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220
제219화
항구 도시 라베느에 대피령이 내려진 후 며칠 뒤, 급행으로 꾸려진 조사단이 라베느의 근해에 파견되었다.
이들은 어지간해서는 사용하지 않는 전이 마법진도 이번에는 빈번히 이용하며 왔다.
“완전히 박살이 났네요….”
“대규모 해일이 발생했으니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인명 피해는 없다는 게 천운이야. 부두가 박살이 나고 배에 물이 좀 찬 것 빼고는 피해가 없었어.”
“그 말도 일리가 있네요. 세상일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도 하네요.”
“상냥한 해일이냐 성난 해일이냐의 차이지. 그래봐야 해일은 해일이지만. 근본은 변하지 않아. 자, 잡담은 이쯤하고 그곳으로 가보자고.”
“조사단으로 파견되는 건 처음이라 긴장되네요….”
“별거 없어. 그냥 가서 마력흔으로 원인 규명하고 못 할 것 같으면 모르겠다고 결론 지으면 돼. 아무도 탓하지 않으니까.”
수 척의 배가 근해로 빠져나갔다.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조사단 내에 묵직하게 자리 잡았다.
근해에 만들어진 마력흔은 그들이 평생을 마법이라는 학문에 전념해도 보기 어려운 굉장히 특이한 흔적이었다.
“다 와 갑니다!”
“함부로 마력을 쓰지 마라!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갈 거다!”
“예!”
스으으으으…
파고가 점차 높아졌다.
“파고계 확인해 봐.”
“평소 근해 기준치보다 훨씬 높습니다.”
“거의 다 왔군. 준비한 사슬을 저 바위에 묶어라.”
“예.”
한참을 낑낑거리며 바다 위에 솟아난 돌기둥에 사슬을 묶는 마법사들.
마력만 있다면 전지전능까진 아니더라도 다재다능 정도까지는 가능한 그들이,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이런 수고스러운 일을 자처하는 건 다 이유가 있어서였다.
최초, 마력 재해에 대한 진상 규명을 위해 왕국의 선행 조사관이 파견되었었는데 그가 소용돌이 주변에서 마법을 사용했다가 소용돌이의 중심부로 빨려 들어갔다.
이후로 부근에서 마력을 사용하는 것은 엄금되었다.
아무튼, 배가 소용돌이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기둥에 묶인 사슬은 점차 팽팽해져 갔다.
더 나아갈 수 없을 거라 판단한 그들은 멀리 보이는 소용돌이를 관찰했다.
“저게….”
“마력 재해….”
콰아아아아아아…
콰아아아아아아-!
가장 가까운 위치까지 다가간 배에서 누군가 수정구를 꺼내 들었다.
치이이이익…
수정구가 어딘가와 연결되었다.
“어떻게 보는가?”
수정구를 든 이는 천칭이 그려진 안대로 한쪽 눈을 가리고 있었다.
곧 수정구에 양자리 마탑의 탑주인 산티오가 모습을 드러냈다.
푸슬푸슬한 머리와 우스꽝스러운 안경은 여전했다.
“프래넌, 도착한 건가요?”
“그래, 여기가 바로 그곳이다.”
안대를 쓴 이는 프래넌이었다.
그가 마력 재해의 진상 규명 차원에서 직접 천칭의 마법사들을 이끌고 프리욘의 남해까지 온 것이었다.
이 사안은 모든 마탑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지만, 마탑의 위치상 가장 가까운 프래넌만이 직접 행동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판단에 도움을 주는 이로 선택된 사람이 바로 산티오였다. 이 분야에서는 모든 탑주를 통틀어도 산티오를 능가할 마법사가 없었다.
산티오가 프래넌에게 물었다.
“…어떻게 보시나요?”
콰아아아아아아…
프래넌이 소용돌이를 빤히 바라보며 답했다.
“있는 그대로 보고 있네.”
“제가 판단했을 땐,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고 봐요.”
“누군가 인위적으로 저만한 마력 재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건가? 그럼 질문이 이어지잖아.”
산티오도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누가 이런 일을 일으키는 게 가능할까요?”
“…한 사람 알고 있기는 하지.”
프래넌과 산티오가 동시에 마주 보았다.
그들은 이런 일을 벌일 만한 사람을 한 명 알고 있었다.
아니, 마법사들 중 대다수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경험했을 때 한 명을 떠올리곤 했다.
“서리 대공….”
