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215
제214화
후우우웅-!
후우우우우웅-!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오르는 쿠파. 그 등에는 4인의 일행이 옹기종기 붙어 앉아 쿠파의 깃털을 꽉 쥐고 있었다.
“마, 막아….”
“어떻게 이런 일이!”
“막으라고! 쏴라! 쏴-!”
“마법사들은 이럴 때 뭐 하고 있는 거야!”
“머저리들이… 지금 무슨 상황인지 모르면 닥치고 있어!”
산맥에 남겨진 전이자와 기사단, 그리고 일부 마법사들까지.
그들은 허탈한 표정으로 이미 저 멀리 날아가고 있는 거대한 새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말이 되냐고….”
“하늘로 날아가 버리다니….”
후두두두두둑-!
쿠파가 오기 전까지 계속 하늘을 빙빙 맴돌던 다른 새들까지 쿠파를 따라 날아갔다.
“제기랄… 추적해!”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쿠파가 향한 방향은 남쪽이었다.
쿠파는 지금 산맥보다도 더 높은 위치, 그러니까 호흡이 가빠올 정도의 높이에서 고공비행을 하고 있었다.
“크으으윽… 리, 리오나 님! 꽉 잡으십시오!”
“떨어질 것 같아요! 바람이 너무….”
리오나의 말은 엄살이 아니었다.
지독한 바람이 앞에서부터 불어와 그들을 떨어뜨릴 것처럼 뒤흔들었다.
후우우우우웅-!
“으으으윽….”
“버틸 수가….”
그때였다.
휘리릭-!
휘리리릭-!
“…어어?”
“이건….”
강설의 몸에서 그림자 손이 빠져나와 그들을 단단하게 지탱했다.
이쯤 되자니 떨어지려고 해도 떨어질 수가 없었다.
– 선생님, 전 좌석 안전벨트 안 하면 벌금입니다.
– 휴, 하마터면 벌금 낼 뻔했네요^^; 뭐야 시발 손이잖아?
그리고 그제야, 모두는 실감했다.
그들이 공중에 떠 있다는 사실을, 날개를 단 생물의 등에 타 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단한 팔에 붙들려 푹신한 생물의 등에 기대고 나서야 하늘을 날고 있다고 자각했다.
“허어… 허어어….”
리오나가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숨쉬기 괴로우십니까, 리네?”
“노, 놀라서 그랬어요. 그야, 하늘을 날고 있잖아요.”
“맞습니다. 우리가 정말… 하늘을 날고 있군요.”
후우우웅-!
후우웅-!
하늘 아래의 모든 풍경이 서서히 지나갔다.
슬슬, 동이 터오려 했다.
산맥을 넘으려 했던 시각이 새벽 와중이었던 걸 생각한다면 그들이 얼마나 집중하며 돌파를 감행했는지 알 수 있었다.
끼루루루룩-!
쿠파가 어느새 이름 모를 협곡으로 진입했다.
후아아앙-!
거센 바람, 칼바람이라고도 불리는 협곡 특유의 환영식이 그들을 반겼다.
“윽….”
리오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칼바람은 살갗이 찢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사납고 시렸다.
너무 추워 옷깃을 여미고 심지어는 바람이 들어오는 모든 공간을 막고 싶은 마음에 마음의 문마저 닫고 싶을 만큼.
휘이이이이이잉-!
“리오나, 앞을 보시죠.”
“앞을….”
“눈을 뜨셔야 합니다.”
차도르프의 말에 리오나는 질끈 감았던 눈을 서서히 떴다.
“…….”
“해가 뜨고 있습니다.”
타오르는 해가 그들의 얼굴에 남아있던 그늘을 지워내고 있었다.
볕이라는 물감으로 그들의 얼굴을 새로이 덧칠하는 여명은 이내 모든 것을 녹였다.
딱 좋은 온도.
“…아름다워요.”
