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276
제275화
강설이 미아를 잠시 바라보며 방법을 떠올리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한가로이 그런 것을 떠올릴 때가 아니라는 듯, 주변이 변화했다.
쿠구구구궁…
“이게 무슨 소리지?”
촤아아악…
유적 내부가 침수되는 듯한 소리.
“물소리?”
“설마….”
우지끈…
우지지지직-!
콰아아앙!
유적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무너진다! 빠져나가야 해!”
혜명이 지닌 황금 신상이 입을 뗐다.
– 떠나라.
쿠구구구궁…
황금 신상이 입을 떼자마자 그들의 눈앞에 유적이 만들어낸 통로가 나타났다.
촤아아아악-!
“물이야! 지금 여기에 물이 들이치고 있어! 붕괴가 더 심해질 거야. 서둘러야 해!”
“이, 이 길로 빠져나가라는 것 같은데….”
강설에게 선택지가 떠올랐다.
[마치 모든 것을 넘겼다는 듯, 와탈라의 유적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탈출하시겠습니까?]
1. 움직이지 않고 유적의 붕괴가 멎기를 기다린다.
2. 처음에 이곳까지 들어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3. 눈앞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길을 따라 이동한다.
4. 유적의 심층부까지 이동한다.
……
길게 볼 것도 없이, 지금은 황금 신상의 말을 따라야 했다.
“여기로 간다.”
강설이 그렇게 말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그렇게 결정했다면 따르는 게 옳다는 인식이 이미 일행들의 행동 강령처럼 퍼져 있었다.
“어서!”
촤아아악-!
미끄러지듯 내려가는 강설 일행.
미아와 설홍은 강설과 혜명의 보호를 받고 있었기에 상처가 생기는 일 따위는 없었다.
“어어… 어?”
“꺾인다! 대비해!”
치이이익…
길이 갑작스럽게 한쪽으로 틀어졌다.
콰아앙-!
콰아아아앙!
붕괴의 충격이 점차 멀어졌다.
치이이이…
어느 순간, 지하수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액체와 함께 떠밀려온 그들은 조금 밝게 빛나는 구멍을 보았다. 그것은 그들이 향하는 방향에 있었다.
“출구다!”
“추락에 대비해!”
콰아아아아아아앙-!
유적의 대붕괴와 함께 긴 통로를 빠져나오는 강설 일행.
공중에 떠오른 그들은 추락을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리 높은 위치는 아니었다.
“놈들이다!”
“저기!”
그슨대의 지시를 받아 유적의 입구에서 진을 치고 있던 귀신들이 탈출한 강설 일행을 발견했다.
그들은 곧장 강설 일행에게 향하려 했지만, 낙석이 방해했다.
“무, 무너진….”
“유적이!”
콰아아아아아앙!
와탈라의 유적이 완전히 붕괴했다. 귀신의 수는 애초에 그리 많지도 않았지만, 유적의 붕괴에 휘말린 귀신들까지 있어 그 수는 더욱 줄어들었다.
목숨을 부지한 귀신 중 어느 정도 눈치가 있는 귀신들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깨닫고 자리를 벗어나려 했지만, 그것은 시도에 그쳤다.
후우우우웅-!
[혜명이 설법 : 대회전을 사용합니다.]
[무기가 여러 번 회전하며 날아가며 적에게 적중할 때마다 피해가 10%씩 감소합니다.]
휘리리리리리릭!
퍼퍼퍽!
머리통이 수박 깨지듯 부서지는 귀신들.
그슨대가 아닌 이상, 강설과 혜명의 적수가 될 자들은 없었다.
쿠직!
마지막 귀신의 목을 부러트리는 것으로, 시시한 싸움은 마무리되었다.
붕괴한 유적에서 물이 질질 새어 나왔다.
“내 그림….”
미아가 깜빡 놓고 온 그림이 저 유적 잔해에 깔아뭉개졌을 거라 예상했는지, 아쉬워했다. 사실은 그슨대의 수하들이 이미 불태워버렸는데도.
강설이 무너진 와탈라의 유적을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다 끝났군.”
“그래, 전부 끝난 거야….”
혜명이 그의 말에 답했다.
스윽…
돌아서는 둘.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것은 강설에게도 혜명에게도 동시에 적용되는 말이었다.
