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235
제234화
“너… 너!”
“앉아야 할 거야.”
소료의 눈이 황급히 설홍을 찾았다.
설홍 또한 두려운 것은 마찬가지.
– 당당하게 행동하십시오. 곽성은 설홍 님이 약점을 보이면 파고들 겁니다.
강설의 말을 떠올린 설홍은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설홍이 앉을 자리 뒤편에 가 섰다.
저벅…
저벅…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설홍이라고 해요.”
설홍이 자리에 앉으며 한 말이었다.
소료도 설홍이 한 행동을 최대한 따라 했다.
“소, 소료다. 나는 용화다….”
식탁에 앉자마자, 소료의 얄팍한 평정은 금방 깨졌다.
“이, 이게 뭐야? 배유 오라버니가 주, 죽었잖아.”
배유의 가슴팍에는 단검이 꽂혀서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식사하는 자리에서, 그것도 한술 뜨기도 전에 같은 식탁에 시체가 앉아있다는 걸 자각한다면 누구든 당황할 것이다.
소료의 반응이 정상이었다.
설홍의 반응이 비정상인 것이고.
“시체가 좌석을 차지하고 있는 연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아는 자인가?”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설홍의 대답에 흥미를 느낀 곽성이 입매를 비틀며 물었다.
“무슨 뜻이지?”
“이자가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죽은 것이라면, 저와는 모르는 자일 것이고 단순히 대인의 변덕 때문에 죽은 것이라면 안면이 있는 자일 것입니다.”
배유가 잘못을 저질렀다면 모른 척할 것이고, 곽성이 실수로 죽인 거라면 이를 트집 잡을 것이다.
설홍은 지금 떨지도 않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재밌군. 놈은 큰 잘못을 저질렀다.”
“그렇습니까? 어떤 잘못이지요?”
“감히 날 협박했지. 그 알량한 지위로 제가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도 모른 채.”
“내용은요?”
“투기장을 내놓으라더군. 그도 아니면 칸 제국에 복속하든가. 그만한 돈을 준다는 말까지 같이 꺼내긴 했다만, 괘씸해서 죽였다.”
곽성의 잘못이라 볼 수 없었다.
명백히 상대를 파악하지 못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 배유의 잘못이었다.
그 손속이 과하긴 했다만, 현재 용쟁을 치르는 중인 용화의 목숨은 그리 무겁지 않았다.
달그락…
달그락…
그 와중에, 소료는 몸을 떨고 있었다.
너무도 이상한 광경에 금방이라도 혼절할 것 같은 모양이었다.
스윽…
식탁 밑으로, 설홍의 손이 소료의 손 위에 포개어졌다.
“…….”
신기하게도 그것만으로 소료의 떨림이 멈추었으며, 소료는 그 손을 내치지 않았다.
“아가씨, 나에 대해 알고 있나?”
“곽성, 전사의 심장의 주인이자 정복자를 둘이나 배출해낸 실력가. 요천의 절대자나 마찬가지지요.”
“…다른 부분은?”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지 모르나 소녀가 감히 추측해보자면 혹 과거의 비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영악하군. 내게 벌어졌던 일을 알고 있나?”
배유는 아마도 그것을 몰랐기에, 아니 알았어도 신경조차 쓰지 않았기에 죽은 것일 터였다.
“과거, 출세에 눈이 먼 칸의 관리가 당시 투기장의 주인이었던 곽성 어른을 암살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불행하게도 정복자 대산이 숨을 거두었지요.”
강설이 설홍에게 해줬던 말이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비사였기에 요천의 토호 또한 이를 알고 소료가 곽성에게 섣불리 접근하는 것을 막아섰었다.
“잘 아는군. 여기, 이 친구는 몰랐던 눈치야.”
“무지는 늘 곤경과 함께하지요.”
“큭큭큭… 제법이군.”
설홍은 정말로, 곽성과 대등하게 대화했다. 반면 소료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대하, 이리 와라. 새로운 사람들을 소개시켜 주마.”
“예.”
강설이 곽성에게 다가오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대산보다는 훨씬 작은 덩치.
하지만, 분명 강했다.
‘대단한 강자다!’
마물에 비유하자면, 초월급 문턱에 도달한 자가 아닐까 싶었다.
그만큼 뿜어내는 기운이 굉장했다.
기운을 모두 드러낸다는 건 자신이 있다는 것이고 이런 자리에서까지 그런다는 건 오만을 넘어 광오하다 할 수 있었다.
“인사드려라, 여기 이분들은 빌어먹을 홍천의 자식들이자 내게서 전사의 심장을 빼앗으러 온 용화들이다.”
“…….”
“…….”
설홍과 소료가 당황했다.
아무래도 배유가 모든 사실을 고해바친 듯했다.
고해바쳤으면 살기라도 할 것이지 둘 다 실패하다니 무능의 극치였다.
“대하요.”
“설홍입니다.”
“소, 소료… 입니다.”
대하의 시선이 강설에게 가 닿았다.
