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241
제240화
이곳은 투마쿠에 존재하는 다른 광산들과 조금 떨어진 위치의 소둥 광산.
그 인근에 마련된 낡은 객잔의 1층.
사람의 귀 대신 늑대의 귀를 달고 있는 미형의 젊은 남자와 얼굴에 짜증이 덕지덕지 붙은 사내 단둘이 그곳에 앉아있었다.
“용석은?”
“치우는 최강의 용화다. 치우가 최강인데 왜 용석이 필요하냐?”
늑대 귀의 남자는 스스로를 최강이라 표현했다. 맞은편 남자는 그 말에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실제로는 어떨지 몰라도 치우가 최강이라는 건 사실에 가까운 듯했다.
늑대 귀 치우는 랑족의 여인인 초연과 용제 홍천의 아들이다.
수인족의 종류 중 하나이며 보름달이 뜨면 야성이 깨어나 늑대인간이 되는 랑족.
물론, 치우는 인간과의 혼혈이었기에 그 피가 많이 옅어져 보름달이 뜬다고 해서 변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남들과는 다른 힘을 타고났다. 무술에 가장 적합한 신체와 강인한 체력은 그를 평범한 인간과는 다른 존재로 만들어 놓았다.
늑대의 귀, 흥분했을 때 나타나는 눈과 송곳니 정도가 그가 랑족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특징이었다.
“치우, 듣자 하니 이전 평가들에서 압도적인 무력으로 고점을 받았다지?”
치우는 시큰둥하게 답했다.
“때려 부수는 건 쉽다.”
“흠흠… 그래? 이번에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우리가 소둥 광산 계약과 관련된 일을 맡게 될 것 같으니까. 이건 네가 때려 부술 수도 없는 일이라고.”
“네 일이나 신경 써, 방재.”
방재라는 이름으로 불린 남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이렇게 말했다.
“이… 그러니까 지금 내가 하려는 말이 뭐냐면 이다음에 오는 용화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우리끼리 힘을 합치는 게 어떻냐는 말이지.”
“…협력?”
“그래! 네 무력과 내 영향력을 합쳐서 시련을 극복하는 거지! 어때? 이번 시련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네 무력만으로는 헤쳐나가기 어려운….”
“아- 시끄러워.”
“어려운… 뭐?”
“그러면 그때 가서 떨어지면 그만이지, 너 재미없어.”
“으그그극….”
치우는 철저하게 기분파였다. 거기다 무력까지 강했으니 모두 그와의 충돌을 꺼렸다.
“아무튼… 잘 생각해보라고, 난 인자한 편이니까.”
“이거 먹어도 되는 건가?”
치우가 앞에 놓인 과일을 베어 물었다.
와삭…
“냠….”
방재는 치우에게 철저히 무시당하는 상황에서도 필사적으로 인내했다.
“그건 그렇고…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지? 벌써 너와 내가 도착한 것이 이틀째인데.”
방재가 소리쳤다.
“이봐, 기록관! 우리가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지?”
“…….”
들려오지 않는 대답에 괜히 방재가 심통을 부렸다.
“건방진… 나중에 내가 황제가 되면 너희 모두 각오하도록 해.”
“우와! 이건 뭐야? 맛이….”
그때.
콰아아아아아앙-!
드드드드드…
갑자기 폭음과 함께 객잔이 흔들리자 방재는 식탁 밑으로 들어갔다.
식탁 밑으로 치우가 고개를 집어넣었다.
“거기서 뭐 해?”
“뭐, 뭐야 방금? 소리 들었지?”
“들었어.”
방재가 재빨리 밖으로 나가 사태를 살폈다.
누군가 소리치며 마을 쪽으로 달려왔다.
“광산이 무너졌다! 소둥 광산의 갱도가 무너졌어!”
별 관심 없는 치우를 뒤로하고 방재가 입을 벌렸다.
“광산이… 무너졌다고?”
* * *
강설 일행이 마침내 투마쿠 광산촌에 도착했다.
그들은 제대로 여장을 풀어놓기도 전에 치우와 방재에게 합류했다.
‘늑대 귀….’
강설이 치우를 눈여겨보았다.
방재와 그의 용석은 평범한 축에 속했으나, 치우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장두에게서 느꼈던 기운이다.’
치우 또한 고개를 갸웃하며 강설을 쳐다보았다.
한눈에 서로를 알아본 치우와 강설.
하지만, 둘 사이의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뭐야, 설홍이었어?”
“방재 오라버니….”
“흥, 와서 앉아라. 너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죄송해요, 요천에서 오느라 시간이 걸렸네요.”
딱히 사과할 일은 아니었지만, 싸울 일도 아니었다. 방재 또한 설홍이 고분고분 이야기하자 곧바로 태도를 바꿔 기록관들을 불렀다.
