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30
제29화
강설에게 소식이 도착하기 얼마 전, 사건은 한여명으로부터 시작했다.
한여명은 일전 강설이 부탁을 거절함으로써 큰 좌절을 맛봤다. 하지만 동생을 구하는 것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동생의 비밀스러운 연락까지 받았는데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한새벽의 죽음은 한여명으로 하여금 그의 여동생인 한노을만큼은 지키겠다고 하는 사명감을 부여했다.
여동생은 한노을 본인이 위험하다는 쪽지를 전달해왔다.
그 쪽지가 도화선이었다.
길게 잴 것 없이 한여명은 문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오른손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고, 그는 그렇게 강한 사내가 아니었고 겁도 먹었다. 그런데도 두 다리는 동생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렸다.
“허억… 허억….”
그는 어젯밤에도 꿈을 꾸었다.
– 구해줘… 여명아 부탁이야… 구해줘…
피 흘리는 한새벽이 꿈에 나와 그의 오른손을 꼭 붙잡고 애원했다.
끔찍한 광경에 한여명은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었다.
영원히 이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았다. 평생을 외팔이로 살아야 할 것이며 이는 죄책감으로 짓눌리라는 누나의 저주가 분명했다.
‘상관없어… 상관없다고!’
누나가 저주를 내리든, 팔을 못 쓰게 되든 한여명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제발 무사해라, 노을아 제발.”
한노을이 이 격변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다 할 수 있었고 무엇이든 버릴 수 있었다.
부모님이 일찍이 돌아가시고 한새벽이 동생들을 키웠다.
한여명과 한노을 또한 보탬이 되기 위해 칭얼거리지 않고 따랐고. 그렇게 셋은 끈끈하게 이어졌다.
하지만, 한새벽의 죽음으로 모든 것들이 뒤틀렸다. 어쩌면 이번이 한노을과 함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여명의 발은 멈추지 않았다.
“허억… 헉….”
적당히 지어진 가건물.
콩고리의 중심가와 제법 가까웠지만, 주변을 살피는 길드원들이 보였다.
저 가건물 또한 길드원들에게서 과도한 운영비를 착복하여 지은 건물이라고 들었다.
꺄아아아악-! 놔!
안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들리자마자 한여명은 두 번 생각할 틈도 없이 가건물로 뛰어 들어갔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경계병들도 그를 막지 못했다.
“뭐, 뭐야 너!”
“노을이, 노을이 어딨어!”
“오빠!”
한여명이 가건물의 내부를 살폈다.
익숙한 얼굴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노을아!”
“오빠아!”
한노을은 한여명을 보자마자 울음부터 터트렸다.
그만큼 단절된 시간에 그리움과 애착을 느끼고 있었던 건지도 몰랐다.
그녀는 단박에 한여명에게 달려왔다.
이대로 가건물을 벗어나면 모두에게 행복할 것 같았지만,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한노을 씨, 이거 지금 일을 크게 만드는 겁니다.”
“갈 거야! 난 여기 더는 못 있겠어….”
“세상일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내가 내 발로 나가겠다는데 대체 왜 이러세요….”
정의 길드를 만든 정원철이 한노을에게 차분히 대꾸했다.
한노을은 그런 모습이 진절머리 난다는 것처럼 혐오하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내부 사정을 다 알게 된 사람이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나가다니, 이건 우리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닙니까?”
“뭘 원하는데요?”
“아는 것에 대해 입도 뻥긋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까?”
“…그럴게요.”
“그리고 금화로 5,000닢 정도면 적당하겠군요.”
“그, 그렇게 큰돈이 어디 있어요? 억지 부리지 마세요!”
정원철의 얼굴에 주름이 생겼다.
친절한 사람을 표방하던 그의 얼굴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나름 신사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뜻이 일치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습니다. 대체 뭘 믿고 이러시는 겁니까?”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 정도 돈을 내놓으라는 거예요!”
