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187
제186화
제리가 카루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고개를 땅에 처박고 말했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 왜….”
으드득…
제리의 뻔뻔한 태도에, 조경택이 이를 꽉 물고 말했다.
“전이자를 끌어들여서 사냥한 주제에 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 있지?”
“아… 죽은 전이자 때문에 그래? 네 동료도 있었지? 별로 강한 녀석들도 아니었는데… 보상할게! 보상하면 되잖아! 그럼 된 거지?”
“보상… 보상이라니!”
조경택이 제리의 반응에 화가 나서 그녀에게 해코지하려 했다. 하지만, 동료들이 그의 팔을 붙잡고 늘어졌기에 그것을 이루진 못했다.
제리는 방금 자신이 한 말이 뭐가 잘못됐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마치 ‘보상하겠다는데 왜 저렇게 화를 내는 거지?’라는 표정.
강설이 그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리안 쿠르오스. 그를 왜 그림자로 만든 거지?”
“리안? 아, 그 골칫덩이… 팔리지도 않는 그림자 때문이야? 말을 하지! 공짜로 줄게!”
“아니, 경위를 묻는 거다. 리안을 왜 그림자로 만들었지?”
제리가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하나, 그녀가 고르고 고른 말은 강설의 마음을 더 무겁게 할 뿐이었다.
“떠, 떠돌이 모험가들은 품이 덜 드니까… 찾는 사람도 없고….”
“이 남자는 돌아갈 곳이 있었다.”
“그랬어? 몰랐어. 안타깝게 됐네. 응? 얼마야? 보상할게.”
장사치가 혓바닥을 계속해서 놀리자 강설이 물었다.
“얼마일 것 같나?”
그 위험한 느낌의 질문에 제리는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강설은 그녀의 대답을 굳이 기다리지 않고 다른 요구를 했다.
“영생교에 대해서 아는 대로 말해.”
“영… 생교에 대해?”
“그래.”
“말하면 살려줄 거야?”
강설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아니, 되살리지 않을 거다.”
“…….”
그녀의 죽음은 확정적이었다.
강설은 이미 그녀를 시체 대하듯이 하고 있었다. 그야 그녀의 목숨은 손만 한 번 휘저으면 날아갈 파리 목숨이었으니까.
제리는 죽고 싶지 않았다.
하나, 그녀의 지혜로는 이 지옥 같은 순간을 빠져나갈 방법을 떠올릴 수 없었다.
그녀는 시간을 끌어야 했다.
“여, 영생교에 대해 어디까지 아는데?”
“교주를 중심으로 뭉친 사이비.”
“틀린 말은 아닌데… 그럼 처음부터 설명한다?”
제리는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더 많은 얘기를 할수록 그의 빈틈을 찾아낼 시간이 늘어나기도 했고 그 시간 동안 세리스 가티프가 뭐라도 수를 내주지 않을까 했다.
후자는 솔직히 기대하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 상황에선 그녀를 구할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영생교는 후대에 불사라고 불리는 마인의 탄생에서 비롯됐어. 그는 교주가 되어 휘하에 많은 인원을 거뒀지.”
“그리고?”
“개중에는 상종 못 할 악인도 있었지만, 불사에게만큼은 고분고분했어. 그리고 영생교가 판데아에 패악질을 부렸다는 건 어느 정도 날조된 소문이야. 물론, 나쁜 짓을 벌이긴 했었지만 다 수면 아래에서 했던 거라고….”
“이봐, 일부러 얘기를 빙 돌려서 살을 붙이는 것 같은데 내가 궁금한 건 불사가 떠난 이후의 영생교다.”
“불사가 떠난 후… 최근의 영생교를 말하는 거구나. 아, 알았어. 불사가 신이 되겠다며 떠난 후, 영생교는 지파가 4개로 나뉘었어.”
“지파가 나뉘었다고?”
원래, 영생교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였다.
단일 종파에서 비롯된 큰 힘은 영생교라는 이름을 두려움의 상징으로 만들기에 충분했었고.
제리가 눈치를 살피며 답했다.
