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303
제302화
책의 서장을 몇 줄 읽기도 전에 떠오른 메시지들.
[얼어붙은 진리의 고유 효과를 습득합니다.]
[지속 : 서늘한 어둠(복합)을 깨우칩니다.]
[일체분신(一體分身)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이 파괴될 때 서리 폭풍이 발생합니다. 서리 폭풍은 적에게 피조물의 최대 체력과 비례한 피해를 입힙니다.]
[냉기 저항이 대폭 상승합니다.]
[소환수와 피조물이 받는 최종 냉기 피해가 20% 줄어듭니다.]
[아직 얼어붙은 진리의 숨겨진 효과가 무수히 존재합니다.]
……
강설이 책을 펼친 채로 멍하니 서 있었다.
‘…이게 말이 돼?’
– 우효! 어떤 소환사의 금서목록!
– 그뭔씹;; 설마 일본에서 발매된 SF 학원물 판타지 라이트노벨을 말하는 거냐? 일반인은 그런 거 몰라.
– 윗분들 제발 그만해주세요.
– 자기들 아는 거 나왔다고 폭주 ㅋㅋㅋ
책이 가진 힘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안 되었다.
강설은 혹시 더 많은 힘을 깨우칠까 싶어 서장을 조금 더 읽어보았다.
쩌저적…
– …설, 강설!
우르가 강설을 불렀다.
강설은 고개를 휘저으며 답했다.
“으윽…?”
[내용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 방금 넌 죽을 뻔했다.
“…내가 죽을 뻔했다고?”
– 그래, 마법적인 이해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읽는 것만으로도 꽁꽁 얼어버릴 거다.
강설이 화들짝 놀라 얼굴을 매만졌다.
‘이럴 수가….’
얼굴 한쪽이 아즈란을 만났을 때처럼 얼음으로 뒤덮여있었다.
빠른 속도로 녹고 있긴 했지만, 그 찰나에 정말 얼어 죽을 뻔한 것이다.
‘이래서야… 봉인을 풀어도 소용이 없잖아?’
먹을 수 없는 음식과 읽을 수 없는 책 같은 건 정말로 하등 쓸모가 없었다.
– 마법사도 아닌 네가 얻어간 게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것이지. 지금으로선 네 경지로는 서장을 채 읽기도 전에 동사할 거다.
피식…
탁-!
강설이 책을 소리 나게 덮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얼어붙은 진리는 마법서 중에서도 금서로 지정될 만큼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책이다.
‘실체도 확인하지 못한 물건을 금서로 지정하다니… 어떻게 돼먹은 녀석들인지.’
물론, 실체도 존재하고 그 내용도 확실했다. 단지 읽는 것만으로도 목숨을 잃을 수 있기에 만일 다른 마법사들에게 이 책이 흘러가게 된다면 많은 이가 지혜를 위해 목숨을 내던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금서 지정은 타당했다.
이 책은 마법사.
그러니까 대마법사조차도 함부로 펼쳐보기 어려울 만한 힘을 품고 있었다.
조네나 산티오라 할지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만일, 예외가 존재한다면…
스으으으…
강설이 허무의 문을 떠올렸다.
쿠구우우우우웅…
곧 웅장한 문이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엔 확실하게 강설의 손에 새하얀 책이 붙들려 있었다.
허무의 안쪽에서 굉장히 위험하고 음습한 냄새가 났다.
강설이 문 너머로 넘어갈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손을 그곳으로 살짝 내밀어 보았다.
스윽…
찌리릿-!
“크윽….”
짜릿한 감각이 손을 타고 올랐다.
아직은 무리라고 경고하는 듯한 느낌.
강설은 서책만을 내밀었다.
후우우우우…
문 안쪽에서 검은 손들이 마치 식물처럼 뻗어 나왔다. 상상하기도 싫은 기괴한 모습.
그러나 상대가 누구인지 안다면, 굳이 겁을 먹을 필요까진 없었다.
“여깄어, 우르.”
멈칫…
손들이 잠시 멈추었다가 강설에게서 서책을 받아 갔다.
손들이 긴장한 듯 보였다.
책을 건네받자마자 부들부들 떨었으니까.
잠시 뒤.
강설에게 메시지가 떠올랐다.
[봉인된 우르가 얼어붙은 진리의 길을 걷습니다.]
[봉인된 우르의 마력 형질이 서리의 기운으로 변화합니다.]
사아아아아…
허무의 열린 문으로 한기가 쏟아져 나왔다.
강설은 서둘러 정신세계에서 벗어났다.
– 대단하군… 아즈란.
