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299
제298화
가정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펼쳐졌다.
가까스로 가장 위험한 인물이었던 브란카를 제압, 만상의 힘을 통해 판데아를 손에 넣으려던 그의 계획을 저지하나 싶었는데 정작 만상의 관장이 깨어나 8층의 모든 생명을 소멸시키겠다 말했다.
만상의 관장은 척 봐도 말이 통할 상대는 아닌 것처럼 보였다. 감정이 없는 기계였으니까.
– 지금은 기력도 없는데… 우리까지 휩쓸 모양이다. 일을 과격하게 진행하는군.
쟈마드도 강설도 금술의 여파로 휘청이는 상황. 잘해봐야 한두 번의 공격을 더 감행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관장은….’
몸 상태가 멀쩡했다 한들, 관장을 정면으로 상대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는 어떻게 보면 이 도서관의 신 같은 존재였다. 질서를 바로잡고 벌을 내리는 신.
‘관장은 일을 바로잡는 것보다 우선해서 전부 없었던 일로 만들 셈이야!’
강설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저 밑을 바라보았다.
브란카는 밤까마귀의 일격으로 저 밑으로 굴러떨어진 상황.
그가 온전한 상태로 존재했다면, 관장의 폭주를 막기 위해 움직였을 것이다.
브란카가 없는 이상, 관장의 계획은 강설 일행이 막아야 했다.
‘아직… 아직 끝이 아니다.’
지금의 상황은 상정할 수 있던 최악의 상황.
다시 말하면, 미리 대비할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강설은 다급히 두 대마법사를 불렀다.
“조네! 산티오!”
대답은 곧바로 들려왔다.
“이미 준비 중일세! 말 시키지 말게!”
조네와 산티오는 트롤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미 트롤들의 관심은 모두 관장에게 쏠린 상황.
‘조네와 산티오의 시간을 벌어야 해.’
바로 그때.
지이이이잉…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저 멀리 수평선쯤, 하늘에서 수직으로 빛이 떨어져 내렸다. 그것은 마치 둥글게 세상을 감싼 것처럼 보였고 점차 이 설산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 8층, 생명 완전 소멸 진행 중.
저 빛에 닿으면, 모두가 사라질 것이다. 빙하아귀도 설산도 그리고 강설 일행도.
‘막아야 해!’
움직이려던 강설보다, 먼저 행동에 나선 이들이 있었다.
바로 빙하아귀 트롤들이었다.
“죽여라!”
“기계를 쓰러트려라!”
우르르 몰려나오는 엄청난 수의 트롤들.
하나같이 덩치는 거대해 단신으로도 관장에게 피해를 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죽여!”
콰아아앙!
콰지직!
그러나 그것은 단편적인 모습일 뿐, 실제로는 그 양상이 꽤 달랐다.
“으아아악!”
“쿨럭….”
콰아앙!
관장이 가볍게 휘두른 팔에 나가떨어지는 트롤. 모두 일격에 절명했다.
그러나, 그것이 공포감을 자아낸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트롤들은 죽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관장을 향해 내달렸다.
“브란카 님이 올 거다!”
“그때까지 기계를 막아!”
마치 그 모습은 트롤들의 생명력을 보여주는 듯했다.
이성이 있는 자라면, 죽기 위해 뛰어들 수 없었다. 그러나 야만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이성이 할 수 없는 일을 대신했다.
끼긱… 끼기긱…
우악스럽게 달라붙는 트롤들.
“주술사들을 보호해라!”
“제압해!”
이 추위에 대책 없이 뛰어들면 아무리 빙하아귀라 해도 죽음으로 치닫기 마련이다. 물론, 그들이 겪는 죽음의 이유는 혹한보다 전투일 확률이 훨씬 높았지만.
그들이 이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관장에게 다가가면 죽는다.
그러나, 그 사실을 빙하아귀가 안다 해서 그것을 멈출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카아앙!
카아아앙!
“죽어! 죽어라!”
푸화아아아악-!
“꺼… 꺼어억….”
관장의 팔이 트롤의 복부를 관통했다.
으직…
내장을 모두 잃은 트롤은 그 상태로 관장의 팔을 꽉 붙잡았다.
쩌저저적…
관통당한 트롤의 피와 시체가 얼어붙어 관장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그 광경을 목격한 트롤들의 눈빛이 변했다.
만약, 관장에게 생명이 있었다면 그 눈빛을 보고도 싸울 생각을 품지는 못했을 것이다.
“놈이 틈을 보였다! 지금이다!”
“으아아아아아!”
우르르 몰려들어 관장의 몸체에 자신의 시체를 끼워 넣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트롤들.
빙하아귀가 어떻게 극지를 지배했는지, 강설과 두 대마법사는 그 모습을 보며 이해할 수 있었다.
이들은, 야만의 은총을 받은 자들이다.
콰직!
콰지지직!
그러나 관장은 격이 다른 존재.
브란카가 없다면 이미 물리적인 힘만으로도 빙하아귀를 절멸시켜버릴 만한 괴물이었다.
