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254
제253화
“태, 태율 님….”
“태율 님이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상황을 구경하던 다른 용석들은 태율의 등장으로 어물쩍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진려가 후계순위 제1위인 적자 태율의 사람이라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손가락… 손가락….”
휘청이며 장두에게 기대는 진려.
그 모습을 태율이 고스란히 보고 있었다.
스윽…
스윽…
태율이 미끄러지듯 걸어왔다.
그의 뒤편으로 그에게 알랑방귀를 뀌려는 용화들을 비롯하여 평상시에 부리는, 진려와 같은 수하들이 주욱 늘어서서 따라왔다.
이것이 현재 태율이 가지는 위상이었다.
“용제께서 거하시는 궁에서 대체 뭐 하는 짓들이지?”
대답이 궁색했다.
설상가상으로 진려의 이마에 강설의 손가락 자국까지 나 있는 상황이었으니, 태율이 화를 내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강설과 장두가 잠시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하는 찰나, 갑자기 진려가 몸을 일으켰다.
“끄으응… 태율 님.”
“진려, 이마에 그것은 무엇이냐?”
“놀음 때문에 생긴 패자의 흉터예요.”
“…뭐라?”
“궁에서 소란을 피운 점….”
“아니, 그게 아니다.”
태율이 사람들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네가 놀음에서 패했다고?”
진려가 입술을 꼭 깨물고는 답했다.
“예… 부끄럽게도.”
“누구에게 패한 것이냐?”
“그, 그것이….”
진려가 강설을 대놓고 쳐다보지 못하고 힐끔힐끔 눈치를 보며 동공을 그에게 향했다. 혹시라도 눈이 마주칠까 두려워 종종걸음으로 조금씩 강설에게서 멀어지면서.
태율이 턱을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을 하다가 슬며시 미소 지으며 진려에게 말했다.
“진려.”
“예, 예에….”
“전에, 나와 한 약속을 잊지 않았겠지?”
“약속이라면….”
“네가 놀음에서 크게 패하면, 나와 함께하는 동안에 내 허락이 떨어지기 전까진 놀음하지 않겠다는 약속 말이다.”
“하….”
“설마, 감히 이 태율과의 약속을 저버릴 생각인 건 아니겠지?”
진려는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결국 크게 한숨 쉬며 이렇게 말했다.
“여부가 있을까요. 려는 약속을 지킬 거예요.”
그래서, 좋게 매듭지어진 것일까.
용석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태율이 진려의 이마를 한차례 올려다보고는 뒤로 돌았다.
“흉하구나.”
“죄송해요….”
“가자.”
우르르 몰려나가는 태율의 무리.
태율은 궁을 빠져나가는 동안에도 꽤 한참을 침묵했다. 그가 탈 마차가 도착할 때까지도.
태율의 마차는 한 대가 아니었다.
따르는 이들을 전부 태우고도 남을 정도로 많은 수의 마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그가 탈 마차는 과연 제왕이 될 자가 탈 법한 마차였다. 말의 몸에 흐르는 윤기, 전체적으로 과하지 않은 근육은 그의 마차를 끌 말들이 명마라는 것을 곧장 알게 했고 마차의 외장 또한 평범한 자재를 사용한 게 아닌 듯했다.
스윽…
태율의 용석을 제외한 다른 수하들이 태율과 함께 마차에 올랐다.
용석이 다른 마차에 탔다는 것만으로도 태율이 다른 수하들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 알게 했다.
“진려.”
“예.”
“그래, 내가 지시한 대로 잘해주었구나.”
진려가 고개를 숙인 채 잠시 생각했다.
‘지시…? 아!’
잠깐 깜빡했다.
태율이 그의 수하들에게 내렸던 지시를.
“역시 능청스러워서 그런지 잘 섞여들었더구나.”
“호호… 사내를 아는 것은 하룻밤을 함께 지새우는 것보다도 잠깐의 놀음이 훨씬 효율적인 법이니까요.”
“늘, 너의 그런 점이 쓸모 있다 여겼다.”
진려는 가슴이 콩닥콩닥했다.
정말로 잊고 있었다, 한 사내가 부활한 어둑시니를 단신으로 쓰러트렸다는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그에게 접근해보라는 지시를.
진려와 같은 신분의 수하들 또한 감탄한 눈치로 진려를 보고 있었다.
‘아니야! 그냥 놀고 있었던 건데….’
태율의 수하는 여럿 있었고 이 이상 출세하는 건 바라지도 않았으니 내려진 지령은 누군가 알아서 하겠지 하고 대충 자리를 깔고 놀음을 한 것이다.
결코 충심에서 비롯된 감정으로 강설에게 접근한 것이 아니다.
억울했다.
장두가 그 남자를 끌고 오지만 않았어도.
‘잠깐, 이건 기횐가?’
태율의 신뢰에 보답할 기회.
그리고 그 보답은 더한 태만을 묵인하는 데 쓰일 것이다.
더 대책 없이 놀기 위해 일한다.
그것이야말로 진려가 태율을 따르는 진정한 이유!