* * *
그날 밤, 강설은 미아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고 혜명에게서 광야령을 넘겨받았다.
혜명은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달을 바라보며 또 술을 축내고 있었다.
모두가 잠든 시각, 강설은 혜명에게 다가갔다.
“그 방울까지 넘겨받았으니 이제 볼일은 끝난 거군.”
“뭐, 그렇지. 이제 이곳에서의 일은 모두 끝났어.”
혜명이 술을 벌컥벌컥 들이켠 후, 말을 건넸다.
“강설, 네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하고 싶은 말?”
“우리와 함께 가지 않을래?”
“…….”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었지만, 강설은 덤덤히 웃으며 대꾸했다.
“나는 몸담은 곳이 있어, 혜명.”
“…그래. 그랬었지. 유물회라고 했던가?”
“응. 그런데 이 얘기는 왜 꺼낸 거야?”
“그야… 네가 떠날 것 같아서지.”
“무슨 그런 소리를, 당연히 떠나야지.”
혜명이 씨익 웃었다.
“떠나면, 다시는 못 볼 것 같아서.”
아마도 정해진 미래대로 흘러간다면, 다시는 혜명을 만나지 못할 것이다. 혜명은 승천을 위해 먼 곳으로 떠났으니까.
“뭐, 각자에겐 각자의 사정이 있으니까. 그럼, 마지막으로 우리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부탁?”
“그래, 부탁.”
강설은 다음 날이 되어, 혜명이 말한 부탁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정말 이거면 돼?”
사사삭…
화공이 종이에 그림을 그렸다.
“미아가 그림으로 너희의 모습을 남기고 싶대.”
“내, 내가 언제…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혜명이 그러자고 했잖아….”
“하하하! 미아, 이럴 땐 네가 한 걸로 해두는 게 그림이 더 그럴싸하다고.”
미아와 혜명이 웃었다.
혜명 일행이 바위에 걸터앉았고 강설 일행이 그들을 둘러싸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지금의 대화는, 고개와 눈은 돌리지 않고 입만 뻐끔거리는 것이다.
강설이 혜명에게 물었다.
“혜명, 넌 이런 거 별로 좋아하지 않던 거 아니었어?”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변하지 않는 것은 이 우주 어디에도 없어, 강설. 하물며 인간의 마음 정도야 얼마든지 변하기 마련이지.”
치우가 괜히 핀잔주었다.
“이제 떠날 때가 되니 혜명이 제법 그럴싸한 말을 하네. 난 같이 지낼 땐 이상한 놈인 줄 알았는데 말이야.”
“하하! 그랬던가….”
혜명이 씨익 웃으며 물었다.
“강설.”
“응?”
“너희들을 만난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
“뭐?”
“너희들을 만나, 우리는 변했어.”
그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어떠냐, 강설. 너희도 우리를 만나 조금이라도 변화를 이룬 거야?”
강설이 피식 웃고는 이렇게 답했다.
“글쎄… 어떨까?”
치우가 거들었다.
“혜명, 즐거웠어.”
설홍이 미아에게 작별했다.
“미아, 잘 있어.”
“설홍 언니?”
뭔가 미심쩍은 분위기.
“그….”
혜명이 망설이다가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강설! 우리는….”
“안 돼!”
미아가 울음을 터트렸다.
“…….”
“모두… 가 버렸어….”
인기척이 사라졌다.
강설과 설홍, 그리고 치우의 모습은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혜명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한 채로 멍하니 굳어있었다.
“헤명… 모두 떠났어.”
“…그래, 떠났구나.”
혜명이 흐느끼는 미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아, 울지 마. 당연한 일이잖아. 손님은 언젠가는 되돌아가야 하는 법이야.”
“…알고 있었어?”
“…그래. 저들은… 미래의 네가 초대한 손님들이잖아?”
“…….”
유물회에 단신으로 그슨대를 쓰러트릴 만한 일개 회원이 존재한다니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고, 강설 일행에게서 줄곧 느껴지던 낯선 기운은 혜명에게 그들이 원래 이곳에 존재하는 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모든 것은 흘러가는 대로….”
그러는 사이, 미아가 완성된 그림을 가져왔다.
“혜명… 근데 있잖아.”
