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291
제290화
만상의 노신사.
만상 도서관에서 낮은 확률로 출현하는 오브젝트.
그 누구도 노신사의 정체를 모르지만, 그를 마주쳤을 때의 효과만큼은 널리 퍼져있었다. 물론, 이 경우에는 오래전부터 영원의 세계를 즐겼던 신들에게 해당하는 말이지만.
아무튼.
강설은 지금, 그 노신사와 인상착의가 유사한 인물을 눈앞에 마주하고 있었다.
‘아니, 만상의 노신사가 맞다.’
노신사가 질문을 던진 순간부터 강설은 그렇게 확신했다.
“좋아하는 책 말입니까?”
일단은 에둘러 대답을 유예.
“그래, 들었지 않은가. 혹시 좋아하는 책이 있는가?”
여기서 아니라고 대답하게 한 말도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그 천금 같은 기회를 날려 먹은 플레이어는 땅을 치며 후회했었다.
“물론입니다.”
“호오… 분야가 어떻게 되지?”
선택지가 떠올랐다.
[당신에게 정체불명의 노신사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노신사는 특별한 행동은 하지 않고 당신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어떤 책을 좋아하냐는.]
1. 공학과 제조업에 관련된 기술 서적을 좋아합니다.
2. 마법과 관련된 마법서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3. 신성과 관련된 신앙 서적을 즐깁니다.
4. 다양한 지식이 담긴 잡학서를 읽습니다.
……
선택지의 종류가 워낙 많았기에 눈에 한 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으에엑… 누구?”
진려가 말소리가 들려 강설에게 다가오다가 만상의 노신사를 보고는 당황했다.
“할아버지 누구….”
“허허허… 자네는 나중에. 음… 저쪽으로 가지.”
드르륵…
마치 열람실처럼 책을 읽을 책상과 의자가 준비되어 있었다. 강설과 진려, 그리고 만상의 노신사는 그곳으로 가 앉았다.
스윽…
다리를 꼬는 노신사.
“그래, 답은?”
강설은 메모장을 힐끗하며 대답을 고민했다.
‘얻어야 하는 책들은 기술 서적, 혹은 잡학서나 전기 정도… 그걸 얻으려면….’
그는 하문이 적어준 목록을 바라보다가 문득, 아까의 질문을 되새겼다.
– 혹시, 좋아하는 책이 있나?
여전히, 노신사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좋아하는… 책.’
메모장에 적힌 것은 찾아야 하는 책이다.
그가 좋아하는 책은 아니었다.
‘책… 책이라….’
강설의 책과 관련된 일화는 무궁무진했다.
마물의 둥지에서 찾아낸 고서적이나, 알지 못했던 대륙의 역사가 담긴 기록까지.
그런 것 하나하나에서 다 즐거움을 찾았었다. 노신사에게 답하자면 아마 긴 시간 수집하고 읽었던 그것들 모두를 좋아한다고도 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 한 권의 책.
정말로 좋아하는 책 딱 한 권만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아마도 그 책이겠지.’
뭐니 뭐니 해도 직접 집필한 책을 꼽을 것이다.
직접 집필했으되 그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했으니, 읽어보고 싶기 마련이다.
“…서.”
“음?”
“마법서를 좋아합니다.”
“마법서라… 진리를 탐하는 자의 물건이로군. 그래… 마법서라….”
노신사가 계속 중얼거리고 있자, 진려가 강설 옆에 착 달라붙어서 웃는 낯으로 귓속말을 했다.
“도서관의 망령인 게 분명해요. 쿤나에게 말해 확 뒤통수를 갈기고 도망칠까요?”
– 이 시대 진정한 낭만파 진려.
– 우미관은 나의 것이다.
강설은 피식 웃고 진려에게 속삭였다.
“그러지 말고 진려도 저분과 대화해 보세요”
“에엑… 나이 든 분이랑은 말이 안 통해서….”
“그래도요.”
노신사가 진려를 보며 말했다.
“거기 숙녀분은 좋아하는 책이 있나?”
“수, 숙녀….”
“왜 그러지? 호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숙녀 좋죠…. 저는 진과 관련된 주술서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진려가 한쪽 머리를 귀 뒤로 살짝 넘겼다. 귀밑 목선이 드러나며 상기된 그녀의 피부가 보였다.
