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222
제221화
산토스가 언급한 알프리나 해협이 어떤 곳인지 비탄은 알지 못했다.
단지, 배가 그쪽으로 향한다는 정도로만 인식하게 된 비탄.
항해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렇게 바다 사나이호가 비바람을 헤치고 나아가기를 며칠, 성난 하늘이 잠잠해지면서 이에 따라 바다도 잠잠해졌다.
“뿌뿌! 잠시 멈춰!”
“뿌우-!”
뿌뿌가 그 자리에 정지하자, 바다 사나이호도 멈췄다.
돛을 올리고 나니, 정말 바다 한가운데에 떡하니 멈춰있는 배.
【왜? 왜 그래?】
비탄이 산토스에게 그 의도를 물었다. 딱히 수상해서는 아니었다.
비탄의 거의 모든 질문은 굉장히 단순한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지금 같은 경우도 그렇고.
정말로, 궁금했을 뿐이었다.
산토스는 대답하지 않고 선실 안으로 들어가더니 나오지 않았다.
한참이 지난 후, 뭔가를 들고 나타난 그.
“음하하하! 낚시하자, 낚시!”
【낚시? 그게 뭐야?】
“뭐기는! 성게는 그저 선장이 하는 걸 보고 배우면 돼!”
【성게는 그래도 돼? 성게 최고!】
갑판의 귀퉁이에 앉아서 낚시에 열중하는 산토스.
다행히 미끼로 사용할 작은 생물들은 평소에 준비해두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움찔…
“아쵸오오오오!”
털푸덕…
낚싯대를 끌어 올리자 갑판 위로 떨어지는 물고기.
파닥파닥하며 입을 뻐끔거리는 모습에서 생명력과 기괴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대, 대단해….】
“비탄, 낚싯대를 들어. 낚시를 알려주마!”
【필요한 거야?】
“진정한 바다 사나이가 되기 위해선 필수라고 할 수 있지! 선원 중에서 낚시를 할 줄 모르는 녀석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오오! 그렇다면 이 비탄 님께서 배워둬야 할 전투 기술이잖아!】
“와하하하!”
쏴아아아…
쏴아아아아아…
낚싯대를 내던진 후, 멍하니 수평선을 바라보는 둘. 그 상태로 낙조까지 지켜보았다.
왜인지,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압도적이지?”
【…기분이 이상해.】
고기는 별로 낚지 못했다.
아니, 사실 이것도 포장인 것이 비탄은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낚지 못했다.
계속된 허탕에 기분이 나빠질 만도 한데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정말 신기하게도,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낚싯대를 드리운 후 느껴지는 바람이, 짠 내가, 잔잔히 들려주는 산토스의 이야기가… 너무도 좋았다.
【이거… 엄청 좋다!】
“낚시?”
【응!】
“하하! 플리버가 낚시에는 또 일가견이 있었는데….”
【플리버? 플리버가 누구야?】
“목수. 이 낚싯대도 플리버가 만든 거였어.”
【플리버는 지금 어딨어?】
산토스가 아련한 듯한 느낌으로 회상했다.
“알프리나에 있지.”
【그럼 이번에 가면 만날 수 있겠네?】
“…응. 그렇고말고. 자! 비탄, 고기는 이 정도면 됐어.”
【난 한 마리도 낚지 못했는데?】
“그게 좋은 거야. 어디….”
포포퐁…
잡았던 물고기 중 작은 녀석들을 바다로 돌려보내는 산토스.
“가서 다음에 부모님 모시고 와.”
【선장! 왜 놓아주는 거야!】
“저런 나약한 고기 따위는 필요 없으니까!”
【그렇구나! 강한 녀석들만 먹는 거구나! 역시 선장은 대단해!】
“약한 녀석들은 지켜줘야지! 음하하하핫!”
【오오… 약한 녀석들은 지켜줘야 하는 거구나.】
툭.
산토스가 비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약한 녀석은 지켜줘야 해.”
다시 며칠간의 항해.
산토스는 밤이 되면 술을 마셨다.
“에헤헤헤… 이건 아껴뒀던 거라고.”
【우욱… 우웨에에에엑….】
산토스가 건넨 술을 마신 비탄은 바닷물에 마신 술을 전부 토해냈다.
【우으으으… 어지러워.】
“술맛을 모르다니, 그건 아쉽네.”
