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231
제230화
강설의 내부에서는 끊임없이 변화가 이뤄지고 있었다.
허무(虛無).
우르가 공들여 파악하고 있는 이 공간에 강설의 소환수들이 모여 있었다.
“이걸 만든 인간은 필시 역사에 남았겠군.”
“그 정도인가?”
“내가 해석하는 데 꽤 애를 먹고 있으니까.”
카렌이 쟈마드와 대화하고 있는 우르에게 물었다.
“그래서, 해석은 언제 끝나는 거야?”
“거의 끝나간다. 단, 해석이 끝난다고 해서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뭐? 그럼 여태 우린 뭐 때문에 기다린 거야?”
“공간이 안정되기 전까지는 함부로 나갈 수 없다. 잘못하다간 영기가 크게 상해 반쪽짜리로 전락할 수 있어.”
“그건 곤란한데!”
“맞다, 곤란하지. 그러니까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 잘 들어라. 하나는 좋은 소식이고 하나는 나쁜 소식이다.”
“듣기 전부터 짜증이 확 솟구치는 말이네. 좋은 소식부터 말해줘.”
우르가 쟈마드를 비롯하여 카렌과 카루나, 그리고 코코에게까지 말했다.
“모두 잘 들어라, 이 공간의 존재 이유까지는 알아낸 것 같다.”
“그게 정말이야?”
“정말입니까?”
헥헥….
“그래. 어쩐지 그놈이 입이 귀에 걸렸을 때부터 눈치챘어야 했는데… 그놈이 삼킨 검은 약은 평범한 물건이 아니다.”
“그건 다 알고 있잖아? 그래서 우리가 이 고생을 하는 거고.”
“고생이랄 것도 없지. 앞으로 얻게 될 것과 비교했을 때 우리가 잠시 구속되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앞으로 얻게 될 것?”
모두의 귀가 쫑긋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우르는 슬쩍 웃고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 공간은 안전하지 않다. 우리 말고 다른 존재들이 있어.”
“다른… 존재?”
“적인가?”
“그렇다고 볼 수 있지. 하지만,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이 불안정한 공간 안에서도 놈들은 안정된 곳에 따로 분리되어 있으니까.”
“따로 분리되어 있다니? 그럼 건드리지 않으면 되는 건가?”
쟈마드가 잠시 턱을 괴고 생각하다 말했다.
“이런, 설마?”
“그래. 추측할 수 있는 건 두 가지. 위험한 존재들을 가둬놓은 감옥일 수도 있고 오히려 그들을 배양하는 사육장일 수도 있지.”
“사육장이라… 일리가 있군.”
“사육장이 무슨 말이야? 누군가 괴물을 이 공간 안에서 키웠다는 거야?”
“그래, 아마도 그 검은 알약을 만든 녀석이겠지.”
“그럼 이제 말해봐, 이 공간의 존재 이유는 뭐야?”
우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종의 수련장인 것 같다.”
“수련장…이라고?”
“그래, 가상의 공간 안에서 끊임없는 수련을 할 수 있는 공간인 거지.”
“설마 사육장이라는 게 수련 상대를 의미하는 거야?”
“그렇다. 아마도 그런 게 아닐까 추정 중이지만 거의 확신에 가깝다.”
“미쳤어… 어떤 정신 나간 자가… 소환수를 가둬두고 이런 짓을 해?”
“나쁠 것 없지 않나?”
“음?”
“어차피 지긋지긋한 그림자 속에만 숨어지내는 것도 답답했는데, 가끔은 몸을 움직이는 것도 괜찮지.”
카렌도 우르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소리쳤다.
“아앗! 그렇네?”
“특히, 나를 제외한 너희들에겐 꿈과도 같은 공간이다. 무한히 증식하는 가상의 적과 방해 없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공간. 그야말로 탄성이 절로 나오는 발상이다. 이 공간을 만들어 낸 인간이 살아만 있다면 한번 만나 보고 싶군.”
“근데 어째서 너는 빼는 거야?”
“너희는 일전에 경험한 적 없던 새로운 경지로 발돋움하고 있다. 좋은 환경과 더불어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밖에 있는 놈의 안배 덕도 있지.”
“음… 맞지?”
“맞습니다.”