“그분이 벌인 일일까요?”
“그건 알 수 없지. 다만 그 자식이라면 이런 허무맹랑한 일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거지. 뭐, 세간에서 그를 가진 실력보다 높게 평가하는 것도 한몫하고.”
“질투는 속이 좁아 보여요.”
“흥.”
산티오가 이마를 두들기며 말했다.
“마법적인 조치는 취할 수 없겠네요. 미지의 존재가 분노한 것도 아니니 동방의 술자들도 대책이 없을 거고요.”
“대해 방향으로 새 항로가 꾸려져야겠지. 다행히 근해 쪽이라 항로는 금세 새로이 만들어질 거야.”
“그런데 이상하네요…. 개인이 벌인 일이 아니라면 마법사가 대규모로 동원되었을 텐데요. 혹시….”
“아니, 없었어. 그만한 규모의 마법 병단이 움직인 흔적은 없네. 다만, 이곳까지 오면서 뭔가를 보긴 했네.”
“네?”
프래넌이 손에 쥔 뭔가를 산티오에게 보여주었다.
“천?”
“그래, 검은 천 쪼가리인데 사방에서 발견되었네. 심지어는 라베느의 부둣가까지 떠밀려 온 것도 있어.”
“그렇게 많은 천이라면….”
“그래, 보통 규모가 있는 단체들은 복색을 통일하곤 하지.”
“집단과 집단의 대규모 충돌일 수도 있다는 거군요…. 최근에도 판데아에 국지적인 충돌은 종종 있었지만 이 정도로 송곳니를 드러낸 적은 없었는데….”
“아무튼, 며칠 머물면서 더 찾아보겠네.”
“예, 조금 있다가 다시 정기 연락을 드릴게요.”
“마음대로 하게.”
프래넌과 천칭 일행은 사슬을 끌어당기며 원래의 위치까지 되돌아갔다.
조사단에 선발된 인원들은 나름 베테랑들인지라 공포에 질리거나 하는 이는 없었다.
다만, 인위적인 마력 재해를 눈앞에서 목격한 소감만큼은 솔직했다.
“조금 빨리 돌아갈 수는 없을까요?”
“왜?”
“갑자기 소변이 마려워져서요….”
“저, 저도…. 죄송합니다.”
“큭큭큭… 누구나 저런 광경을 보면 오줌보가 쪼그라들 거야. 당연한 일이지. 정 급하면 바다에 누지 그러나?”
“그, 그랬다가 소변에 마력이라도 섞여서 빠져나가면….”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겠지. 오줌을 누면서 말이야.”
“차라리 그냥 죽겠습니다.”
돌아오는 배가 부두에 도착한 후에도 천칭의 마법사들은 계속해서 대화를 나눴다.
“후우… 이 소용돌이는 학계에서도 주목하는 일이라 책임감이 막중하네요.”
“원인이 자연 발생이 아니라는 건 알겠지만, 그 이상 나아가기가 어려워 보이긴 한데….”
“만일 인위적이라면 대체 어떤 집단이 이런 짓을… 아니, 그보다 목격자가 한 명도 없는 건가요?”
“미리 대피령이 내려졌잖아. 개새끼 한 마리도 빠짐없이 라베느에서 빠져나갔어. 소용돌이의 위치로 보건대 다행히 해일이 곧장 들이닥치진 않은 거 같아. 그래서 모두 대피할 수 있었던 거고.”
“정작 모두 대피해서 목격자가 없다는 건 기이한 운명이네요.”
“어차피 라베느에서는 보이지도 않았을 거야. 그날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 아닌 이상… 진상을 알 수는… 어라? 근데 프래넌 님은?”
“아, 주변을 둘러보겠다고 하시고 가셨어요.”
“혼자?”
“예, 혼자.”
* * *
프래넌은 지금 사건이 일어난 주변부를 홀로 탐색 중이었다. 소용돌이에 다가가진 못하고 저 멀리 있는 주상절리 근처에서 맴돌았다.
“음… 적어도 생존자 한 명은 떠밀려 올 법한 곳인데.”
인위적으로 마력 소용돌이가 생성될 정도의 파괴력을 가진 무언가에 직격하고 살아남았다는 가정 자체가 말이 안 되었지만, 지금은 만에 하나라는 가정을 하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야 했다.
그런 끈질김이 아니면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이쪽을 빙 둘러 올라갈 수도 있는….”
“허억….”
