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289
제288화
귀계에서 전혀 뜻밖의 인물을 마주한 강설. 그는 당혹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쓰며 찻잔을 입술에 가져갔다.
찻잔에 담긴 가치는 따스함과 온화함이었다. 단순히 향을 맡는 일련의 행위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문, 어째서 여기에….”
“저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에 해드리도록 하죠. 지금은 더 중요한 일이 있지 않습니까?”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여전히 야차는 칸이 있는 현계와 두억시니가 있는 귀계 모두에 위협이 되고 있으며 그를 저지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였다.
두억시니가 이곳에 강설 일행을 데리고 온 것 또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일 터, 강설은 하문과 그 사이에서 눈치를 보고 있는 귀왕에게 말했다.
“잠시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 소란스러웠습니다.”
“크큭… 아니야. 차 선생과 연이 있었나?”
“오래전에…. 아니, 생각해보니 그리 오래는 아니군요.”
“좋구나. 연이 있다는 건 운명이 이 순간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겠지.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야차와 관련된 일일 테니 궁금한 것이 있다면 지금 여기서 물어보도록 하여라.”
다 같이 조그마한 다탁에 옹기종기 붙어 앉아 차를 홀짝거리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 장면은, 어느 구석을 보아도 야차라는 희대의 괴물과 일전을 벌이려 하는 집단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다.
– 일단 두억시니부터 ㅋㅋㅋ
– 차부터 에러잖아!
– 기분 좋은 표정 짓지 마!
– 아, 살 것 같다라고 방금 중얼거렸어!
강설은 모처럼 귀왕 두억시니가 질의응답 시간을 갖자 하였으니 그간 궁금했던 것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풀어 볼 생각이었다.
“야차는 지금껏 어디 있다가 갑자기 이런 중대한 사건을 일으킨 겁니까?”
후르릅…
“야차는 어느 순간 탄생한 존재가 아니다. 그 저주받은 가면과 저주받은 검은 늘 골치 아픈 사건을 일으켰던 저주받은 물건이지. 가면과 검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매번 그 주인을 바꿔가며 귀계를 어지럽혀 왔다.”
“그것이 어찌 탄생한 건지 아십니까?”
“연원까지는 모른다. 하나, 짐작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아마 누군가의 악의로 탄생한 흉물이, 더 뚜렷하고 진한 악의를 가진 주인들을 여러 번 거쳐 가면서 순수한 악으로 정제된 힘일 거다.”
그런 힘이 있었다면, 왜 그간 귀계는 야차를 제압하지 않은 것일까. 치우는 혼자서 생각하던 질문을 던졌다.
“왜 막지 않았지? 두억시니 당신이라면 충분히….”
“지금껏, 놈의 힘이 이 정도까지 강력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리고 제압할 필요가 없었다.”
“어째서?”
“이미 제압한 상태였으니까.”
“…뭐?”
치우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도 강아지의 모습이었으니 별로 긴장은 안 되었지만.
“야차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를 굴복시켜 귀계를 위해 사용하자는 저급한 발상까지 나왔을 정도로 관심을 받았다. 하나, 놈은 절대 굴복하지 않으며 주인이 죽기 전까지 계속해서 싸운다. 투쟁, 오로지 그것만이 제 삶의 의미인 것처럼. 놈과 붙게 되면 늘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
“이미 제압한 상태였다는 말은 무슨 뜻이지?”
“놈은 귀계에서 가장 단단한 감옥인 사천옥에 투옥되어 있었다. 다루기가 까다로운 녀석이었으니 아마 주인이 죽을 때까지 사천옥에 갇혀 있었을 것이다.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면.”
강설은 미간을 찌푸렸다.
“왜 그러지?”
“…아닙니다.”
주인이 죽을 때까지.
그 말이 강설의 가슴에 가시처럼 박혔다.
