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236
제235화
투기장의 주인을 가리는 날이니만큼, 도술도 평소보다 화려했다.
사방에 깔린 안개.
강설과 대하는 서로를 마주 보며 입장했다.
투기장의 지형 또한 새롭게 조성되어 있었다.
마치 두 개의 산봉우리가 교차해서 자라난 듯한 암벽이 투기장 중앙에 솟아나 있었다.
– 기암절벽 지형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이지요! 대산이 이곳에서 펼쳤던 수많은 혈투! 기억하시는지 모르겠군요!
“기암절벽이다! 대산의 기암절벽이야!”
“저걸 다시 보다니….”
– 지금까지는 그를 기리기 위해, 혈투에서 기암절벽 지형을 사용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 대산의 진정한 후인을 가리는 자리이니만큼 기암절벽이 빠질 수 없겠죠. 안 그렇습니까?
“말 잘하네!”
“맞아! 기암절벽이어야지!”
– 검투사들간의 승부는 날씨 또한 중요한 요소이니만큼 경기장에는 개입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스으으윽…
경기장 위에 조성된 구름이 걷히자, 곧 비가 쏟아졌다.
기암절벽이 미끌미끌해져 중심을 잡기가 어려웠다.
후우…
후우우…
강설은 비를 맞으며 입김을 내뿜었다.
심장이 뛰었다.
‘기어코 맨몸으로 싸우게 되는구나.’
일단 할 수 있는 건 전부 해두긴 했는데, 전투가 어떨지는 모르겠다.
대하가 조금이라도 약하길 바라야 하는 것인지….
강설은 설홍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설홍은 걱정하는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입장하기 전, 설홍은 강설과 짤막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 너무 위험하면 그만….
– 설홍, 진정으로 바라는 건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 …….
– 전사의 심장은 욕망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실함에 잡아먹히죠. 설홍, 당신이 원하는 건 뭡니까?
설홍은 잠시 망설이다, 이렇게 답했다.
– 그대가… 이겼으면 좋겠네.
강설은 빙긋 웃으며 설홍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이렇게 답했다.
– 그렇다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질 겁니다.
강설은 그녀의 신이었고 채울 수 없는 빈자리를 만들어낸 부모였다.
책임을 질 차례였다.
그녀에게 새로움으로 가득한 미래를 선물해야 했다.
사회자의 목소리가 곧 경기장을 진동시켰다.
– 시자아아아악!
팟-!
팟-!
쇠로 된 추가 달린 대하의 곤이 휘둘러졌다.
붉은 기운이 서리고… 곧 그의 능력이 발휘되었다.
[대하가 절기 : 쌍룡곤을 사용합니다.]
[지속 시간 동안 공격이 적중하면 추가 타격이 발동합니다.]
‘시작부터 절기라니!’
강설의 머리가 쭈뼛 섰다.
하지만, 이때를 위해 대비해둔 것이 있었다.
강설에겐 소환술도, 격투술도 아닌 다른 무기가 하나 존재했다.
바로, 요리를 통해 얻게 되는 휘발성 능력이었다.
[휘발성 능력 거북이 방패를 사용합니다.]
[기본 방어력이 300%까지 증가하며 일정 피해량을 막을 때까지 지속됩니다.]
강설의 주변에 거북이 등딱지 모양의 기운이 생겨났다.
“어림없다!”
타아아앙-!
[대하가 일변도를 사용합니다.]
[상대가 방어에 성공하더라도 공격에 적중 판정이 적용됩니다.]
즉, 강설이 방어하더라도 쌍룡곤의 능력이 계속해서 발휘된다는 것.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앙!
‘제기랄….’
등껍질이 순식간에 깨져나갔다.
대하의 혈투가 모두 1분 안에 끝이 나는 이유가 있었다.
이렇게 무식한 공격을 받아내는 검투사가 깔려있다면 그거야말로 말이 되지 않았다.
[휘발성 능력 먹물 휘감기를 사용합니다.]
[상대의 타격에 적중할 때마다 2%씩 피해량 감소가 적용됩니다. 먹물 휘감기는 최대 40%까지 피해량 감소를 상승시킬 수 있습니다.]
촤르륵…
거뭇한 먹물이 강설의 장비 위를 물결처럼 지나다녔다.
‘피해만 다녀서는 승산이 없어.’
5분 안에 끝을 내는 건 이제는 포기했다.
애초에 그건 대산이나 할 일이지 강설이 할 일도 아니었으니.
모두 대하를 끌어들이기 위해 벌였던 연극이다.
파지지직…
강설의 손이 검게 물들었다.
그의 주먹이 대하가 휘두른 곤의 자루와 부딪쳤다.
까아아아아아앙-!
지이이이이잉…
【아파!】
비탄이 비명을 질렀다.
그만큼 대하의 곤도 평범한 무기는 아니었다.
까아앙-!
까아아아앙-!
“크윽….”
대하는 무지막지했다.
성난 황소처럼 돌진하는 게 오히려 대산보다 더 거칠었다.
