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175
제174화
우드드득…
우드득…
보르누일의 몸이 코골이와 이갈이의 입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는 가운데, 정작 프래넌은 과거를 떠올리고 있었다.
과거, 그의 스승 베일이 아직 여물지 않은 프래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아주 고약한 문제가 있구나.
– 네?
– 프래넌, 전투에 어째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이냐?
– 그게….
– 내가 맞춰볼까? 너, 남을 믿지 못하는구나?
그랬다.
프래넌은 어려서부터 자신이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걸을 사람이라 여겼다.
비록, 보잘것없는 태생이었지만 그 끝은 반드시 위대하리라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자신이 우월하다는 걸 자각하면서 남들을 믿지 않게 되었다.
– 전력을 다했다가 실패하기라도 하면… 그땐 정말 끝이잖아요….
– 그게 어째서 끝이란 말이냐? 동료들이 있지 않으냐?
– …그들은 저와는 달라요. 쉽게 실패할 거예요.
– 큭큭… 균형을 중시하는 천칭과는 어긋난 아이구나. 자신에게 짐을 더 지우다니.
– 어째서 남을 믿어야 하죠?
– 마법사니까. 남들이 마법사들은 대단한 줄 아는데, 사실은 전부 저 잘난 줄 아는 바보들이거든.
– 마법은 위대해요.
– 마법은 그렇지. 마법사는 아닐걸?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놈들이란다.
카드드드득!
프래넌이 상념에 빠져있는 사이, 강설에게 메시지가 떠올랐다.
[우르 : 보르누일을 처치했습니다.]
“끝, 끝난 건가요?”
유물회의 누군가 물었다.
프래넌이 건조하게 답했다.
“사망자는?”
“파악된 바로는 두 명입니다.”
“후우… 어디 있나?”
“여기, 따로… 어?”
마령을 회수한 프래넌과 원정대는 전투에서 사망한 이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시체들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런데.
“…어, 없어.”
“무슨 소린가?”
“시체 한 구가… 사라졌습니다.”
원정대의 말에 모두가 서로를 쳐다보며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시체가 사라지다니?”
“분명히 여기에….”
그때,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날 찾나?”
“…빌어먹을. 어쩐지 너무 쉽더라고.”
씨익 웃으며 등장한 존재는 방금까지 여기 있던 시체가 분명해 보였다.
머리가 깨져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으니까.
그런 자가 멀쩡히 걸어 다닐 수 있다니,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우르인가?”
“이제 내 이름 정도는 기억할 수 있나 보군. 조금 놀랐어, 너희들 꽤 하잖아?”
원정대원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분명 마령이 육체를 먹어 치웠는데….”
“거짓말!”
용병대원 중 누군가가 검을 들고 우르에게 돌진했다.
“개새끼! 분명 죽었잖아!”
턱-!
“커억….”
우르가 방금 나섰던 용병대원의 목을 졸라 들어 올렸다.
“나는 언제든지 너희를 죽일 수 있다. 심지어 너희의 몸 또한 빼앗을 수 있지. 이제는 보여줬으니 믿겠지. 나의 정신은 죽지 않는다.”
프래넌이 기가 찬 듯이 웃었다.
“하하 이거야 원… 분명히 죽였다고 생각했는데….”
“훌륭한 일격이었다. 자칫했으면 정말 죽었을지도 몰라. 뭐… 희박한 확률이긴 하지만.”
“그 능력… 살아있는 대상에게는 사용 조건이 까다로운가 보지?”
“…….”
“아니었다면, 굳이 시체를 이용해 우리를 겁박할 이유가 없지. 안 그래? 당장 내 몸을 빼앗았어도 될 것 아닌가?”
“맹랑하군. 한데… 아쉽게 됐어.”
“아쉽다니?”
“새로운 세상을 살아갈 몸으로 적당한 녀석을 고르려 했는데, 오랜만에 느껴본 고통에 조금 화가 나는군.”
툭…
우르가 깃들어 있던 시체가 픽 하고 쓰러졌다. 그리고, 그 대신 어둠 너머에서 무언가가 등장했다.
쿠직…
쿠지직…
이번에 등장한 녀석은 그 위압감부터 차원이 달랐다.