– 우미관이 경매에 넘어갔습니다.
– 진려! 칭찬에 약한 타입!
노신사가 다시 강설에게 물었다.
“구체적으로 원하는 책을 떠올려보게. 그 책의 저자라든가, 담고 있는 가치 혹은 그 책 내용의 일부라도 말일세.”
“엥, 왜요?”
“진려.”
“앗. 저한테 물어본 게 아니었네요! 전 조용히 있을게요.”
강설이 턱을 긁적이며 이렇게 답했다.
“음… 기억나는 문구가 있습니다.”
“오! 그거 좋지. 인상 깊었던 문구나 아니… 흔하지 않은 문구라면 뭐든 좋네.”
씨익.
강설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아즈란이 전한다.”
옆에 앉아있던 진려가 고개를 갸웃하며 강설을 보았다.
“아즈란이면….”
그리고 물었다.
“서리 대공님의 존함 아니에요?”
* * *
꽤 오래전, 천상의 일이다.
“마, 만상의 노신사다….”
“거짓말! 뭐야! 방금까지 나와 함께 있었잖아요!”
“독립 공간으로 나뉘었잖아. 그때 갈라진 거고… 아무튼, 만상의 노신사야! 어떡해?”
“다들 이쪽으로 와 봐요! 엘트릭이 만상의 노신사를 마주쳤대요!”
“맙소사!”
“어디! 어디야?”
이때의 강설은 몰랐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만상의 노신사라는 존재 하나 때문에 신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모습은 우스꽝스러웠다.
“지금 눈앞에 있다고! 아니, 그러니까 엘트릭의 눈앞인 건가? 어쨌든… 드디어 나한테도 기회가 온 거야!”
“만상의 노신사가 진짜 나타나긴 하는구나….”
“부럽다… 운도 좋아라.”
“엘트릭은 주사위 운도 좋은 축복받은 말이었어요. 이건 불공평해요….”
“아무튼! 부러움은 나중이고 일단 전략을 좀 짜자고. 좋아하는 책이 있냐고 물어왔는데 뭐라고 답해야 할까?”
“그거 저번에 누가 선택지 정리해놓은 거 있지 않았어요?”
“그 흐름만 죽 따라가면 되겠지?”
“어… 원하는 책에 따라 달라지겠죠?”
신들이 옹기종기 모여 엘트릭이 얻을 책에 관한 토론을 벌였다. 정작 당사자보다 다른 신들이 더 열기를 띠는 기이한 모습.
“대답에 제한 시간이 있는데 어쩌지….”
“잘 골라봐요! 질문도 그때그때 다르고 그에 따라 원하는 대답도 달라진대요!”
“그럼 보상도 달라진다는 소리잖아!”
“그래서, 대체 뭘 원하는 건데요?”
“그야… 최강의 책 아니겠어? 엘트릭은 독서 재능까지 있어! 책에서 깨달음을 얻을 확률도 엄청 높다고!”
“최강의 책? 그딴 게 어딨어요!”
“그래… 기껏 얻은 기회에 찬물 끼얹는 거 같아서 미안한데 기술서 하나로 말의 근본까지 바꿀 수는 없어.”
엘트릭의 주인이 인상을 쓰고 있다는 게 가면 너머로도 느껴졌다. 그는 다른 신들이 자신을 질투하고 있다 여겼다.
“아니… 마법사는 가능해. 최강의 스승 대신, 최강의 책을 보고 배우면 되니까!”
“그래서 그 최강의 책이라는 게 대체 뭔데요?”
“이봐, 읽는 것만으로도 강해지는 건 한계가 있어. 책으로 그 깨달음들을 전부 습득할 수 있다면 이미 엘트릭은 대마법사일 거야. 한데… 아니잖나? 자네 말은 자질이 평범해.”
“조용, 조용하라고! 다들 시기와 질투는 그만하고….”
“누가 질투했다고 그래요옷! 정말 웃겨… 도와줘도 뭐라 그래… 그 최강의 책인지 뭔지 있지도 않은 것 때문에 우리끼리 이렇게 다툴 거예요?”
감정만 상하는 대화들.
엘트릭의 주인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렇게 말을 꺼냈다.
“아니, 있어… 최강의 마법사가 남긴 책이라면 그게 최강의 책이 아니고 뭐겠어?”
“…그건.”
“그렇지? 스노우맨?”