“정의 길드는 엄연히 이익 집단입니다. 당신에게 투자한 시간, 금전, 노력 모든 것이 전부 비용이지요. 그리고 우리는 그 비용을 당신에게서 충분히 받아낼 수 있고요.”
짝-!
정원철이 가볍게 박수치자, 가건물에 있던 길드원 몇이 나섰다.
한노을이 기겁하며 소리쳤다.
“이, 이 사람 거짓말쟁이예요! 여기에는 비공개라는 사람도 없고 또 약자들을 위한다는 것도 거짓말이에요! 모두 팔아넘기거나 칼받이로 쓸 생각뿐이라고요! 다들 속고 있는 거라고요!”
정적이 이어졌다.
한노을도 눈치가 있었다.
이 정적은 단순히 충격적인 사실을 접했기 때문에 일어난 반응이 아니었다.
“거짓말…. 전부 알고 있었다고? 그런데도 모른 척했다고?”
“살아남으려면 뭔 짓을 못 할까. 한노을 양, 세상은 변했습니다.”
“정의라며! 이제 무고한 희생자가 생기지 않게 한다며!”
“정의라는 건 진리가 아닙니다. 세상이 바뀌면, 정의도 바뀌는 법입니다.”
정원철의 지시에 길드원들이 한노을을 압박해왔다. 한노을은 기겁하며 한여명의 등 뒤로 숨었다.
“무, 무서워 오빠. 여기 있기 싫어….”
“노을아, 걱정하지 마. 여기서 나갈 거야.”
그것은 확실치 않았다.
말을 하는 한여명 또한 떨고 있었다.
사람에게 상처 입힐 수 있을까? 전에는 못 했던 일이다.
검을 휘두를 수 있을까? 이것 또한 전에는 못 했던 일이다.
‘할 수 있어. 해야만 한….’
그의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발길질이 날아왔다.
후우웅-
퍼억!
“커헉….”
“오, 오빠!”
“뭐야, 이 덜떨어진 새낀.”
길드원의 발차기 한 방에 나가떨어진 한여명.
푸스스…
한여명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다시 일어났다.
‘오른손아, 움직여…. 움직이라고….’
저주받은 오른손이 움직이지 않으니 제대로 싸울 수조차 없었다.
‘빌어먹을 누나… 왜….’
한새벽이 원망스러웠다.
죄책감을 얹어 준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동생을 지킬 힘마저 앗아가 버렸다.
“놔! 놓으라고요!”
“가만히 있어. 화내기 전에.”
“놔! 놔!”
짜악-!
한노을의 고개가 홱하고 돌아갔다.
그녀의 볼이 불이 난 것처럼 빨개졌다.
“썅… 적당히 할 것이지….”
“흑… 흐윽… 아파….”
그 순간, 한여명은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스릉-
“어?”
푸화아악!
그의 검이 어느새 뽑혀 나와 사내의 어깨를 찔렀다.
“노을아, 이리 와.”
“크아아아악, 이 새끼!”
“죽여! 죽여 버려!”
신기한 감각이었다.
상대의 움직임이 빠른데도 불구하고, 한여명의 손이 그것보다 더 빨랐다.
우지직-!
검은 손에 힘줄이 징그럽게 돋아났다.
[체질 : 귀신의 손이 각성합니다.]
[귀신의 손 : 검은 손을 개화합니다.]
[검은 손이 움직임을 보조합니다.]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속도로 움직입니다.]
[움직임을 익히는 데 소모되는 시간이 대폭 감소합니다.]
사삭-
서걱-!
“끄아아악!”
“뭐, 뭣들 하는 거야! 이런 씨발… 너! 포식자에 알려!”
“예, 예!”
한여명은 여러 명에게 둘러싸인 상태에서도 훌륭하게 반격했다. 그 과정에서 다치는 사람들도 속출했다.
“너무 빨라!”
“둘러싸! 못 나가게만 해! 시간만 끌면 돼!”
문을 잠근 상태에서 전투는 꽤 길게 이어졌다.
