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227
제226화
“안으로 드시게! 정말로 잘 와주었어!”
설홍이 조그만 손으로 강설의 손을 붙잡았다. 그녀는 양손을 전부 사용해야 강설의 손을 감싸듯이 할 수 있었다.
“응? 그 시, 시커먼 건 무언가?”
“의료용 성게입니다.”
【비탄은 위대한 성게다!】
“마, 말까지….”
– 의료용 성게 ㅋㅋㅋㅋ
– 걍 막 갖다 붙이네 ㅋㅋ
푹신…
비탄을 괜히 조물조물 만진 설홍은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마, 말랑말랑해!”
【앗! 만지지 마!】
비탄이 폴짝폴짝 뛰어 탁자 위로 올라갔다.
잠시 주목이 비탄에게 향했지만, 이내 설홍이 사태의 중함을 깨닫고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대가 누군지 저 성게가 뭔지도 지금은 중요치 않다. 천주, 저 여인의 몸을 살펴주겠는가?”
“어렵지 않습니다.”
사실 어려웠다.
강설은 진짜 의사도 아니었고, 칭호 그대로 민간 치료법 몇 가지를 알고 있을 뿐인 돌팔이였으니까.
“요 며칠, 증세가 어떻습니까?”
“기, 기침을 종종 하고 가래가 심한 편이네. 몸이 무거워 침상 밖으로는 나갈 수 없네.”
“평소 앓고 있던 지병이 있습니까?”
“전혀! 천주는 오히려 건강한 편이었네.”
천주는 잠에서 깨어나 흐릿한 눈으로 설홍과 강설을 바라보았다.
“이분은… 누구십니까?”
“의원이야! 천주, 의원이 왔어!”
“하아… 다행이군요.”
보호자인 설홍과 병의 당사자인 천주는 강설의 이어지는 질문에 성실히 답했다.
‘다행히 풍토병이네.’
동방의 크기를 생각했을 때 셀 수도 없이 다양한 풍토병이 존재했다.
다행히 강설은 그 풍토병에 잘 드는 약을 몇 가지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재료도 수중에 있었고.
잠시 후, 약을 달여 나타난 강설.
크게 번잡스러운 과정은 필요치 않았다.
어차피 요리 능력과 제약 능력은 통하는 부분이 있었으니까.
이 정도 병이라면 강설 정도의 수준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
“조금 쓸 겁니다.”
쭈우웁…
천주가 약을 받아 넘겼다.
그 순간, 그녀의 눈이 번뜩 뜨였다.
“쓰군요….”
“그렇습니까?”
“또, 익숙합니다….”
– 천주! 동방의 풍토병은 그 결이 크게 다르지 않아요. 뜸부기 풀만 잘 빻아서 원기 회복에 도움이 되는 약재들과 섞어 마셔도 대부분은 낫거든요.
– 이런 걸 어떻게 아느냐?
– 그냥, 어렸을 적 떠돌았을 때 배웠던 거예요.
유화의 기억을 잠시 떠올린 천주는 강설을 보았다.
“이 약… 어디서… 아니, 아닙니다.”
“천주, 이제 한숨 푹 자도록 해.”
“감사를….”
“그만,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천주가 기운 없이 침상에 다시 누워 잠이 들었다. 강설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천주… 오랜만입니다. 살아계셨군요.’
천주와 유화의 인연은 생각보다 끈끈했다. 그리고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기도 했고.
강설이 천주를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모습은, 설홍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는 의원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홀린 듯이 강설을 쳐다보는 설홍에게 그가 말했다.
“특별히 무리만 하지 않으면 기운을 차릴 겁니다.”
“아! 가, 감사하네! 내 감사를 표하지.”
설홍은 이렇게 말하며 괜히 팔짱을 끼는 시늉을 했다.
“나는 위대한 용제의 딸, 용화일세. 언젠가, 자네에게 꼭 보답하겠네.”
그 말은, 그녀가 지금으로선 보답하기가 마땅치 않다는 뜻이었다. 강설은 굳이 그 점을 꼬집지 않았다.
보상을 바라고 온 것도 아니었고 그 보상이 강설에게 크게 도움이 되지도 않을 터였으니까.
단지, 알아보고 싶은 게 있어서 왔을 뿐.
강설은 조금 더 설홍을 떠보기로 했다.