【어으어으… 떫어. 이런 걸 아껴뒀다고?】
“그럼, 바다 위에선 모든 게 귀하니까.”
【대체 이런 건 왜 마시는 거야?】
비탄의 칭얼거림이 귀여웠는지 산토스가 껄껄 웃으며 답했다.
“가끔은 내가 아니고 싶을 때가 있는 거야.”
【이걸 마시면 내가 아니게 돼?】
“어… 그럴 때도 있고, 더더욱 내가 될 때도 있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좀 더 마시면 알게 돼.”
【그래?】
며칠 후.
비탄은 술이 가진 힘을 알게 되었다.
산토스는 괴상한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했다. 비탄이 평소보다 과하게 웃어젖혔다.
【우하하하하! 완전 웃겨!】
“웃기다고? 그럼, 진지한 노래를 들려주지!”
선율이 바뀌고, 애잔한 듯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선장.】
“응?”
【그 노래… 좋다.】
“아니지! 내 목소리가 좋은 거겠지!”
【목소리는 별론데 노래가 좋다!】
“너 상당히 솔직하구나?”
잔잔한 노래를 이어가는 산토스.
비탄은, 산토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해골이지만, 어쩐지 그를 비추는 달빛으로 생전의 모습이 생생히 그려지는 듯했다.
【선장! 기분이 이상하다!】
“듣기 좋지? 이 노래?”
【응! 직접 만든 노래야?】
“아니.”
산토스가 고개를 저었다.
“소니오가 만든 노래야.”
【소니오는 또 누군데?】
“악사였어. 이 배에 있기는 아까운 친구였지.”
【이 배가 어때서? 비탄이 보기엔 훌륭하기만 한데?】
“히히히! 그렇지?”
산토스에게선 무수히 많은 감정이 느껴졌다.
“비탄, 보통 전설 같은 게 어떻게 끝나는지 알고 있어?”
【아니? 나는 그런 데 관심이 없는데?】
산토스가 비탄의 곁에 다가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파도 소리와 썩 어울리는 목소리.
“그 어떤 전설도 마지막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로 끝나는 게 보통이거든.”
【그게 보통이라고? 왜?】
“그래야 슬프지 않으니까. 그래야 모두 전설에 열광하니까.”
산토스가 저 앞에 드리운 바다를 바라보았다. 얼음처럼 차갑고, 죽음처럼 무거운 곳 알프리나 해협.
“반드시 그래야만 해. 그래야만 남겨진 이들이 희망을 얻거든.”
【희망….】
“그런 의미에서 이 산토스 님의 전설도 아직 끝나지 않은 거야!”
몽환적인 분위기.
비탄이 이상함을 느낀 건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 * *
바다 사나이호가 알프린느 해협으로 다가갈수록 기상이 악화일로를 걸었다.
【추워….】
선실에 있으나 갑판에 있으나 추운 것은 매한가지였다.
이 상황에서도 강설은 깨어나지 않았다. 신기한 점은, 오랫동안 식사도 안 하고 잠만 자는데도 그의 생체 활동에 그 어떤 이상도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더라도, 비탄은 그를 걱정했다.
【어… 괜찮은 거겠지?】
“네 친구 말이야?”
【친구 아니라니까!】
“푸히히… 그래, 가까운 사이.”
【응, 그냥 잠만 자는 거겠지?】
“그럴 거다.”
산토스는 어쩐지 우중충해 보였다.
휘이이잉…
다시 또 며칠이 지난 후의 상황.
딱딱딱딱!
뼈만 있는 산토스도 추위를 느끼는 건지 이를 세게 부딪쳤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유빙이 점차 늘어만 갔다.
【…이건 뭐야?】
“유빙… 유빙이 보인다는 건 비토나의 영역에 점점 다가가고 있다는 거야.”
【어째서?】
“비토나는… 차가운 존재거든.”
【그렇구나!】
“…비탄.”
【응?】
“꿈을 꾸나?”
【또 꿈 얘기야?】
“이번엔 다른 꿈. 잠을 자면, 보이는 것.”
【잠을 자면… 보이는 거?】
비탄은 잠시 골똘히 생각했다.
자고 일어난 다음에는 꿨던 꿈 같은 건 전부 잊어버리는 편이었지만 유일하게 기억하는 종류의 꿈은 있었다.
【예전으로 돌아가는 꿈?】
“예전?”
