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256
제255화
“맙소사….”
“설홍이잖아?”
“저게 서, 설홍이라고?”
흑마가 끄는 마차에서 내린 것은 설홍이었다.
타악…
청색의 전통복은 설홍에게 전에 없던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설홍은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다음 그 위에 금비녀를 꽂았고, 살갗이 드러난 옷 위에 같은 분위기의 겉옷을 걸쳤다.
무척 화려하다고 볼 순 없는, 그러나 묘하게 계속해서 눈길이 가는 그런 느낌이었다.
설홍이 땅을 쳐다보던 얼굴을 약간 치켜들었다.
“오….”
“화장까지 했네?”
“그, 그러게….”
원래 좋았던 피부가 은은한 화장을 만나자 확실하게 군중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때, 마차에서 다른 이도 함께 내렸다.
마찬가지로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치우였다.
“치우잖아?”
“치우도 오기로 했었나?”
“어, 듣긴 했는데….”
“제길….”
설홍의 손을 잡고 연회가 펼쳐지는 장소로 이동하는 치우.
강설은 조용히 설홍과 치우를 따라 마차에서 내린 후, 조금 떨어진 상태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 난 행복합니다~
– 식장에서 오열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아!
– 아니 분위기 이상하게 잡지 마 ㅋㅋㅋ
– 장하다! 크윽…
– 다 쳐다보는 거 봐 ㅋㅋㅋ 선남선녀!
시청자들의 반응은 약간 과장된 면이 있기는 했지만, 연회의 분위기와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설홍과 치우에게 관심이 없던 이들도 한 번씩 돌아볼 정도로 그들은 빛이 났다.
– 큭큭큭…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 오늘도 눈사람은 조용히 그림자가 된다…
– 눈사람… 황장군 모드 ON
일단 첫걸음은 성공적이었다.
설홍이 불안한지 계속해서 강설을 돌아보았다.
강설이 그때마다 희미한 웃음으로 안심시켜주긴 했지만, 여전히 그녀는 빙판을 걷는 것처럼 보였다.
강설도 설홍과 치우를 따라 연회장 안으로 입장했다. 그 후로 시간이 조금 흘렀다.
벌써 설홍과 치우 주변으로 사람들이 끊임없이 모여들었다.
이건 좋은 징조였다.
‘태율이 없기 때문인가?’
늘 앞서 나가는 태율에게는 이것보다 많은 사람이 그의 곁에 찰싹 달라붙어 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이번 연회에는 초대받지 못했다. 제각이 무슨 생각인 것인지 태율을 초대하지 않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고.
어쨌든 그 수혜를 입은 탓인지 태율에게 가야 하는 관심이 설홍과 치우에게 집중된 것이다.
‘아, 저기도 있었지.’
태율의 뒤를 바짝 추격하는 여인, 신요.
태율과 비교했을 때, 그다지 흠결을 찾아낼 수 없는 인재이기도 했다.
외모는 빛이 났고, 성격은 신중했다.
그런 그녀의 곁에도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당연한 수순이다.
다만, 설홍과는 약간 다른 분위기인 것이 신요는 다가오는 이들의 호의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신요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는 못했지만, 일전에 한 번 접촉했던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런 반응이 어쩐지 당연해 보였다.
강설은 다시 시선을 돌려 설홍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긴장 때문에 어설펐던 설홍의 동작들이 많이 나아졌다.
사람들과 중간중간 농담을 주고받는 듯해 보였고 용쟁에 관한 짤막한 얘기들도 어렵지 않게 풀어내었다.
‘오히려 적응을 못 한 건 나인가?’
이런 곳에 와 본 적이 있어야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도 인지할 텐데, 귀족들의 연회는 모두 말로 참여했기 때문에 그 자잘한 행동 수칙 같은 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치우가 고마웠다.
사실 치우의 입장에서는 설홍을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아무리 용쟁을 포기했다 하더라도 무력으로는 용화 중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인 그에게 사람이 꼬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그런데 치우는 귀찮음을 감수하고 설홍이 천천히 연회 문화에 스며들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강설이 먼발치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옆에 있던 귀족들의 질시가 들려왔다.
“저, 저거 치우 님 옆에 딱 달라붙어서 꼬리 치는 것 좀 봐!”
“그러니까! 치우 님 아니었으면 조용히 구석에 처박혀 있었을 것이 감히!”
강설은 잠시 그녀들을 노려보았다.
“읍….”
“갑자기 속이….”
단순히 기운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일반인에겐 강한 압박이 가해질 것이다.
“봐, 봤어? 저 남자 방금 나 쳐다봤어.”
“어머, 잘못 봤네. 나였어.”
“반반하긴 한데 내 취향은 아니라 그럼 너 해.”
“얘, 내 취향도 아니거든?”
– 눈사람, 의문의 저기 니 남친 지나간다 행 ㅋㅋㅋ
– 이토록 수모를 받은 적이 있던가!