휙…
휘휘휙…
신들의 눈이 멀찍이 떨어져 있던 강설에게로 향했다.
강설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틀린… 말은 아닐지도요.”
“그렇지! 네 말! 조디악의 창시자! 그렇지? 승천에 도전하기 전에 깨달음을 남겼잖아. 판데아 어딘가에 말이야!”
“남겼죠. 만상 도서관에.”
신들이 기함했다.
그 책을 만상 도서관에 남겼다.
누군가 먼저 채가지 않았다면 그 책이 불타거나 소실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만상 도서관!”
“거봐! 내 말이 맞지? 다음 말에게 승계하려고 어디서든 접근할 수 있는 만상 도서관에 책을 남긴 거라고.”
“그런 의도는 아니었지만… 음….”
탐욕으로 번들거리는 눈빛, 엘트릭의 주인은 강설을 쏘아붙였다.
“그것만 손에 넣으면 엘트릭도 충분히 서리 대공처럼 될 수 있어!”
“저기… 이봐, 욕심이 나는 것은 알겠는데… 그건 스노우맨의 물건이잖아. 자네 물건이 아니라고.”
“만상 도서관에 남겨진 물건에 네 물건 내 물건이 어딨어! 이미 그 주인은 승천에 실패했고 남겨진 유산은 세상을 떠도는 물건인데 뭐 어때! 허락이 필요한가? 그래, 자 물건의 주인인 스노우맨에게 허락을 받으면 되는 거지? 내가 만상 도서관에서 그 서책을 노려도 되는 거야, 스노우맨?”
이미 손을 떠난 물건이다.
주인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
엘트릭의 주인이 하는 말은 하등 틀린 것이 없었다. 또한 강설은 그 물건에 딱히 미련이 없었고.
하지만, 그렇다 해서 넘겨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물론이죠. 다만….”
“다만? 설마 거부하려고?”
“아뇨, 그게 아니라….”
“빨리 말해!”
“엘트릭이 그 서책의 내용을 일부라도 떠올릴 수 있을까요?”
“…그, 어….”
신들이 강설의 말을 듣고 무언가를 떠올려냈는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마, 맞아! 결국엔 말이 그 서책의 존재와 내용을 일부라도 알고 있어야 노신사가 찾아줄 텐데?”
“그, 그건…. 스노우맨! 네가 말해주면 되잖아.”
“제가 엘트릭에게요? 어떻게?”
“어… 음… 이런….”
과거의 강설.
눈사람 가면을 쓴 스노우맨이 엘트릭의 주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말이라도 돼서 아즈란의 책 내용을 전해주면 모를까…. 만상 노신사에게서 제 책을 넘겨받을 수 있는 말은 없어요.”
* * *
돌이켜보면, 말이 씨가 된 것 같다.
– 제가 말이라도 돼서 아즈란의 책 내용을 전해주면 모를까….
강설은 과거를 추억하고는 그 기억을 연기처럼 흐트러트렸다.
만상 노신사의 질문은 계속되었다.
그 책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드는지, 책의 다른 내용이나 주제 같은 것들에 대해 계속해서 물어오던 노신사가 질문을 멈춘 건 문답을 주고받은 지 족히 10분은 지나서였다.
“아! 이쪽으로 잠시 따라와 보게.”
“저는요?”
“거기 숙녀분도.”
“참… 그렇게 부르지 마시래도….”
“알았네.”
“그게 편하시면 어쩔 수 없죠.”
성큼성큼 제 갈 길을 가는 노신사.
또 어디서 사다리를 꺼내 온 건지, 나무 사다리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책장과 책장 사이에 선 노신사가 빙긋 웃었다.
“내 키로는 안 닿아서 말이야. 저 위에 있는 책 좀 꺼내주겠나?”
“물론입니다.”
“부탁함세.”
강설이 나무 사다리로 올라가는 사이, 진려가 물었다.
“저는 그냥 있으면 되는 건가요?”
“아니, 왼쪽을 보게.”
“왼쪽을… 어?”
진려가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책장을 확인하는 사이, 강설은 사다리 위에 올라서 노신사가 가리킨 위치에서 책을 찾고 있었다.
“어떤 책을 꺼내드리면 되겠습니까?”
“…….”
“어르신?”
“저… 강설 님.”
