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264
제263화
강설은 잠시 넋을 놓은 얼굴로 혜명을 바라보았다.
‘젊은 혜명이라니… 맙소사.’
미아의 그림으로 들어간다면 그와 만나게 될 거란 것쯤은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혜명을 앞에 두고 나니 조금 당혹스러웠다.
“그 이상 다가오지 마라, 경고야.”
후우우웅…
혜명의 봉이 은은한 황금빛을 뿜어냈다.
깃든 황금빛은 치우의 빛보다는 약했지만, 그것이 그의 완전한 힘은 아닐 것이다.
“어이!”
강설이 혜명의 노성에 정신을 퍼뜩 차렸다.
“정체를 밝히라고!”
“우리는….”
사실, 지금이 제일 난관이었다.
경계심이 많은 미아와 그녀를 보호하고 있는 혜명.
그들에게 갑자기 접근하게 되는 것이니 의심을 받게 되는 건 당연지사.
하지만, 강설 일행이 이를 예상하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미리 맞춰둔 말을 꺼냈다.
“유물회다.”
“…뭐? 유물회?”
“그래, 이번에 쟈니타 고원에 중요한 유적 때문에 파견됐지.”
강설은 이때의 혜명이 정확히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떠올려야 했다.
어떤 물건을 얻고, 어떤 모험을 하고 있었는지.
행색을 보아하니 광야령은 아직 얻지 못했을 때다. 예상대로였다.
강설은 자신의 말이 어째서 짧아진 것인지 순간 의아했지만,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처음 본 상대가 아니라 오랜 세월 교분을 쌓아온 상대라 여긴 것이라 결론 내렸다.
‘틀린 말은 아니니….’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상대에게 일행의 존재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유물…회?”
혜명은 잠시 눈치를 살폈다.
당당하게 행동했던 그가 유물회라는 말에 주눅이 들었다.
만일 혜명이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강설 일행을 만났다면, 그들이 유물회라고 해서 주눅이 들 이유는 전혀 없었다.
‘지금은 머뭇거릴 수밖에 없을 테지….’
그야, 유물회가 관여하면 복잡하게 되는 일을 저지르고 있었을 테니까.
“허, 허흠… 유물회에서 이런 곳까지? 하기야 어쩐지… 복색이 이곳 복색이 아닌 듯하긴 했다만….”
멀뚱멀뚱한 표정을 짓는 치우와 상황을 눈치채고 태연하게 연기하는 설홍.
이대로만 흘러가면 참 좋았겠지만, 치우가 어색한 연기를 덧붙였다.
“그, 그렇지. 우리는 유물회다.”
치우는 참 거짓말에 서툴렀다.
평상시엔 그 점이 좋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상황에선 상대의 의심을 불러올 뿐이었다.
“흐음….”
뭔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혜명이 되물었다.
“유물회라면… 당신들 중 누가 책임자지?”
치우는 유물회라는 존재에 대해 지식이 부족했으며 그 수준은 설홍 또한 그리 다르지 않았다.
즉, 일행 중 유물회에 가장 빠삭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강설이라는 얘기였다.
“나다.”
“호… 그래 보이긴 했어. 이름은?”
강설과 치우, 설홍의 이름이 전해졌다.
“그래, 너희들은 어떤 목적으로 이곳까지 방문한 걸까? 아차, 유물회는 일에 관련해서는 외부인에겐 얘기해주지 않는 거냐?”
강설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럴 리가, 우리는 한 가지 물건을 찾기 위해 이곳에 왔다. 우리가 찾는 물건이 여기 있다는 걸 알게 됐거든.”
“…물건?”
혜명의 등 뒤에 숨었던 미아가 슬쩍 그의 봇짐을 쳐다보았다.
연신 꼼지락거리는 게 이 상황이 불편한 모양이었다.
강설은 그녀의 행동을 보며 수상한 점을 찾아냈다.
‘봇짐… 저기 있나 보군.’
광야령이 잠들어 있는 유적의 구조상, 먼저 얻게 되는 물건이 존재했다.
‘이미 유적에서 황금 신상을 얻은 후겠군.’
와탈라의 유적.
혜명이 막강한 힘을 얻게 되기 시작한 것은 이 무렵부터였다.
광야령보다 먼저, 잠들어 있던 황금 신상을 획득했고 그 신상으로부터 깨달음을 얻어 폭발적으로 힘이 증가한 것.
“그… 찾는 게 정확히 어떤 물건이지?”
여기서 강설이 신상이라 말하면 혜명의 표정이 볼만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장난을 칠 만큼 혜명과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고 이들에게 적이 아니라는 확신을 심어줘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설 일행이 그림 속으로 들어오기 전, 미아가 남겼던 경고가 마음에 걸렸다.
미아의 경고 중 그 첫 번째.
– 그림 속 세상은 말 그대로 새로운 세계예요. 이미 벌어졌던 일이 또다시 반복될 거라 예상하면 안 돼요. 선택은 다양한 길로 분화되고 그것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몰고 올 거예요.