“용화라면… 지금 용쟁 때문에 정신이 없을 텐데요?”
설홍은 그 질문에 금세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하… 거짓말이 아니네. 용쟁 때문에 골머리 썩고 있는 건 나도 마찬가지니.”
그녀가 강설의 손을 와락 붙잡았다.
강설은 굳이 그 손을 피하지 않았다.
“꼬옥… 꼭 보답하겠네. 이 설홍이 용쟁의 첫 번째 시련을 통과할지는 모르겠지만, 받은 호의에는 반드시 보답하겠네. 아하하! 너무 염치가 없나….”
그런 설홍을 빤히 바라보는 강설.
“그대, 그 눈빛… 나를 동정하는 눈빛인가?”
“제 주제에 어찌 용화 님의 처지를… 그보다, 용쟁이 그리 중요한 겁니까?”
“중요하지. 용궁의 세력 판도가 뒤흔들릴 테니까. 거기서 낙오된 용화들은 아마도… 음….”
“어떻게 되는 겁니까?”
“글쎄? 타국에 친교 수단으로 넘어가는 평범한 삶을 살지 않을까 싶네. 칸은 황족의 수도 많고 그만큼 그리 중히 쓰이지 않는 용화도 많으니까.”
자조적인 내용이라 치더라도 굉장히 현실적인 말이었다.
“아하하! 걱정은 괜찮아, 이 설홍은 그리 아름답지 않으니 적어도 앞 순번은 아닐 테니까.”
“…충분히 아름다우십니다.”
설홍은 유화의 초상화와 매우 닮아있었다.
단지, 아직 앳되어 보인다는 점만 빼놓고는.
피식 웃는 설홍.
아직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엔, 용쟁이라는 시련은 너무도 가혹하고 거대했다.
“용의 자식들은 모두 꽃의 이름이 붙지. 매해 다양한 꽃들이 동토를 수놓네. 그러니까 꽃이지.”
설홍은 굳이 묻지도 않은 얘기를 술술 풀어놓았다. 강설의 입장에서는 굳이 이야기를 막을 필요가 없었기에 묵묵히 들었다.
“내게 붙여진 꽃, 사망화는… 저주받은 이름이네.”
“저주?”
“제 어미를 죽이고 태어나, 대부분이 성장하지 못하고 유년기를 전전하는 꽃이지.”
말을 하는 설홍의 눈은 촉촉했다.
“나와 닮지 않았나? 아하하하! 누가 지어준 건지는 몰라도 감각이 있는 편이야.”
“괴로우십니까?”
“…….”
설홍이 이야기를 하다 말고, 강설을 쳐다보았다.
“신기한 일이군.”
“무엇이….”
“그대는 어쩐지… 편안하군.”
“…….”
“처음 만났는데도, 어쩐지 마음을 내려놓게 돼. 그렇기에 의원인가? 아니면 혹시 우리 어디선가 본 적이 있던가?”
“…한 번 만났을 지도요.”
지금처럼 생판 모르는 남이 아닌, 특이한 관계로.
“음… 난 기억이 없어. 그보다, 이러면 어떤가?”
설홍이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벗으로 지내는 건?”
“벗?”
“혹시 먼 훗날에 내게 도움받을 일이 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후계 서열에도 끼지 못하는 민망한 처지이지만, 혹시 또 모르지.”
“제게선 무엇을 원하십니까?”
“벗으로서, 천주를 회복시켜주게.”
“좋습니다. 그보다… 용쟁은 어쩌실 계획입니까?”
사실 이게 가장 궁금했다.
설홍의 마음가짐이.
척 보기에도 칸에서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이 용쟁과 얽히게 될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고.
“이미 시작된 것을! 용화 한 명당 기록관이 서넛 파견되어 지금도 지켜보고 있네. 아마 우리의 대화도 엿듣고 있겠지. 내가 여기서 포기한다면… 어머니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이겠지.”
설홍이 주먹을 꽉 쥐었다.
“나는 포기하지 않아. 반드시 내 가치를 증명할 걸세.”
강설은 그 말에 웃으며 손에 쥔 것을 품속으로 감추었다.
* * *
카렌이 우르에게 소리쳤다.
“이 멍청이!”
우르가 반박했다.
“너희는 모두 멍청이다.”
카루나가 수긍했다.
“우리는 모두 멍청이군요.”