프래넌은 깎인 절벽 위,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
“히아아아아아아악!”
“…확실하군.”
눈이 마주친 순간, 몸을 떠는 상대방으로부터 많은 정보를 입수한 프래넌.
‘이 일에 대해 알고 있는 자다!’
오기와 근성이 결국 한 건 해냈다.
팟-!
프래넌이 내달려 사내를 붙잡기 위해 애썼다.
“오지 마아아아아!”
“거기 서! 들을 말이 있다!”
“오지 말라고오오오오!”
“약속하마! 네 몸에는 손대지 않을….”
프래넌은 뒤돌아 도망치는 남자에게서 몇 가지 정보를 더 얻었다.
하나는 남자의 눈빛이 어딘가 맛이 가 있다는 점, 다른 하나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다는 점.
팟-!
남자를 거의 다 따라잡은 프래넌.
스윽…
절애(絶崖)의 앞에서 그는 남자를 붙잡는 데 성공했다.
“으아아아아! 이거 놔아아!”
“가만히 있어!”
“으아아아아아아!”
프래넌은 남자의 얼굴에 돋아난 검은 힘줄들을 보고 남자의 상태가 이렇게 된 원인을 알게 되었다.
“…마력이 역류했군.”
“아아….”
남자의 움직임이 곧 잦아들었다.
격하게 움직이고 난 뒤 지친 게 아니었다.
‘곧… 죽는다.’
마력이 역류한 인간은 대체로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곤 했다.
아마, 이 자도 그 사례와 관련 없어 보이진 않았다.
“너, 보았지?”
“…….”
“그날, 본 거잖아. 저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아아아….”
남자의 눈에 약간의 총기가 돌아왔다.
범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내는 남자.
그는 브리아를 섬기던 자쿤이었다.
홀로 헤엄쳐 도주해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던 장소에서 약간 벗어나 목숨을 부지하는 데 성공한 자.
하나, 약간의 말미만을 얻었을 뿐 우르의 마력에 영향을 받아 곧 죽을 운명이었다.
“저, 정령….”
“…정령?”
“커다라아안… 정령이… 나타나서….”
“그리고?”
자쿤이 덜덜 떨며 말했다.
“손가라악… 손가락이… 으아아아! 무서워….”
도무지 연결이 안 되는 내용.
하나, 이다음에 이어지는 남자의 말은 프래넌을 당혹으로 물들게 했다.
“있었어… 남자….”
“남자가 있었다고? 혹시 인상착의를 말해줄 수 있나?”
“혼냈어… 혼났어… 불사… 황금빛….”
프래넌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눈동자… 으윽… 으아아아아악!”
푸화아아아악-!
남자는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다 이내 검은 피를 토하고 축 늘어졌다.
치이이익…
수정구에 신호가 왔다.
산티오의 정기 연락.
프래넌은 황급히 사내의 몸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후우웅-!
염동력에 의해 사내의 몸이 절벽 너머로 날아갔다.
산티오의 신호를 잡아내는 수정구.
“프래넌, 뭐 좀 알아내셨나요? 어라? 거기는….”
프래넌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아무것도.”
“그렇군요….”
첨버어엉-!
“음? 무슨 소리가….”
“돌고래가 헤엄이라도 치나 보지.”
“…그렇군요. 생각해보니 제 연락이 조사에 방해가 될 테니 다음 연락은 프래넌 님이 직접 해주세요.”
“알았다.”
치이이익…
연결이 끊어진 수정구를 들고 프래넌이 읊조렸다.
“대체, 둘이서 무슨 짓을 벌이고 다니는 거냐….”
황금빛 눈동자와 거대한 정령.
마법사에 기록으로 남을 만한 마력 재해를 일으킨 자는 강설과 우르였다
* * *
【저기 있잖아, 슬슬 위험할 거 같은데….】
조그마한 악동이 등불에 담겨 강설에게 말했다.
촤아아악…
대해의 해류는 상당히 제멋대로다. 근해까지는 그 영향이 적어 그래도 괜찮았지만, 내륙에서 멀어지면 해류에 휘말리기 딱 좋았다.
이 괴상한 해류는 부루마블로 치자면 랜덤 우주여행이었다. 휘말리면 금세 필드 어딘가로 날아가 버리는 그런 장치.