카앙-!
캉!
쒜에에엑-!
“허억… 허억… 한노을 건드리면… 다… 다 죽어. 이 악마 새끼들아….”
“미친 새끼… 넌 조금만 있으면 죽었다.”
한여명은 자신이 어떤 착각을 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죽은 그의 누나, 한새벽이 밤마다 꿈에 나타나 구해달라고 했던 것은 그녀가 아니었다.
– 노을이를… 구해줘. 여명아….
죄책감이 지워버린 그녀의 말이 온전히 떠올랐다.
검은 손은 그녀가 남긴 저주가 아니었다.
누나가 동생에게 남긴 부탁이었지.
“허억… 헉….”
어쩌면 이대로라면 빠져나갈 방법이 보일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희망일 뿐이었다.
끼이이익-
정원철이 문이 열리는 소리에 웃었다.
“하하! 늦었잖습니까. 웬 벌레 새끼 한 마리 때문에 이게 무슨 일인지.”
“쯧…. 그러게. 우리 애들 좀 데리고 있으라니까. 여기 분들은 전부 순둥이라니깐.”
“이제는 정말 그래야겠습니다. 아무튼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백상아리가 한여명 앞에 섰다.
한여명은 숨을 몰아쉬면서도 백상아리의 눈을 보았다.
‘달라, 이 사람은!’
다른 이들과는 다른 눈이었다.
검을 앞에 두고 두려워하는 사람의 눈이 아니라, 귀찮은 일을 마주한 사람의 눈이었다.
“너… 아니지?”
“뭐?”
“비공개 말이야.”
“그게 무슨….”
“아니면, 됐다.”
훙-
백상아리의 발이 잠시 시야에서 사라졌다.
‘위험해!’
생각이 반응하기도 전에 검은 손이 먼저 움직였다.
까아앙-!
검은 손이 가까스로 공격을 방어했다.
“오? 이건 또 뭐야. 의수냐, 그거?”
“크으윽… 보내줘.”
“정원철이 싫다잖아.”
후웅-
빠아아악-
“아악!”
검은 손은 강철처럼 단단했다.
그런데도 백상아리의 손은 멀쩡히 그의 손에 타격을 가했다.
“재밌긴 한데, 실력은 별로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좀 더 놀아줄게.”
[백상아리가 철권을 사용합니다.]
[백상아리가 연계 : 원숭이의 움직임을 사용합니다.]
[백상아리가 약점 맹공을 사용합니다.]
파팍. 팍!
그가 손을 뻗을 때마다 주변이 울컥울컥 진동했다.
엄청난 실력이었다. 한여명은 여기서 절망을 느꼈다.
“왜, 이렇게 사는 거야! 이렇게 강하면서 왜….”
“오빠아… 흑….”
“짜증 나게….”
퍼엉-!
한여명이 벽에 날아가 처박혔다.
백상아리가 천천히 다가가 그의 머리채를 잡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악당 같잖아, 이 새끼야.”
“악당… 맞잖아. 개 같은 새끼….”
“하하! 그래 맞아. 근데 악당이 나쁜 건가? 자, 멍청한 네 남매를 위해서 얘기해줄게. 이제 선과 악이 중요한 게 아니야. 강하냐, 약하냐의 문제지.”
“끄으으으… 으아아아아!”
한여명은 분해서 울부짖었지만, 백상아리에게 제압당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강한 놈이 옳고, 약한 놈이 틀렸다. 이제 폭력이 모든 것 위에 놓이는 거야.”
한여명의 정신이 희미해져 갔다.
피를 흘린 탓인지, 속도 좋지 않았고.
최선을 다했지만, 동생은 구하지 못할 것 같았다. 눈앞에서 누나를 잃었듯이, 동생 또한 잃게 될 것이다.
‘안 돼, 그럴 수는 없어!’
쒜에엑-!
“형님!”
“그 새끼 위험….”
한여명의 검은 손이 벼락과도 같은 속도로 백상아리의 목을 노렸다.