“하하하! 맞습니다, 리오나! 세상은 아직 당신이 알지 못하는 신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내가 알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에요.”
그늘을 걷어내는 것은 볕이다.
반대로 볕의 가치를 알게 하는 것은 그늘이기도 했다.
리오나는 짧은 시간 너무 많은 고난을 경험했다.
형제가 그녀를 죽이기 위해 작은 세상을 움직였고 그녀는 여린 몸으로 그 모든 것과 맞서야 했다.
단둘, 아니 단 셋의 아군만으로.
난생처음 발바닥에 물집이 가득 잡혀보았고 전력으로 달려보기도 했다.
발을 헛디뎌 몇 바퀴 구르기도 했고 종일 끼니를 굶어보기도 했다.
이 모든 경험이 지금의 순간을 더욱 가치 있게 했다.
“우으으으… 우흐으윽….”
“…리오나.”
“꼭, 살아서 돌아갈 거예요, 나.”
“…….”
“꼭… 꼭 살아남아서 후에 모두에게 당당하게 말할 거예요. 정말로….”
잔뜩 일그러진 그녀의 얼굴 위로 눈물이 흘렀다.
볕이 눈물을 다이아몬드처럼 보이게 비추었다.
“내가 살아있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이 모든 경험이 정말로 소중했다는 걸… 모두에게 말할 거예요.”
“참으로…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이제 포기 같은 거 안 해요! 지금 이 모든 것을 시험이라 생각할 거니까! 내가 세상을 올바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시험이라고!”
“…충심으로 그 길에 따르겠습니다.”
강설은 그 후로도 꽤 오랜 시간을 비행했다.
아마도, 이번 여정에서 브래그랜드에 집결했던 전이자와 기사단들은 다시는 강설 일행을 가로막을 수 없을 정도로 멀어져 있을 것이다.
쿡쿠르르르…
공명을 통해, 강설에게 전해지는 쿠파의 뜻.
“…비행은 여기까지일 것 같습니다.”
“쿠파가 지쳤나 봐요?”
“급히 떠나야 한다고 하는군요. 이번 일 때문에 먼 거리를 날아온 모양입니다.”
후우웅…
후우우웅…
날개를 펄럭이며 지상에 내려앉는 쿠파.
쿡쿠…
쿠파가 모두를 내려준 후 고개를 앞으로 쭉 내밀며 숙였다.
강설이 그런 쿠파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손을 내밀어 쿠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마웠어, 쿠파. 정말로.”
쿡쿠르르!
리오나 왕녀 또한 손을 내밀며 물어봤다.
“마, 만져 봐도 돼요?”
“물론입니다.”
스윽…
리오나 왕녀가 쿠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해맑게 웃었다.
“정말 고마웠어요, 쿠파 님. 안전하게 데려다줘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쿡쿠르르르!
후우우웅-!
후우우우우우웅…
쿠파가 짧은 작별을 마친 후 하늘로 날아올라 다른 새들과 함께 사라졌다.
강설이 남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얼마 안 남았습니다. 프리욘이 지척입니다.”
* * *
꿀럭…
눈과 코, 귀 그리고 입까지.
그 전부에서 피를 뿜어내며 죽어가는 인간.
“끄아아아아악!”
퍼어엉-!
사내의 몸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완전히 터져버렸다.
그제야,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마법진이 발동되었다.
지이이이잉-
그 위에 서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다른 곳으로 전이되었다.
전이를 마친 브리아가 관자놀이를 짚으며 인상을 썼다.
“으음… 조금 어지럽네?”
“괜찮으십니까, 브리아 님?”
“응. 별건 아니고 전이 마법진을 연달아 사용하니 부담이 좀 있어서 그래.”
“강력한 마력을 보유한 이들이 겪게 되는 부작용이죠. 조금 쉬었다가 진행하시죠.”
“그래. 근데 제물이 얼마나 남았지?”