놈이 땅을 딛으며 다가올 때마다 공기가 진동했다.
“전부… 죽여주마.”
새로이 우르가 깃든 대상은 팔이 6개나 달리고 흉측한 송곳니와 뿔이 돋아난 녀석이었다.
그 거대한 덩치도 덩치였지만, 몸을 가득 메운 근육이 육체의 수준을 드러내고 있었다.
강설은 놈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토리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 정면 돌파는 무리겠군요… 근데, 지하 4층의 포식자는 코코와 쿵쿵이밖에 없는 겁니까?
– 잔뜩 있었는데, 놈들이 날뛸 때마다 쿵쿵이가 전부 잡아 죽였어. 아마 내 기억엔 한 친구가 더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안 보이네? 팔이 여섯 개나 되는 특이한 친구였는데… 아마도 쿵쿵이가 죽인 거겠지.
‘저 몸… 4층의 포식자 중 1명이다!’
강설은 상황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을 받았다.
프래넌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래서… 전력을 다하면 뒤끝이 안 좋다니까….”
프래넌은 품을 뒤적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가 이곳에 가져온 다른 마령은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코골이와 이갈이도 포식을 마치고 잠에 빠졌으니 프래넌이 몸을 바꾼 우르를 쓰러트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그는 실패했다.
처음에는 우르가 방심한 틈을 타 전력을 다해 공격을 가하면 상황이 쉽게 풀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잠시나마 했었다.
그 기대는 지금 보기 좋게 박살이 났고, 더 큰 시련으로 다가왔다.
휴식기를 거친 이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거악과의 싸움.
술로 찌들었던 그의 정신이 환기되며 과거의 기억을 불러왔다.
그의 동료였던 유린이 한심한 제자 때문에 백치가 되었을 때도.
– 유린! 왜… 대체 왜 이러는 거야….
– 마법사잖아.
그의 스승이었던 베일이 그를 꾸짖을 때도.
– 어째서 남을 믿어야 하죠?
– 마법사니까. 마법사는 하찮아.
“그렇군. 외톨이인 마법사는 이렇게나 무력하구나.”
쿠지직…
우르가 말했다.
“이 녀석의 몸은 꽤 단단하지만, 마법을 단 한 가지밖에 사용하지 못하지. 그 점이 아쉬워서 그동안 내버려 두었다만, 어쩔 수 없지.”
프래넌이 그 모습을 보고 한숨 쉬며 앞으로 나서려 했다.
가망이 없는 전쟁에 끌려나가는 병사가 이런 기분일까.
그런데.
스윽…
“숨 좀 돌리시는 게 어떻습니까?”
“…너?”
강설이 프래넌 대신 앞으로 나섰다.
그가 프래넌에게 몇 마디 말을 건네고는 천천히 검게 물들었다.
“제가 시간을 끌어보겠습니다.”
[숨겨진 모험 ‘독방’이 발동합니다.]
모험 22-5. ‘독방’
알카트론이 만들어진 이유이자, 천칭을 잡아먹은 죄수 ‘우르’가 나타났습니다. 그의 봉인은 오랜 세월 헐거워졌고 그는 마침내 깨어나 세상으로 나가려 합니다.
막아야 합니다.
막지 못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목표 : 우르 처치 혹은 봉인.
주의, 이 모험은 매우 위험합니다.
주의, 이 모험은 시시각각 상황이 변화합니다.
주의, 이 모험은 대장정이 예상됩니다. 따라서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현재 남은 시간 「없음.」
모험 정보와 더불어 얼핏 엿본 우르의 새로운 몸에 대한 정보.
‘놈도 초월이야…. 제길, 초월이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군.’
강설이 목을 꺾으며 소리를 냈다.
뚜두둑…
그의 등장에 우르가 기뻐했다.
“그래! 네가 있었지! 저 노인보다 젊은 육체가 필요하니 네 몸도 고려해봄직 하구나.”
“내 의견은?”
“…굳이?”
“나도 전력을 다해보지.”
“그래야 할 거야…. 아무도 널 도울 수 없을 테니깐 말이지.”
고오오오오오…
우르의 몸 주변으로 신비로운 기운이 모여들었다.