“그대는?”
대하는 처음부터, 오직 강설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강설입니다.”
곽성이 미친 듯 웃었다.
“그래… 그래… 다들 입맛이 없는 것 같으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지.”
스윽…
곽성이 양 팔꿈치를 식탁 위에 올리고 물었다.
“뭘 원하는 거냐? 애송이들아.”
“…….”
“이 곽성에게 네 오라버니처럼 협박이라도 하려는 게냐? 칸을 위해 살라고?”
쾅-!
곽성이 식탁을 내려치자, 소료가 화들짝 놀랐다.
“히익….”
“너희도 후계 싸움인지 뭔지, 그딴 농간에 나를 끼워 넣을 생각이냐?”
“그, 그게….”
스으으윽…
주변에 곽성의 무인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명백한 협박이었다. 자신을 더는 용쟁에 휘말리게 하지 말라는.
소료의 용석이 검에 손을 가져다 대었지만, 뽑지는 못했다.
“대답해라!”
곽성의 말에 소료가 몸을 부르르 떨다가 이렇게 말하고야 말았다.
“그, 그만둘게요. 그만하겠습니다….”
그 순간, 어디선가 기록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매화 소료, 낙화(落花).”
그 말에 소료의 얼굴이 시커멓게 죽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말을 무를 수는 없었다. 죽기는 싫었기에.
이제, 설홍만 남았다.
주변 무인들이 뿜어내는 투기에 숨이 턱턱 막힐 것인데, 그녀는 요리에 계속해서 젓가락을 가져갔다.
“음식 맛이 괜찮군요.”
“…너지?”
“무슨 말인가요?”
“요천에 헛소문을 푼 게 누군가 했더니, 본인이었군.”
“…….”
“대산이 어떤 수모를 당했는데… 너희같이 세상을 우습게 아는 놈에게 어떤 수모를….”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아니, 분위기는 사실 처음부터 이상했으니 험악해졌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널 죽일 것이다. 그 전에 답해라, 이런 짓을 벌이는 이유가 무엇이지?”
“말할 수 없어요.”
“…그게 무슨 뜻이지?”
강설조차 전투가 벌어질 것을 염려해 경계하고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
설홍은 지금 그녀가 말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을 내어놓았다.
“할 말이 있다면, 무기를 들어라.”
– 할 말이 있다면, 무기를 들어라.
전사의 심장이 위대해진 이유.
설홍은 그곳의 기치를 인용했다.
그 말을 들은 곽성은 정말로, 정말로 오랜만에 말문이 막혔다.
“그래… 설마 그 소문도 진심으로 정복자의 자리를 노리고 한 소리였던 게냐?”
빙긋 웃는 설홍.
그러자 곽성은…
“흐….”
웃었다.
“흐하하하하하하하!”
“제 대답은 혈투가 끝난 다음에 들려드리죠.”
“하하하하하하하! 콜록… 아하하… 아하하하하하!”
드르륵…
곽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3일 후다.”
“3일 후.”
“대하와 강설이, 전사의 심장에서 마주칠 것이고 정복전을 벌일 것이다. 뭘 걸 테냐?”
“그쪽은요?”
“그야… 모든 것이지.”
드륵…
설홍 또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요, 저도 모든 것을 걸죠.”
씨익…
곽성이 이가 다 드러나게 웃었다.
“오랜만에 숨을 쉬는 것 같군. 정말이지… 오랜만에.”
3일 후, 모든 것을 부딪친다.
곽성은 그 고양감에 희열을 느꼈다.
* * *
3일 뒤, 곽성은 처소를 나섰다.
쏴아아아아…
소나기가 오고 있었다.
대산을 데려간, 그날의 소나기가.
하지만, 오늘은 정말이지 컨디션이 좋았다.
“푸흐흐….”
“가시죠.”
그의 곁은 정복자 대하가 따랐다.
“대하야….”
“예.”
“자신 있느냐?”
“자신으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곽성 어른의 뜻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
곽성은 잠시 대하의 몸을 바라보았다.
대산과는 달리, 데려올 때부터 허약했던 그의 몸.
하지만 이젠 그 몸에 근육이 빼곡히 자리했다.
“네 형이 떠난 날을 기억하느냐?”
“…기억합니다.”
“나 때문에 죽은 것이다, 네 형은.”
“곽성 어른.”
그날의 일이 떠올랐다.
새로 부임한 칸의 관리는 요천의 모든 것을 차지하고 싶어 했다.
심지어는 건드려서는 안 되는 전사의 심장의 이권까지도.
곽성은 당연히 그것을 내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밤, 곽성의 저택에는 자객이 대거 투입되었다.
…막아아아아!
…곽성 어른을 지켜라!
…끄아악!
괴성과 고함이 난무했던 그날 밤.
대산은 곽성 대신 자객의 칼을 받고 숨을 거두었다.
“몇 번이고 말씀드리지만 제 형님은 그 죽음을 자랑스러워할 겁니다.”
