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277
제276화
“으아아….”
부처의 손바닥을 마주한 듯한, 엄청난 압박감에 심장이 터질 것 같던 치우는 온몸에 핏줄을 잔뜩 돋우었다가 곧 까무러쳤다.
“이게 대체… 으윽….”
강설에게도 뒤바뀐 기억이 생겨났다.
– 강설…이라고?
– 강… 설?
“으으으윽….”
강설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의, 설홍과 치우의 반응이었다.
그리 많은 변화는 아니었지만, 무언가 이질감을 만들어냈다.
‘충격에 대비하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아마도 혜명을 직접 만난 치우와 설홍은 더 심각한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잠시 뒤, 치우와 설홍이 깨어난 뒤 뒤바뀐 기억을 전부 말해주었다.
“혜명이 날… 찾아다녔다고?”
강설이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혜명,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냐?’
전설의 10인은 승천 시도 이후에 모두 행적이 묘연해졌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알 방법은 없었다.
‘아니, 혹시….’
강설은 떠나기 전, 미아와 나누었던 약속을 떠올려냈다.
– 이거를… 가지고 있어 달라고요?
– 응, 약속한 날 약속한 장소에 찾으러 갈 테니까.
– 알았어요….
“약속….”
“마, 맞아! 미아를 만나기로 했잖아, 우리?”
“여기… 그곳이 아닌가?”
강설은 눈살을 찌푸리며 주변을 확인했다.
“지형은 그때와 비슷한데….”
“집이 사라졌어….”
“설마, 미아는….”
약속을 어겼거나, 약속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문제가 생긴 것이거나.
그런 생각들을 하며 마을을 내려가 수소문을 했다.
‘만나기로 한 날짜는 오늘이 마지막이야.’
시간이 어떻게 흘러갈 줄 몰랐기에 반드시 찾아간다고 약속하고 기한을 꽤 넉넉하게 잡았는데도 뭐가 어긋났는지, 미아와 약속한 날이 다 되어갔다.
‘설마… 어긋난 건가….’
그때였다.
“강설! 이거다!”
치우가 강설이 있는 곳까지 한달음에 달려오며 말했다.
“이 산에, 유명한 화공(畫工)이 산대!”
“화공?”
“응! 화방을 차려서 제자들을 맞아들였는데, 일대에 꽤 유명한가 봐.”
“그런… 전에 왔을 때는….”
“맞아, 그런 사람은 없었지. 뭐, 관심이 없어서 전혀 전해 듣지 못했던 걸 수도 있지만… 아무튼, 뭔가….”
“맞아….”
“그래, 그녀인 것 같아.”
강설 일행은 그길로 화방이 위치한 곳까지 쉬지도 않고 찾아갔다.
약속 날짜를 넘겼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에.
강설은 솔직히 설렘 반, 두려움 반이었다.
– 하하, 나도 거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그럼!
혜명도 강설을 보기 위해 찾아온다고 했었다. 만일 그가 약속을 지켰다면 미아와 함께 남아있을 것이다.
‘혜명이 만일… 돌아와 있다면….’
그거야말로 두려운 일이 아닐까.
승천은 모두 어떻게 된 일이고. 현재가 뒤죽박죽되어 있는 것은….
마을 주민이 말한 대로, 화방은 있었다.
다만 늦은 밤이기에,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특이한 문.
꿀꺽…
문고리를 잡고 문을 두들겼다.
쿵… 쿵…
잠시 후, 안에서 기척이 일었다.
끼이익…
“누구….”
안대로 눈을 가린 여인이 등장했다.
“…….”
“흑… 흑….”
“미, 미아?”
미아가 강설 일행에게 말했다.
“…줄곧, 당신들을 기다렸어요.”
그러더니 하나하나 짚어가며 이름을 불렀다.
“강설, 설홍, 치우… 이제는 저도 당신들과 비슷한 나이가 되었네요.”
미아가 울음을 그치고 그들을 안내했다.
“…들어오세요.”
강설은 가장 궁금한 것을 물었다.
“미아, 혜명은….”
“그는….”
미아가 우뚝 멈춰 서서 답했다.
“…떠났어요.”
“…….”
여전히 같은 결말, 미아의 세계는 여전히 피폐한 것일까. 강설의 씁쓸한 표정에 미아가 말은 건넸다.
“제가 강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었죠.”
– 내가 그림을 포기하지 않게 해줘. 내 그림이… 나쁜 게 아니라고 전해줘. 내가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화방의 심처로 다가갈수록 여러 그림이 나타났다. 강설은 그 그림들이 전부 미아의 손에서 탄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림마다, 혜명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전에 보았던 그림에 혜명의 모습이 담긴 것은 거의 없다시피 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혜명이 그려지지 않은 그림을 찾는 게 더 어려울 것 같았다.
“…제힘은 사라졌어요, 하지만… 그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저는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추억은 떠올리는 것만으로 가치 있는 것, 한순간도 바꾸고 싶지 않은… 소중한 기억이에요.”
애초에, 미아가 원했던 것은 그것뿐이었다. 그녀는 혜명을 붙잡아 곁에 두고자 한 적은 없었다.
“고마워요, 당신들은 제 부탁을 들어줬어요.”
“크윽….”
치우가 벅차올랐는지 몸을 떨었다.
짧은 시간 경험한 일치고는 강렬한 충격을 가져다주었던 이번 일.
그것은 모두에게 마찬가지였다.
강설은 미아에게 물었다.
“혹시, 헤어진 후에 혜명을 본 적 있어?”
미아에게 존대하던 과거와는 달리, 편하게 말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워진 지금.
미아는 강설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그런가… 끝인가.”
혜명과의 만남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그저, 잠깐 스쳐 지나간 것이.
“그가… 남긴 것이 있어요.”
