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293
제292화
콰지지지지지직!
벼락이 깃든 검은 창은 거병의 회갑에 가로막히지 않고 그대로 바닥까지 뚫고 지나갔다.
“맙소사….”
“피해!”
파지지이이이이이이익!
검은 창에서 뿜어져 나온 막대한 기운은 거병을 말 그대로 박살 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도 인근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휑하니 뚫린 것처럼 보이는 4층 바닥.
스르륵…
그리고 뚫린 구멍은 순식간에 메워졌다.
“이, 이게 무슨… 뭘 끄집어낸 건가….”
강설을 제외한 모두가 진려를 쳐다보았다.
“그게… 북방에 전설처럼 널리 알려진 용군주의 애병을….”
“아이쿠! 이런 미친 작자가 지금까지 옆에 있었다니!”
“실수로 용군주라도 소환했다면, 모두 죽었을 겁니다.”
“그래서 쿤나에게 확인했는데….”
“그 쿤나가 누군가?”
“진이에요!”
진이 확인해주었다는 말에 조네와 산티오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흠흠… 그랬군. 진이 확인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미친 짓이었을 걸세.”
진려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런데 검은 창은 어디 갔죠? 가짜이긴 하더라도 실물로 보고 싶은데….”
“사라졌네. 문제가 심각할수록 빠르게 처리된다고 했으니….”
“실물로 보고 싶었는데….”
“말도 말게. 간 떨어질 뻔했으니. 무, 물론 나도 그 창을 실제로 보고 싶지 않다는 말은 아니네.”
“이야… 정말 가슴이 두근거리게 한다니까요?”
“그렇지, 그렇지…. 아니, 이게 아니지. 아무튼, 일이 잘 풀려서 망정이지! 내 손녀였으면 벌써 종아리가 남아나질 않았을 걸세!”
언젠가 되찾아야 하는 용군주의 유지.
그의 검은 창은 민간에 알음알음 전해져왔을 정도로 대단한 기물이었다.
‘휘두를 수 있었을까?’
아니.
창이 소환된 순간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곧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여러모로 제약이 걸려 있으니까 말이지.’
검은 창엔 여러 가지 제약이 걸려 있었다.
때문에, 당장 눈앞에 나타난다고 해서 그것을 쉽게 휘두른다거나 할 수는 없었다.
강설이 생각에 잠긴 사이, 조네와 진려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그 책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있는 거지?”
“그야 아주 유명한 사람이잖아요? 용군주는?”
“흠흠….”
“용에게서 뭔가를 빼앗은 유일무이한 사람인데 어떻게 관심이 없겠어요. 안 그래요? 이미 북방에선 신처럼 떠받들어지는 사람인데….”
“자네 말이 일리가 있군. 날개 산맥이 북방에 있다는 걸 내 잠시 잊었어. 북방에서 나고 자란 거군? 진과 계약까지 한 것으로 보면.”
끄덕…
진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이 거병이 틀어막고 있는 사이에 아무것도 얻질 못했으니 뭘 좀 뒤져봅시다.”
산티오의 말에 모두 동의하고 원하는 책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거인의 잔해는 시간이 조금 지나자 먼지처럼 흩날려 사라졌다.
강설은 앞으로의 일에 대해 고민하며 목록에 적힌 책을 수색했다.
스윽…
한 권.
스윽…
또 한 권.
‘음?’
의외로 수색에 속도가 붙었다.
‘한 권도 얻기 힘들 줄 알았는데….’
5층 미만에서 목록에 존재하는 모든 책을 얻었다.
“어엇! 저 다 찾았어요!”
행운이 따랐는지 진려까지 성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들은 일찌감치 수색을 끝내고 조네와 산티오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문득, 강설은 한 가지 의문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저들은 대체 왜 만상 도서관에 온 거지?’
산티오는 대답을 회피할 것 같아 조네에게 다가갔다.
“조네 님.”
“음… 없네, 없어. 역시 저층엔 없는 건가? 근데 이 용도를 알 수 없는 전이 마법의 흔적은 뭐지? 술식이 허술한 걸 보니 내가 만들어낸 건….”
“조네 님.”
“아, 말하게. 정신이 딴 데 팔려서 그만….”
“만상 도서관엔 어떤 이유로 방문하신 겁니까?”
“…그게 궁금했던 거로군.”
“예.”
조네가 구레나룻을 긁적이다 답했다.