“나, 나도 잘은 모르지만… 불사라는 존재의 빈자리 때문에 단합이 잘 안 된 게 아닐까? 교인들을 하나로 묶을 구심점이 없어졌잖아.”
“그래, 너는 그중에서 어느 지파와 연관되어 있지?”
“나는 그림자 지파의 주인이신 브리아 님과 거래해왔어. 그림자를 모아 브리아 님께 바치면 내게 재물을 내리셨지.”
“흠… 브리아라… 한데, 이런 방식은 영생교의 방식이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제리가 흠칫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꽤 오래전부터 영생교는 힘을 모으는 데 집중하고 있어.”
“어째서지?”
그녀가 강설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충격적인 말을 꺼내었다.
“부활이… 임박했으니까.”
“…뭐?”
“불사… 어어어….”
제리가 갑자기 말을 잇지 못하고 침을 흘렸다. 그녀의 두 눈 주변으로 실핏줄이 자글자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푸화아아악!
피와 살점이 일행에게 후두둑 튀었다.
“꺄아아아아아악!”
“…….”
제리의 머리가 수박 깨지듯 터져나갔다.
[장사치 제리를 처치했습니다.]
[제리의 귀중품이 생성됩니다.]
[모험 목표를 충족하였습니다.]
[제한 시간이 종료되거나 보상을 선택하면, 모험을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우르가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 아까부터 느껴지던 꺼림칙한 기운은 이것 때문이었나? 암시치고는 수준이 그럴싸한데?
‘되살려야 하나?’
– 들을 건 다 들은 거 아니야? 그리고 일전에도 말했다시피 네 그림자 공간은 지금 전혀 여유가 없어. 당분간은 새로운 소환은 생각도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사람의 머리가 눈앞에서 폭탄처럼 터지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니 강설도 마냥 태연하게만 굴 수는 없었다.
‘그건 그렇고 부활이라… 불사가 돌아온다고?’
– 불사? 아는 녀석이냐?
‘알지.’
모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불사는 강설 그 자신이기도 했었으니까.
“아무튼… 일단….”
스르륵…
그런데 갑자기, 죽은 제리의 몸에서 그림자가 흘러나왔다.
제리와는 다른 여인의 그림자였다.
“당신은… 뭔가요? 내 귀여운 하수인에게 무슨 짓을 한 거죠?”
“…넌 뭐지?”
– 호… 일반적인 암시가 아니었군. 어쩐지….
그림자 여인이 표정을 와락 구겼다.
“그렇군요… 당신이 내 고양이를 죽인 거군요.”
“네가 브리아인가?”
“…당신, 찾아내서 그림자로 만들어버리겠어요.”
강설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말에 관련된 일이라면, 그는 가끔씩 광기를 내비쳤다.
“내가 먼저 너를 찾아내 주마.”
“흥….”
푸화아악!
강설이 손을 휘젓자, 브리아의 그림자가 물감처럼 으스러졌다.
강설은 손을 후두둑 털며 그녀의 등장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세력 : 영생교에 대한 당신의 영향력이 증가합니다.]
[세력 : 영생교와 적대적인 관계로 바뀝니다.]
[세력 : 영생교와 충돌할 수 있습니다.]
[세력 : 영생교가 당신의 행보에 깊은 관심을 가집니다.]
– 자주 부딪힐 것 같은 예감인데….
우르의 말에 강설은 구태여 답하지 않았다. 벌어질 일이 벌어진 것뿐.
그보다, 중요한 일이 남아있었다.
거의 괴멸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그림자가 카렌의 손에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나, 아직 살아있는 그림자가 있었다.
“으어… 으어어어….”
여전히 말을 어눌하게 하는 리안, 바로 그의 그림자였다.
강설은 철창에서 나오지 않고 있는 리안에게 다가갔다.
리안의 몸 말단은 처참하게 뭉개져 있었고 몸에서 그림자가 끝없이 공기 중으로 소실되고 있었다.
그의 주인인 제리마저 죽자, 붕괴는 가속화되었다.
파사삭…
리안의 오른발이 부서졌다.
쿵…
균형을 잃고 쓰러진 리안.