강설이 뒤를 돌아 내려다보니 진려가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그 노인이… 사라졌는데요?”
“…….”
“그리고 저에게 이걸….”
진려의 손에 들린 게 무슨 책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그녀가 놀란 모습을 보니 분명 평범한 책은 아닐 것 같았다.
‘진려에게 만상의 노신사가 발동했다. 그렇다면….’
강설이 책장을 빠르게 눈으로 훑었다.
그리고, 이내 다른 책과는 달리 눈에 띄는 서책을 발견했다.
검은 가죽으로 겉표지가 씌워진, 아무런 제목이 적혀 있지 않은 책을.
후우…
강설은 한숨 쉬었다.
그가 원했던 책은 이 책이 아니었다.
‘뭘 기대한 거야… 근데 이건 무슨 책이지?’
사락…
강설이 사다리 위에서 내려오지 않은 채로 책을 펼쳤다.
“음?”
“왜요?”
“…아닙니다.”
책의 앞부분에는 아무런 내용이 적혀 있지 않았다.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은 그는 책의 맨 뒷장까지 단숨에 도달했다.
사라라락…
책의 끄트머리에 뭔가가 적혀 있었다.
‘8 – ㅁ – 901.’
강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책을 꺼낸 책장을 확인했다.
3 – ㅁ – 153.
맨 앞에 오는 숫자는 층계를 의미함이고 ㅁ은 제목의 앞글자, 그리고 뒤에 오는 숫자는 책장의 위치를 말하는 듯했다.
‘설마… 그 책이 8층에 있다는 얘기인가?’
[경이로운 발견! 만상의 노신사를 마주칩니다.]
[만상의 노신사가 당신에게 책을 선물합니다.]
메시지를 보아하니 만상의 노신사는 분명 발동했다.
단지, 강설이 원하는 책의 가치가 3층에서 획득할 수 있는 수준을 아득히 넘어선 모양인 듯했다.
‘이러면….’
야차도 야차였지만, 만상 도서관에 보물이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안 이상 그것도 놓칠 수는 없었다.
‘…8층까지는 올라가 봐야겠어.’
어쩌면 그곳에, 서리 대공 아즈란의 심득을 담은 서책이 남겨져 있을지도 몰랐다.
“진려.”
“…….”
“진려?”
“아… 아아! 네!”
“원하는 건 얻었습니까?”
진려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네!”
“그럼 위층으로 가죠. 이곳에서 얻을 건 다 얻은 것 같습니다.”
“좋아요!”
진려는 생글생글 웃으며 강설의 사다리를 붙잡아 주었다.
저벅…
저벅…
빛이 새어 나오는 문을 향해 걸어가는 둘.
화아악…
다음 층계가 그들을 반겼다.
입구에는 표지판이 놓여 있었다.
“표지판… 있어요! 이번엔 있어요!”
“…그리고 다른 것도 있네요.”
“…네? 어? 어어? 저게….”
끼기긱…
끼긱…
엄청난 크기의 거병이 도서관 정중앙에서 책장을 무너트리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콰아앙!
강설과 진려가 서로를 쳐다보고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하는 의문을 품었다.
그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이보게들!”
“조네! 목소리를 낮추십시오. 거병이 듣습니다.”
“그럼 어떻게 부르라는 소리야?”
“그건… 음? 저 청년… 어디서 본 듯하군요.”
“보기는 어디서 봐? 만상 도서관에서 처음 보는… 어라?”
예전에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
“프래넌? 그 애꾸 천칭 놈의 제자잖아!”
“정말이군요. 이런 곳에서 마주칠 줄이야.”
강설이 고개를 까딱이며 물었다.
“전갈… 양?”
“조네와 산티오다! 다행히 우리 얼굴을 알아보는군, 그래!”
갑자기 만상 도서관의 4층에서 마주하게 된 전갈자리 마탑의 탑주 조네와 양자리 마탑의 탑주 산티오까지.
심지어 도서관의 한 층을 마구 때려 부수고 있는 거병까지.
강설이 의심 어린 눈초리로 조네를 바라보자 그가 황급히 말했다.
“나, 망령 아닐세!”
그렇다면.
강설은 이 모든 상황을 설명해줄 만한 건 그의 눈앞에 있는 표지판밖에 없을 거라 판단했다.
“…이런.”
표지판을 읽어내려가던 강설이 인상을 찡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