프래넌이 당혹스러움에 소리쳤다.
“무슨….”
지지지직…
투명하고 단단한 장벽이 우르와 강설만을 집어삼키고 나머지를 전부 밀어냈다.
[우르 : 가우고쿠가 외나무다리를 사용합니다.]
[그 누구도 장막 내부에 개입할 수 없습니다.]
무척이나 단순한 능력.
하지만, 그 능력이 우르가 차지한 흉악한 신체와 결합한다면 무시무시한 효율을 자랑할 것이다.
몸의 주인이었던 가우고쿠 또한 그렇게 4층의 포식자가 되었었으니.
강설이 피식 웃었다.
“왜 웃지?”
“마침 적절해서. 시작하지.”
강설은 쟈마드가 이끄는 대로 몸속의 기운을 이끌었다.
드드드드드…
그의 몸을 쏜살같이 헤엄쳐 다니는 것은 바로 대지의 근원력. 새로 얻게 된 힘이 어서 빨리 내보내 달라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가능하면 쓰고 싶지 않았는데….’
근원력은 다른 능력과는 달리 굉장히 불합리한 부분이 존재했다.
여기서 말하는 불합리한 부분이란 바로 힘의 소모에 관한 부분이었다.
‘근원력은 한 번 사용하면… 사라지니까.’
즉, 휘발성 능력이나 마찬가지란 얘기.
가능하면 근원력을 사용하지 않고 적을 쓰러트리는 게 가장 좋았다.
– 놈은 강하다. 가진 힘을 전부 써야 할 거야. 여기서 아껴봐야 죽으면 소용없다.
쟈마드가 강설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내며 대지의 근원력을 쏟아냈다.
콰드드드득!
그의 팔에서 거대한 검은 말뚝이 생성되었다.
콰지이익!
강설은 그것을 땅에 꽂아 넣었다.
파지지직-!
[산의 근원 주술 : 풍요의 땅을 사용합니다.]
[일대에 풍요로운 기운이 충만합니다.]
[대지의 갑옷이 영역 내의 모든 이에게 적용됩니다.]
[풍요로움은 기회를 잉태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일시적으로 30% 상승합니다. 이후 추가 능력치는 천천히 하락합니다.]
[영역 내에서 일시적으로 능력이 강화될 확률이 대폭 증가합니다.]
[영역 내에서 새로운 능력을 깨우칠 확률이 대폭 증가합니다.]
바위 거인의 핵을 통해 얻은 대지의 근원력을 그야말로 몽땅 털어 넣다시피 하여 얻은 결과물.
휘리릭-!
카렌과 카루나 또한 소환되어 그의 곁을 지켰다.
우르가 웃었다.
“그 힘… 너 또한 내게서 뻗어 나온 가지로군. 그림자… 인가? 아니, 넌 뭔가 이상하구나. 좋다!”
“뭐가 좋다는 거지?”
“네 몸이 좋겠어. 이 녀석으로 활동하기엔 영 불편하거든. 난 몸을 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슥… 슥…
투명한 장벽으로 다른 이들과 가로막힌 채, 강설과 우르가 충돌했다.
콰아아아앙-!
우르의 주먹에 얻어맞은 강설.
하지만 대지 갑옷이 조금 떨어져 나가는 정도로 그쳤다.
강설이 씨익 웃었다.
“확실히, 그래 보여.”
“뭐?”
“너, 몸치구나?”
콰아아아아아아앙-!
“우우욱….”
강설의 올려 치는 주먹 한 번에 땅에서 몸이 조금 떠오른 우르. 위대하다고 자부한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충격이었다.
우르는 재빨리 여섯 개의 팔을 휘둘렀다.
“우아아아아아아!”
훙-! 훙-! 훙!
탁! 타악!
강설이 대다수의 일격을 피해내고, 또 몇몇 일격은 막아내면서 그에 대응했다.
원정대가 보기에는 워낙 위태위태한 상황이었지만 정작 강설은 미미한 웃음을 계속해서 흘리고 있었다.
전력을 다한다는 건 무엇일까.