– 완전 소멸 진행 중, 20%…
전투를 이어나가는 사이 이미 8층의 세계 중 1/5이 사라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빛무리가 세계를 지워나갈 때마다 거무스름한 잔재가 그 근처를 떠돌았다.
강설의 선지안은 그 검은 잔재가 무엇인지 곧장 알아채게 해주었다.
‘문자….’
– 극지의 풍경은 그 어떤 곳보다도 새하얗…
문자가 되어 사라지는 세계.
강설은 이렇게 끝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지만, 막상 겪게 되니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빛무리는 저 끝에서부터 어둠을 밀어냈지만, 그 빛은 결코 따스하거나 상냥하지 않았다. 정해진 일을 진행할 뿐이었다.
퍼어억!
퍼어어억!
시체 덩이로 변해가는 빙하아귀.
덜컥…
거칠 것 없이 팔다리를 휘두르던 관장이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이 잠깐의 망설임을 만들어낸 존재를 쳐다보았다.
“멈춰.”
밤까마귀가 관장의 한쪽 팔을 붙잡고 있었다.
콰지이이익!
그리고 그 주먹으로 관장의 복부를 후려쳤다.
푸시이이이…
어느 정도 먹혀들긴 했지만, 이 정도로는 관장을 멈출 수 없었다.
후우우우웅-!
“크윽….”
내던져지는 밤까마귀.
그는 눈밭을 데구르르 구르고 다시 일어섰다.
‘제길… 조네, 산티오! 어서!’
두 대마법사가 이곳까지 빛무리가 도착하기 전에 마법을 완성할 수 있을까.
– 완전 소멸 진행 중, 50%…
이미 절반의 세계가 사라졌다.
슬슬 빛무리가 설산 가까이로 다가오고 있었다.
빙하아귀가 절규했다.
“이럴 수가….”
“모든 게 이렇게 끝나다니!”
“브란카는 어디 있는가!”
팟-!
밤까마귀는 또 한 번 움직였다.
할 수 있는 모든 건 다 해야 했다.
콰직-!
이번에도 역시 관장의 팔을 붙잡고 늘어졌다.
지금 밤까마귀를 통제하는 건 강설이 아닌 쟈마드였다.
으드드득…
관장은 반대쪽 팔을 치켜들어 밤까마귀를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움찔…
철컥… 철컥…
반대쪽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순간, 빙하아귀들이 전부 달라붙은 것인가 하여 그쪽으로 시선을 보내는 밤까마귀.
그러나 반대쪽 팔에 붙어있는 트롤은 단 한 명뿐이었다.
기어코 설산을 기어 올라온, 브란카였다.
“하아… 하아… 쟈마드. 이 브란카가 너와 같은 시대를 살았더라면… 우리의 운명은 조금은 바뀌었을까?”
“글쎄… 이 몸의 오른팔 정도는 시켜줬을지도?”
“푸… 크하하하하하!”
“그리고 지금은 이런 시시껄렁한 얘기를… 크으윽!”
콰직-! 콰직-!
브란카와 밤까마귀를 떨어트려 놓기 위해 팔을 땅에 부딪히는 관장.
그 행동을 저지하기 위해 다시 우르르 몰려드는 빙하아귀 부족원들.
“브란카!”
“대족장을 지켜라!”
그런데도 둘은 그 충격을 견뎌내었다.
브란카가 서서히 힘이 빠져나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하나의 죽음으로 끝내다오.”
“…뭐?”
“남은 부족원들은… 내 계획과는 무관하다. 살아가게 해다오.”
“…….”
“부탁이다.”
그 목소리는 너무도 또렷이 들렸기에, 부족의 전사 중 한 명이 듣고 화를 내며 물었다.
“브란카! 죽을 작정이냐! 네가 없으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나!”
“도망치지 마라!”
“우리에게 싸울 이유를 다오! 무엇을… 무엇을 위해….”
쟈마드가 답했다.
“…노력해보지.”
“그럼… 네게 걸어보겠다.”
파아아악!
충격으로 튕겨 나가는 밤까마귀.
한 손이 자유로워진 관장이 브란카의 한쪽 다리를 붙잡았다.
검은 잔재가 떠올랐다.
– 위대한 빙하아귀의 대족장 브란카. 그의 전설적인 면모는…
다리가 문자처럼 변해 허공으로 사라지려 했다.
“푸흐흐… 도망치는 게 아니다. 길을 터주는 거다.”
“브란카!”
“미래를 위해 싸워라. 트롤이여.”
브란카의 눈이 새파란 불꽃으로 타올랐다.
휘오오오오-!
[브란카가 금단 주술 : 얼음 무덤을 사용합니다.]
[얼음 무덤은 좁은 범위에 막대한 양의 냉기 피해를 입힙니다.]
[가장 가까운 적에게 피해량에 비례한 상태 이상 : 동결을 부여합니다.]
[시전자 또한 상태 이상 : 동결에 빠집니다.]
[피해에 냉기 관통이 적용됩니다.]
[시전자는 얼음 무덤의 피해에 면역입니다.]
[금단 주술은 시전자의 생기를 그 제물로 합니다.]
쩌저저저저저저저적-!