– 그 말은… 그곳에선 원래의 과거와 다른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겁니까? 그림 우리가 이 힘을 잃은 광야령을 그곳의 온전한 광야령을 바꿔치기했을 때 생기는 문제점은?
– 비록 이 광야령의 힘은 사라졌지만, 분명 실체로 존재해요. 이 일로 인해 미래가 크게 뒤틀리는 건 없을 거예요. 다만… 만일 온전한 광야령을 얻고자 한다면 과거에 광야령이 했던 일을 대신해야겠죠. 그렇지 않으면….
미아는 이렇게 말했다.
– 돌아왔을 때, 당신이 알던 현재와는 많이 달라졌을 수도 있어요. 만일 그렇게 된다면… 이를 바로 잡을 다음 기회는 없을 거예요. 이번 기회는… 제게 남은 마지막 한 방울의 힘까지 짜낸 거니까.
미아의 그림은 과거를 바꿀 수 있다.
아니, 이 일을 마지막으로 힘을 잃게 될 거라 말했으니 과거를 바꿀 수 있었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그간, 그녀가 몇몇 악인들에게 노려졌던 이유였다.
그러나 이제 그녀가 가진 능력을 아는 이는 대륙에도 몇 남지 않았다.
‘기회는 이번 한 번뿐, 정해진 것 이외에 미래를 뒤틀어서는 안 될 거야. 너무 위험하니까.’
광야령을 회수하는 것만으로 미래가 뒤죽박죽되지는 않을 것이다.
광야령은 최근까지 단 한 번의 이적을 보였을 뿐이며 그때 모든 힘을 잃었다.
‘그 이적을 이곳에서 메꾸면, 광야령을 현실로 가져갈 수 있을 거야.’
물론, 주의할 점은 있었다.
바로 광야령의 지척에, 대륙에 이름을 떨쳤던 대덕 혜명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찾는 건….”
꿀꺽…
“방울이다.”
휴우….
그 말에 미아가 낮게 한숨 쉬었다.
아마도 이것은 안도의 한숨.
이미 회수한 황금 신상을 놓고 분쟁이 일어날 수도 있으리라 판단했던 것일지도.
다행히 강설 일행이 황금 신상이 아닌 다른 것을 찾고 있다는 말에 긴장이 다소 느슨해졌다.
혜명이 잠시 강설을 쳐다보다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어떻게 생겼어, 그 방울?”
휘릭…
강설은 족자에 그려진 광야령의 생김새를 보여주었다.
“흐음… 이거… 음….”
혜명이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이러면 되겠어. 내가 너희들이 찾는 물건이 어디 있는지 알 것 같다.”
그럴 것이다.
광야령은 와탈라의 유적 두 번째 관문을 개방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강설은 유적 요소요소에 두 번째 관문에는 신기한 방울이 잠들어 있다는 실마리가 주어져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너희들을 도와줄게. 대신, 너희도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지?”
잠시 후, 그들의 임시 거처에 들른 이후 강설에게 다가오는 혜명.
그 부탁이란 게, 별 건 아니었다.
“이거, 눈 감아 줘.”
“…….”
치우도 설홍도 처음 보는 물건.
하지만 강설은 그것이 무엇인 줄 알았다.
황금 신상.
언뜻 보면 와불 같았지만, 부두교가 믿는 탐욕스런 신의 모습을 본뜬 신상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를 잔뜩 드러내고, 장신구를 치렁치렁 매달고 있었으니까.
강설은 이미 혜명이 이것을 유적에서 찾았고 그 힘을 차근차근 해방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잘 정진하고 있군.’
강설은 결코, 그에게서 이것을 빼앗아 갈 마음이 없었다.
이것은 그의 것이었다.
‘황금 신상은… 꽤 탐이 나긴 하지만, 이미 그가 얻은 거니까.’
변곡점을 줄 만 한 미래가 아니었다.
그에게서 신상을 강탈해서 그가 얻을 능력들을 빼앗아 가는 게 지금보다 더 나은 상황을 오게 할까?
‘아니, 되도록 다른 건 건들지 않는다. 오직 광야령만 노리자.’
강설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우리 일을 도와준다면 위에는 보고하지 않을게.”
“정말이냐?”
“그래, 귀찮아지는 건 질색이니까.”
“고맙다! 유물회의 일 처리는 되게 깐깐하다고 들었는데 너는 아닌 것 같아!”
– 그것은 유물회가 아니기 때문에!
– 끄덕-!
“아, 칭찬이야. 그보다, 광야령이라고 했던가?”
“그래, 광야령.”
“안타깝게도 당장은 얻는 게 불가능해.”
이미 강설도 알고 있었다.
‘때가 살짝 어긋났나 보네.’
혜명이 그 이유를 말해주었다.
“이 유적은 3일에 한 번 열리거든. 그것도 밤에.”
이전, 마경 알카트론에서도 한 번 체험했던 일.
밤이 되어 모습을 드러내는 유적. 와탈라의 유적은 그곳보다도 더 진입하기 까다로운 3일의 입장 제한이 있었다.
“유적이 개방되려면 이틀은 더 있어야 해.”
“…알았어.”
혜명은 강설이 순순히 그의 말을 믿자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고 비탄으로 시선을 돌렸다.