쟈마드가 고개를 휘휘 저으며 말했다.
“그만, 우리끼리 더는 머리 아프게 싸우지 말자고. 우르, 그래서 상황은?”
“예상보다 훨씬 더 오래 이곳에 있을 것 같은 예감이다.”
“퉷! 저 자식 쓸모없네!”
“뭐? 힘밖에 못 쓰는 기사가 지금 전능한 이 우르에게 무슨 소릴 지껄이는 거냐!”
“주인은 널 믿었는데, 고작 이것밖에 못 한다고?”
“그러는 넌!”
“그 녀석은 나한텐 애초에 기대도 안 했어!”
“크윽….”
한참의 실랑이 끝에, 잠시 소강상태에 빠진 설전. 쟈마드가 우르에게 물었다.
“이곳이 아직 어떤 공간인지 파악하지 못한 건가?”
“어디에 서 있는지도 모르니 아직은 무리지. 그래도 희소식이 하나 있다. 우리에게… 아니 그 녀석에게 희소식이지.”
“희소식?”
“출입구를 만들 만한 위치를 몇 군데 발견했다.”
카렌이 그 말에 감탄했다.
“오오! 놀고 있던 게 아니었잖아!”
“문제는, 확신까지 거쳐야 하는 단계들이 좀 있어. 그리고 출입구를 만들더라도 거기를 넘어갈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지.”
“…쉽게 설명해줄래?”
“최악의 경우, 당분간은 출입구가 만들어져도 우리 중 단 한 명도 넘어가지 못할 수 있어.”
“최악이 아니라면?”
“상황이 호전되면 둘이나 셋도 넘어가겠지.”
“넌?”
“애석하게도 우르 님께선 이 공간을 다듬어야 한다. 감추고 있는 것들이 잔뜩 있는 모양이니까.”
“하긴, 넌 애초부터 밖으로 잘 나오지도 않았었잖아.”
“흐흠…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의식을 치러야 한다.”
우르의 말에 모든 소환수의 시선이 가 닿았다.
“의식?”
“현재까지 출입구를 만들기 적당한 곳으로 추정되는 공간은 모두 4군데, 마침 우리도 넷이지.”
월-!
코코가 자신도 잊지 말라고 짖었지만, 우르가 손짓했다.
“넌 아직 무리야.”
“그래서? 각자 그 방향으로 향하자고?”
“아니, 그건 위험 부담이 너무 커. 차라리 그 방향으로 힘을 쏘아내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힘을 쏘아낸다고? 직접 가지 않고?”
“너무 위험해. 이곳에서 길을 잃으면 되돌아오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우리가 처음 만나기까지도 시간이 꽤 걸렸던 거 기억하지?”
“아, 맞아.”
카루나가 물었다.
“그런데, 힘을 쏘아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겁니까?”
“운이 좋으면, 네가 아끼는 주인에게 힘이 전해지겠지. 우리가 이곳에 갇힌 이상, 바깥에 있는 놈에게 도움을 줄 수 없으니까. 이 방법이 유일하게 놈에게 보탬이 되는 방향이다.”
“그럼, 힘을 방출한 우리는 무기력해지는 겁니까?”
“그게… 약간 달라. 애초에 힘을 쏘아 보낸 방향이 출입구로 적합하지 않으면 곧 우리에게 되돌아올 거다.”
“힘이 돌아오지 않으면….”
“네 주인에게 전달된 거겠지.”
쟈마드와 카렌, 그리고 카루나는 우르의 제안에 동의했다.
“좋아! 바로 시작하자고!”
잠시 후, 우르의 지시대로 자리 잡은 그들은, 전방을 보며 대기했다.
우르가 그들에게 지시했다.
“정해진 방향으로 힘을 쏘아내라, 탈진할 때까지 가진 것들을 전부 쏘아내. 일정 기점을 넘지 못하면 아예 문턱에 걸릴 우려도 있으니까.”
후우우우웅…
“그럼… 쏴라!”
콰아아아아앙-!
형형색색으로 일제히 뻗어가는 기이한 힘이 공간을 진동했다.
* * *
강설은 방으로 돌아와 탁상 앞에 앉아 수실이 달린 손거울을 보고 있었다.
‘이게… 유화의 유품인가?’
칼의 무희 유화의 물건.
이게, 그녀의 유품인 게 확실했다.