“네가 판단하기엔 어떠했지?”
“그는….”
진려는 강설에게 받은 느낌을 그대로 얘기했다.
“특이… 아니, 특별한 자였어요.”
“…….”
“겉모습은 칙칙해서 별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는데, 얘기를 나눌수록 뭔가가 느껴졌어요.”
“달변가인가?”
“그건 아니었어요… 다만….”
그 자식이 어땠었지?
아.
“말의 무게가 가볍지 않았어요.”
“말이 가볍지 않다?”
“모든 말을 행동으로 증명했으니까요.”
“그 말인즉, 무겁게 행동한다는 말과도 다르지 않군. 그걸 놀음만으로도 알 수 있는 건가?”
“놀음은 인생의 종착지에 다다른 자들마저 웃게 해요. 젊은 사내의 인물됨 같은 건 금방 잡아낼 수 있죠.”
“경박하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는군. 젊은 나이에 그 정도의 성취를 이뤘으면 힘에 취하기 마련이니… 어떤가? 그의 힘은? 정말로 어둑시니를 홀로 쓰러트렸다는 소문이 사실일까?”
진려가 고개를 저었다.
태율이 코웃음 쳤다.
“헛소문이라고?”
“그게 아니라 거기까지는 알 수가 없었어요. 실제로 붙어보지 않았으니까. 다만… 그 가능성이 마냥 거짓은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의 무위는 장두 이상이에요.”
“흐음….”
“진려, 태율에게 묻겠어요.”
진려가 태율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를 제거하려 하시나요?”
“…네가 참견할 일이 아니다.”
“혹, 그런 마음을 품으셨다면 만류할 생각까지는 없어요. 다만… 제가 느낀 바에 의하면 그는 필요한 자예요.”
“내게는 이 이상 필요한 게 없다.”
“태율 님에게 필요한 게 아니에요.”
그녀는 이번만큼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칸에게 필요해요.”
“…참고하겠다.”
숨이 턱 막힐 듯한 암실에 한 사내가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메기를 닮은 배불뚝이 남자가 서 있었다.
그냥 보기에도 앉아있는 남자가 훨씬 많은 권력을 쥔듯했다.
“여기가 바로 네가 공들여 준비한 장소라는 거지? 평범한데?”
탐욕이 번들거리는 남자는 웃음을 흘리며 이렇게 답했다.
“평범하기에 좋은 것이죠. 이곳의 문과 벽은 모두 회리강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회리강 위에 다른 자재들을 덮어썼지요.”
“회리강? 이게 전부 회리강이라고?”
회리강.
이 강철은 무인들에게는 악몽이나 다름없는 물건이었다. 기를 싣는 것도, 마력으로 짓누르는 것도 전부 흡수해버리는 특징이 있는 강철. 심지어 사방이 회리강으로 막혀있는 곳에서는 도력조차 흩어져 도술도 사용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거기에 느껴지는 기운은 평범하기 이를 데 없어 부딪히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는, 매우 희귀한 소재였다.
가히 전설에서나 나오는 소재였지만, 안타깝게도 한 번 힘을 흡수하면 형태가 변형되어 오래도록 사용할 무기에는 적절치 않아 암기 종류에 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메기 같은 남자는 이것으로 이 방을 통째로 짜냈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이게 전부 회리강이면….”
“예, 포악하기로 유명한 그 장두조차도 밖에서는 단시간 내에 뚫기 어려울 겁니다.”
“우리는 그 안에 일을 처리하면 되는 거고?”
“맞습니다.”
“근데, 그렇게 해서 설령 신요와 다른 용화들에게 맹세를 받아낸다 쳐도 그걸 어떻게 강제하지? 풀어주면 곧장 내 목을 치는 거 아니야? 기록관들이 개입하기라도 하면?”
“그럴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기록관들은 절대로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개입하지 않습니다. 그게 규율인 것을요. 또한 우리의 계획은 용제께서도 금하지 않은 것입니다.”
“으음… 장두는 무서운데.”
“그래서 안전장치로 이것도 준비했습니다.”
스윽…
메기 같은 남자가 두루마리를 꺼냈다.
“혈맹약서입니다.”
“…이거 혈주문의 물건 아니었어? 혈주문은 오래전에 사라졌잖아?”
“알음알음 뒷세계에서 떠도는 물건입니다. 수량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꽤 심혈을 기울여 넉넉히 준비한 편입니다.”
혈맹약서.
악독한 집단이었던 혈주문이 남긴 사술서였다. 이곳에 자필로 자신의 이름을 적으면 혈맹약서의 주인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게 된다는 지독한 물건.
설령 주인이 죽는다고 하더라도 해주하기가 극히 까다롭기에 치를 떠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도 여기에 서명하게 하려면 결국 제압해야 하잖아? 이 안에 가둔다고 할지라도 난 그놈들 중 한 명도 이기지 못해. 아! 설홍 정도면 이길 수도?”
“프흐흐… 그래서 준비한 자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명단이 앉아있는 자에게 주어졌다.
“이 자들은 전부…?”