“근데… 경황이 없어서 아까 물어보지 못했는데 그 시커먼 생명체는 뭐야? 비상식량 뭐 그런 건가?”
비탄이 인상을 쓰고 답했다.
【시커먼 거라니! 식량이라니! 비탄이다!】
“비탄? 비탄이 뭔… 잠깐, 말도 하네?”
“비탄은 내 조수야.”
“아하! 유물회에 가면 기상천외한 생물이 가득하다더니, 말까지 하는 녀석이 있었군. 반갑다, 나는 혜명이야. 아까 심한 말은 사과하지.”
휘릭-!
비탄은 혜명이 손을 내밀자 그 위에 자신의 꼬리를 얹었다.
【이번만 용서해주지!】
혜명이 비탄의 반응에 피식 웃고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 식사는 내가 책임질게. 저녁은 옥수수죽으로 괜찮지?”
치우가 그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옥수수죽?”
“응.”
“뭐, 훌륭하지….”
“근데 옥수수 상태가 조금 그래.”
“어떤데?”
“몇 개가 좀 썩었어.”
“썩은 게 왜 조금 그런 거야? 썩으면 땅에 거름으로 좀 줘! 몇 개가 썩은 거면 멀쩡한 것도 있다는 거네, 그걸로 주면 되잖아?”
“미아는 성장기라 멀쩡한 걸 먹여야 해. 썩은 건 내가 처리하고 있었어. 너희가 와서 더 썩기 전에 해치울 수 있어서 다행이긴 하네. 하하하하.”
– 하하하하?
– 이 새끼가아아?
– 죽인다아아!
강설이 그 말에 피식 웃었다.
‘내가 직접 먹는 게 아니었으니까. 저런 행동을 벌였던 건….’
혜명의 몸은 철인이나 마찬가지.
고작해야 상한 옥수수 조금 먹는다 해서 어떻게 되지 않는다.
맛은 없었겠지만 실제로 강설이 먹는 것도 아니었으니 좋은 건 미아에게, 상한 건 혜명에게 지급했었다.
자신이 남긴 흔적을 발견하자, 강설은 묘한 심정이 되었다.
“머무르는 동안 식사는 내가 책임질게.”
“어? 안 그래도 되는데?”
“그래야 해. 썩은 옥수수죽보다는 그게 나을 거니까.”
“…그건 그렇지? 근데 요리사가 바뀐다 해서 옥수수가 되살아나는 건 아닌데….”
턱… 턱…
강설이 소지품에서 뭔가를 잔뜩 꺼내놓았다.
양념통 일체에 갖은 식자재였다.
전부 싱그러움을 잃지 않고 있어 혜명이 크게 놀랐다.
“이게 다 거기에 들어가는 거야? 알았다! 유물회의 유물이구나!”
지금 이 시기엔, 전이자도 뭣도 없을 테니 소지품을 처음 보았을 것이다.
“뭐 그런 셈이지.”
“하하하! 너, 갈수록 마음에 들어!”
치이이이…
강설은 채소뿐만 아니라 고기까지 들어간 식사를 준비했다.
설홍이 작게 물었다.
“보아하니 불도에 매진하는 자인데 고기는 그렇지 않겠느… 않나요?”
“그건….”
설홍은 강설이 잠시 혜명이 어떤 자인지 망각했을까 염려했다.
하지만, 혜명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강설이었다.
“어? 상관없어! 난 고기도 먹거든.”
“…계율이 있지 않나요?”
“때려치웠어. 이제 내가 지키는 계율은 오직 하나야.”
혜명이 빙긋 웃었다.
“스스로를 구원하라.”
– 스스로를 구하십시오.
강설이 언젠가 한여명에게 했던 말.
혜명의 깨달음은 곧 강설의 깨달음이기도 했다.
“처음 들어보는 계율인데….”
“그럼, 내가 만든 계율이니까.”
“순 엉터리였군요.”
“하하, 엉터리라도 그거 하나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 * *
그렇게 식사를 끝마치고, 금세 잠에 빠진 무리.
“크어어어….”
치우는 설홍의 곁을 지키는 모양새로 잠에 빠져 있었다.
한껏 무방비해 보일 수 있었지만 아마도 위협이 되는 일이 일어나면 치우가 설홍을 지킬 것이다.
타닥…
탁…
스으윽…
잠자리에는 미아와 혜명이 없었다.
강설은 자리에서 일어나 잠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까지 걸었다.
그곳에는 바위에 걸터앉은 미아와 격하게 봉을 휘두르는 혜명이 있었다.
후우웅…
후우우우웅…
소리만 들어도 박력이 넘치는 일격이 고원을 진동시켰다.
“후우… 후우… 일어났네?”
“…어.”
혜명이 강설을 돌아보더니 싱긋 웃었다.
“어때, 한바탕 섞어보는 건?”
“…….”
전설적인 10개의 말 중 하나, 대덕 혜명과의 대련.
물론, 아직 진정한 혜명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흔적은 남아있을 것이다.
“싫으면 말고.”
강설이 씨익 웃었다.
“아니,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