– 끄아아아아악-!
– 제, 제발…
– 죽여라! 죽여! 피를 마시라고!
– 너는 더 강해질 거야… 이히히히!
– 비탄이 도와줄게!
비탄이 몸을 부르르 떨며 질겁했다.
【그런 꿈들?】
“…그런 꿈을 꾸고 난 후의 기분은 어때?”
【통쾌!】
“통쾌해?”
【…하진 않아.】
비탄은 괜히 누워있는 강설을 가리키며 말했다.
【뭐랄까… 저 자식을 만나고 나서부터는 모든 게 엉망이야. 비탄은… 비탄이 아니게 된 것 같아.】
“그럴 리가, 지금 비탄은 훌륭한 성게도 나쁜 녀석도 아닌데?”
【엥? 비탄은 그럼 뭐야?】
“비탄은 비탄이야.”
【또 훌륭한 성게만 이해하는 말이야?】
“정말로, 너는 어떤 무엇으로도 정의할 수 없어. 우리 모두 마찬가지야. 특히 이 바다 사나이호에 오른 선원들은 더더욱 특별하지!”
【에헤헤… 선장! 그럼 선장은 어떤 꿈을 꿔?】
산토스가 힘없이 고개를 들었다.
그가 조금 이상했다.
“…알고 싶어?”
【응!】
“선원들을 잃었던 날의 꿈.”
– 빌어먹을! 산토스! 틀렸어, 지금이라도….
– 선원들이 당했는데 이대로 도망칠 순 없어! 멍청이들아!
– 멍청이가 누군데 이 멍청아!
비토나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던 그날, 바다 사나이호의 선원들은 모두 영혼을 빼앗겼다.
키아아아아-!
– 크억….
– 산토스!
하나, 둘.
영혼을 빼앗기는 선원들.
이제 산토스의 차례였다.
퍽-!
– 콜록… 콜록….
누군가 산토스의 어깨를 밀쳐 가까스로 비토나의 손길에서 구해냈다.
– 뿌뿌! 산토스를 데려가!
– 으… 으으아아…
– 산토스! 정신 차려! 내 눈을 봐!
– 내 몸이… 내 몸이…
그의 몸은 살점과 내장을 잃고 뼈만 남게 되었다.
그를 비토나의 손길에서 구해낸 것은 부선장 시르바였다.
시르바와 눈을 맞추는 산토스.
– 꼭, 구하러 올 거지?
산토스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따름이었다.
– 믿는다, 기다릴게.
믿는다는 마지막 말.
그것이 산토스에게 남은 저주였다.
“비탄.”
【선장….】
“나는… 나는… 겁쟁이다.”
산토스는 비탄과의 이번 대화를 끝으로, 무너져내렸다.
“나는… 겁쟁이야!”
【…어째서?】
“이곳을 다시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야.”
【그럼….】
“여러 번, 아니 수십 번은 더 찾아왔을 거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 장소니깐.”
산토스가 바닥에 머리를 박고 흐느꼈다.
“근데도… 더 나아가지 못했어…. 두려워서… 매번 여기까지만 왔다가 돌아갔어.”
【죽는 게 무서운 거야?】
“아니, 죽는 게 무서운 게 아니야.”
【그럼?】
산토스의 눈에서 일렁이는 불꽃이 거세어졌다. 필시 사람이었다면 울고 있었으리라.
“잊히는 게… 무서워….”
이제야 이해가 되는 산토스의 말.
전설은 반드시 좋게 끝맺음 되어야 한다는 그 말.
“나까지 죽으면… 우리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거잖아, 아무도 우리를 구하러 오지 않는 거잖아!”
【선장….】
“미안해… 더는 못 갈 것 같아.”
산토스가 뿌뿌에게 말했다.
“뿌뿌… 돌아가자, 아직은… 아직은 준비가 안 됐어.”
비탄이 물었다.
【그럼 언제 올 건데?】
“…….”
【그럼 언제쯤 준비가 되는 거야?】
그때였다.
기이한 노랫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산토스의 얼굴이 곧 절망으로 물들었다.
“세, 세이렌! 뿌뿌… 얼른!”
“뿌우우-!”
뿌뿌가 배를 돌려 나가려는데, 노랫소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이 소리….”
아하하하…
유빙 위로 인어를 닮은 세이렌들이 하나둘 몰려왔다.