턱-!
“…….”
“보인다고, 다. 이 새끼야.”
뚜둑.
챙그렁….
한여명의 검이 백상아리의 중지와 검지 사이에 붙잡힌 후, 똑 하고 부러졌다.
등급이 낮은 검도 문제였지만, 실력의 격차가 너무도 심했다.
‘끝인가….’
한여명의 고개가 푹 꺾였다.
드라마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나름 분전했지만, 그에겐 상황을 뒤엎을 만한 힘이 없었다.
약자의 무의미한 발버둥이었을까?
똑똑…
“실례합니다.”
하지만 분명, 이 무의미한 발버둥으로 인해 흐름은 바뀌었다.
선혈이 낭자한 가건물.
그 출입문을 누군가 두들기고 있었다.
‘누구지?’
낮은 목소리에 성량도 그리 크지 않았지만, 말소리가 한여명에게도 또렷하게 들려왔다.
“뭐야? 밖에?”
“소란이 일어서 누가 왔나 봅니다.”
“내쫓아. 씨발 맥 끊기게….”
그때였다.
쾅쾅쾅쾅-!
문 두들기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울렸다.
“문 열어. 다 알고 왔으니까.”
안에 있던 공모자들은 백상아리와 정원철의 눈만 쳐다보고 있었다.
정원철이 한숨을 쉬고 말했다.
“한노을 씨가 참 일을 지저분하게 만들었네요. 저분도 같이 처리하죠.”
백상아리가 고개를 까딱였다.
“들어오면 바로 막아버려. 도망 못 치게.”
“예.”
철컥-
“한여명 씨, 괜찮습니까?”
“누구….”
눈이 벌에 쏘인 것처럼 부은 한여명이 출입문으로 들어온 사내를 쳐다보았다.
“제가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제 부탁은… 거절한 거 아니었습니까?”
“꼭 당신의 부탁 때문에 이곳에 온 것은 아닙니다. 떠나기 전에 마무리 지을 일이 있어서 온 거죠. 그래도 당신이 왜 이렇게 된 건지는 궁금하군요.”
가건물에 홀로 찾아온 이는, 부탁을 거절했던 강설이었다. 한여명은 강설이 남겼던 말을 기억했다.
– 내가 강해진 건 강자의 뒤에 숨어서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을 돕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스스로를 구하십시오, 한여명 씨.
한여명은 그가 남긴 말에 담긴 의미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처음 본 사람인 강설에게 목숨을 걸고 나서주기를 바랐던 순진하고 무지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다.
“크흑… 노력했는데… 제가 최선을 다했는데… 잘… 잘 안됐습니다.”
“그렇군요.”
강설은 노비라로 떠나기 전, 포식자의 길드 마스터인 백상아리와 담판을 지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가 미래에 자신에게 위협이 된다면 처리할 생각까지도 하고 있었고.
그런 와중에, 한여명의 소식까지 전해지자 조금 일찍 행동에 나선 것이었다.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될 거였나.’
강설은 누군가를 대신해서 일을 해결해 주는 것을 별로 선호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눈앞에서 한여명이 죽게 할 수는 없으니 이 일에 개입하기로 마음먹었다.
“대충 알겠습니다. 제가 나서겠습니다.”
“…예?”
백상아리와 정원철, 그리고 이 일에 가담했던 정의 길드원들은 무슨 상황인지 몰라 잠시 머뭇거렸다가 상대가 한 명이라는 것을 자각하고는 어이없어했다.
“미, 미친 새끼 아니야, 이거?”
“누가 책임자입니까?”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질문인데, 정원철에게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그만큼 강설의 말은 이상하게 힘이 있었다.
“납니다.”
“이들을 데려가겠습니다. 그냥 놓아 주시죠.”
“이런 미친… 싫습니다.”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정원철의 사람 좋은 미소와 존대가 사라졌다. 강설의 행동은 그에게 오만한 것처럼 보였다.
