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270
제269화
압도적으로 거대한 문.
강설은 그 문 앞에서 멈칫했다.
뒤돌아 바라보니, 혜명은 말을 하던 그 상태로 멈춰 있었다.
‘이게, 와탈라가 말한 정신의 힘.’
시간을 멈추는 힘 같은 거창한 힘은 아니겠지만, 온전히 이 문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고마운 힘이었다.
촤륵…
촤르륵…
강설은 문을 둘러싼 사슬마저 무겁게 느꼈다.
‘어째서 이렇게….’
마치 가혹한 시련을 마주한 것처럼, 불합리함을 느꼈다.
이런 문을 작은 존재인 자신이 어떻게 열 수 있다고.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입 밖으로는 다른 말을 꺼냈다.
“기다려봐, 내가 지금….”
철렁…
철렁…
꿈속에서 몸을 움직이면 갑갑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지금이 딱 그러했다.
문과 관련된 모든 것이 터무니없이 무겁게 느껴지는 데 반해, 솟아나는 힘은 제한적이었다.
“하아… 하아….”
문의 손잡이를 조금 잡아당긴 것만으로 강설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후우… 후우우우….”
끙끙거리며 잡아당겨 보아도, 아무런 미동도 없는 문. 그토록 찾아 헤매던 문을 앞에 놓고도, 열 수 없었다.
스르르르…
어두운 공간의 하늘에서 황금 신상의 얼굴이 드러났다. 실제보다 훨씬 거대한, 시야의 대부분을 좀먹을 만큼 커다란 크기였다.
황금 신상은 입을 벌리고 말했다.
“너는… 불사가 아니야….”
“…뭐?”
또 다른 신상의 얼굴이 이번엔 우측에서 등장했다.
“불사가 아니니, 그 문을 열 수 없는 거야.”
“집어치워! 무슨 소리야!”
“불사가 될 수 없어… 가엾은 존재야….”
“아니야! 난 불사가 되려고 한 적은… 그런 적은… 없어.”
스르르…
이번엔 좌측.
“이 문은 오로지, 불사만 열 수 있는 거야 분명히. 너도 느끼고 있잖아?”
“…….”
“불사는 지금의 너보다 강해. 넌 그의 뒤꽁무니나 쫓다가 결국 좌절하겠지.”
스윽…
강설이 문의 손잡이를 스르륵 놓았다.
“네 정신은 나약해.”
“너는 평범해.”
“그들은 너보다 위대해.”
강설은 이곳저곳에서 쏘아 붙여오는 황금 신상의 압박에 크게 위축되었다.
손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정신이 가진 힘을, 너는 결코 지탱할 수 없어.”
강설이 고개를 푹 숙였다.
“미안, 미안하다. 지금은 열 수 없어… 그러니까 이번에도 네가….”
문 너머에서 다시 한번 소리가 흘러나왔다.
– 흐음… 이번에도?
강설의 동공에 힘이 없었다.
그의 의지가 꺾이는 듯했다.
‘이번에도, 내 문을 부숴달라고?’
강설은 퍼뜩, 완성하지 못한 문장을 떠올렸다.
‘그건… 아니야. 난 그런 걸 원한 적 없어!’
난, 난… 언젠가…
‘그들을 뛰어넘어야 하니까.’
강설이 문 너머의 존재에게 말했다.
“이번에도 조금만 더 기다려줘.”
– …….
“반드시, 반드시 내가 문을 열 테니까.”
문 너머의 존재가 광소했다.
– 크하하하하하!
“…….”
– 이봐, 강설.
문 너머의 존재는 강설에게 물었다.
– 중얼거리던 불사라는 놈이 네게 그렇게 대단한 놈이냐?
불사는 영생교의 창시자이자 전설적인 흑마법사였다. 그러나, 모두가 그를 아는 것은 아니었다.
문 너머의 존재 또한 그를 알지 못했다.
“…모르겠어.”
– 확실한 건, 내가 기다리는 건 불사가 아니라 너다.
“뭐?”
– 그러니까 참을성을 가지고 조금 더 기다리지. 즐거운 일을 뒤로 미루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니까.
황금 신상의 얼굴이 대화가 끝난 듯 보이자 강설에게 물었다.
“어째서 포기하지 않는 거지? 넌 문을 열 자격이 없어.”
“…약속했다.”
“약속?”
– 나는 신이 되겠다.
– 그렇다면 자격이 있다. 이 몸이 만물의 왕이 되는 그 여정에 함께할 자격이. 널 이 몸의 영광스러운 여정에 함께하게 해주마.