강설은 초기와는 다르게 무척 빠른 속도로 강해지면서 기존의 힘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심지어 전력을 다한 자신이 어느 정도로 싸울 수 있는지도 명확히 깨닫지 못했었고.
‘어디… 시험해볼까?’
입에서 절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
슈슈슈슉!
퍼버버버버버벅!
오히려 강설의 손이 여섯 개라도 되는 것처럼 빠른 연타가 우르의 몸을 두들겼다.
“큭….”
콰직!
마음껏.
콰아아앙!
“끄으윽….”
정말이지 마음껏.
떠어어엉-!
파지지지지직!
“크윽… 네놈….”
마음껏 때릴 만한 상대를 만났다.
철판을 두들기는 듯한 얼얼한 감각에 손이 저려 왔지만, 강설은 웃었다.
지켜보던 원정대가 그들의 싸움을 보며 기겁했다.
“저게 무슨….”
“무슨 힘이 저렇게….”
“압도하고 있어요!”
“이, 이기고 있어?”
이제는 누가 괴물인지도 분간이 안 되는 상황.
오히려 전투를 치르며 웃고 있는 강설 쪽이 더 기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프래넌은 전투 현장을 바라보며 손에 힘을 꽉 쥐었다.
“정말이지… 하찮았군.”
그는 지금 자신이 강설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언젠가, 누군가를 믿어야만 하는 순간이 도래한다는 것을 배우긴 했으나 깨우치진 못했었다.
아마도 유린도 베일도 이런 순간을 고대하며 살아오지 않았을까 싶었다.
– 프래넌 님, 시간을 벌어보겠지만 여기서 놈을 쓰러트린다고 끝이 아닐 겁니다. 놈과의 싸움은 놈이 다시 잠들지 않는 이상 계속될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아시리라 믿습니다.
강설이 우르와 싸우기 전, 남기고 간 말. 프래넌은 그게 무슨 뜻인지 곧 알아차렸다.
“놈이 전투에 한눈 팔려있는 동안, 놈의 구속 언령을 찾아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승산이 없어! 반드시 이곳에 있을 거야!”
“예!”
그 말을 듣고 원정대가 사방으로 흩어지려 하는 순간, 어둠 속에서 마엘이 등장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마엘?”
“구속 언령의 위치를 찾아냈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마엘이 손가락을 위로하여 천정을 가리켰다. 무언가 반딧불이 같은 것들이 잔뜩 떠다니고 있었다.
“…저건 뭔가?”
“제가 부리는 곤충 중 일부입니다. 별바라기라는 곤충입니다.”
“그래서? 저게 왜….”
“이 친구들은 마력의 흔적을 따라 흩어지고 발광하죠. 여러분의 몸 주변에도 잔뜩 달라붙어 있을 겁니다.”
확실히, 원정대의 몸 주변에 덕지덕지 반딧불 같은 곤충이 붙어 있었다.
프래넌이 입매를 비틀었다.
“그래, 천정이란 말이지… 그럼 저 주변을 지금보다 환하게 밝혀야겠군.”
“부탁합니다, 프래넌 님.”
“난 빛 마법은 잘 못 다루는데?”
“예?”
프래넌 대신 빛 마법에 정통한 차멜리가 나서며 말했다.
“저 주변만 밝히면 된다는 거죠?”
“예, 한시라도 빨리 해석에 들어가야 합니다.”
“좋아요, 순례자들이여. 힘을 보태주세요!”
츠즈즈즈즛…
[차멜리가 축성 : 여명을 발동합니다.]
[여명이 유지되는 동안 광원을 형성하며 효과가 미치는 대상에게 따스한 기운을 불어넣습니다.]
“있다! 저기 있어!”
“근데… 너무 길지 않나?”
마엘의 예상이 맞았다.
천정에는 언령이 분명해 보이는 커다란 글자가 주르륵 쓰여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예상했던 것보다 양이 많았다.
우르라는 괴물을 오랜 세월 가둘 위력의 언령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했지만.
‘그래 봐야 몇 문장 정도다… 제발….’
마엘이 어깨에 준비해두었던 탐닉자를 태웠다.
“부탁한다, 키키야!”
우끽…
“해석해!”
끼긱…
키키가 천정에 쓰인 글자를 그 눈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