“거머리 굉홍, 대식가 왕장, 날벼락 당성까지. 큰돈을 주고 이번 일에 고용한 살수들입니다.”
“이름을 못 들어봤는데?”
“살수의 이름이 알려져 있으면 그거야말로 이상한 것 아니겠습니까?”
“너는 이 이름들을 어찌 아는 건데?”
“예전에 몸담았던 곳에서 이들과 관계를 만들었었습니다.”
“흠… 이자들이 장두의 눈을 속일 수 있을까?”
“다른 곳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이 회리강으로 둘러싸인 방 안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이들을 위해 맞춤으로 들여놓을 탁자도 준비되어 있으니까요.”
뭔가 이것저것 많이 준비한 계획.
“…준비를 꽤 열심히 했는데? 유경, 쓸모가 많아.”
“흐흐… 미천한 저를 받아주셨는데 보답으로는 아직도 모자랍니다.”
“방휴는 왜 너를 벌했을까? 이렇게나 쓸모가 많은데 말이야.”
“시기심이겠지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제 추진력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언젠가 그 자리도 제게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음….”
“오래전 요천에서의 일만 잘 풀렸다면 제가 이 수모를 당하며 칸의 땅을 떠돌아다닐 일도 없었겠지요. 곽성이 차지하고 있던 전사의 심장도 제 것이었을 텐데….”
“좋아, 나만 믿어. 내가 용이 되면 널 재상의 자리에 앉혀주지.”
쿵-!
쿵-!
메기를 닮은 유경이 바닥에 머리를 쿵쿵 찧으며 답했다.
“하하하! 회리강의 위력이라도 체험할 생각이야?”
“얼마든지요! 저더러 죽으라 명하신다면 얼마든지 죽겠습니다!”
“…그래? 정말이야?”
유경이 피가 흐르는 이마를 들어 올리며 씨익 웃었다.
“그것이 제각 님의 명이라면.”
제각은 유경보다 순수한 웃음으로 유경의 웃음에 답례했다.
이것이 바로 이틀 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지금, 설홍이 거하는 처소에 한 남자가 찾아왔다. 당연히 그 남자는 우선적으로 천주를 거쳤다.
“이게 무엇입니까?”
“이것을 설홍 님께 전해주시오.”
“내용을 먼저 확인해도 되는 것입니까?”
“물론이오. 얼마든지 확인해도 좋소.”
남자가 떠나려 하자 천주가 황급히 물었다.
“근데 이걸 누가….”
“서찰에 적혀있을 것이오.”
“끄응…”
천주가 서찰의 봉인을 끌러 먼저 내용을 확인했다. 아무래도 불길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아니, 늙어서 조심성만 많아진 것일 수도.
“헙….”
천주는 서찰의 내용을 잠시 살펴보다가 얼굴에 웃음을 잔뜩 띄워서는 설홍에게 달려갔다.
“설홍 님! 설홍 님!”
“왜 그래, 천주? 무슨 일이길래….”
설홍은 천주가 다급히 달려오자 큰일이 난 것은 아닐까 불안했다.
“큰일입니다!”
“크, 큰일이라고?”
“어서 이 서찰을 읽어보십시오!”
“대, 대체….”
“어서!”
촤락-!
설홍이 천주가 전한 서찰을 불안해하며 읽어내려갔다.
초반부를 읽을 때만 해도 불안한 마음을 가득 품었는데 중반부쯤에는 이상하다 생각했다.
서찰이 묘하게 고급스럽다든지 음절 하나하나, 어절 하나하나가 정성을 담아 꾹꾹 눌러 쓰여졌다는 느낌.
히죽…
“어이, 여자.”
비탄이 설홍의 반응이 이상하다고 느껴 강설의 머리 위에서 그녀를 불렀다.
히죽…
“여자.”
“나, 나를 불렀는가?”
“그래. 왜 자꾸 헤실거리는 거야?”
“차, 착각한 것이겠지.”
설홍이 마침내 서찰을 접었다.
그리고는 의문을 담은 시선을 보내고 있던 비탄과 강설, 그리고 놀러 온 치우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내가 처음으로 연회에… 초대받았다.”
설홍의 얼굴이 고장 났다.
“어, 어떡하면 좋겠는가?”
비탄이 코를 파며 대꾸했다.
“호들갑은….”
“아니!”
치우가 비탄의 말을 부정하고 이렇게 말했다.
그도 설홍이 여태 연회를 제대로 즐겨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내심 마음에 걸려 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그런 안타까운 상황을 해결해주고 싶었는데 지금, 그 기회가 온 것이다.
치우는 어떻게든 이 첫 번째 연회를 그녀에게 있어서 최고의 기억으로 만들어주고 싶었다.
“이건… 그래, 그거라고….”
치우가 주변의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강설과 비탄… 이 둘은 그렇다 치고.
천주로 눈을 돌렸다.
천주가 굳게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치우가 마음이 맞는 동료를 찾았다는 듯 선포했다.
“승부야, 설홍!”
천주도 호응했다.
“절대로 최고로 빛나셔야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