“응?”
“이 그림말이야….”
혜명이 눈을 크게 뜨며 당황했다.
* * *
찌지지지지직!
찌지지지지지직!
그림 속으로 넘어갈 때와는 달리, 현실로 빠져나올 때에는 전보다 큰 충격을 감내해야 했다.
“크으으으으윽….”
하늘이 찌그러지고 땅이 뒤집히는 듯한 감각이 여러 번 찾아왔다.
“하아… 하아아….”
그것도 잠시, 그들은 처음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갔던, 바로 그 장소로 되돌아왔다는 것을 느꼈다.
“모두 괜찮은….”
강설은 말을 끝까지 내뱉을 수 없었다.
“아아아악!”
“크으으으아아악!”
바닥에 아무렇게나 쓰러진 채로 괴로워하는 설홍과 치우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아아아….”
눈을 까뒤집은 설홍에게 수상한 기억이 채워졌다.
가사를 입고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몰라도 용궁의 담을 넘어와 어린 설홍과 마주하고 있는 한 남자.
– 찾았다! 설홍, 강설이란 남자를 아니?
– 그대는 누구인가? 강설은 또…
– …아직 모르는 거군, 그렇다면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겠네?
– 모른다! 그대는 무슨 목적으로 내게 접근한 것인가! 경비병!
– 으음… 그렇단 말이지, 이런 반응은 예상하긴 했지만, 확실히 서운하네. …이봐, 설홍.
– 경비병!
남자는 어린 설홍의 머리에 검지를 가져갔다.
후우웅…
검지엔 황금빛 기운이 서려 있었다.
– 너희와의 시간, 즐거웠어. 이건 그 보답이야.
투우우웅-
사내의 손가락이 어린 설홍의 이마에 가 닿았다.
“어… 어어어억….”
설홍이 목을 부여잡고 바닥을 굴렀다.
스르르륵…
설홍의 머리칼의 끝단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머리칼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어떤 과거가 바뀐 것인가.
그리고 설홍도 설홍이지만, 치우 쪽은 더욱 심각했다.
“케에엑… 케에엑….”
남자는, 치우에게도 찾아갔었다.
– 넌 뭐야?
– 치우구나. 하하, 어릴 땐 귀여운 맛이 있네. 너희가 홍천의 자손들이었다니, 처음 알았을 때 얼마나 당황한 줄 알아?
–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아? 너 누구냐니까?
– 넌, 강설을… 기억해?
– 강설? 그딴 이름 몰라, 누군지도 모르는 이름을 내가 왜 기억해야 해?
– 정말… 흔적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구나, 강설. 넌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냐? 어딜 가야 만날 수 있는 거야….
남자의 불쾌한 듯한 기분이 알 수 없는 기운을 만들어냈다. 그의 감정에 따라 공기가 진동했다.
– 으… 으으… 더, 덤벼! 치우는 무적이다!
– 하하! 그 호기는 선천적이었네. 이거 좀 반가운데… 치우, 네게도 선물을 줄게. 이 움직임을 기억해라.
– 움직임…?
– 잘 봐둬, 한 번뿐이야.
순간, 세상이 새카매지는 듯한 기분이 드는 치우.
후우우우우웅-!
가벼운 듯 무거운 한 수.
손바닥을 위에서 아래로 휘두른, 치우의 정수리 근처에서 멈춘 그 손바닥.
– 이게… 뭐야?
– 하하! 나중에 알게 될 거야.
– 나중?
– 그래, 먼 곳으로의 여행이 끝난다면.
– 그게 뭐야, 좀 더 알려줘.
흥미가 생긴 치우는, 남자를 졸랐다.
남자는 멋지게 웃으며 그 자리를 떠났다.
– 내가 누군지, 떠올리게 된다면.
후우우우우웅-!
그가 누군지, 떠올랐다.
설홍과 치우는 어렸을 적 그들을 찾아왔던 남자가 혜명이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아아아악!”
“크으으으아아악!”
설홍도 설홍이었지만, 혜명의 진화한 무위 중 일부를 경험한 치우는 아예 혓바닥을 내밀고 바닥을 기었다.
치이이이이…
그의 머리가 전부 황금빛 머리칼로 변해갔다.
마치, 갈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