분명히, 약속했었다.
스르르륵…
황금 신상의 얼굴이 사라졌다.
쿵…
쿵…
문이 다시 멀어졌다.
문 너머의 존재가 남긴 말이 잔향처럼 맴돌았다.
-마음껏 발버둥 쳐라, 기다리고 있을 테니.
쨍그랑…
어두컴컴한 공간이 깨져나갔다.
방금까지 혜명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상황은 그대로였지만, 뭔가 달랐다.
“무슨… 방금….”
혜명도 강설과 같은 경험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휙…
휘익…
강설이 황급히 두리번거렸다.
‘이런….’
그리고 천정에 쓰인 글자들을 발견했다.
곧, 진짜 황금 신상이 말했다.
– 방황을 건네니 제자리로 돌아오라.
“하….”
– 정신의 나약함 또한 다스려라.
방금 느꼈던 좌절감과 굴욕감은, 미리 준비되어 있던 시련이었다.
‘그래, 처음 도착했을 때 저런 문구는 없었어.’
이미 도착한 순간부터 와탈라의 꼬임에 넘어간 건지도.
모든 게 허상이었을까?
콰아아아아아앙-!
“제길, 더 가까워졌다.”
“으으… 무슨 일이야?”
“전부 깨워, 달려야 해!”
혜명은 미아를 업고, 치우는 설홍을 업은 채로 강설과 함께 내달렸다.
그 순간.
– 심마를 극복했구나, 선한 자여.
“…뭐?”
드드드드드…
유적의 변형이 일어나 긴 통로가 그들의 눈앞에 펼쳐졌다.
– 서둘러라, 와탈라의 유물만이 해악을 잠재울 수 있다.
이것저것 재고 따질 수 없을 만큼 다급한 상황, 신상의 말대로 서둘러야 했다.
다다다다-!
혜명이 강설의 몸을 바라보며 말했다.
“강설 너….”
“왜?”
“몸에서 이상한 빛이….”
마치 몸을 따라 칠한 것처럼, 강설의 몸에서 은은한 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아니, 모두 마찬가지였다.
치우와 혜명 또한 강설보다는 약했지만 분명히 빛무리에 휩싸여 있었다.
콰아앙-!
콰아아아앙!
붕괴의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
그슨대가 관문을 제대로 통과해서 오고 있을 리가 없다.
그는 길이 없다면 부수고 나아가 새로운 길을 만들 만한 괴물이었으니까.
“달려!”
엄청난 압박감이 뒤에서 전해졌다.
아마 돌아보면 그슨대가 뒤에 서 있지 않을까 할 정도로 가까운 위치에서 귀기가 느껴졌다.
설홍이 소리쳤다.
“길이… 끊어져 있어!”
그녀의 말대로였다.
통로가 끝나는 곳부터 다음 단상까지는 도저히 건너뛸 수 있을 만한 거리가 아니었다.
길이 끊어져 있는 것이다.
“아니, 그렇지 않아.”
혜명이 정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분명, 길은 있다.
그의 말에 힘을 실어주기라도 하려는 것일까.
황금 신상이 입을 열었다.
– 깨달은 자를 위해 준비된 길.
순간, 치우와 혜명 그리고 강설이 동시에 저 멀리 뛰었다.
하지만, 건너편 단상까지는 한참이나 모자랐다.
설홍이 두려움에 눈을 질끈 감았다.
추락하는 듯한 감각이 곧 찾아올 것이라 예상하며. 그런데 어째서인지 땅을 거니는 것 같은 안정감이 그를 대신하여 찾아왔다.
“날고… 있어.”
설홍이 보기에는 하늘을 달리는 듯한 상황.
그러나, 정작 허공을 내달리고 있는 당사자들은 오직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단상이 있어.’
콰아아아아앙-!
그들이 다음 단상으로 건너뛸 때쯤, 좁았던 통로가 터져나갔다.
온몸에 검은 줄로 새겨진 문신이 가득한 어린아이. 그를 어린아이라 생각하면 곤란했다.
그가 바로 적색과 흑색이 뒤섞인 귀신, 악령 그슨대였으니까.
“드디어, 잡았구나.”
으지지지지직…
어린아이의 몸이 부풀어 오르며 가죽 안에 있던 악령이 깨어났다.
마치 구조물, 혹은 기괴한 인형과 같은 생김새. 마름모꼴의 본체와 혈관 같은 자질구레한 선으로 이어진 커다란 손까지.
그슨대가 그들을 쫓았다.
휘이이이이잉-!
“오고 있어!”
“달려!”