“…어째서?”
“그야 형님은….”
대하는 입을 다시 다물었다.
망자의 생각을 함부로 입 밖에 내어서는 안 되었다. 그것은 먼저 간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기에.
“할 말이 있다면, 무기를 들어라. 나는 이 말이 너무도 좋다.”
“…저도입니다.”
“이 말은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말이다. 사는 게 재미없던 이 곽성의 삶이… 네 형과 함께 전사의 심장에 들어서며 전부 뒤바뀌었다.”
“형님도 그 말을 참 좋아했습니다.”
“크크큭… 그러고 보면 네 형과 나는 닮은 부분이 꽤 있었던 모양이다.”
“…형님이 그리우십니까?”
“아니.”
“…저에게까지 거짓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하하! 들켰느냐?”
곽성이 잘 가다 멈칫 서서 대하를 보았다.
– 형님의… 형님의 뒤를 제가 잇겠습니다!
– …대하.
– 형님은… 형님은….
대산이 죽고 망연자실했던 그에게 이같이 말했던 대하. 그는 정말로 대산의 뒤를 이어 정복자가 되었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었으나, 어쩐지 대산이 사라진 후에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가 느껴졌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전과 같은 생활을 누렸고 영광 또한 되찾았다.
한데,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형님의 뒤를 이을 자는 저뿐입니다. 오늘 그 사실이 밝혀지겠죠.”
“죽지 마라.”
“…예?”
“아, 아니다….”
곽성은 자신도 모르게 새어 나온 말에 당황했다.
어째서 이런 말을 한 것일까?
죽지 마라가 아닌, 지지 마라라는 말이 나왔어야 했는데.
“가자, 곧이다.”
* * *
쏴아아아아…
벌써, 전사의 심장은 빈 좌석 없이 가득 찼다. 그것도 모자라 사람들이 계속해서 밀려 들어왔다.
억지로 간이 좌석을 만들어 사람들을 더 받은 것이다.
그만큼 지금 벌어지는 일이 전사의 심장에서도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벌어지는 정복전.
강설의 도전을, 정복자인 대하가 받아들였다.
“신요 님, 어떻게 보십니까?”
“대하는 이미 정복자에 오른 자다. 지금까지 숱한 도전자를 상대로도 단 한 번도 1분을 넘게 싸운 적이 없어.”
“크큭… 그 강설이 5분 동안 시간을 끄느냐 대하가 1분 안에 끝장내느냐에 싸움이군요.”
“그가 익힌 곤법은 예열 없이 무자비한 일격을 쏟아낸다. 대부분 그것에 대응하지 못해 1분 안에 나가떨어지는 것이고. 그에 반해 강설은 여태 특출난 뭔가를 보여준 적 없어. 아마도 강설이 패배할 거다.”
“…생각보다 줄줄 꿰고 계시는군요?”
“흠흠… 입구에서 족자를 팔길래 읽어본 것뿐이다.”
“이렇게 좋아하시는 줄 알았으면 자주 올 것을… 앞으로 종종 오죠.”
“좋아하는 거 아니다! 그런데, 장두 네 생각은 어떠냐?”
“제 생각 말입니까?”
장두가 턱을 검지로 긁적이면서 고민했다.
“역시나 대하가 이길 것 같습니다.”
“그렇지?”
“근데,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습니다.”
“걸리는 것?”
“제가 일전에 평범하지 않지만 느껴지는 게 없다고 했던 것 기억나십니까?”
“기억난다.”
“뭔가… 숨기고 있습니다.”
“강설이? 그럴 만한 인재인가?”
“싸움도 뭔가 석연치 않습니다. 거인이 작은 신발을 신고 싸우는 것처럼 어색하기도 하고… 저는 거기에 걸어보지요.”
“호오… 내기인가?”
“지는 사람이 다음 숙영에서 불침번을 서도록 하죠.”
“나는 잠이 많은 편인데… 거기다 용화이기도 하고….”
“배유가 요천에서 용화 행세를 하려다 죽었다고 비웃었던 분은 어디 갔습니까?”
“좋다! 나는 대하에게 걸지.”
“하하! 시작합니다!”
쏴아아아아아아…
현대의 돔 시설도 아니었기에 투기장의 관중은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아야 했다. 도술로 비를 최대한 막아봤지만 그래도 옷이 조금씩 젖는 건 피할 수 없었다.
콰르르릉-!
번개가 번쩍였다.
모두 천둥에 깔깔대며 웃었다.
그만큼, 흥이 난 것이다.
– 날씨까지 오늘을 축복해주는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닥쳐라!”
“지금 이게 축복처럼 보이냐!”
“와하하하! 미친 자식! 어서 시작이나 해!”
– 하하하하! 오늘은 바로 그 정복전이 펼쳐지는 날이니 애투인들께서 조금만 너그러이 봐주시지요. 지금 막! 검투사들이 입장하고 있습니다!
도전자 강설과 대하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은 그들 중 진정한 정복자가 누군지 가려지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