땅딸보 노인이 재갈을 물린 제물들의 수를 헤아렸다.
“준비해온 제물은 대략 스무 개 정도 남았습니다. 예상보다 많이 소모했지만, 나머지는 지부에서 그때그때 보급하면 되겠지요.”
사람의 머릿수를 셀 때 ‘개’라고 표현하는 것부터 이들이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보여주었다.
영생교는 불사가 사라진 후, 끔찍한 짓도 거리낌 없이 수행하는 자들로 교체되었다.
“그래 조금 쉬었다 하자고.”
저벅… 저벅…
여우인지 새끼 늑대인지 모를 모피를 목에 걸친 그녀는 조금 앞에 마련된 화려한 의자에 다가가 앉았다.
“속도는 나쁘지 않아. 아슬아슬하게 따라잡기는 하겠네.”
“한데… 이곳 지부장이 전하기를, 슈로가 얼마 전에 이곳에 다녀갔다고 합니다.”
“슈로가? 살아있었구나!”
“예. 멀쩡히 살아있었다는군요.”
“역시, 그렇게 쉽게 당할 아이가 아니지. 그래서?”
“브리아 님이 이곳으로 오고 계신단 소식을 듣고 급하게 서신을 남기고 떠났답니다.”
“굳이? 어디 줘봐.”
파락…
브리아가 슈로가 남긴 쪽지를 열어 확인했다.
– 브리아 님, 슈로예요. 죄송해요, 놈들을 놓쳤어요. 하지만 충돌 당시에 놈들에게 흔적을 남겼으니 금방 다시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음… 슈로가 패배한 게 사실이었네.”
– 정기 연락이 끊겨서 걱정하고 계실 텐데,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놈들을 쫓아 발목을 붙잡고 있을게요! 그럼, 여기에 놈들이 사용하는 능력과 구성을 따로 적어놓을게요. 브리아 님… 보고 싶어요.
화륵-!
쪽지를 확인한 후 양초에 태워버리는 브리아.
“영특한 아이라니까? 제 할 일을 알아서 찾으니 말이야.”
“큭큭… 그러니 브리아 님께서 아끼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놈들의 위치는?”
삐쩍 마른 남자가 말했다.
“브래그랜드 저지선을 돌파했답니다.”
“벌써? 그렇게 강해? 하긴… 대마법사가 있으니까. …아니, 잠깐?”
브리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슈로가 보낸 쪽지엔 대마법사 얘기가 없었는데?”
* * *
프리욘을 목전에 둔 관문.
북쪽에서 항구 도시로 내려가기 위해선 반드시 이곳을 지나가야 했다.
한차례, 카루나의 맹공에 반 토막 났던 슈로는 몸을 회복한 채 그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서 놈들의 발목을 붙잡아야 해.”
후우… 후우우…
그는 인정해야 했다.
상대는 강적이었다.
‘근데, 소환사가 맞기는 한 건가?’
압도적인 무용을 자랑하던 검은 기사.
슈로는 그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었다.
신체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회복되었지만, 반으로 절단되었던 허리는 아직도 욱신거리는 게 개운치 않았다.
‘다음에 만나면… 이길 수 있다.’
슈로는 점점 강해지는 괴물.
죽음에 가까운 전투 경험을 했기에, 다음번엔 쉽사리 패배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분명, 그럴 것이다.
‘…그래도 정면충돌은 피하는 게 좋겠지?’
그 소환사의 눈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슈로의 심장을 옥죄었다. 마치, ‘네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넌 패배할 거야’ 같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까불지 말라고….”
푸우욱-
다그락…
단검에 찔린 전갈이 버둥거렸다.
“자, 착하지….”
슈로가 전갈의 꼬리에서 독을 짜내 병에 담았다.
다음은 뱀의 목에 단검을 쑤셔 고정하고는 독니에서 뚝뚝 떨어지는 독을, 그다음은 색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개구리의 피부에서 독을 긁어내 병으로 옮겨 담았다.