“하! 미친놈…. 네가 뭐라고? 네 눈앞에 있는 분이 안 보이시냐?”
정원철이 백상아리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때, 옆에서 강설의 얼굴을 쳐다보던 포식자 길드원 한 명이 백상아리에게 말했다.
“형님, 그놈입니다.”
“뭐? 누구?”
“스노우맨인지 뭔지 하는 놈 말입니다.”
“아하… 어차피 죽을 놈이었다 이 말이군. 어이, 친구.”
강설이 한여명을 부축하며 한노을에게 다가갔다.
자신을 무시한다고 판단한 백상아리는 금니를 드러내며 말했다.
“아무래도, 그냥은 못 나가겠어. 스노우맨. 백상규랑 서진철 알지?”
“알고 있습니다.”
“죽였나?”
“죽이진 않았습니다.”
“…그걸 말이라고.”
“아무튼, 그래서?”
강설의 황금빛 눈이 백상아리를 응시했다. 그의 기세가 변했음을 눈치챈 백상아리가 헛웃음을 지었다.
주변엔 온통 백상아리와 한패뿐.
족히 20명은 되는 인원이었다.
강설은 지금 잘못했다고 빌어도 살아나가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너 아무래도 죽어야겠다.”
“결국, 일이 제 예상대로 흘러갔군요.”
“뭐라는 거야, 이 새끼가… 야!”
“말씀 다 하셨으면 이참에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묻겠습니다. 저간의 사정은 다 알고 왔습니다. 혹시 잘못을 뉘우치는 분이 있습니까?”
“잘못?”
“없군요. 알겠습니다.”
정원철이 백상아리에게 말했다.
“저, 저 새끼, 당장 치워주세요.”
“나도 이 새끼 때문에 뒈진 식구들 생각에 이 간 큰놈을 찢어 죽이고 싶어졌습니다.”
백상아리가 진각을 밟았다.
콰아앙-!
[백상아리가 지반 다지기를 사용합니다.]
[백상아리가 움직일수록 더 빨라집니다.]
백상아리는 화가 났지만, 곧 그 화를 쏟아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온몸이 달아올랐다.
상대의 절망을 탐닉하는 것 또한 그의 질 나쁜 취미 중 하나였으니까.
“내 점수는 비공개다. 넌 이 말의 의미를 아나?”
백상아리의 말은 자신이 콩고리의 랭커라는 말, 남들보다 더한 수라장을 거쳐 온 실력자라는 의미.
적어도 콩고리 안에서 그를 이길 사람은 딱 1명밖에 없었다.
그는 강설이 기가 죽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기를 바랐다. 그 후에 저 얼굴을 박살 내면 한동안 후련할 것 같았기에.
한데, 강설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후우우우웅…
강설의 양손에 검은 기운이 모여들었다.
휘리리이익…
파즈즈즛!
왼손의 검은 기운은 순식간에 갑옷을 입은 기사를 만들었고 오른손의 검은 기운은 거대한 트롤을 만들어냈다.
카루나의 굳건한 모습과 쟈마드의 흉포한 덩치는 사람들을 얼어붙게 했다.
“저, 저 크기…. 뭐, 뭔데!”
“저 트롤 설마….”
백상아리가 당황해서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기사는 그도 처음 보는 몬스터였지만 트롤의 정체는 눈치채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극악의 난이도였기에 모험 돌파의 조건이었던 지도자 중 한 명만 겨우 쓰러트리고 빠져나왔던 모험.
우애 좋은 5형제의 최종 보스인 쟈마드가 분명했다.
이 영문 모를 세계에 와 처음으로 공포를 느꼈던 존재.
그런 존재를 소환수로 만들어버린 사람이 지금, 눈앞에 있었다.
“…너, 너 이 새끼 뭐야?”
강설이 말했다.
“비공개다. 넌 이 말의 의미를 아나?”
사람들은 그가 내뱉은 말에 담긴 의미를 잠시 생각하다가 경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