“이봐 기록관! 설홍이 도착했다!”
곧, 기록관의 목소리가 울렸다.
“방재, 치우, 설홍. 그대들의 용쟁 세 번째 시련은 본래 소둥 광산의 재계약과 관련한 일이었다.”
“그럴 줄 알았지. 잠깐… 원래라니?”
치우는 관심이 없는지 계속 강설만 쳐다보고 있었고 설홍은 뭔가를 예상했는지 눈을 감았다.
“설마… 아니지?”
“오면서 짐작은 했지만, 시련이 그렇게 정해진 건가요?”
기록관이 이야기했다.
“예상하지 못한 상태로 소둥 광산이 붕괴했다. 계약과 관련한 문제는 이제 뒷전으로 밀려났기에 그대들에게 선택권을 줄 것이다.”
“선택… 권?”
“상황이 변화한 지금, 그대들에게 주어지는 선택권 중 하나는 소둥 광산의 시련이 아닌, 추후에 다른 시련을 배정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둥 광산에 매몰된 광부들을 구출하는 것이다.”
“잠깐… 너희 모두 미친 거 아니야? 갱도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기나 해? 더군다나 어디가 어떻게 무너졌는지 확실하지도 않다며?”
모두 입을 꾹 다물었다.
그때, 일단의 사람들이 객잔에 등장했다. 그들 중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말했다.
“그건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리죠, 용화들이여.”
“…누구지?”
“소둥 광산의 주인인 성치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저를 도와 광산을 운영하는 사람들이고요.”
드륵…
사람들이 용화 주변에 모여 앉았다.
방재는 그들을 싸늘한 눈초리로 쏘아보다 말했다.
“기록관들과 이미 얘기를 끝마친 건가?”
“정확히는 사건이 터진 후 현장에 나와 있는 칸의 관리를 통해 전해 들었습니다. 재계약 문제로 용화들이 와 있으니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얘기를요.”
“자기 일이 아니라고 멋대로 지껄였군.”
“그를 벌하지 말아 주십시오. 상황이 급박하여 제가 졸라댄 탓입니다.”
마치 죄인처럼 보이는 성치에게 방재가 쏘아붙였다.
“시간이 아까우니, 민감한 질문을 바로 꺼내도 될까?”
“얼마든지요, 하루빨리 광부들을 그곳에서 꺼낼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물어보셔도 됩니다.”
“소둥 광산의 재계약과 관련하여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 수니 왕국에서는 이번 사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지?”
“기별하였으나 당장에 뭔가 조치를 마련하기는 어려울 거라는군요. 거리도 떨어져 있을뿐더러 예사 사안이 아닌지라….”
“늑장 대응에 대한 핑계에 불과해. 칸은?”
“…….”
성치가 잠시 뜸을 들이다 말하였다.
“여기 모여계신 용화님들께서는 소둥 광산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계십니까?”
“이곳에서만 나는 특수한 광석을 채굴하고 그에 따라 가장 진보된 장비를 보유한 광산 아닌가?”
“맞습니다. 소둥 광산의 주요 채굴 항목은 귀요탄입니다.”
“귀요탄?”
“신기하게도 그 몸에 귀기를 담은 물건이지요. 오직 소둥 광산에서만 나오는 광석입니다.”
귀요탄은 이곳의 모두가 들어보았다.
국가적으로 쓰임새가 많은 물건이었으나 늘 공급이 부족하여 아쉬운 광석.
“소둥 광산이 중요한 곳이라는 건 알겠어, 그래서?”
“늘 귀기를 내뿜는 광석인지라 소둥 광산에는 그 누구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귀기에 노출되면 문제가 발생하나?”
“미치거나 심하면 코에서 피를 흘리며 죽게 되죠.”
“그거 심각하네.”
“그래서 소둥 광산은 특이한 방법으로 귀요탄을 채굴합니다. 모든 광부가 방호복을 입고 갱도까지 채굴용 거병이 내려가죠.”
“…거병? 내가 아는 그 거병?”
기계공학의 정수이자 칸이 보유한 군사 무기.
쉽게 말해 거대한 이족 보행 탑승 장치였다. 칸은 이를 군사적인 용도를 비롯하여 다양한 곳에 사용했다.
“예. 바로 그 거병에 방호복의 연료를 가득 채워 갱도로 내려가는 것이지요.”
“흐음… 그 얘기는 왜 꺼내는 거지?”
“칸은 채굴용 거병을 비롯하여 정화를 도울 주술사들을 함께 보내주기로 약조했습니다. 신속한 대응에 감사하지만… 문제는 아무리 빨라도 2주 정도는 걸린다는 겁니다.”
“산악 지형에 그 커다란 거병이 올라오려면 어쩔 수 없지. 더군다나 거병은 주로 중앙 쪽에서 통제하고 있으니까.”
성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설홍이 물었다.