강설 일행은 그슨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귀기만으로도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도주에 열중했다.
단상 위에는 예의 구문이 적혀 있었다.
황금 신상이 말하였다.
– 육체와 정신이 다르지 않음을 깨우쳐라.
파아아앗-!
단상을 넘는다.
육체는 지상을 디디고, 정신은 허공을 디딘다.
번갈아 가며 세계가 가속한다.
질주하는 자들은 그들 스스로 벽을 깨부수고 있었다. 훨씬 빨라진 자신을, 훨씬 가벼워진 자신을.
도저히 인간이라 여겨지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속도로 내달리는 그들.
그러나 그들을 쫓는 악령은 그슨대였다.
“소용없다!”
콰아아아아아앙-!
그들이 잠시 머물렀던 단상이 터져나갔다.
공중을 부유하는 그슨대에게, 땅에 붙어사는 짐승 따위는 고작해야 한 끼 식사에 불과했다.
* * *
타아앗!
“길이 갈라져 있어!”
다섯 갈래의 길.
어느 쪽의 단상으로 나아가야 그슨대를 따돌릴 수 있을까 아니, 광야령에 다다를 수 있을까.
[눈앞의 길은 모두 다섯 갈래로 나뉘어….]
‘집어치워!’
선택지는 필요가 없었다.
홀연히 빛나는 단상은 이미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으니.
파아아앗-!
동시에 어둠 너머로 사라지는 강설 일행.
“놓칠 것 같으냐!”
뒤쫓는 그슨대가 그들과는 다른 길로 나아갔다.
파아아앗-!
파아아아아앗!
단상을 넘어갈수록 뛰어야 하는 거리가 늘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필요한 정신의 힘도 늘어나는 것인지 단상이 흐릿해져만 갔다.
황금 신상이 말했다.
– 한계는 오로지 전승된 것, 뛰어넘는다면 그것은 다른 이의 한계일 뿐.
콰과과아아아아앙-!
그 순간, 측면의 벽이 무너지며 검붉은 손이 튀어나왔다. 마치 장갑을 낀 것만 같은 손의 모습.
“여깄었구나!”
숨이 멎을 것만 같은 귀기.
후우우우웅-!
“와탈라의 힘은 화그무 님의 부활을 위해 쓰일 것이다!”
단상을 내리치는 그의 손.
“길이 꺾인다.”
강설 일행의 진로가 갑자기 급격하게 꺾였다.
그 바람에 그슨대의 손은 애먼 단상만 후려쳤을 뿐 수확은 없었다.
“쥐새끼들이!”
쿠우우우웅-!
그슨대는 속도 그대로 벽에 처박혔지만 거대한 힘의 주인답게 추격이 늦춰졌을 뿐, 전혀 타격이 없어 보였다.
강설 일행은 재빨리 다음 단상으로 향했다.
콰아아앙!
콰아앙!
“사지를 찢어주마!”
뒤쪽에서 유적의 일부가 무너지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다가오는 공포에 넋을 놓아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그슨대는 계속 이렇게 돌파해왔구나.’
그렇다면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와탈라가 안내한 길의 신묘함을, 그의 가르침을.
황금 신상이 말했다.
– 자유로움을 손에 넣어라, 대지를 헤엄치고 창공을 거닐어라.
난데없이 앞을 가로막은 벽이 나타났다.
“빌어먹을, 나는 여기부턴 안 보여!”
치우가 금방이라도 홀로 남아 그슨대를 상대할 기색을 보였다.
휘리릭-!
“윽!?”
그림자 손을 사용해 치우와 설홍을 휘감는 강설.
파아아앗-!
그리고 가로막힌 벽을 향해 뛰었다.
“부딪힌다!”
쑤우우욱…
하나, 그들은 벽 속으로 큰 충격 없이 들어설 수 있었다.
촤아아아아아악-!
급한 경사 때문에 미끄럼틀을 타듯 주르륵 내려가는 일행.
콰아앙-!
콰아아아앙-!
그들이 통과한 벽을 그슨대는 때려 부수고 있었다. 간신히 거리를 벌린 것이다.
경사의 끝에, 어둠이 보인다.
치우와 혜명이 입술을 깨물었다.
“안 보여….”
이제는 혜명마저 그 너머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강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금빛이 더욱 진해졌다.
휘리릭-!
혜명과 미아까지 휘감아버린 그림자 손.
“뛴다.”
경사면에 남은 문장.
황금 신상이 말했다.
– 모든 것을 얻고자 한다면, 모든 것을 일깨워라.
화아아아악-!
“떨어진다아아!”