– 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
뚝.
연회에 울려 퍼지던 음악이 잠시 끊어졌다.
악단이 다음 곡을 준비하기 시작하는 이때엔 연회의 열기도 조금 잠잠해지곤 했다.
“설홍, 좀 웃지?”
“이, 이렇게?”
치우의 말에 설홍이 억지로 웃었다.
그 모습이 퍽 우스웠다.
“하하! 재밌어! 계속 그렇게 있던지.”
“노, 놀리지 마.”
설홍은 그제야 편하게 웃었다.
바다를 처음 마주한 새끼 거북이처럼, 정말로 마음을 내려놓았다.
이것은 설홍이 처음 겪는, 그녀가 살아가는 세상과의 접촉이었으니까.
이제는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에 담긴 것들이 질시이든 혐오든, 혹은 연모이든 간에 그것들에 적응해야 했다.
그녀는 점차 자연스러워지고 있었다.
정말로 용화들 곁에서 귀족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대화의 주제를 바꾸는 것도 그녀 스스로 했으며 전혀 어색하지 않게 대화를 이끌었다.
용화들과 다른 유력자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환한 미소를 짓는 설홍. 그러다 저 멀리 떨어져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는 강설과 눈이 마주쳤다.
조금 당황하는 설홍.
– 기, 기분이 이상해…
– 빼앗긴 것 같아! 내 설홍 돌려줘!
– 그만 집착해! 보내주라고!
– 흐아아아앙 ㅠㅠ
강설은 그 시선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는 설홍과 굳이 무언가 대화를 나눌 필요도 없었다. 설홍이라는 여인이 어떤 마음으로 저 자리에 존재할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 이제부터 이대로 설홍을 보내줘야 하는가에 대한 심도깊은 토론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 반대! 반대입니다! 사회자님! 시간 더 주십시오!
– 시간을 조금 더 드리죠,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 반대! 반대입니다! 나는 반대야!
– 말씀 잘 들었습니다.
‘대장정의끝’님이 광기를 2,000만큼 후원하셨습니다!
[설홍… 장하구나… 나는 이만…]
– 성불하지마! 아직 아니야!
– 가지 마요! 아저씨!
‘나작용’님이 광기를 1,500만큼 후원하셨습니다!
[나만의 작은 용화 설홍이 흑…]
– 개고생한 건 눈사람인데 왜 니들이 보람차하냐고 ㅋㅋㅋ
– 마음만은 함께였다고!
– 고생은 함께 안 했잖아!
– 고생은 눈사람이 알아서 잘하고 있잖아!
강설은 잠시 설홍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것이 유화가 바란 것일까?’
그는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정답은 알 수 없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손거울에 물어봐야겠다. 답을 줄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만족하지 않았느냐고.
설홍이 얼마나 더 멀리 가야 만족하겠느냐고.
그리고 만일 그 대답이 돌아온다면….
만일, 만족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면.
‘나는 어쩔 셈이지?’
유화의 유지를 되찾는다면, 곧장 설홍을 떠나야 하는가? 그러길 바라는가?
‘유화라면….’
아니, 강설이 유화였다.
그러니 잃었던 답은 금세 되찾아 올 수 있었다.
더 멀리 갈 수 있다, 설홍은.
애정을 가지고 돌보아주면, 분명히 약동할 힘이 있었다. 유화는 아마도 강설이 조금 더 남아있기를 바랄 것이다.
스윽…
“즐거운 자리에서 무엇을 그리 생각하는가?”
강설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거한과 여인.
“으하하! 용화들의 연회에서도 그렇게 분위기를 잡고 있으니 자네가 주인공인 줄 알았다고. 너무 눈에 띄잖아?”
신요와 장두였다.
설홍이 갑자기 떠오른 샛별이었다면 신요는 언제나 밤하늘을 비추고 있던 달이었다.
이 자리의 진정한 주인공은 신요이겠지, 설홍은 그 관심을 조금 나눠 가진 것뿐이고.
‘아직 갈 길이 멀구나.’
신요가 자신을 앞에 두고도 다른 생각을 하는 강설을 보고는 물었다.
“자리가 불편한가?”
“아닙니다.”
“하하! 우리 신요 님께서 굳이 자네를 보려고 굳이 이 연….”
따악-!
일순 도력이 번뜩이며 장두의 입가에 연기가 덧씌워졌다.
우웁…
장두는 말을 잇지 못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장두. 나는 설홍을 만나고자 온 것이니.”
끄덕.
장두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장두가 뒤에서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강설이 그것을 보고는 조금 어색한 느낌을 받았다.
신요가 눈을 감고 푸념했다.
“죽여버리겠다, 장두.”
“수행이 부족하시군요. 하하하!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끼리 있어야지! 저는 저쪽에 가서 밥이나 축내고 있겠습니다.”