“실은… 성취가 벽에 가로막혀 이곳을 찾은 걸세.”
“…네?”
조네는 명실상부 대마법사다.
성위의 마법사였던 프래넌도 대단해 보였었는데 그보다 높은 지위를 부여받은 마탑주가 바로 조네였다.
물론 프래넌은 성위의 마법사 중 매우 이례적인 힘을 선보였고 또 지금은 마탑주가 되었으니 기준으로 삼기에는 애매하긴 하지만.
아무튼, 마법사로서는 남부러울 것 없을 위치의 조네와 산티오가 벽에 가로막혀 만상 도서관을 찾았다니.
– 오호호호… 노인네들이 여전히 팔팔하군요.
이 목소리는 꽤 오랜만에 들어보는 목소리였다.
‘…보르누일?’
– 허허허… 오랜만입니다.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우르의 정신 중 일부를 담당하는 전(前) 천칭 보르누일.
과거 알카트론에서 우르에게 정신지배를 당했던 그는 프래넌에게 목숨을 잃은 후, 우르의 몸을 함께 쓰고 있었다.
정확히는 우르가 허튼 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하는 억제제라고 볼 수 있었다.
살아생전에 미뤄두었던 잠을 우르의 몸을 깃들어 잘 생각인지,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깨어나지 않았다.
아마도 만상 도서관의 특이한 기운이 그를 깨운 것 같았다.
– 긴 잠을 잔 것 같군요. 우르가 바쁘게 움직인 탓에 저는 할 일이 없었으니…. 그건 그렇고 만상 도서관이라… 오호호, 마법사들이니 이곳을 지나칠 수 없었겠죠.
보르누일이 무어라 말을 하는 사이, 조네와 산티오가 그들이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몇 년째 마력만 조금 늘어났을 뿐, 진전이 없던 차에 만상 도서관이 출몰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네. 알다시피 마법사들은 욕망에 솔직한 편 아니겠는가? 업무는 부관들에게 맡겨두고 곧장 이곳으로 향했지.”
“표현이 과격하기는 하나 조네의 말은 사실입니다.”
“그럼 두 분은 따로 원하는 책이 있는 겁니까?”
“그건….”
조네와 산티오가 서로 눈치를 보며 대답을 회피했다.
– 보나마나 아즈란의 저서를 얻으려고 온 것이군요. 그들과 비슷한 성질의 마법사 중 정점에 올랐던 이는 그뿐이니까요.
‘원하는 물건은 비슷하다는 건가?’
…양보할 생각은 없었다.
“그것까지는 말해줄 생각이 없네.”
“늙은이에게도 비밀은 있는 법이니까요.”
강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래, 올라가자고.”
그렇게 올라가려는데, 강설이 잠시 멈칫했다가 조네를 뒤돌아보았다.
“조네 님.”
“어, 어어? 왜 그러나?”
강설은 조네에게 무언가를 부탁했다.
조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으흠… 일리가 있어.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그럼 잠시 기다리게.”
잠시 후, 강설이 부탁한 일을 끝마친 조네가 가까이 왔다.
“끝났네. 그럼 가지.”
“예.”
* * *
저벅… 저벅…
츠즈즈즈즈…
5층.
표지판에는 휴게실이라는 글자가 떡하니 적혀 있었다.
완벽한 원을 그린 듯 사방이 둥글게 형성되어 있었고 책장은 텅 비어 있었다.
강설은 조금 불안했다.
‘아무도 도착하지 못했으면 어떡하지?’
2층의 독립 공간부터 따로 갈라져 나왔으니 아마도 휴게실에 도달하기 전까진 그들을 마주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불투명했다.
탑주씩이나 되는 노인네들이 몇 달이고 저층에 붙잡혀 있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이런 걱정은 단순한 기우가 아니었다.
강설이 이런 불안을 가지고 휴게실의 중앙으로 접근하는데, 저 앞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왔다! 강설! 왜 이제 왔어!”
“치우?”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은 길어질 수도 있겠다 걱정했는데… 다행이구나.”
치우와 설홍이 가장 먼저 강설을 환대했다.
“저도요! 저도 있다고요!”
“아, 진려구나….”
“치우 님! 그거 좀 그래요! 말끝 흐리지 마세요!”
치우와 설홍의 앞에 앉아있는 남자.
“오셨군요.”
“하문. 언제 도착한 겁니까?”