그녀들은 겁을 집어먹은 산토스를 조롱이라도 하듯, 노랫소리를 점차 키워갔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미 한차례 비토나에게 영혼을 반쯤 빼앗겼던 산토스이기에 그녀들의 노래를 들어도 멀쩡하다는 것.
또한 마령인 비탄과 실신 상태인 강설 또한 노랫소리에 홀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하하…
세이렌들도 이에 이상함을 느꼈는지 더더욱 신비로운 선율로 이들을 매혹했다.
후우우웅-!
퍼어어어어억!
키아아아아아아아!
어디선가 날아온 창이 세이렌의 가슴을 꿰뚫었다. 산토스가 벌인 일이었다.
“사악한 것들! 모두 목을 베어주마!”
【선장!】
“비탄.”
비탄이 그사이 자맥질을 하며 선두로 점차 다가오는 마물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게 뭐야?】
“…비토나.”
키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유빙을 헤치며 거대한 바다뱀이 나타났다.
비탄은 산토스가 겁을 먹고 고개를 바닥에 처박을 것이라 예상했다. 방금까지 그랬었으니까.
하지만.
“비탄… 여기까지 같이 와줘서 고마워.”
【…선장? 도망쳐야 한다며?】
산토스는 도망치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들어 비토나를 바라보았다.
“이다음은, 바다 사나이 산토스의 일이야. 비탄은 돌아가. 뿌뿌! 부탁한다!”
스릉-!
허리춤의 곡도를 뽑은 산토스가 소리쳤다.
“짜잔! 산토스 등장이다!”
[산토스가 수면 보행을 사용합니다.]
[잠시 수면 위를 걸을 수 있습니다.]
[활동량이 늘어날수록 지속시간도 함께 늘어납니다.]
팟-!
산토스가 비토나를 향해 내달렸다.
“으하하하! 다들 오래 기다렸지! 너희들의 산토스가 왔다! 박수쳐도 좋아!”
허무맹랑하게 돌진하는 산토스.
전혀 승산이 없어 보였다.
“모두… 모두들… 늦어서 미안해! 조금만 참아!”
“뿌우우우우-!”
뿌뿌 또한 배를 움직이는 것을 멈추고 산토스를 돕기 위해 잠수했다.
쿵-!
비탄이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심장을 강타했다.
【어라?】
산토스가 점차 멀어졌다.
비탄은 알았다.
이대로라면, 그가 곧 죽으리라는 걸.
“으하하하!”
[매혹의 비토나가 악천후를 사용합니다.]
[전방에 강한 한기가 몰아칩니다.]
촤아아아악-!
입에서 서리를 토해내는 비토나.
곧 수면 위가 꽁꽁 얼어붙어 빙하를 형성했다.
휘리릭…
쿵-!
빙하에 올라섰다가 꽈당하며 넘어지는 산토스.
“이히히… 웃지 마라, 이 녀석들아!”
[산토스가 출항이다!를 사용합니다.]
[짧은 시간 상태 이상 저항력이 20% 증가합니다.]
[공격 시 추가 물리 피해를 입힙니다.]
그 모습이 상당히 볼썽사나웠지만, 비탄은 그를 지켜보는 게 괴로웠다.
【이상해….】
퍼어억-!
비토나의 꼬리에 얻어맞고 날아가는 산토스.
다행히 착지만큼은 안정적이었다.
비탄은 더 이상 그를 지켜볼 수 없었다.
그를 지켜보는 게 정말로, 괴로워졌다.
다다다다-!
【내가 도….】
쿵-!
비탄은 목줄이 메인 강아지처럼 산토스에게 달려가는 도중에 뒤로 튕겼다.
【기다려, 선장! 내가 도….】
다다다…
쿵-!
다시 한번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비탄은 뒤를 돌아보았다.
강설의 허리춤에 묶인 등불이 비탄을 부르고 있었다. 그를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비탄은 방향을 바꿔 강설에게 달려갔다.
다다다…
【일어날 거지? 응? 일어날 거잖아?】
“…….”
강설은 깨어날 수 없었다.
영생환과 우르의 마력 충격이 그가 예상한 수준 이상의 효과를 보였기에 여전히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비탄이 강설에게 다가가 그의 턱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위아래로 흔들어 말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오래 기다렸지?】
“…….”