– 이 녀석… 분해되기 일보 직전이군.
‘…그럴 수도 있나?’
– 이지가 약간이라도 남아있는 상태에서 그림자가 되기를 맹렬하게 거부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아마 붕괴의 전조는 이미 오래전에 찾아왔을 거다.
‘피할 방법은?’
– 없다.
‘그렇군.’
강설이 리안과 눈을 맞추었다.
“으어… 으어어어….”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강설은 알 것만 같았다.
“집에… 가고 싶다고?”
이지가 거의 남지 않은 리안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강설이 입술을 짓깨물고 말했다.
“돌아가자, 집으로.”
히쭉-
리안이 그제야 활짝 웃었다.
그리고.
푸스스스스…
그림자가 되어 흩어졌다.
강설은 그가 흩어진 자리를 더듬었다.
하지만, 쥘 수 있는 건 미련과 연민뿐이었다.
[‘리안 쿠르오스’의 전승이 시작됩니다.]
리안의 기억이 강설에게 쏟아져 들어왔다.
* * *
이것은 리안의 기억.
“리안, 뭐가 좋다고 그렇게 히죽거리나?”
“이번 모험이 마지막이니까요. 이제 정말로 때려치울 거예요.”
“이 일을 지금까지 해오면서 자네만큼 소질 있는 사람을 못 봤는데… 매번 관둔다는 소리군.”
“모든 일에는 어울리는 사람이 있는 법이에요. 나 같은 사람은 좋은 일을 할 그릇이 못 돼요. 담도 작고, 일 처리도 미숙하죠.”
“나아지고 있잖나. 그럼 된 거 아닌가?”
리안이 히죽 웃으며 답했다.
“한편으론 무뎌지고 있는 거겠죠. 미안해요, 나는 이 일과 정말 안 맞아요.”
“끄응… 어쩔 수 없지. 근데 매번 그만둔다고 하기만 했지, 그만두면 뭘 할지는 듣지 못했었군.”
“듣고 싶으세요?”
“궁금한 건 못 참아. 말해줘.”
동료 모험가의 말에 리안이 자신의 계획을 얘기했다.
“이제껏 모은 돈으로 집 근처에 밭을 일굴 거예요.”
“에엥? 고작 그것뿐?”
“예. 그래도 이 일을 하기 전에는 꿈도 못 꿨던 일이에요.”
“흐음….”
“지주에게 땅을 빌려 소작을 했었는데… 어느 날 자식놈이 지주의 아들과 치고받고 싸우고 들어온 날이 있었어요.”
“저런… 그래서?”
“자식놈을 혼냈죠. 왜 싸웠는지는 묻지도 않고. 알고 보니 지주의 아들놈이 제 아들에게 가난한 놈의 자식이라고 놀려댄 모양이더라고요.”
“…….”
“저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어요. 정말이니까.”
리안의 눈이 물기를 머금었다.
“가난하니까.”
“리안….”
“가난은 말이죠, 전염병보다 무서워요.”
“그게 무슨 말인가?”
“나뿐만이 아니라, 주변 모두를 힘들게 해요. 가난이라는 건… 그렇게 전염되죠.”
“그래서 모험가가 된 거로군.”
“예, 덕분에 두둑하게 챙겼습니다. 하하하!”
리안은 먼 고향을 그리며 말했다.
“밭을 일굴 거예요. 남의 밭이 아닌, 이 리안의 밭을.”
“허허허… 흥미롭군.”
“호박이 좋을까요? 포도도 생각해봤는데….”
“뭐가 됐든, 자네 좋을 대로 하게. 근데 그거 아나?”
“네?”
“늘 울상인 자네가 가족 얘기를 할 때만큼은 웃고 있다는 거?”
“…….”
“가난을 떨친 것보다도, 가족이 그리운 거겠지.”
“그럴지도 몰라요.”
“돌아가게. 이제 당당한 아버지로 살아도 될 거야.”
이 같은 대화를 나누고 얼마 뒤, 리안은 정체불명의 괴인들에게 습격을 당한 후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돌…아가야… 하는데….”