“저희도 조금 일찍 도착한 정도입니다.”
“다행이군요.”
“그런데… 뒤쪽에 계신 두 어르신은?”
강설의 뒤로 걸어오는 조네와 산티오.
“누굴까~요?”
진려가 괜히 장난스럽게 묻자, 설홍과 치우가 잠시 고민하다가 화들짝 놀란 후 물었다.
“혹시 마탑의….”
“클클클… 그래도 어딜 가나 알아보는 건 이 친구의 생김새 때문인가?”
“만만치 않습니다, 조네.”
“어떻게….”
마탑의 탑주인 조네와 산티오가 만상 도서관에 있는 것이냐는 질문을 저 한 단어에 함축하는 설홍.
조네와 산티오는 일전에 강설에게 말했던 일화 그대로를 전달했다.
“그랬군요… 혹, 성과를 얻으셨습니까?”
“그랬다면 곧바로 되돌아갔겠지. 이곳까지 올 생각도 하지 않았을 테고. 그런데 자네들….”
조네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이렇게 한데 모여 있으니 알 것 같군. 기운이 심상치 않아.”
“그렇군요. 천칭의 제자야 일전에 보았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이들은….”
그들의 말대로 치우와 설홍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범상치 않을 것이다.
강설도 이따금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었으니까.
‘그건 하문도 그렇고.’
하문도 노비라에서 만남을 이어갔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것은 무력과 관련되어 있다는 느낌보다는 사람이 뿜어내는 존재감 그 자체라는 느낌이었다.
조네와 산티오가 의문을 품는 건 당연했다.
이에 대해 그들이 묻자, 설홍과 치우는 친절하게 설명했다.
“오호! 그랬군! 용제의 후손들이었구만 그래.”
“범상치 않다 싶었습니다. 한데 여기엔 무슨 일로?”
현재, 대제국 칸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와 관련해 얘기를 풀어놓자 조네가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흐음…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런 일이….”
“확실히 위협이 될 만한 상황이군요.”
서로에 관한 담화는 여기까지.
다음은 이곳에 왔던 목표까지 얼마나 가까이 도달했는지에 대한 점검이었다.
“이거….”
“다 찾은 거 맞죠? 다 찾았는데?”
놀랍게도 하문이 원했던 책들은 5층에 도달하기 전, 모두 찾았다.
“이러면….”
“돌아가면 되는 건가요?”
하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에게 더는 만상을 오를 이유가 없군요. 이만 되돌아가서….”
“…하문.”
강설이 일행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조금 더 올라가 보겠습니다.”
“응? 여기서 더?”
치우가 눈을 깜빡이며 되물었다.
하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원하는 게 있으신 거군요.”
“그렇습니다. 아직, 확인해봐야 할 게 남았습니다.”
“흐음… 그럼 우리는 여기서 갈라지는 게 나을 것 같군요. 어차피 쓰러진 마령을 깨우기 위해선 그에 맞는 준비가 필요하니까요. 저는 먼저 돌아가서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른 분들은…?”
진려가 먼저 말했다.
“아, 저는 돌아가도 상관없어요. 신기한 책을 하나 얻어서….”
진려도 만상 노신사를 만나 수확이 있었으니 빨리 돌아가 그것을 파헤쳐보고 싶을 것이다.
설홍과 치우가 잠시 고민하다 이렇게 답했다.
“우린 돌아가겠다.”
“돌아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사실, 그편이 마음이 놓였다.
함께 싸울 수만 있다면 당연히 든든한 존재들이었지만 만일 또 독립 공간으로 인해 떨어지게 된다면 이 위층부터는 위험할 수 있었다.
설홍이 다가와 강설의 손을 잡았다.
“강설.”
“기다리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설홍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네게 중요한 일이라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 내게 돌아온다는 것만 약속한다면.”
설홍이 굳은 표정으로 그렇게 묻자 강설이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답했다.
“…금방 마치고 돌아가겠습니다.”
씨익…
“그러면 되었다. 기다리겠다.”
강설에게 서적을 건네받고 만상 도서관의 휴게실에 따로 마련된 출구를 통해 빠져나가는 일행들.
졸지에 강설과 노인 둘만 남았다.
– 갑자기 제가 제일 싫어하는 그림이 나왔습니다.
– 화사했잖아! 방금까지 화사했잖아!
– 분위기가 썩어들어가고 있군요.