콰아아아아앙-!
파스스스…
그의 일격 한 번에 기암절벽의 일부분이 부서져서 저 밑으로 떨어졌다.
추락하면 목숨을 지키기 어려워 보였다.
“감히, 형님의 이름을 더럽혀?”
“진정하는 게 어떨까?”
“닥쳐라! 네놈이 전사의 심장을 더럽히는 꼴을 더는 보아줄 수가 없다!”
[대하가 유성타를 사용합니다.]
[다음 공격이 강화됩니다.]
빠르고, 길었다.
‘막을 수 없어!’
강설이 최대한 몸을 움츠렸다.
콰직…
그의 팔뚝과 어깨 쪽으로 공격이 가해졌다.
으드득…
잠시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강설이 바닥을 튕겼다.
“커헉….”
시초의 피 덕분에 금방 회복하겠지만, 그래도 고통은 고통이었다.
후우우우우웅-!
대하의 공격이 공중에서 지면으로 쏘아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앙-!
하늘에서 비 대신 쇠가 떨어진다면 이렇지 않을까, 한쪽 절벽에 거대한 금이 갔다.
강설은 가까스로 피했으나 충격과 함께 날아올랐다.
그는 직감했다.
이 승부가, 이대로 끝날 수도 있다고.
* * *
한 기사가 시커먼 어둠을 헤매고 있었다.
휘이이이이이이잉…
엄청난 눈발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언제 쌓였는지 모를 눈이 무릎까지 차올라 걸음을 방해했다.
추울 수가 없는 공간이었지만 추웠다. 차라리 춥기만 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문제는 공간의 규칙이 계속해서 바뀐다는 점이었다.
– 고난이 이어질 거다, 이곳의 공간이 자리를 잡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테니.
알았다고, 충분히 이해했다고 전했다.
– 저기, 같이 가도 돼. 나도 걱정되기는 마찬가지니까.
카렌의 걱정 어린 말도 괜찮다 거절했다. 애초에 우르가 그것을 극구 반대했기에 실행되기도 어려웠지만.
– 놈은 멀쩡히 잘 살아있을 거다. 그런 놈이니까. 천천히 걸어가다 보면 도착해있겠지.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니까. 잘할 수 있지, 고철?
고철이라니.
– …놈을 부탁한다. 지금은 너만 할 수 있는 일이야.
쟈마드의 부탁 또한 마음에 새겼다.
그렇게, 짐을 가득 짊어지고 여행길에 올랐다. 우르는 안과 밖의 시간이 같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 말인즉, 지금 그가 겪고 있는 시간이 밖에서는 찰나에 불과할지도 혹은 비슷한 무게의 시간일지도 알 수가 없다는 얘기였다.
고난은 계속 찾아왔다.
불길한 악몽도 그러했고 추위와 더위, 심지어는 무력감 같은 것도 종종 찾아왔다.
헛구역질을 하면서도 앞으로 걸었다.
‘아니, 이 방향이 앞이 맞기는 한 걸까….’
그 또한 알 수가 없었다.
그의 힘이 남긴 흔적이 점점 희미해졌기에.
이러다가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기라도 하면 그때는 정말로 이 공간 안에 버려지게 될 것이다.
우르가 찾으러 와 주긴 하겠지만 시간상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고 또 그것보다 중요한 건…
‘늦어선 안 돼.’
주인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들을, 아니 누구라도.
휘이이이이이잉…
이제 눈발은 점차 심해져 어느새 눈이 허리까지 다다랐다. 아직 걸을 수 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무력감이 다시 한번 찾아왔다.
생명은, 타인에게 냉소적이기 마련이다.
그건 모든 생명이 마찬가지였다. 그 정도만 다를 뿐이지.
결코, 나보다 타인이 중요할 수는 없다.
‘그런데 갑자기 이 생각이 왜 떠오르는 거지?’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아주 오래전, 신뢰했던 누군가의 말이.
– 생명은 냉소적이다.
기억났다.
이 말을 전해준 사람.
‘레인….’
몬트라에서 가장 강한 기사.
태양의 기사 레인이었다.
– 그중에서도 사람이 그러하지. 모두 다른 사람의 삶에는 관심이 없어. 곤란한 상황을 마주하면 눈을 다른 데로 돌린다. 불의를 회피하는 것이지.
그는 이렇게 말했다.
– 그들을 탓할 필요는 없다. 당연한 일이니까. 사람은 그래도 돼. 땅을 보고 걸어도 되고 타인을 외면해도 돼. 하지만, 우리는 그래선 안 된다.
레인은 각인하다시피 그에게 뜻을 새겨넣었다.
– 기사는 그래선 안 돼. 우리는 타인을 마주 봐야 한다.
– 어째서죠?
– 그래야, 우리를 믿어줄 테니까. 우리를 믿고 그들이 떠안은 짐을 조금은 넘겨줄 테니까.
레인은 몬트라의 황제, 진을 멀리서 바라보며 얘기했다.