흐릿해지는 시야.
그리고 미련들.
“나… 집에 가야… 하는데….”
* * *
그 기억을 끝으로, 두통에서 해방된 강설이 이를 꽉 물었다.
리안이 느꼈던 감정이 여과 없이 강설의 심장을 찔러왔다.
“우웁….”
구역질이 났다.
“혀, 형? 괜찮아요?”
“하아… 하아….”
조경택의 일행인 효민이 강설의 얼굴을 보고 놀랐다.
“식은땀 좀 봐요! 뭔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리안 쿠르오스’의 유지(遺志)를 이어받았습니다.]
[죽은 이의 능력을 전승합니다.]
[선천 재능 : 여행자의 나침반을 이어받습니다.]
[여행자의 나침반을 모험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소명 : 되찾아야 하는 것들의 내용이 변경됩니다.]
‘결국, 이 능력이 되돌아온 건가?’
돌고 돌아 다시 강설에게 되돌아온 리안의 선천 재능.
여행자의 나침반은 게임 체인저라고도 불리는 선천 재능 중에서도 그 값어치가 상당한 능력이었다.
이 나침반의 능력은 매우 단순했다.
모험 목표의 방향과 거리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
그리고 지금, 강설이 이 나침반을 사용할 모험은…
[여행자의 나침반을 소명 : 되찾아야 하는 것들에 사용합니다.]
[나침반이 흔들립니다.]
드드드드드…
어느새 그의 시야에 떠오른 거대한 화살표.
‘멀어, 그리고 남서쪽? …설마?’
머릿속에 그려진 지도로 가늠해봤을 때, 떠오르는 말이 하나 있었다.
‘확실치는 않지만… 확인해 봐야겠네.’
여행자의 나침반을 손에 넣은 강설은, 이제 판데아 곳곳에 잠든 그의 말의 흔적들을 찾아 나설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이전보다는 훨씬 빠르게 그 지향점까지 도달하게 될 것이다.
우르가 강설이 전승을 끝마치자 말을 걸어왔다.
– 호… 재밌군, 방금 신비로운 힘이 네게 깃드는 것을 느꼈다. 네 힘인가?
‘뭐,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강설이 우르와 대화를 나누는 줄 모르는 조경택은 그를 걱정하며 물어왔다.
“형? 괜찮은 거죠?”
“응, 경택아.”
“다행이에요. 일단….”
“경택아, 일단 형한테 잠시만 시간을 줄래?”
“예? 아, 알았어요.”
“그래, 내게서 잠시만 떨어져 있어 줘.”
강설의 힘을 목격했으니, 일행에게 경외라는 감정이 생겨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조경택 일행은 주르륵 물러나 벽에 바짝 붙다시피 했다. 강설이 무슨 연유로 조경택에게 물러나라고 한 건지 대충 짐작한 우르가 말했다.
– 큭큭… 이렇게 빨리 이만한 양의 그림자 정수를 찾을 줄이야. 아무래도 네게는 행운이 따르는가 보군.
아직, 코코의 부활이 남았다.
‘코코를 깨우는 건 어떻게 하면 되지?’
– 간단하다. 네 까마귀를 창조할 때처럼 머릿속에 그리면 된다. 단, 근원을 손에 꼭 쥐고 말이지.
강설이 품에서 코코의 근원을 꺼냈다.
– 시작해라.
눈을 감은 강설이 정신을 집중하자, 검은 구슬이 맥동했다.
두근…
두근…
그리고 동시에 주위에 깔린 검은 연무, 즉 그림자의 정수가 강설을 기준으로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휘오오오오오오-!
“저… 저게 뭐야?”
“…지금 뭘 하는 거죠?”
콰르르르르릉-!
검은 연무 속에서, 벼락이 칠 때마다 늑대 형상의 흔적이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 부활이 임박했다! 놈을 깨워라!
강설이 비장한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웃으며 코코의 근원을 꽉 움켜쥐었다.
“이리 와, 코코… 밀린 산책 가야지.”
휘오오오오오-!
그 말에 그림자가 거칠게 진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