우르는 카렌과 카루나, 그리고 쟈마드를 보며 말했다.
“너희의 급격한 성장은 항상 좋게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균형이 틀어져 버리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균형이 틀어진다고?”
“쉽게 말해, 경험 부족이다. 너희가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이후에 몇 번이나 전투를 경험했지?”
“그야….”
거의 없었다.
우르의 말대로, 초월 등급에 오른 이후에 전투 경험이 몹시도 부족했다.
“성장하기 위해선, 치열하게 부딪힐 상대가 필요하다. 검이 두드려야 더 강해지는 것처럼 어루만지기만 해서는 성장할 수 없다.”
“아! 그러니까 이곳에서 그 부족한 경험을 채울 수 있다는 거지?”
“바로 그 말이다. 이 공간을 만든 인간은 그것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던 거지.”
준비된 실전.
이미 한참이나 성장하여 좀처럼 적수를 찾기 힘든 소환수들이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는 공간.
허무는 가상의 수련장이었다.
“그런데… 일단 나쁜 소식도 함께 전하겠다.”
“뭔데?”
“방금, 모두의 힘이 되돌아왔다. 즉, 출입구를 찾지 못한 거지.”
카루나가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그건 아닙니다.”
“뭐?”
“제힘이 온전하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설마 틈새에 스며든 건가?”
“아마도 제 쪽이 정답인 거겠죠.”
우르는 골치가 아픈지 인상을 찡그리고 말했다.
“아니, 이런 경우엔 모두 틀렸다고 말하는 거다.”
“어째서죠?”
“힘을 전달할 수 없으니까. 아마도 힘을 쏘아내는 정도로는 출입구를 만들 수 없는 것 같군. 강설과의 접촉에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카렌이 한숨을 쉬었다.
“하아… 더 걸린다고?”
“곤란하군.”
쟈마드 또한 난색을 표했다.
그런 와중, 카루나가 무언가를 생각하는지 그들에게 말했다.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뭐?”
“뭐라고?”
카루나는 우르를 포함한 모두에게 선언했다.
“더는 미룰 수 없습니다. 밖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니, 이제는 누군가가 가야 합니다.”
“…….”
“제가 가겠습니다, 주인님께.”
* * *
[휴식 거점이 요천으로 변경됩니다.]
[거점 이동입니다. 여행 운 주사위를 굴립니다.]
[여행 운 주사위의 눈이 3이 나왔습니다.]
[적당히 무난한 운세가 나왔습니다.]
[당신이 요천 인근에서 진행하는 모험이 평범하게 진행됩니다.]
[당신이 요천 인근에서 진행하는 모험이 평범한 난이도로 진행됩니다.]
[당신이 요천 인근에서 선택한 모험이 강제로 다른 돌발 모험으로 대체될 확률이 낮게나마 있습니다.]
[인근을 모험하기에 나쁘지 않은 운세입니다.]
강설과 설홍 그리고 천주는 정해진 기간에 맞추어 요천에 도착했다. 거점을 이동했지만, 강설의 점수는 순위에 떠오르지 않았다.
리오나 왕녀의 망명길에 나서기 전, 광기 상점에서 구매했던 물건 덕분이었다.
거점을 옮길 때마다 그의 점수를 보고 요란을 떨어대니 이에 피곤함을 느낀 그가 거점을 방문했을 때 모험 점수를 드러내지 않는 물건을 구매한 것이다.
“후웁… 이곳이 요천인가….”
“요천에는 처음 오십니까?”
“그, 그대도 처음 아닌가?”
강설이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그것을 긍정이라 생각한 설홍은 괜히 입을 한 번 내밀었다 집어넣고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 저기구나.”
천주는 거대한 보자기 같은 것으로 설홍의 옷가지와 살림을 꽉꽉 묶어서 쫓아왔다. 강설이 그가 보관하겠다 해도 생떼를 쓰며 자기가 직접 들어야 한다 했기에 강설도 포기한 상태였다.
“설홍 님… 외지이니 너무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마십쇼.”
“응? 왜 그래?”
천주는 샐쭉한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요천은 위험한 도시입니다. 투기와 도박에 미쳐있는 자들이 산더미일 겁니다.”