– 그들에게 도움이 될 테니까. 기사는 늘 도움이 되고 싶어 하는 얼빠진 놈들이니까.
레인이 스르륵 저 너머로 사라졌다.
‘…찾았다.’
레인이 떠나고 난 뒤, 문이 나타났다.
방금, 자신이 힘이 남긴 흔적이 완전히 사라졌다.
똑똑…
문을 두들겼다.
“들어가도 될까요?”
정중하고도 웃기는 소리다.
치지직…
문이 쪼그라들며 사라지려 했다.
파아아악-!
그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아니, 들어가겠다.”
마침내, 오랜 단절을 뛰어넘어 도착했다.
카루나는, 집에 돌아왔다.
홀로 남겨뒀던 가족의 품으로.
* * *
쏴아아아아아…
콰르르르르릉!
그 시각, 강설은 모진 고초를 겪고 있었다.
퍼어어억-!
“우우욱….”
파아아악!
콰직! 콰지직…
곤에 맞아 이리저리 튕겨 나가는 강설. 그 와중에도 철저하게 급소는 피했기에 계속 일어설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도 점차 한계에 도달했다.
‘대하가 이전의 대산을 넘어서다니….’
그의 계획에 있어 유일한 변수였던 현재의 정복자인 대하.
그가 가진 힘은, 과거 대산의 힘보다 강한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이리 맥을 못 추고 당하지는 않을 테니까.
‘능력치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어느 정도 불안은 존재했지만, 하필 그것을 절실히 깨닫는 장소가 전사의 심장이라니.
‘시초의 피로 몸을 회복할 수는 있지만… 어떻게 쓰러트리지?’
이미 대하의 1분도, 강설의 5분도 한참이나 지나있었다.
대하는 계속해서 공격했고 강설은 그것을 방어하기에 급급했다.
“대, 대하가 너무 세잖아?”
“강설이 저렇게나 밀린다고?”
정복자와 도전자의 격차는 생각보다 심했다.
휘리리릭-!
대하의 곤이 진동했다.
[대하가 사지 분쇄를 사용합니다.]
[사지 분쇄에 적중당한 상대는 모든 체력 회복이 30% 감소하며 이 공격으로 최대 체력의 20% 이상 타격을 입으면 모든 체력 회복이 10% 추가로 감소합니다.]
콰지지지지지직!
“커허어억….”
양팔을 이용해 곤을 막았지만, 강설은 결국 기암괴석들의 틈바구니로 쑤셔박혔다.
그는 그 틈바구니에서 축 늘어져 있었다.
“강설! 지지마!”
“틀렸어, 죽겠군.”
정복전의 가혹함은 이곳의 모든 이들이 알았다. 도전자든 정복자든 죽는 경우가 허다했다.
대하가 강설을 내려다보며 곤으로 가리켰다.
“네가 어째서 형님의 이름을 들먹였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명명백백하다! 모두 들어라!”
대하의 목소리가 전사의 심장을 가득 채웠다.
“나의 형님, 대산은 진정한 정복자이며! 비록 지금은 먼 곳에 가셨지만, 이곳 전사의 심장에서는 단 한 차례도 패배한 적이 없다! 형님의 뜻을 잇는 후인 또한 그러할 테지! 그러나 저자는 지금….”
패배할 것이다.
그렇게 외치려 했다.
“지금….”
한데 대하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치지지지지지직…
강설의 기운이 보가 터진 것처럼 물밀듯이 밀려왔다.
쏴아아아아아…
콰르르르르릉-!
벼락이 침과 동시에 강설의 모습이 드러났다.
“푸흐흐… 대산이 이곳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한 적 없다고?”
“…그렇다.”
“…우연이네.”
강설이 온통 새카맣게 변해갔다.
“나도 마찬가진데.”
되찾은 밤까마귀.
하나, 그 모습은 이전과는 달랐다.
쟈마드와 합일했을 당시, 그의 입 주변으로 쟈마드를 상징하는 송곳니 문양이 그려졌었다.
한데, 지금은 송곳니 문양은커녕 아무런 문양도 생겨나지 않았다.
그 대신 눈에서 푸른 정광이 넘칠 듯이 흘러나왔다.
파츠츠츠츠…
강설, 그의 안에 쟈마드가 아닌 또 다른 누군가가 찾아왔다.
“조금, 늦었습니다.”
카루나의 목소리였다.
【왔구나! 늦었어! 바보! 바보! 기다렸다고!】
촤라라라라락-!
비탄이 기뻐하며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산토스를 구원했던 새카만 검의 모습으로.
강설이 몸을 일으켰다.
[기사 ‘월광기사 카루나’와 밤까마귀 형상을 취합니다.]
[‘월광기사 카루나’의 능력치를 흡수합니다.]
[직업 : 기사 상태입니다.]
……
콰르르릉-!
전사의 심장에 모인 이들은 모두 숨을 죽였다. 그것이 천둥 때문은 결코 아님을, 모두가 알았다.
강설은 카루나에게 나직이 말했다.
“아니, 딱 맞춰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