경사면에서 튕겨 나오자, 시커먼 공간이 그들을 반겼다.
아마도, 볼 수 없는 자는 추락으로 끝을 맺어야만 하는 공간이.
하나, 강설의 머리칼이 잠시 금빛으로 물결처럼 일렁였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와탈라의 가르침.
와탈라의 모습을 한 보이지 않는 석상이 입을 벌린 채로 하늘을 보고 있었다.
강설은 그 작은 틈을 향해 날았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그 틈을 타, 그슨대가 공간에 나타났다.
그러나 이미 강설 일행은 석상의 입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드드드드드드드…
공간이 완전히 재구성되려 했다.
쿠웅-!
쿠우우웅-!
거대한 회오리가 일어나는 것으로도 모자라 동산만 한 유적의 조각들이 그슨대에게 날아가 그를 구속했다. 그는 금세 조각에 둘러싸였다.
“반드시 죽여주마!”
쿠우우우우우우웅-!
파아아아아앙!
유적에 파묻혀가는 그슨대를 뒤로 한 채, 숨 막히는 추격전의 종착지에 도달했다.
스르르륵…
이어지는 길을 디디는 강설 일행.
황금 신상이 말했다.
– 깨우친 이여, 앞으로 나아가라. 와탈라의 힘이 기다리고 있다.
“통로야! 다 왔어!”
“그럼 저 너머에 광야령이….”
치우와 혜명, 그리고 미아와 설홍 모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달려나가려는데.
“…강설?”
혜명이 뒤돌아 홀로 멈춰 있는 강설을 보았다. 강설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말없이 혜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너….”
저 길을 통과하며, 혜명은 광야령보다 더 값진 것을 얻게 됐었다. 황금 신상의 진정한 힘을.
그리고 그것은, 강설의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 나아가, 혜명.”
“…넌?”
“여기 남는다.”
“어째서?”
강설이 말했다.
“난 이미 얻었어.”
쿠웅…
쿠우웅…
“어서 가.”
“그럴 수는… 나도 싸울….”
“어서! 내 말 들어! 설홍! 치우!”
치우와 설홍이 강설의 외침에 고개를 끄덕였다.
“가야 해, 혜명! 어서!”
“하지만 강설이….”
“그를 믿어야 해!”
강설과 설홍의 신뢰 관계는 절대적이었다. 설홍에게 있어 강설의 각오는 곧 진리나 마찬가지였으니.
“가자… 혜명… 오고 있어….”
“크윽….”
미아까지 혜명의 손을 잡아끄니 그는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다다다다…
황급히 자리를 벗어나는 그들.
잠시 후.
저벅…
저벅…
통로에 어린아이가 나타났다.
“이제 도망치는 것도 포기한 것이냐?”
“…도망친 적 없어.”
“소용없는 짓이다. 와탈라의 힘은 너희의 존재를 지우고 취하면 될 문제이니.”
휘오오오오…
강설의 기운을 압도하는 그슨대의 귀기. 온전한 불멸의 힘이 어떠한지를 여실히 증명해 보였다.
어둑시니는 그 힘을 전부 쏟아내지도 못했던 반쪽짜리 힘을 보였다면, 그슨대는 화그무의 시대를 질주했던 귀신 장군의 위용을 그대로 뽐내고 있었다.
“죽어라.”
그슨대가 명하자, 시커먼 공간에서 그슨대의 기괴한 양손이 나타났다.
후우웅-!
시간이 느려지는 듯한 감각.
금빛으로 일렁이는 강설은 또다시, 이곳에 왔다.
화아아아아아악-!
천지가 검게 물들고, 다시 한번 문 앞에 섰다.
* * *
정신의 세계는 그만이 인식하는 곳.
순식간에 문 앞을 찾았다.
여전히 단단하게 위용을 뽐내고 있는 허무의 문.
강설이 문에 손을 올렸다.
“다시 왔어.”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기다리기 지쳐 떠난 것일까?
– 모든 것을 얻고자 한다면 모든 것을 일깨워라.
신비로운 힘에 둘러싸인 채로, 강설이 문의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 깨우친 이여, 앞으로 나아가라. 와탈라의 힘이 기다리고 있다.
와탈라의 힘을 앞에 두고, 뒤돌아섰다.
그것은 혜명의 것이기에.
츠즈즈즈즈즈즛…
정신의 가속을 경험하며, 강설은 진일보했다. 마침내, 어긋났던 균형이 맞춰졌다.
“지금, 문을 열겠다.”
흡-!
끼긱…
끼기긱…
전과는 다른 느낌.