만일, 이번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강설의 통제에서 벗어나 홀로 떠돌았던 야차는 결국 감옥에서 몇십 년이고 구속된 채로 살다 쓸쓸히 죽었을 것이다.
야차가 자초한 일이지만, 그렇다 하여 안쓰럽다는 마음마저 들지 않는 건 아니었다.
설홍이 두억시니에게 물었다.
“문제라면 어떤 문제가 생긴 건가요?”
“좋은 질문이다. 사천옥의 경계를 누군가 허물어트렸어. 그 결과 그 안에 투옥되어 있던 죄수들이 일시에 귀계로 뛰쳐나온 거다.”
“대체 누가….”
“화그무다.”
“…….”
“아, 정확히는 화그무가 아니지. 그의 이상에 찬동한 귀신 군단의 잔당들이 그를 그리워하여 벌인 일이라고 할까…. 그때의 부관 중 한 명이 사천옥에 접근해서 문제를 일으켰다.”
최근 들어 귀신 군단과의 충돌이 잦아졌다. 봉인이 풀린 어둑시니를 비롯하여 또 다른 악령 그슨대까지.
“그들의 목적은 뭘까요?”
“뻔하지, 현계에 혼란을 일으킬 작정인 거다. 과거의 귀신 군단이 맡았던 중책 중 하나지.”
“대체 어째서 자발적으로 그 악룡에게 굴종하는 짓을….”
“화그무는 귀신들을 가장 잘 이해했다. 어쩌면 귀신들보다도 더. 그는 우리가 지녔던 욕망을 충동질했다. 한번 비대해진 욕망이 사그라들긴 너무도 어렵다. 그러니 아직까지도 그를 따르는 자가 남아 있는 것이지.”
아직도 중요한 의문들이 남아 있었다. 강설은 결국 야차와 충돌하는 것이 불가피할 듯하여 그의 전력을 파악하려 했다.
“실은… 이곳에 오기 전 야차와 한번 충돌한 적이 있습니다.”
“호오! 처음 듣는 이야기로구나! 자세히 얘기해보련?”
강설은 야차를 만났던 그 당시의 일을 남김없이 이야기했다.
달리 중요한 정보도 없었고 이 작은 단서를 토대로 그의 전력을 짐작이라도 할 수 있다면 좋을 거라 판단해서였다.
“음… 차가운 땅딸보와 여우 귀신이라… 거기다 강력하기까지. 누군지 알겠군.”
“놈들도 죄수였습니까?”
“그래. 놈들이 야차의 편에 붙었구나. 쉽지 않겠어….”
“사천옥에 갇혀 있었다면… 큰 죄를 지은 겁니까?”
“어둑시니와 그슨대의 정적이었지. 나와는 딱히 연이 없구나. 단지, 태생부터 강력한 힘을 타고난 존재들이라 알고 있다. 한데… 단 한 번이긴 해도 매구의 공격을 막았다고?”
파닥파닥.
치우의 꼬리가 날아갈 듯이 흔들렸다.
“내가! 내가 막았지!”
“으음… 자세히 설명해 보거라.”
당시의 상황을 묘사하는 치우.
그리고 가만히 듣던 두억시니가 호탕하게 웃었다.
“크하하핫! 그 땡중 녀석이 부린 농간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일이 생각보다 쉽게 풀릴 수도 있겠구나.”
“무슨?”
“너희들, 혜명이라는 고약한 놈과 접촉한 적이 있지?”
이제 와 숨길 게 무엇인가.
끄덕…
고개를 끄덕이는 둘.
“혜명이 네놈들에게 심어둔 그 힘은 평범한 힘이 아니다. 근원 자체부터 항마의 힘을 품고 있어. 아마도 네가 매구에는 미치지 못하는 실력임에도 그녀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던 건 그 땡중 덕분이다.”
“혜명의 힘 덕분이라고? …어쩐지!”