– 어이쿠, 또 훔쳤군요.
– 이제는 애 물건까지 훔치다니, 대단하다!
– 얘기 들으면서 동정하던 거 아니었냐고 ㅋㅋ 그걸 훔치네 ㅋㅋㅋ
“근데… 이상한데?”
화살표의 방향은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설홍에게로 향해있는 화살표.
그렇더라도 확인할 필요는 있었다.
흐릿하게, 그의 말이 가진 기운이 담긴 손거울을.
강설은 손거울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순간.
후욱…
돌연, 촛불이 꺼졌다.
– 끼아아악!
– 유령이다아아!
– 어디선가 튀어나올 거야!
갑작스러운 상황에 무서울 만도 하건만 강설은 도리어 호기심이 일었다.
그가 손거울을 바라보았다.
“…여자?”
거울 속의 누군가가 얼굴을 드러냈다.
아무래도 손거울에 귀신이 들린 것 같았다.
귀신의 얼굴은… 익숙했다.
“…와줘요.”
강설은 눈을 감았다.
귀신에게 홀릴 것만 같았다.
그녀가 말하는 대로, 그 뜻대로 움직일 것 같았다.
“도와줘요… 설홍이를… 도와주세요.”
“그만, 내게 뭘 원하는 거지?”
거울 안의 여인은 울고 있었다.
“신이시여… 설홍이… 가엾은 그 아이를… 누구든 제발….”
화륵….
귀신이 할 말을 마쳤기 때문인지, 촛불이 되돌아와 방을 밝혔다.
‘…그 얼굴. 분명, 유화였어.’
거울에 모습을 드러냈던 건, 설홍의 어미이자 칼의 무희였던 유화였다.
그녀는 마치 기도하듯 누군가에게 도움을 호소했다. 그것이 꼭 강설인 것만은 아닌 듯했다.
강설은 이제는 반응이 없어진 손거울을 설홍에게 돌려주었다.
“아! 잃어버린 줄 알고 얼마나 찾았는데….”
“소중한 겁니까?”
“어머니께서 남기신 유일한 물건이다. 당연히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지. 아무튼….”
설홍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찾아줘서 고맙다. 천주가 알았다면 화를 냈을 거야.”
강설이 손거울을 훔쳐 갔었을 것이라고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설홍.
강설은 그런 그녀를 두고 뒤돌아섰다.
설홍은 그에게 한 가지 당부를 했다.
“당분간, 천주를… 잘 돌봐줬으면 한다.”
강설은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그녀의 인생에 개입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를.
말마따나, 강설은 그녀의 신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아마도 개입하게 된다면, 그녀의 모든 것을 바꿔놓을 것이다.
방으로 되돌아온 강설은 창 너머를 보았다.
쏴아아아…
‘비가 오는군.’
그의 꺼림칙한 마음을 대변하듯, 날씨는 최악이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멈춰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그것은 강설의 바람이었는지도 몰랐다.
시간이 존재하는 한 이 세상에 멈춰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강설은 아침저녁으로 천주의 상태를 살폈다. 설홍은 두문불출 어딘가를 자꾸 쏘다녔다. 그는 일부러라도 그녀에게 얽매이지 않았다. 일단, 천주부터 회복시키고 이후에 생각하려 했다.
사실은 핑계였다.
아직은 결정을 내리고 싶지 않았다.
며칠 동안, 천주의 상태는 점차 나아졌다.
화장실 정도는 혼자서 거동하여 움직일 정도로 회복한 것이다.
강설은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약을 달여 그녀를 찾았다.
오늘은 아침 약을 건넸으니, 이번엔 저녁 약을 건네러 가야 했다.
콰르릉-!
번개가 심하게 쳤다.
“…빌어먹을.”
침상은 비어 있었다.
천주가 사라진 것이다.
팟-!
강설은 다급하게 움직여 천주를 찾아 헤맸다. 언제 움직인 것일까. 오후 때까지만 해도 멀쩡히 자리에 있었는데.
비를 맞으며 도시를 누비는 강설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를 발견했다. 아마도 그녀는 침상을 빠져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것 같다.
할머니가 무언가를 주렁주렁 매달고 기어가듯 움직이고 있었다.
쏴아아아아…
“…천주!”
“안 된다… 이놈들아….”
“천주?”
“우리 설홍 아가씨를 데려가서는… 안 된다!”