문에, 분명히 미동이 있었다.
순간, 문에서 형체가 흐릿한 검은 인형의 모습이 떠올랐다.
– 너는 내가 아니야.
아마, 강설이 만들어낸 불사의 모습일 것이다.
핏줄이 잔뜩 돋아난 채로, 문을 잡아끄는 강설이 답했다.
“그래, 나는 네가 아니야…”
끼기기긱… 끼기긱…
으지지지지지지직…
뚜둑…
뚜둑…
사슬이, 끊어지고 있었다.
드드드드드드드…
문이 미칠 듯이 진동했다.
“그래서 어쩌라고오!”
끼기기기기기긱!
“으아아아아아아!”
끼기기기긱!
강설의 힘 때문에 발생한 약간의 틈.
끼이이이이이이이이익!
그는 가진 힘을 모두 쏟아냈다.
“문 열어, 이 새끼야아아아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일순, 엄청난 압력과 함께 문 너머의 기운이 일제히 터져 나왔다.
쿵…
쿵…
그토록 거대했던 문이, 좌우로 크게 벌어졌다.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엄청난 힘이 허무로부터 쏟아져 나와 강설의 머리칼을 흩날렸다.
“하… 하하….”
강설은 문을 열었다.
그리고 활짝 연 문 앞에 선 자.
“…….”
장대한 체구.
처음 보는 두개골로 만들어진 고리가 그의 양 팔뚝에 채워져 있었고 그 해골들마다 특이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시퍼런 동공에서 쏟아져 나오는 눈빛은, 그야말로 불길이었다.
대주술사, 쟈마드가 강설을 보며 말했다.
“아아…… 따분함은 끝인가?”
[허무(虛無)의 문을 강제로 개방합니다.]
[버려진 낙원, 허무가 새로운 주인을 맞이합니다.]
[소환수와 피조물의 낙원, 허무는 그들의 성장을 촉진합니다.]
[허무는 스스로 성장합니다.]
순간, 깨져나가는 검은 공간.
파직…
파지지직…
그들은 현실로 되돌아왔다.
분명, 그슨대가 쏘아 보낸 기괴한 손은 강설을 으깰 것처럼 보였다. 방금까지는 그슨대도 그 결과에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뭐?”
손은 무언가에 가로막혀, 강설에게 닿지 못했다.
장대한 체구를 가진, 검은 괴물에게.
끼긱…
끼기긱…
어쩔 수 없이 다시 손을 되찾아 오는 그슨대.
“…어디서 나타난 거지?”
쟈마드는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와 그 모습이 꽤나 달라져 있었다. 몸에 윤기가 돌았고 치렁치렁한 장신구뿐만 아니라 다른 물건들도 처음 보는 것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가장 많이 변한 것은 바로 그의 기운이었다.
전에 느껴본 적 없던 검고 불길한 기운이 쟈마드의 몸에서 잔뜩 피어오르고 있었다.
– 오오! 보인다! 보여!
– 그것 봐라, 밖에서 여는 문이라고 했지? 안에서 강제로 열었으면 큰일 났을 거다!
– 알았어, 잘했어. 들리나? 들려? 주인?
– 이봐, 들리나?
[허무가 맥동합니다.]
카렌과 우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안 들리나 본데?
– 그럴 리가?
그들을 내버려 둔 채, 메시지는 계속해서 떠올랐다.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쟈마드가 그림자 공간에 자리합니다.]
[그림자 공간이 가득 찹니다.]
‘…불멸?’
쟈마드는 허무에 머무는 동안, 불멸이 되어 있었다.
휘리리릭-!
강설의 몸에 그림자가 엉겨 붙어왔다.
전에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아주 끈적한 그림자였다.
파츠즈즈즈즈즈즈!
“무슨! 넌….”
그슨대가 당황할 정도로 엄청난 힘이 강설에게 모여들었다.
파즈즛…
파즈즈즛…
송곳니 문양뿐만 아니라 시초의 뼈에 아로새겨지는 다양한 문양들.
각기 벼락, 유황, 그리고 산의 문양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알아보기 힘든 문양 하나가 더 있었다.
[주술사 ‘삼라만상의 쟈마드’와 밤까마귀 형상을 취합니다.]
[‘삼라만상의 쟈마드’의 능력치를 흡수합니다.]
[직업 : 주술사 상태입니다.]
……
이어지는 메시지들은, 쟈마드가 그간 어떻게 변모했는지를 증명했다.
“이제 비켜, 고철.”
밤까마귀를 이룬 쟈마드.
송곳니 문양이 들썩였다.
“내 자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