금빛으로 차오르며 매구의 공격을 막아냈던 당시의 상황을 떠올린 치우는 그 말이 사실이라 판단했다.
“가끔은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구나, 그 한량도. 그럼 이쪽에서 충분히 대비하면 야차가 아닌 다른 두 귀신은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면 야차를 상대하는 일만 고민하면 되겠군….”
치우가 물었다.
“근데 야차를 상대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 거야?”
“큭큭… 현계가 야차 때문에 골머리 썩히고 있다지?”
“맞아. 아무래도 놈이 귀계에서 귀신들을 불러들인 것 같아. 그 힘은 어디에서 온 거야?”
“사천옥은 특수한 감옥이었다. 현계와 귀계를 나누는 경계석이 자리를 잡고 있어 무력이 강력한 귀신들도 그 힘에 억눌려 제힘을 내지 못했었지.”
강설은 오래전 초반부 모험에서 경계석 수리 지원을 나갔던 경험이 있었다.
정령계와 현계를 가르는 그 돌은 막강한 힘을 품고 있었는데, 귀계의 사천옥에도 그 경계석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두억시니가 얼굴을 굳혔다.
“야차가 그 경계석의 힘을 집어삼켰다. 그 때문에 현계와 귀계를 오고 갈 수 있는 거지.”
“그게 가능해? 힘을 집어삼키다니….”
“가능하다, 야차라면.”
“어째서….”
“야차의 검은 상대의 힘을 갈취한다.”
두억시니의 입에서 쏟아진 충격적인 말은 일행을 당혹으로 물들였다.
진려가 호들갑을 떨며 이렇게 말했다.
“그, 그게 사실이면 야차는 지금….”
“지금도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겠지.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놈은 강자만을 노리니까.”
“충분히 걱정되는데요….”
“죽이거나 소멸시킨 상대에게서 다양한 힘을 빼앗아 오지. 기록에 따르면 야차는 그저 단순한 흉물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수백 가지 검술과 그만큼 방대한 도술을 사용할 수 있는 마병이다. 다행히 당대의 주인이 도술을 사용하는 자가 아니라 망정이지 다음 대의 주인으로 그 검이 넘어가면… 야차의 지독한 도술까지 함께 상대해야 할 것이다.”
“그럼 됐네! 도술을 사용할 수 없으면 충분히….”
치우의 말에 호응하는 사람은 없었다.
끼잉…
“고민을 좀 해봐야겠네….”
한동안 말이 없던 강설과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하문.
두억시니가 하문에게 말을 걸었다.
“차 선생, 고견을.”
“야차를 상대하는 건… 누구입니까?”
“그야….”
하문의 질문에 두억시니가 누군가를 가리켰다.
강설이었다.
치우가 두억시니에게 물었다.
“나서지 않을 생각이야?”
“나는 따로 준비해야 하는 일이 있다. 내가 나선다 해서 야차에게 무조건 이긴다는 보장도 없고 말이지.”
그 따로 준비해야 하는 일이란 게 궁금하긴 했으나 알려줄 것 같지는 않았기에 모두 포기했다.
하문이 강설에게 물었다.
“정면으로 부딪칠 생각이시겠죠?”
“…물론입니다.”
강설이 짧은 시간 하문과 함께했을 당시에도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졌었다.
그리고 지금 둘은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성장했으니, 더 어려운 일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강설은 시름시름 앓고 있는 비탄을 내밀었다.
“이건….”
“마령입니다.”
“과연… 야차의 검도 궁금하긴 하지만 이쪽에도 흥미가 가는군요. 흐음… 한데 이렇게 괴로워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야차의 검과 충돌한 이후에 깨어나질 못하고 있습니다.”
“저런… 악의의 집합체와 충돌했으니 쉬이 떨쳐내긴 어렵겠죠. 마령… 마령이라… 으음… 재밌는 생각이 났습니다.”
– 당장 하죠.