“그때까지 매몰된 광부들이 살아있을까요?”
“…저희가 직면한 문제는 바로 그것입니다. 모두의 생존이 달려있어 한시가 급한 상황인데….”
슬퍼하는 성치와는 달리 방재는 시큰둥하게 물었다.
“다른 거병은 없는 거야?”
“그게 사실… 최근에 거병에 관련된 문제가 있었습니다.”
“거병이?”
“예. 사용하던 거병이 모두 통제 불능이 되어 거병 대부분을 수도인 홍연으로 보내 수리를 맡긴 상황입니다. 현재 채굴 작업에 동원된 거병은 모두 2기뿐입니다. 설상가상으로 다른 거병의 조종자들이나 정비자들 모두 홍연으로 가 있는 상황이라….”
“일이 터지려니 이런 데서 터지는군.”
“부탁드립니다, 저울에 광부들의 목숨을 올려놓을 순 없습니다. 지하에 매몰된 광부들은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아들입니다. 누구라도 광산에서 광부들을 구해내 주신다면….”
방재가 의자에 몸을 기댔다.
“…빌어먹을.”
예상했던 것과 달리 세 번째 시련은 협상이 아니라 구조였다.
설홍이 물었다.
“맨몸으로 들어갈 수 없다면… 방호복을 입고 들어갈 순 없나요?”
“도중에 연료가 떨어져 방호복이 기동하지 않을 겁니다.”
“설홍, 그런 것도 모르냐?”
설홍은 방재의 조롱에도 턱을 매만지며 다음 질문을 던졌다.
“오면서 마을에 있는 거병을 보았습니다. 저건 움직이지 않는 건가요?”
“그건 구형입니다. 조작법이 너무 복잡해 다룰 수 있는 자가 정비소장밖에는 없는데 그는 홍연에….”
“제가 묻는 것은 기동 여부입니다. 구형 거병이 움직이나요?”
성치는 설홍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며 답했다.
“수리는 끝내놓았습니다. 한데 그것은 왜….”
초창기 거병은 성치의 말대로 조잡했다. 거대하고, 강력한 괴물을 만들어두었으나 그만큼 복잡하고 잡다한 기능이 많아 조작하기가 매우 까다로워 지금은 일선에서 다룰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럴 만한 자들은 이미 홍연에 초빙되어 연구 쪽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결론이 났군.”
드르륵…
방재가 벌떡 일어나 말했다.
“난 포기, 다른 시련을 받겠다.”
“재, 재고해 주십시오. 제국민의 생명이….”
“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억지 부리지 마라. 치우, 너는 어쩔 셈이지?”
하아암….
치우가 하품하며 답했다.
“봐서.”
“쳇… 그러시든지.”
방재가 자리를 떴다.
처음으로 포기한 사람이 나오자, 성치는 절망했다.
“정녕 방법이….”
“구형 거병이라면 토왕 1호기가 맞습니까?”
“…예?”
설홍의 질문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시험 삼아 기동해봐도 될까요?”
“그게 무슨….”
“제가 몰 줄 알아요, 토왕.”
* * *
탁탁탁!
지이이잉…
거병의 조종석에 불이 들어왔다.
강설이 허탈한 듯 웃었다.
“설홍 님에게 이런 재주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왜, 너무 의외라 놀랐는가?”
“놀라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아직 살아온 날이 스무 해도 되지 않은 여인이 작은 몸으로 이렇게 커다란 기계장치인 거병을 다루다니, 상상의 난도가 너무 높았다.
“이 설홍이 유일하게 내세울 만한 재주이니, 너무 추켜세우진 말게.”
설홍의 말에 조종석의 뒷자리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기계공학을 배운 거냐?”
치우의 목소리였다.
“아이 깜짝이야!”
“헷… 왜 놀라지?”
설홍은 강설을 쳐다보았다.
끄덕…
강설은 그가 말없이 거병의 조종석에 올라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설홍이 뒤돌아 물었다.
“치우 님?”
“내려가는 거지? 나도 갈래, 심심하다.”
심심하다는 이유로 갱도가 무너진 광산에 진입하는 건 미친 짓이었다.
“하긴… 이유가 무슨 상관인가, 어떤 이유든 위험에 노출되는 건 똑같은데.”
“그런데, 왜 기계공학을 배운 거야? 다른 건 용제가 안 가르쳐줬어?”
용제는 용화들에게 관심이 없었지만, 딱 하나의 권리만큼은 보장했다.
바로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물론, 모든 분야에서 그렇지는 않았고 그중에서도 재능이 있는 것에 집중하여 가르쳤지만.
설홍이 말했다.
“무술에도 도술에도 재능이 없었지만, 다행히 운이 좋았지.”
탁탁…
지이이이이잉-!
거병이 몸을 일으켰다.
– 토왕, 기동.