– ㅇㅋ 장두 나이스
– 눈치가 백단이셔!
– 신요님! 사랑해요! 날 가져요, 엉엉ㅠㅠ
장두는 그렇게 말하며 수상쩍은 웃음을 하며 뒷걸음질로 사라졌다.
“하아 저 덩치가… 후우… 그리 즐거운 얘기는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도 있겠지.”
“여기서 이야기를 멈추면 기분이 더 나빠질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야.”
– 맞지, 얘기를 하다 멈추는 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 토일! 내가 이었어! 잘했지?
– 잘했어!
연회에 다시, 음악이 울려 퍼진다.
음악 소리가 신요의 말에 담긴 무게를 줄여주었다.
“용쟁의 끝에 무엇이 있을 것이라 예상하는가?”
“…….”
그런데도 무거운 것은 변함없었다.
“칸의 모든 것이다. 용쟁의 끝에 도달하는 자는 칸의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어. 그건 곧, 홍천의 뒤를 잇는다는 말이나 다름없으니까.”
신요는 지금, 홍천에게 존경을 표하지 않았다.
그녀는 스스로를 홍천과 동격화했다.
그 의미인즉, 홍천의 자리에 가 닿을 거라 여긴다는 것이다. 그리 가깝지 않은 강설에게까지 이런 뜻을 내비친다는 건 어지간한 자신감으론 힘든 것이었다.
강설이 가만히 웃었다.
“모든 것을 얻는 게 아닙니다.”
“…뭐라?”
“모든 것을 짊어지는 것이지.”
“…….”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신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벌써 강설이라는 존재 때문에 그녀가 몇 번이고 잊고 있던 표정이 만들어진 것인지.
“그 말이 맞을지도. 재밌군. 그대에게 묻겠다.”
“말씀하시죠.”
강설과 신요의 눈이 연회를 즐기는 설홍에게 가 있었다. 다만, 말은 서로를 향했다.
“설홍에게 보내는 그 힘의 방향을, 내 쪽으로 틀 생각은 없는가?”
“…….”
“나는 그대의 능력을 인정한다.”
“신요 님, 설홍 님에겐 시간이 필요합니다.”
“단박에 거절이란 거군. 하나 궁금한 게 있다. 설홍에게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 역량은 충분하다는 말인가?”
“적어도 마음은 커다란 분이십니다.”
“…너는 설홍의 유약한 부분을 모른다.”
“신요 님은 잘 아십니까?”
“그래… 네가 모르는 것까지, 잘 알고 있지.”
신요는 오래전 기억을 입에 담았다.
오래전 일을 강설이 알게 하도록.
“그, 그만해….”
“잘못했어…. 그만….”
어린 신요와 그 옆에 더 어린 설홍이 있다.
신요는 냉막한 표정으로 무릎 꿇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는 반면 설홍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설홍은 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녀를 보호할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없다는 것을 이용해 이 용화들은 괘씸한 짓을 벌였다. 그리고 그것을 보다 못한 신요가 도술을 이용해 그들을 짓밟았다.
설홍을 도운 것인가?
아니, 어쩌면 신요의 분풀이였을 수도 있었다.
이 세상의 저열한 부분들을 뒤집어엎고 싶었던, 그리고 그것에 대한 책임은 회피했던. 모든 책임은 설홍에게 짊어지게 했다.
“설홍, 네가 결정해라. 이 녀석들을 어떻게 해줬으면 하지? 이 녀석들이 네게 했던 짓과 똑같이 해주길 바라?”
“…를.”
“…뭐?”
설홍이 애원했다.
“용서를, 신요 언니.”
“…….”
“부탁이에요. 누군가 저 때문에 이 이상 괴로워지는 건….”
…
강설이 모처럼의 회상을 깨트리며 말했다.
“얘기는 끝입니까?”
“그 이후, 나는 설홍의 일에 개입하지 않았다. 그 녀석들도 내가 두려워 떨어져 나갔지. 하나, 이 모든 게 옳을까?”
“…….”
“설홍은 한쪽 길밖에 택할 수 없다. 여태껏 그래왔어. 그것이 선이라 생각하느냐? 그 유약한 행동을 계속해서….”
“앞으로도 그러리란 법은 없습니다. 설홍 님은 지금, 배우고 있으니까요.”
“과연… 그럴까?”
“만물은 성장합니다. 설홍 님 또한 그 가능성이 있습니다. 비가 와야 꽃이 자라는 것처럼.”
신요가 안색을 굳히고 뒤돌아섰다.
“…재밌구나. 즐거운 대화였다.”
신요가 떠나고 난 후, 시간이 또 흘렀다.
연회의 열기도 이제는 사그라들 무렵에 장두를 비롯한 용석들에게 각기 사람이 찾아왔다.
저벅…
“제각 님께서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선물?”
그리고 그들은, 강설에게도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