강설이 미아의 말에 반색했다.
“정말이야?”
“네, 따라오세요.”
화방에 숨겨진 비밀스러운 공간.
여기저기 그녀의 손길이 닿아 있었다.
그녀는 어떤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는 강설 일행을 안으로 불러왔다.
“이건… 혜명이 남긴 글이에요.”
파락…
강설은 혜명의 서찰을 읽어 내려갔다.
– 무슨 말을 남겨야 할지 모르겠다, 강설. 이 편지가 네게 전해질 것인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고. 네가 미아와 약속을 나눴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그때 전달이 되면 좋겠네.
강설이 미아에게 맡겼던 일체분신의 씨앗을 말함이다.
– 넌 분명 이것을 찾고자 그날 나타나겠지. 내 예상대로라면… 나도 그 자리에 있을 거야. 만약 내가 없다면… 나는 아마도 그곳에 갈 수 없는 상황일 거야.
“그런가….”
그가 꿈꿨던 미래가 어떠했는지는 몰라도 승천에 도전했으며 승천에 실패했다.
혜명의 그 이후의 삶은 강설도 몰랐다.
– 나는 이제 미아를 떠난다. 미아의 곁엔 이제 내가 없어도 돼. 막상 이렇게 되니, 한 가지 열망이 생겨난다. …다시 한번 얘기하고 싶다, 너와. 달라진 내가 그대로인 너를 만나 얘기하고 싶어.
강설의 서찰을 붙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 그때 네게 묻지 못했던 걸 아쉬워했는데… 지금에서야 묻는다.
서찰의 말미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나는 그대의 벗인가?
강설이 그 자리에 뿌리내린 듯이 멈춰 서서 멍하니 마지막 문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미아가 벽에 걸린 무언가를 덮고 있던 천을 거두었다.
스으으윽…
“어?”
“저건….”
놀라는 치우와 설홍.
그곳에 그림이 있었다.
강설과 치우, 그리고 설홍의 모습과 혜명과 미아의 모습까지 한 폭에 담긴 그림이.
커다란 종이에 그려진 그들의 얼굴.
아마도 이 그림이 방금까지도 강설 일행이 들어갔다 온 세계일 것이다. 그림이 그들의 추억을 거기에 두었다.
그림의 이름이 쓰인 패를 매만지는 강설.
벗이라는 이름의 그림.
감회에 잠긴 강설은 잠시 그림을 살폈다.
“…어?”
그리고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강설뿐만이 아니라 치우와 설홍 또한 놀랐다.
“그림에….”
“미아가 왜…?”
그것은 미아가 그림 속에 존재한다는 것.
‘그러고 보니….’
고원에서 나란히 섰을 때, 아무도 인식하지 못했다. 마치 인식이 제한된 것처럼.
‘왜 아무도 미아가 그린 그림이 아니라는 걸 알아채지 못했던 거지?’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미아가 말했다.
“이 그림은… 대체 누가 그린 걸까요?”
“혹시… 그림을 그린 자리에 누가….”
“아무도 없었어요, 덩그러니 화구만 놓여 있었을 뿐. 이것과 관련해서 여기, 혜명이 남긴 전언이 있어요.”
혜명이 남긴 전언은 작은 쪽지였다.
한 문장이 겨우 들어갈 만한 크기.
‘혜명이 내게 말을 남겼다고?’
“무슨….”
강설은 재빨리 쪽지를 열어보았다.
그곳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강설, 누군가 너를 지켜보고 있다. 조심해.
“…….”
“당시에 그곳에 존재할 수 있었던 자는… 대체 누구일까요?”
짐작이 가지 않았다.
‘대체 누가… 아니, 우리 모두를 속이고 그 자리에 존재할 수 있었다고?’
혜명과 강설이 함께 존재했던 공간이 제법 특별했던 곳임을 떠올린다면, 이 문제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알 것이다.
“하하… 모르겠는데….”
“당장엔 알지 못할 수도 있죠. 혜명도 그렇게 말했었어요.”
“…그런가.”
쿠르릉…
허무에서 말이 흘러나왔다.
– 이거 재밌군.
‘우르?’
– 아, 신경 쓰지 마라. 이건 내가 따로 분석할 테니.
우르가 나서준다니 든든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일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어두워진 강설의 안색에, 미아가 그가 반길 만한 말을 던졌다.
“제 부탁을 들어주셨으니, 이제 강설의 부탁을 들어드릴 차례군요.”
“내… 부탁.”
“예, 이쪽으로.”
각종 잠금장치가 가득한 문.
아까 그냥 지나쳤던 문이다.
먼지가 좀 쌓여있는 것이 이곳에 드나드는 이가 미아 말고는 없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철컹…
철컹…
문이 개방되었다.
끼기기긱…
“오랫동안 보관하던 것을 이제야 건네드리네요.”
“굳이 이런 공간까지 마련해서….”
“직접 보시면 그 이유를 아실 거예요.”
“뭐?”
일체분신의 씨앗은 기껏해야 양손으로 들 정도 크기였다. 그런 씨앗을 위해 이런 공간을 마련하다니.
하지만, 방 안을 가득 메운 커다란 무언가를 보고는 강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게 그?”
“예, 강설이 제게 부탁했던 씨앗이에요.”
“이럴 수가….”
씨앗은 정말 커져 있었다.
사람보다도 더 커져서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럼에도 황금빛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빛이 씨앗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두근…
두근…
후우우웅…
강설의 가슴팍에 잠시 자리했던 황금빛 기운이 씨앗과 만나자 반응했다.
그리고.
빠직…
빠지지직…
이 커다란 씨앗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일체분신(一體分身)의 씨앗이 오랜 세월을 견뎌냈습니다.]
[일체분신의 씨앗이 개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