강설이 코를 긁적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음… 조용히 들렀다 가자는 말이지?”
“조심해서 나쁠 게 없다는 말이기도 하고요.”
“좋아! 조심하지.”
천주가 강설을 쳐다보았다.
그는 천주의 시선에 고개를 끄덕였다.
강설 나름의 안심을 해도 좋다는 표현이었고 천주는 그 고갯짓 하나에 답답한 마음이 조금 풀렸다.
짧지만은 않았던 여행길이었기에, 천주가 강설이 믿음직한 사내라고 자체적으로 평가를 내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아무튼, 그들은 그렇게 기록관들이 고지한 장소에 도착했다.
끼이이이익…
강설이 먼저 문을 열고 별 이상이 없음을 알리자 설홍도 뒤따라 들어왔다. 그리고 거대한 보자기를 머리에 인 천주까지.
“이게 누구야?”
객잔의 1층은 한 쌍의 남녀가 마주 앉아 있었다.
그들의 뒷자리에는 용석으로 보이는 남자 둘이 서 있었다.
“설홍이냐? 설마 네가 왔다고?”
“…배유 오라버니?”
“오랜만이네?”
“어? 소료 언니까지….”
꼭 여우같이 생긴 남자와 고양이처럼 생긴 여자였다. 설홍의 반응으로 보았을 때, 이들도 용화가 분명했다.
설홍은 엉거주춤 그들이 있는 곳까지 가서 앉았다.
“첫 번째 시련을 통과했다는 말은 들었다. 듣자 하니 만점을 받았다며?”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그랬겠지. 아니었다면 네가 어떻게 탈락하지 않았겠어?”
남자는 숨도 쉬지 않고 독설을 쏘아냈다.
강설은 굳이 나서지 않고 설홍의 반응을 살폈다. 애처럼 울어버리거나 혹은 욕으로 되받아칠 수도 있는 모욕이었다.
하지만, 설홍은 씨익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그러니까요. 저도 신기하네요. 한데, 제가 배유 오라버니 소식은 듣지 못했는데….”
“허흠흠… 궁금해할 것도 없다. 잘 마무리 했으니.”
“홍아, 배유 오라버니는 5점을 받아 간신히 통과했다고 하더라?”
설홍의 편을 들어주는 게 더 재밌겠다고 생각했는지, 소료는 배유의 약을 올렸다.
이에 설홍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런… 근심이 크시겠어요.”
“죽일….”
배유가 발작하듯 일어서려 했다.
강설은 물끄러미 그 광경을 보고 있었고.
어차피, 무슨 짓을 벌이든 강설의 손바닥 안이었으니 그는 일단은 지켜볼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기록관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이제부터 용쟁의 다음 시련에 대해 말하겠다.”
설홍의 담당 기록관은 아닌 듯했다.
조금 더, 목소리가 얇았으니.
탕!
배유가 마시던 찻잔을 세게 내려놓으며 건방지게 말했다.
“말하시게.”
기록관은 괘념치 않고 다음 시련에 관해 설명했다.
“전사의 심장을….”
모두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다시금, 칸의 품으로.”
“…끝인가?”
“이번 시련에 대한 설명은 그것뿐이다.”
“뭐 이렇게 대충이지?”
“모든 시련은 방휴 님께서 직접 결정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할 말이 없지.”
“기한은 한 달, 한 달 내에 우리가 인정할 만한 성과를 내어라.”
용화 셋은 찻잔을 앞에 두고 잠시 고민했다.
“한 달이라….”
“길군요.”
기록관의 목소리는 이제 들려오지 않았다. 아마도, 시련이 시작된 것이리라.
드르륵…
의자를 소리 내며 밀치는 배유.
그는 이 중에서 후계자 순위가 가장 높았다. 그래봐야 중위권에도 끼워 주지 못했지만.
“가시게요?”
“너희와 합심해 봐야 결과는 뻔하지.”
“…배유 오라버니의 그 오만한 사고방식은 여전하네요. 그래봐야 또 가문의 금력을 끌어올 생각이겠죠?”
“소료, 너도 정신 차려라. 설홍은 이번 용쟁에서 최약자다. 용화 중에서 가문의 배경도, 일신의 능력도 가장 떨어지는 게 바로 네 옆에 있는 설홍이니까.”