“후… 어디.”
쪽.
개구리에게서 긁어낸 독을 살짝 찍어 맛보는 슈로.
“괜찮….”
툭…
그의 고개가 밑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벌떡.
고개를 일으킨 그가 말했다.
“와… 방금 죽었었어, 정말로.”
구사일생 이후 신체의 회복력도 엄청나게 상승한 슈로.
그런 그도 방금의 독에는 정신을 잃었다.
그만큼, 악랄한 독이었다.
“자, 이것들을 섞고….”
치이이이이…
기이한 화학반응이 일어나는 것일까.
독은 피처럼 붉게 변해 있었다.
“물을 조금 탄 다음….”
치이이이이이…
독이 가득한 병 안에, 단검의 날을 담그는 슈로.
그 후로 대략 1시간이 흐르고.
“됐다.”
날이 붉게 변한 단검.
스치기만 해도 중독이다.
“이걸 놈에게 쑤셔 박는 건 무리겠지?”
그럼 왕녀나 혹은 호위 기사, 또는 따라다니는 귀족까지.
‘뭐, 아무나 쑤시면 되겠지.’
시간을 끌면 그만이니까.
애초에 그럴 목적이었으니까.
독의 농도를 조금 낮추긴 했지만, 일반인은 스며들기만 해도 즉사할 만큼의 농도일 것이다.
스륵…
‘왔다! 놈들이야.’
구사일생으로 탈출할 때 소환사에게 뿌려두었던 향. 오직 영생교의 인물들만 감지할 수 있는 향이었다.
‘대신, 지속성이 약하긴 하지만… 추적하는 시간 동안은 충분하지.’
인근에서 느껴지는 향에 먼저 습격할까도 고민했지만, 그럼 성공률이 낮아질 게 뻔했기에 먼저 앞서가 기다렸다.
‘여기를 지나고 있어. 왕녀를 달고 벌써 여기까지 왔다니! 못해도 이틀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스르르륵…
[슈로가 장막의 칼을 사용합니다.]
[그림자에 스며들어 기척을 감춥니다.]
[모든 감각이 예민해지지만, 장막에서 빠져나오기 전까지 시각은 봉쇄됩니다.]
슈로는 그림자로 스며들었다.
이윽고 말소리가 흘러들었다.
“여기만 넘어가면 프리욘입니다.”
“다… 온 거네요.”
“목적지까지는 조금 더 남았을지 모르지만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은 아니라 금방 도착할 겁니다.”
“하하하! 관문만 무사히 통과하면 되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
스며든다.
나는 그림자.
나는 자연스러움.
툭.
묵직한 발걸음.
이건 아니다.
호위 기사의 것.
타악…
늙은이의 걸음.
저벅.
경쾌한 발걸음.
아이의 발걸음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 이렇게 천진난만한 발걸음이 있다니.
왕녀인가?
아니, 이건 놈이다.
‘놈의 발걸음이다….’
아마도 다음이 왕녀겠지.
그렇다면…
‘지금….’
텁-!
불쑥, 슈로의 머리가 누군가에게 붙잡혔다.
“용케도 살아있었군.”
“으윽….”
강설이 슈로를 그림자에서 쑥 뽑아내었다.
‘이 소환사 놈… 힘이 대체….’
슈로는 저항하려 했지만, 저항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때.
푸우우욱-!
“어…?”
“그럼 죽어라.”
슈로가 왕녀를 찌르기 위해 들고 있던 단검이 오히려 슈로, 그의 가슴을 찔렀다.
“꺄아아악-!”
“리네, 눈 감으십시오!”
차도르프의 고함을 마지막으로…
콰지직-!
강설이 슈로의 머리를 터트렸다.
후두둑…
까마귀 가면에 튀는 붉은 피.
강설이 손수건으로 장갑에 묻은 피를 닦고는 일행에게 말했다.
“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