강설과 칙칙한 분위기의 노인들이 방금까지 다른 일행이 앉았던 탁자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강설도 조용히 눈을 감고 앞으로의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와중, 우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런데 그 아즈란의 저서라든지 그건 대체 뭐 하는 물건이길래 저 다 늙어빠진 것들이 노리는 거지?
대답은 강설이 아닌 보르누일이 했다.
– 아즈란은 그 고약한 마법사들을 하나로 뭉치게 한 역사에 남은 마법사랍니다. 실제로 그의 마법적인 역량은 역사상 그 어떤 마법사보다도 뛰어났다고 평가되어 많은 이들이….
– 이봐, 역사상 가장 뛰어난 마법사라니. 감히 이 몸이 있는데….
– 우르, 당신은 마도사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오호호!
– …그렇군. 그렇다면 하찮은 마법사라는 꼬리표 정도는 얼마든지 내어줄 수 있지. 근데, 만상 도서관에 놈이 남긴 물건이 있는 모양이야?
보르누일이 차분하게 우르에게 설명했다. 의외로 둘이 대화가 통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 그 위대한 마법사가, 세상으로부터 사라지기 전 만상 도서관에 들렀다는 소문이 항간에 떠돌았었습니다. 그 때문에 목숨이 아까운 줄 모르고 만상 도서관에 도전했던 이들이 무수히 많이 나왔었죠.
– 흥… 기껏해야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호들갑을 떨었을 거다.
우르는 여전히 서리 대공이 어느 정도의 인물인지 가늠하지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적당한 비교 대상을 정해주는 게 좋을 것 같아 강설이 그에게 말했다.
‘우르, 아즈란은 허무를 만들어낸 불사라는 자에게도 밀리지 않았었어.’
– 뭐? 그게 정말이냐?
‘응. 특히 마법에 관해선 독보적이었어.’
자신의 입으로 자신을 칭찬하는 건 조금 이상한 기분이었다.
– 흐으음… 재밌구나. 놈이 남긴 물건도 궁금하고 말이야. 안 그래도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에는 힘이 조금 달린다 싶었는데, 마침 잘 되었다.
‘…응?’
– 놈이 남긴 것을 이 몸에게 가져와라. 이 몸이 그 아즈란보다 더 위대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지.
‘아, 응….’
강설도 순간 우르의 말을 듣고 정신을 차렸다.
우르는 최초의 마도사이자 확인되진 않았지만 과거에 엄청난 힘을 지녔던 존재다. 그런 자에게 최강의 마법사인 서리 대공의 유산이 전해진다면 어떻게 될까?
‘무슨 망상을…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은데.’
강설이 그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산티오가 말을 걸어왔다.
“이 앞으로 나가기 전, 미리 경고해두는 게 좋겠군요.”
“경…고?”
“만상 도서관에 들어오기 전, 조네와 최근 기록들을 살폈었습니다.”
“아, 그거 말하는 거군! 그래, 맞아. 산티오와 나는 기록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고개를 갸웃하는 강설.
산티오가 수상한 기록들에 대해 얘기했다.
“만상 도서관에 도전하는 이들은 흔하지는 않지만 드물지도 않죠. 특히나 목적을 가지고 도전하는 이들은 꽤 훌륭한 성과를 거둬왔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는… 그렇다고 봐야 했었죠.”
“얼마 전까지는? 그게 무슨….”
“한 놈도 없어.”
“네?”
“휴게실에서 도로 되돌아온 놈들 말고, 이 앞으로 나아갔던 녀석들 말이야. 그놈들 중 살아 돌아온 녀석들이 단 한 녀석도 없어. 그래도 예전엔 적어도 6층까지는 다녀왔다는 녀석이 드문드문 있었었는데 이상한 일이지?”
산티오가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로 말했다.
“이 위층에 무언가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드르륵…
강설이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굳이 지레 겁을 먹는 건 사양하고 싶은데… 안 가십니까?”
“…큭큭, 젊음이 좋단 말이지.”
“참고로 조네는 겁을 잔뜩 먹었습니다. 혹시 그가 로브에 실례를 하더라도 동문으로서 못 본 척….”
“아니야!”
“겁이 없는 겁니까?”
“아니! 실례는 안 할 거라고! 겁이 나기는 해!”
강설이 물었다.