【빨리! 빨리 일어나라고! 너는 구해주는 거 잘하잖아! 비탄은 그런 거 못 해! 할 줄 몰라! 지금 일어나면 말도 잘 들을게….】
퍼어억-!
산토스가 다시 한번 날아가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그가 산산이 부서질 것 같았다.
【우으으… 선장 죽는다…. 죽는다고….】
생명의 죽음은 마령에게 있어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한 흑기사가 죽었을 때도 아쉽다거나 슬프다거나 하는 감정은 들지 않았었다.
한데, 지금에 와서 이런 기분이라니.
정말로 최악이었다.
【이이… 잠만 잘 거면 보내줘! 나라도 갈 거야!】
벽을 향해 소리치는 게 이런 기분일까.
아무리 소리쳐도 대답 없는 게 속상했다.
【죽지 마, 산토스… 죽으면 안 돼….】
퍼어어어어억-!
산토스가 저 멀리 날아갔다.
이번엔 빙하에 떨어지지도 못한 채, 바닷속으로 빠졌다.
“뿌우우우-!”
다행히도 뿌뿌가 비토나의 몸을 옭아맸다.
키아아아!
비토나가 난동을 부리는 틈에, 산토스가 빙하 위로 손을 올려 올라왔다.
그는 잠깐 사이에 전의를 잃은 것 같았다. 몸이 후들후들 떨리는 것을 보아, 겁도 잔뜩 먹은 것 같았고.
“후우… 후우… 산토스는 무적이다…. 바다 사나이는 무적이라고!”
산토스는 무적이 아니다.
바다 사나이는 무적이 아니다.
얼마 못 가, 죽을 것이다.
비탄은 탄생 이후 처음으로, 누군가의 죽음을 바라지 않게 되었다. 그것이, 비탄의 모든 것을 뒤틀었다.
【나, 산토스를 구할 거야.】
어떻게?
사슬의 속박이 나아갈 수 없도록 하는데.
촤륵… 촤르륵…
비탄은 등불에 메인 사슬을 잡아끌었다. 몇 번 움직여 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비탄은 절망했다.
수십, 수백의 생명을 거두는 것은 하품이 나올 만큼 쉬웠지만 반대로 하나의 생명을 구하는 건 이토록 어려웠다.
수천, 수만 배 더 어려운 길이었다.
촤르륵…
비탄이 사슬을 움켜쥐고는 무언가 결심한 듯 말했다.
【비탄은 위대한 성게가 될 거야.】
와작…
그리고, 그 끝부분부터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비탄은, 비탄이야!】
입을 크게 벌려 사슬을 먹어 치우는 비탄.
【우웁….】
그리고는 입을 틀어막고 안간힘을 써서 버텼다. 고통에 바닥을 굴렀지만, 절대 뱉지는 않았다.
【우읍… 우으읍….】
이는 마령을 무기로써 사용하겠다고 결단을 내린 강설이나 비탄의 정신을 뒤튼 프래넌 또한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부터는, 완전한 미지의 영역이었다.
마령이라는 존재가 어디까지 변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으아아아아아아!”
[진주가 변화를 받아들입니다.]
[진주가 계승자에게 가장 적합한 형태로 변화합니다.]
……
“허억… 허억….”
한편 그 시각, 산토스는 정신이 아찔했다.
콰자작-!
곡도가 비토나의 비늘을 뚫지 못하고 유리처럼 부러졌다.
“너무 단단하잖아….”
퍼어어어어억-!
삐이이이-
공중으로 높게 떠오른 산토스. 비토나가 그를 낚아채기 위해 움직였다.
“뿌우우!”
뿌뿌가 비토나의 몸을 꽉 조여 산토스에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만들었지만, 어차피 몇 분 안으로 전투는 끝이 날 것이다.
산토스는 두 번째로 패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미안… 모두….”
이번에도 진 것 같아.
그런데 그때, 없는 고막도 찢어질 것 같은 외침이 전해졌다.
【날 쥐어, 산토스으으으!】
산토스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내뻗었다.
촤르르륵-!
오동통한 비탄이 사슬처럼 감겨 변화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거… 뭐야? 이히히… 날 타락시키려고?”
산토스가 비탄의 모습을 보고 웃었다.
비탄은, 어떻게든 기억해냈다.
자신이 어떤 모습이었을 때 가장 강했었는지.
산토스의 손에서 새카만 검이 된 비탄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널 구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