– 안녕, 세계. 나는 토왕입니다.
– 안녕, 세…
– 안…
“다 고쳤다면서 아직 멀쩡하지 않은 부분이 있구나.”
지이이이잉…
그 후로 한참을, 거병을 움직여보며 확인한 설홍. 그녀는 이미 갱도로 내려가기로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
“설홍 님….”
“천주? 하하하! 천주 쪼그매!”
천주가 거병의 발치에서 얘기했으므로 설홍에게는 그녀가 작게 보였다.
“…꼭 가셔야 합니까?”
“안 가면?”
“…….”
“천주, 걱정 마. 강설이 있잖아. 그렇지?”
강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주가 울먹거리며 말했다.
“왜 항상 위험을 무릅쓰시려는 겁니까!”
“항상 위험한 곳에 내가 필요한 걸 어떡해.”
“그건….”
“천주, 따뜻한 물이 좋아.”
“…예?”
“투마쿠는 광산 말고도 온천이 유명해. 나는 따뜻한 물이 좋아.”
설홍의 해맑은 미소에 천주가 항복했다.
“적당한 곳으로 준비해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러니 무사히 돌아오세요.”
“응.”
기이이잉…
철컥…
철컥…
소둥 광산 앞에서, 거병에 짐이 실렸다.
“연료통으로 가득 채워주세요! 식량은 해결할 수 있으니까!”
강설이 있으니 식량까지 실을 필요는 없었다. 강설은 마음 같아서는 연료통으로 소지품을 가득 채우고 싶었지만, 연료통 크기가 보통이 아니라 한두 개 넣는 것으로 그쳤다.
“그럼… 이제….”
조종석의 천장을 닫으려 했는데, 마을 방향에서 사람들이 몰려왔다. 마치 소 떼를 보는 것처럼 아이들을 필두로 하여 아낙네들이 잔뜩 달려왔다.
“…저게 뭐지?”
설홍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데 곧 거병의 밑으로 사람들이 잔뜩 깔렸다.
용화가 직접 매몰된 광부들을 구하기 위해 갱도로 내려간다는 소문이 퍼진 것이다.
“용화님… 용화님… 우리 남편 좀 데려와 주세요.”
“아빠가… 아빠가 저 밑에 있어!”
“용화님! 제발….”
“어떻게든 해줘!”
설홍의 표정이 굳어갔다.
그런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사람들의 소음을 뚫고 튀어나와 침묵을 만들어냈다.
“솔직히 이렇게 위험한 일… 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
“어째서 나서는 거죠? 이런 일은….”
사람들은 맹목적인 믿음을 위해, 이런 의문을 던지지 않았다. 설홍이 실패할 거라는 상상 또한 애써 지웠었고.
하지만 질문이 던져진 이상 답을 들어야 했다.
하아…
설홍이 말했다.
“솔직히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죽을 확률이 높은 일인데.”
“…….”
모두 알 것이다. 설홍이 이곳에 모인 이들을 대신하여 죽음을 무릅쓴다는 것을.
사람들은 이곳에서 슬퍼할 수는 있지만 대신 죽어줄 수는 없었다. 설홍과는 상황이 달랐다.
“공교롭게 내가 오는 날 소둥 광산이 무너졌고, 공교롭게 이곳에 구형 거병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이 상황에 용화라는 신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구나. 아니, 내가 용화인 것도 공교로운 건가?”
설홍은 의도하진 않았지만 높은 곳에 올라서 사람들에게 연설하듯 말을 하고 있었다. 수많은 선동가와 달리 그녀는 진심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 달랐지만.
“그대들은 나를 믿느냐?”
“믿습니다! 꼭… 꼭 우리 가족을….”
“용화님을 믿어요!”
“…나를 믿지 마라.”
“…예?”
“그게 무슨….”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그녀는 몇 마디로 잠재웠다.
“타인에게 소중한 이의 운명을 맡긴 채로 괜찮다고 안심하지 마라.”
“…….”
“기도하라, 지하에 묻힌 그들에게까지 들리도록.”
기이이이잉…
철컥…
철컥…
거대한 소둥 광산의 입구.
마치 깎아지른 절벽 밑으로 내려가야 하는 듯한 지형이라 승강기가 있었다.
설홍의 거병이 승강기 발판에 올랐다.
거병이 뒤돌았고 조종석이 닫혔다.
설홍은 거병에 장착된 호흡기로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었다.
곧, 거병의 울림판을 통해 설홍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그대들의 신이 아니다. 용화 또한 한낱 인간일 뿐이다. 그러니….”
철컥-!
거병이 팔을 움직여 경례했다.
“최선을 다하겠다. 하강!”
“하강!”
촤르르르르르륵-!
설홍과 치우, 강설이 탑승한 거병이 시커먼 어둠으로 내려갔다.
끝없는 무저갱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