“겁이 나는 데도 나아가시는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그야 멈춰 있는 게 더 무서우니까 그렇지! 자네도 노인이 되면 알게 될 거야. 고장 난 시계가 돼서 초침이 앞으로 가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가자고!”
조네와 산티오, 그리고 강설은 다음 층을 향해 나아갔다.
* * *
6층.
아니, 6층이었던 층에 도달한 그들은 잠시 당혹스러운 눈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게 대체….”
“전부 부서져 있군요. 그리고 이 끔찍한 기운은 대체….”
표지판은 이미 어딘가에 나뒹굴고 있을 것이다.
“아… 이런.”
“조네?”
“이제 알겠군.”
“예?”
“4층에서 발견했었던 조잡한 전이 마법의 흔적 말이야.”
분명 조네는 4층에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 근데 이 용도를 알 수 없는 전이 마법의 흔적은 뭐지? 술식이 허술한 걸 보니 내가 만들어낸 건….
“그게 지금….”
“큰 상관이 있어. 우리가 경험했던 4층의 이용수칙을 누군가 6층의 것과 뒤바꾸려 한 모양이야.”
“…어째서요?”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겠지. 누군가를 되살린다거나 보물을 얻기 위해. 멍청한 자식!”
“결과는요?”
“반만 성공한 것 같군. 6층의 이용수칙이 4층의 이용수칙으로 변경된 듯한 흐름이 남아 있어. 그 충격이 7층까지 전해져서 아예 무너졌군그래. 6층과 7층이 합쳐졌어.”
즉, 강설 일행은 지금 6층이 아니라 6-7층에 와 있는 것이다.
그들은 조금 더 걸어가서 조네의 반만 성공했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확인했다.
“저게….”
“맙소사….”
커다란 마수가 잠든 채로 그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아마 이용수칙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은 모양이야. 애초에 저 끔찍한 마수를 소환할 목적은 아니었던 것 같으니. 절대로, 우리는 책을 펼쳐서는 안 되네. 이번엔 아예 공간 전체가 붕괴할지도 모르니 말이야.”
산티오도 미간을 찌푸렸다.
“곳곳에 보이는 혈흔으로 보건대… 6층에 도달한 이들을 저 마수가 전부 잡아먹은 모양입니다. 6층부터 소식이 없던 이유가 있었군요. 놈이 사라질까요?”
“큰 기대는 안 하는 게 좋지. 조잡한 마법 때문에 전부 꼬였으니 놈이 천년만년 살더라도 이상할 게 전혀 없어.”
조네가 한탄했다.
“…음, 척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녀석인데 뭔가 방법이… 응? 이보게?”
“…….”
“왜 그러나?”
강설은 조심스럽게 마수의 측면으로 향했다.
엎드려 누워있었기에 고개가 있는 방향으로.
“이, 이보게….”
“무슨 짓을 벌이려고….”
가만히 잠든 마수를 관찰하던 강설을 싱긋 웃으며 물었다.
‘맞는 것 같지?’
– 기가 막힌 일이군.
강설의 물음에 전해져온 우르의 대답.
–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나 마주치게 될 줄이야.
검고 흉악한 모습.
그 위엄 넘치는 털과 존재만으로 떨게 만드는 송곳니까지.
마수는 누군가와 닮아있었다.
‘쟈마드, 할 수 있지?’
– 어렵지 않다. 이미 전례가 있으니 말이야.
연신 싱글벙글하는 강설의 모습에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조네와 산티오.
“저기….”
“떨어져 계십시오.”
“뭐, 뭘 하려고 그러는가!”
“쉬이….”
강설이 이렇게 나오자 멀찍이 물러나는 둘.
파지지지직…
밤까마귀로 변한 강설이 손뼉을 쳤다.
짜아아악-!
크르르르…
박수 소리에 잠에서 깬 마수.
아직 잠이 덜 깬 것인지 비척거리며 일어나는 모습.
강설은 마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와, 코코.”
[환상수 소환 : 그림자 늑대가 발동합니다.]
[지속 : 깜짝 출현이 발동합니다.]
[행복한 코코가 쟈마드의 능력에 영향을 미칩니다.]
“혹시 아는 얼굴이니?”
커어엉-!
코코는 소환되자마자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짖어댔다. 자신과 똑 닮은 그림자 늑대를 바라보며.
6층과 7층을 떡하니 가로막고 있는 늑대는 코코와 마찬가지로 그림자 늑대였다.
“아는 얼굴이면 말 좀 잘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