벌써 사건이 벌어진 후 대해까지 흘러온 뒤 며칠이나 흘렀기에, 강설의 몸이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강설이 일을 벌이기 전 소모품을 잔뜩 사용해두었기에 지금까지는 안전하게 버텼지만, 지금은 그의 예상보다 훨씬 오래 깨어나지 못하고 있기에 꽤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하다못해 대형 선박에라도 올라 있으면 해류에 어느 정도 저항이 가능한데, 소형 선박도 아닌 인간의 몸뚱이가 해류에 저항할 수나 있을까.
강설의 몸은 이미 라베느와는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곳까지 와 있었다. 그곳이 어딘지는 몰라도.
그 때문에 비탄이 등불 밖으로 기어 나와 강설의 몸 위에 앉은 것이다.
【저기? 저기… 정말 죽었어?】
새애애액…
새애애애액…
【숨! 숨은 쉬는 건가? 어어….】
비탄이 황급히 소리쳤다.
【인공호흡! 인공호흡을 해야….】
갑자기 와락 표정을 굳히는 비탄.
【거기까지는 아직 이른데… 우리 사이엔 조금 그렇잖아? 너도 그렇지?】
당연하게도 강설에게서 대답이 들려올 리 만무했다.
바다 밑으로 뭔가가 분주히 오갔다.
【사, 상어다!】
생물이 접근하는 걸 기피하게 만드는 소모품까지 사용해뒀건만, 이미 그 시간이 다한 모양이었다.
【저리 가! 저리 가! 훠이….】
기이하게도 마령인 비탄이 주인을 보호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상어를 쫓아낸 비탄이 강설의 가슴에 앉아서 잠시 생각을 이어나갔다.
【후… 결국 이 몸이 나서야 하는 건가? 좋아!】
끼룩… 끼룩…
갈매기 소리.
주변에선 아무런 호응도 없었다.
【그런데 나선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비탄이 해야 할 일을 찾아냈다.
【그래! 이놈을 뭍으로 데려가면 되잖아!】
비탄은 그때부터 분주해졌다.
강설의 몸을 배로 사용해 자신이 팔을 열심히 휘저어 앞으로 나아가려고도 해보고…
【치, 침몰한다! 기각!】
지나가는 바다 거북이의 머리를 찰싹찰싹 때려 조련해보려고도 해보았다.
【대머리! 이리 와! 가지 마!】
대해의 밤은 차갑고 두려웠다.
끔찍한 곳이 태생인 비탄일지라도 계속된 추위와 고독은 그를 움츠러들게 했다.
【이제 장난 그만하고 일어나, 나 심심하다고….】
완전히 주눅 든 비탄.
툭… 툭…
그리고 그를 더욱 괴롭게 하는 일이 발생했다.
콰르릉-!
쏴아아아아…
비가 내렸다.
이래 젖나 저래 젖나 젖는 것은 매한가지였으나, 폭우는 바다의 두려운 면을 더욱 증폭했다.
콰르르릉-!
【안 돼! 가라앉지 마!】
비탄이 강설이 파도에 휩쓸려 가라앉으려 하자 낑낑대며 수면 위로 올리려 애썼다.
정말 이대로 모든 게 끝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타락하기 전에 죽지 말라고!】
바로 그때.
콰르르릉-!
촤아아아악…
비바람을 헤치고 거대한 선박이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다.
【배다! 배! 살았어! 여기야! 여기! 여기 인간 있어! 아직 타락하지 않았다고! 태워 줘!】
비탄의 간절한 외침을 들었는지 정말로, 배가 근처에 머물렀다.
갑판 위로 실루엣이 보였다.
【어이 너! 이 녀석을 태워 주면 복수하지 않을게!】
“…….”
휘리릭-!
밧줄이 날아와 비탄에게 도달했다.
【묶으라고? 알았어! 네가 시키는 걸 하는 건 이번뿐이다!】
밧줄이 파도에 실려 비탄의 손과 멀어지려 했다.
【아니, 농담이야! 한 번은 더 참을게!】
다행히 밧줄을 붙잡은 비탄.
비탄은 밧줄로 강설의 몸을 묶었다.
【당겨!】
스으으으으으윽…
비탄과 강설이 배 위로 끌려 올라갔다.
【휴우… 너! 응?】
“응?”
밧줄을 던진 이와 비탄의 시선이 교차했다.
【으아아아악! 마, 말하는 해골이다!】
“으아아아아아악! 성게가 말을 하잖아?”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초록 불길을 내뿜는 기괴한 해골이 비탄을 보고 질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