설홍은 쓰게 웃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
“뭐, 틀린 말은 아니죠.”
소료 또한 부정하지 않았다.
그녀도 설홍과 힘을 합치는 것에 관해서는 고민하는 중이었다.
배전의 말대로 설홍과 힘을 합친다 해서 좋을 게 없었기에. 오히려 평가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너, 설홍.”
“말씀하세요, 오라버니.”
배유가 강설을 잠시 노려보다 이렇게 말했다.
“어디서 돌멩이를 주워왔는지는 몰라도, 용쟁은 너 따위가 나설 자리가 아니다. 내 말 똑똑히 기억해라, 넌 결국 용궁의 제일 밑바닥에 자리할 테니.”
“…조언 감사합니다.”
“흥! 가자! 쭉정이들과 어울릴 시간 따위는 없으니.”
자신의 용석을 데리고 사라지는 배유.
“저 성질머리는 평생이 지나고서도 못 고칠 거다, 설홍아.”
“…예.”
설홍은 소료도 배유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알고 있었다.
둘의 모친은 용제의 첩이긴 하였지만 모두 유력가의 자제들이었다.
설홍과는 출발점부터가 다른 존재들.
그리고 소료 또한 배유와 결이 다를 뿐이지, 늘 설홍을 괄시해왔다.
“설홍, 어떻게 할 생각이니?”
“…고민해 볼 문제인 것 같네요.”
소료의 눈이 실처럼 가늘어지며 동공을 숨겼다.
“나를 따르는 건 어때?”
“…소료 언니를요?”
뜻밖의 제안이었다.
“너에게 아직 얘기해 줄 수는 없지만… 요천의 유지와 끈이 있거든. 나한테 수가 있어. 배유 오라버니도 결국에는 금방 포기하고 내게 애원하시겠지. 너에게만 먼저 특별히 기회를 줄게. 어때?”
“…….”
“현재 투기장의 주인은 곽성이라는 사내인데, 평범한 방법을 써서는 회유할 수 없을 거야. 그만 헛물켜지 말고 내….”
이야기를 듣던 강설의 표정이 굳었다.
‘곽… 성이라고?’
곽성은 그가 아는 인물이었다.
그의 이름을 듣자마자 강설의 머리에 그의 인물됨은 물론이거니와 이번 일이 결국엔 어떻게 진행될지까지 한순간에 머릿속에 그려졌다.
“어때?”
“전….”
설홍은 늘 외로웠다.
추운 곳에 있다가 잠시라도 훈훈한 곳에 들어오면 온몸이 쾌락에 잠식된다.
그렇기에 지금 제안이 비록 호의가 아닐지라도, 입에 발린 말일지라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설홍의 시선이 강설에게로 돌아갔다.
강설은 곧 그녀와 시선을 맞추고, 고개를 저었다.
그것으로, 설홍의 고민은 끝이 났다.
“부족하더라도 혼자서 진행해보겠습니다.”
“뭐? 아, 아니….”
“그럼….”
“설홍! 후회할 거야! 너처럼 아무것도 없는 게 무슨 수로 이 일을 처리하려고!”
설홍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역시, 소료의 본심은 배유와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천천히, 객잔을 빠져나왔다.
천주가 뒤뚱뒤뚱 보자기를 이고 따라나섰다.
그녀는 설홍이 독설을 듣고 시무룩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설홍은 강설에게 묻고 있었다.
“그대, 어째서 소료의 제안을 거절하라고 한 것인가?”
이제는 언니라는 존칭도 붙이지 않았다.
설홍 나름의 작은 복수였다.
강설은 뭔가를 떠올리는 듯, 잠시 생각을 이어가다 질문에 답했다.
“곽성이 투기장의 주인인 한, 투기장을 손에 넣을 방법은 하나밖에 없을 겁니다.”
“…뭐? 하지만 소료와 배유는….”
소료와 배유는 서로 다른 방법을 쓸 것처럼 보였다. 이미 한 가지 방법은 아니었다.
강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시련은 절대로 협력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그들이 잘못된 판단을 내리면….”
배유 혹은 소료, 그도 아니면 둘 다.
“곽성의 손에 죽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