
“얼른 쉬게나.”
강설은 그렇게 시계 공방을 벗어났다.
* * *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게 대체….’
자신이 육성했던 말이 이 세계에 흔적을 남겼다.
강설은 그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설마, 내 말들이 했던 일들이 모두 여기에 남아 있는 건가?’
분명, 영원의 세계는 그렇다.
말의 행동은 세계관에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그건 게임판에서의 시스템에 불과한 게 아니었던가.
게임판에서 벌였던 일들이 어째서 게임판이 아닌 현실에 남아 있는 것일까?
‘그 모든 게 현실이었다고?’
그에게는 단순히 게임으로 보였겠지만, 그 모든 건 현실이었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헉… 허억….”
강설은 콩고리의 도서관을 찾았다.
“1시간 후에 폐관합니다. 찾으시는 책이 있으면….”
“괜찮습니다. 알아서 찾겠습니다.”
책은 무언가의 기록이다.
그리고 수십 년간 벌어졌던 일을 담기에 좋은 매체이고.
강설은 역사 관련 책들이 수두룩하게 꽂혀 있는 책장을 빠르게 훑어 내려갔다.
수많은 역사서가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그가 찾는 것은 따로 있었다.
‘내 첫 번째 캐릭터가 20년 전에 사망했다면… 내가 온 시점은 정확히 내가 꿈속에서 게임을 한 지 20년 후의 판데아다.’
그러니 최근 20년의 기록을 살펴보면 된다.
그것이 강설의 판단이었다.
‘어딨지… 어딨어!’
초반부의 10개의 캐릭터는 이렇다 할 행적을 남기지 못했더라도 후에 20개의 캐릭터는 달랐다.
특히 승천 모험까지 도달했던 마지막 10개의 캐릭터는 역사에 이름이 남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뚝.
제목을 훑던 강설의 손가락과 시선이 한곳에서 정지했다.
– 격동의 10년.
강설은 망설임 없이 그 책을 뽑아 들었다.
부제가 인상적인 책이었다.
– 역사를 바꾼 초인들의 이야기.
파라락.
그의 페이지를 넘기는 손짓이 분주해졌다.
책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를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목차를 살피는 것이니, 강설 또한 그곳에서 멈추었다.
– 시작하며.
1. 서리의 대공이 어떻게 탄생했는가.
2. 서리의 대공과 조디악의 상관관계.
3. 대륙을 경악으로 몰고 갔던 레오 황제의 무덤을 파헤친 자는 과연 누구인가.
4. 공교로운 시기에 사라진 불사.
5. 모든 것을 베는 검, 그것은 실재하는가?
6. ……
……
‘…전부 내 캐릭터잖아?’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은 전부 강설이 육성했던 말에 관한 이야기였다.
“말도 안 돼….”
사람 한 명의 일생에는 많은 것들이 녹아 들어가 있다.
지금, 강설이 있는 영원의 세계, 판데아엔 그 자신의 30개의 삶과 죽음이 함께였고…
그는 어느새 판데아의 역사가 되어 있었다.
* * *
“그래, 이곳이야.”
“여기에 손녀분이….”
“아니지. 시신은 없거든. 그래도 시신은 없지만, 내가 기리는 장소니까 나름의 의미는 있네.”
강설이 고개를 끄덕이고 빌을 따랐다.
그는 어제와는 달리 말수가 현저히 적어진 상태였다.
– 스노우맨 갑자기 진중모드인데 왜 그런지 아는 사람?
– 퀘스트가 예상보다 시시해서지 ㅡㅡ
– 동명이인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거란다 ㅎㅎ
– 여려! 저래서야 앞으로 힘숨찐의 길을 걸을 수 있을지…
– 꼭 근데 찐따여야 하는 거야?
“자, 이 자리야.”
적당한 묘비가 세워져 있는 무덤.
묘비에는 빌이 직접 그녀에게 바치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웠던 여인.
“누군가를 기린다는 건 좋은 일인 것 같아. 비록 시신도 없는 묘비일지라도 꼭 그 사람을 떠올리게 되거든.”
“그렇군요….”
“자, 옆에 있는 묘비가 자네와 이름이 똑같은 모험가의 묘비일세. 어서 시계의 주인을 찾아줘야지.”
“알겠습니다.”
강설이 낯선 묘비에 성큼성큼 다가섰다.
아무런 반응 없이 시계를 올려놓으려던 강설이 멈칫했다.
– 어려움을 모른 척하지 않았던 사람.
그의 가슴속에서 뭔지 모를 뜨거운 게 솟구쳐 올랐다.
그것은 신들을 향한 복수심도,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흥분도 아니었다.
깨진 회중시계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미안합니다.”
강설은 이제야, 빌의 이름도 이 회중시계에 얽힌 사연도 기억하지 못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모든 건 그가 잊었기 때문이었다.
억지로, 떠오르는 기억을 수면 아래로 가라앉혀가며 가까스로 잊었던 기억이다.
펌블이란 말이 있다.
대실패라고도 불리는 용어.
주사위를 굴려 1이 나오거나 최악의 상황을 초래할 때 그것을 펌블이라 부른다.
그의 첫 번째 캐릭터인 스노우맨은 펌블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어린 나이였던 강설은 충격을 받고 그것을 잊고자 노력했다.
그래서 잊게 된 것이다.
“미안합니다, 내가… 너무 늦게 찾았습니다.”
시계가 묘비 위에 올려진다.
강설이 경험한 서른 개의 삶 중, 하나의 삶이 이렇게 매듭지어졌다.
그 순간, 그의 시야를 메시지가 사로잡았다.
[회중시계의 진정한 주인을 찾았습니다.]
[보상으로 능력 점수를 획득합니다.]
당연히 여기서 끝날 줄 알았던 메시지는, 예상을 벗어나 계속되었다.
“크으윽….”
두통과 함께 메시지가 떠올랐다.
[‘스노우맨’의 전승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