– 남성 사망률 1위 : 재밌는…
– 진지하게 임해!
“어떤….”
“상대가 기괴하기 짝이 없는 마병을 준비했다면….”
하문의 눈이 반짝였다.
좀처럼 보기 드문, 흥미로 가득 찬 눈망울이었다.
“이쪽은 더 기괴한 걸 준비하면 될 테죠. 우선….”
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만상 도서관으로 향해야겠군요.”
두억시니를 제외한, 모두의 눈이 커졌다.
“만상 도서관!”
* * *
만상 도서관.
미궁에 비견할 정도로 신비에 둘러싸인 존재. 미궁과 마찬가지로 대륙 전역에 나타나며 드물게 다른 세계에서도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만상 도서관이 해당 지역에 출몰하면, 우선 그 지역의 지식을 빨아들인다. 만상 도서관에 거하는 신비로운 존재들은 그 지식을 책으로 엮어 도서관에 채워 넣는다.
기이하게도 그 지식은 이미 알려진 것도 있었지만, 알려지지 않은 것도 무수히 존재했다.
그들이 그것을 어떻게 알아냈는지, 어떤 원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그곳을 오르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과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사망자가 나온다는 것이 익히 알려진 정보였다.
‘귀계에 만상 도서관이라니….’
구르가 끄는 마차가 일주일이나 달려 도착한 곳은, 거대한 탑이 서 있는 황무지였다.
곳곳에 경계병이 보였다.
“출입이 통제된 구역이라 근처에 경계 병력을 제외하면 다른 존재는 없다.”
출입을 통제한 이유는 뻔했다.
“만상 도서관은 귀계에 있지만 귀신의 방문을 허락하지는 않는다. 우린 그곳에 발도 디딜 수 없지. 오직 다른 생물만 들어갈 수 있다.”
길게 쭉 뻗은 누각과도 같아 보이는 모습.
만상 도서관은 그 이름처럼 수많은 형태로 존재했다.
아마 다른 지역에서 마주쳤다면 다른 형태를 띠었을 것이다.
하문이 만상 도서관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만상 도서관은 어느 날 지역에 나타나 지식을 마구잡이로 빨아들인다고 하죠. 그들은 살아 숨 쉬는 지식의 보고입니다. 다만… 그만큼 위험하기도 하죠.”
“음….”
“8계층까지의 이용수칙은 번역본까지 손에 넣었습니다. 일단은 거기까지라도 가보도록 하죠. 운이 좋다면,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을 겁니다.”
만상 도서관에는 계층마다 규칙이 있었다. 그리고 그 규칙을 어겼을 경우, 심각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만상 도서관의 지식을 노리고 접근한 모험가 대부분이 사망하여 돌아오는 것 또한 이 때문이다.
두억시니가 만상 도서관의 입구에서 해맑게 손을 휘저었다.
“그럼, 무운을 비마. 멋대로 죽지 말아라.”
아르르릉….
“죽기는 누가!”
“그래, 죽지 마라 강아지. 살아 돌아오면 쓰다듬어 주마.”
쿠구구구구구궁…
만상 도서관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곧 문이 닫혔다.
새하얀 빛이 번쩍이더니 오래된 종이 냄새가 가득한 공간으로 빠져나왔다.
‘만상 도서관이라….’
그들을 맞이해주는 문구가 적힌 표지판이 앞에 놓여 있었다.
만상 도서관에 방문하신 모든 이용객 여러분에게 알립니다.
만상 도서관은 지식의 보고이자 예절의 첨탑입니다.
부디, 이곳에서는 예절에 어긋나는 몰상식한 행동을 자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만일,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도서관 측에서는 이를 책임지지 않습니다.
쿠궁…
곧, 소리가 사라졌다.
‘오랜만이네.’
강설은 만상 도서관에 방문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돌발 모험 ‘엄격한 도서관’이 발생합니다.]
[이 모험은 매우 위험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