관장과 함께 얼어붙는 브란카.
그 난폭하던 관장이 옴짝달싹 못 한 채로 얼어붙어 갔다.
좁혀오던 빛무리가 잠시 멈추었다.
“브란카….”
그러나.
쩌적…
콰지직-!
브란카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관장의 한쪽 팔이 얼어붙지 않았다.
– 부분 동결 확인. 정상화 시도.
“큭큭… 그러니까 금술은 그렇게 쓰는 게 아니라니까.”
다시금 절망적인 상황이 펼쳐지려는 순간,
대마법사들이 소리쳤다.
“지금! 준비됐네!”
밤까마귀가 미소 지었다.
“그래도, 잘했다. 마무리는 내가 하지. …시작해라!”
부우우우웅…
산티오의 주변으로 마법진 수 개가 떠올랐다.
휘오오오오오…
그것들은 빙글 회전하며 산티오의 앞에 직선으로 모였다.
산티오의 양 머리가 크게 부풀었다.
[산티오가 절기 : 천체 정렬을 사용합니다.]
[마법의 관통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마법 면역을 무시합니다.]
“하나 더!”
지이이이이이잉-!
[산티오가 절기 : 노곤노곤을 사용합니다.]
[상대의 마법 저항력을 대폭 하락시킵니다.]
[마법 관통력에 영향을 받습니다.]
[마법 면역을 무시합니다.]
휘오오오오오오…
눈보라와 함께 휘황찬란한 빛에 휩싸이는 관장.
“간다!”
조네의 망토가 거세게 휘날렸다.
[조네가 절기 : 전갈 문을 사용합니다.]
[대상을 전이시킵니다.]
[징표와 연결된 전이로를 형성합니다.]
[성공 확률은 대상의 부피와 마법 저항력에 영향을 받습니다.]
별자리로 형성된 전갈이 관장이 디딘 바닥을 꼬리로 후려쳤다.
콰아아아아앙-!
“성공일세!”
이미 4층에 도달했을 때부터 관장과 충돌이 일어날 경우를 가정했던 강설.
그는 조네와 만났을 때부터 관장을 상대할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 저 거병을 전이 마법으로 다른 층계로 전이시키는 건 어떻습니까?
– 저만한 크기를? 불가능해.
– 어째서죠?
– 저만한 크기를 전이시키려면 징표를 그려놔야 해. 미리 지정된 공간으로 전이시키겠다 표시해두는 거지. 이건 마법적인 의식이라 거스를 수 없어.
거기서 힌트를 얻었던 강설은, 4층을 떠나기 전 조네를 불러세웠다.
– 조네 님.
– 어, 어어? 왜 그러나?
– 이곳에 혹시 전이 징표를 남길 수 있습니까?
강설의 말을 잠시 듣던 조네가 그 부탁을 수락했다.
– 으흠… 일리가 있어.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그럼 잠시 기다리게.
그 결과, 지금 만상 도서관의 4층으로 이어지는 전이문이 관장의 발밑에 생겨난 것이다.
“잡았다! 놈을… 이런!”
조네가 무언가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쩌저적-!
파직!
한발을 내디뎌 문에서 벗어나는 관장.
이미 얼음 무덤의 효과가 다한 듯싶었다.
강설이 관장을 향해 내달렸다.
“그만 좀…. 커헉….”
푸화아악-!
강설의 몸을 뚫고 나오는 관장의 팔.
“안 돼!”
그러나, 곧 꿰뚫린 강설의 몸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검은 연기 뒤에서 그의 본체가 나타났다.
우지지지직-!
거대해진 팔.
“떨어져!”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관장의 몸이 뒤로 기울었다.
휘이잉…
콰아아아아아앙-!
전갈 문을 통해 4층으로 떨어지는 관장. 꿈틀거리는 것이 곧장 다시 일어날 것처럼 보였다.
강설은 전갈 문으로 다가가 품을 뒤적였다.
그가 품에서 꺼낸 책은 4층에서부터 챙겨 올라온 책이다.
저자는 조네 프리아.
– 그러니까, 이 책의 서장을 열면 인간의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서리 마법사가 튀어나온다는 것이죠?
– 바로 맞췄지. 어떤가?
강설이 전갈 문에 손을 집어넣은 후, 책을 펼쳤다.
그는 책에서 뭔가가 흘러나오는 듯한 느낌이 들자, 책을 던져버리며 팔을 뺐다.
그리고 곧장 소리쳤다.
“문을 닫아!”
[이용수칙을 어기셨습니다.]
[‘조디악의 번영과 영광’ 제1장에 수록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 아즈란! 죽음마저 얼어붙게 만드는 혹한의 마법사! 그가 나타나면 모든 것이 얼어붙게…]
[경고! 만상 도서관 내에서 중대한 잘못을 저지르셨습니다!]
[당신의 어리석은 행동이 만상 도서관의 관장에게 전달됩니다.]
쿠우우우웅-!
전갈 문이 닫히고…
“어, 어떻게 됐….”
쩌저저저저저적-!
닫힌 전갈 문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떠오르는 메시지.
[만상 도서관의 관장직은 현재 공석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