천주가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듯 허공을 향해 외쳤다. 강설은 순간, 목 뒤가 서늘해졌다.
천천히 천주에게 다가가 그녀의 몸을 지탱했다.
아직, 천주의 몸은 완전히 회복된 게 아니었기에 비를 맞으면 다시금 앓게 될 것이다.
“혼자서… 혼자서 가신 게야! 안 돼… 안 된다고!”
“무슨 일입니까, 천주.”
“아가씨가… 아가씨가… 혼자서 가셨어요.”
“…….”
“혼자서… 그 도적단 놈들을 쫓아간 게야!”
천주의 눈에서 비인지 눈물인지 모르는 게 잔뜩 쏟아져 내렸다.
“어찌… 어찌 그러십니까, 설홍 아씨….”
털썩…
천주가 무릎을 꿇고 강설에게 빌 듯이 애원했다.
“의원님! 의원님이 아가씨를 좀 찾아봐 주십쇼… 우리… 우리 설홍 아씨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죽어도 유화 님을 뵐 수가 없습니다….”
그 순간, 천주가 애원하는 모습이 강설의 과거 기억을 불러왔다. 지금보다는 젊었던 천주의 과거가.
– 히히히… 유화야, 너는 용궁이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도망치는 게 어떠냐?
– 천주, 그대는 매번 그 소리예요. 귀에 딱지가 앉겠어요.
– 사실인 것을, 너는 자유로운 아이다. 용궁은 답답한 곳이고.
– 제 미래가 이곳에 있는 것을요….
– 이름은? 이름은 정했느냐? 용제께서 지어주시든?
– 아뇨, 용제께서는 제게 필요 이상의 관심을 가지지 않으시니까요. 대신 이름은 제가 정했어요.
– 아이의 이름은?
– 설홍… 설홍이에요.
유화가 배를 쓰다듬으며 화사하게 미소 지었다. 천주가 그 모습에 해맑게 웃으며 기뻐했다.
– 그렇구나! 히히… 그래도 네가 예쁜 이름을 골라왔구나.
– 천주
– 왜 그러느냐? 지금 저녁 연회에 네가 입고 나갈 옷을 고르느라 바쁜데 말이지.
– 천주는 왜 내 곁에 남은 건가요?
– …….
– 나는 모두에게 미움받아요. 천주는… 당신도 용제가 사랑했던 여인이잖아요?
– 나는 용제와 결실을 이루지 못했다. 그것으로 끝이었지, 히히히… 나는 용궁의 유령이나 마찬가지야.
– 그런…
– 네가… 네가 춤추는 것을 보았다, 유화야. 그것으로 충분했어.
– …….
– 유령에게도, 살아갈 이유가 생긴 거야.
천주는 용제의 아이를 유산했었다. 그리고 용궁에 망령처럼 남아 시시한 일이나 일삼던 노파였다. 그녀가, 유화를 도왔다.
– 설홍이 널 닮아 예뻤으면 좋겠구나.
– 매일 밤 신에게 기도드리는 걸요, 예쁜 아이가 태어나기를. 사랑받는 아이가 태어나기를.
– 흥, 신이 그런 것도 들어준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구나.
– 신은 간절히 바라면 뭐든 이뤄줘요.
– 어째서?
– 그야… 신이니까요.
강설의 눈앞에, 그때의 천주가 아른거렸다.
“제발… 제발… 유화야… 어째서냐…. 간절히 바라면 신이 전부 이뤄준다 했잖느냐…. 왜 내게 거짓말을 한 것이냐….”
천주는 횡설수설하며 혼절했다.
비를 너무 많이 맞은 탓이다.
위독하지는 않겠지만, 심력을 너무 썼기에 깨어나기까진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강설은 천주를 숙소에 데려다 놓았다. 객잔의 시비를 시켜 젖은 옷 대신, 마른 옷으로 갈아입히게 한 다음 문을 나섰다.
비탄이 말했다.
【어디로 가게?】
“글쎄….”
황금빛 눈이 길게 늘어진 화살표를 바라보았다.
【이제 출발하는 거야?】
“그래.”
[다음 모험을 시작합니다.]
[서른세 번째 모험이 시작됩니다.]
[모험 33. 용쟁(龍爭)]
……
간절히 바라면, 신은 이루어준다.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이들의 신이, 오랜 침묵을 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