우르는 아마도 지금쯤 빠른 속도로 책의 초입부터 읽기 시작했을 것이다. 강설 자신과는 다르게 전혀 막힘이 없는 것처럼 중얼거리기까지 하며.
– 기초 이론부터가 궤를 달리하는군. 이런 생각은 꽤 흥미로운데… 어디 근거는….
어쩐지 소외감이 들기는 했지만, 강설은 셋째 줄을 읽을 때까지도 이 책이 어떤 내용일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었다. 훌륭한 시라 할지라도 메마른 감정을 가진 이를 흔들지는 못하는 것처럼, 제아무리 궁극의 마법서라 할지라도 마법적인 지식이 부족한 강설에게는 만상에 널려있는 책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렇기에, 순수하게 기뻐했다.
우르가 저 책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얼어붙은 진리의 진정한 주인은 우르가 되었다는 것을.
‘최초의 마도사니까.’
지금은 강설의 허무에 살며 이런저런 일을 도와주는 소환수였지만, 그는 과거에 어마어마한 괴물이었다.
마력과 관련된, 그러니까 마력이 마법으로 발돋움하는 그 기적을 이해하는 부분에서는 세상 누구도 우르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우르는 마력 그 자체다.
그런 그가 얼어붙은 진리를 짧게나마 읽어보고 남기는 서평은…
– 아즈란, 산 자 중에 그보다 뛰어난 마법사가 존재하기는 힘들 것이다.
강설은 그런 평가가 괜스럽게 낯간지러웠다.
아즈란은 그에게도 의미가 있는 말이었으니까.
– 이 우르를 제외한다면 말이지.
우르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도 좋았다.
아즈란은 그의 말이었기에, 우르는 그의 소환수였기에 둘 중 누가 뛰어나다고 해서 불만이 생기지는 않을 것 같았다.
우산 장수와 짚신 장수의 어머니가 된 기분이었다. 물론, 그래도 지금은 현재 그를 돕고 있는 우르에게 더 마음이 가기는 했다.
– 천천히 음미해주마, 네 진리를.
우르가 절대자의 고독함을 늘 지니고 있었던 건, 그의 삶이 투쟁으로 점철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뒤처져본 적이 없던 자다.
– 당분간은 바쁠 것 같군. 아, 그 전에….
‘우르.’
강설은 아즈란과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어쩌겠어.’
지금은 힘이 없는 것을.
아직은 너무나도 연약하여 아즈란과 똑바로 마주 설 수조차 없는 것을. 그를 붙잡을 만한 힘도 없었다.
만약 우르가 나서주지 않았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불길한 상상도 해봤다. 우르는 최초의 마도사라는 위험한 존재였지만, 그와는 티격태격하는 사이이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 그의 허무에 자리를 잡은 또 하나의 소환수였다.
‘이 경우에는 소환령이 더 가깝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감사해야 했다.
‘고맙다. 위험했어.’
– 흥, 내 비호 없이는 아즈란 같은 녀석에게 장난감이 될 거다. …물론 내 말이 아즈란이 그런 저열한 녀석이라는 건 아니다.
‘…그럼?’
– 그러니까… 아즈란은 뭐냐면… 마법사다. 훌륭한 마법사.
그 앞에 ‘훌륭한’이라는 수식어가 오게 하다니, 책 속에서 흘러나온 존재치고는 우르의 마음을 많이도 흔들어놓은 것 같다.
‘아즈란과는 무슨 대화를 나눴지?’
솔직히 부러웠다.
그와의 대화는 그 자체로 깨달음으로 이어졌을 것이고… 만일 그 대화의 주체가 자신이었다면 어땠을까.
– 대화? 음… 그렇지. 훌륭한 지성의 대화였지.
‘아즈란이 뭐라고 했는데?’
– 어… 음… 대단해?
‘또?’
– 으음… 대단… 아니, 너무 많은 걸 묻지 마라. 지성인들의 대화를 범인들이 이해하려 들다간 머리가 터져버릴 거다. 얼어 죽고 싶은 거냐?
으름장을 놓는 우르.
강설은 피식 웃었다.
우르의 반응을 보아 아즈란은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눴다는 대화가 어떤 수준이었는지는 뻔했다.
‘그대로구나, 아즈란.’
대화문 선택지가 소실(消失) 이후엔 반의반으로 줄어들었고 그마저도 죄다 단답인지라 얼마나 답답했었던가.
예를 들면, 이런 식.
[곤경에 처한 여인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이 땅의 영주와 어렸을 적부터 가깝게 지냈다고 하며 최근 그 영주가 수상쩍은 행동을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당신의 지성을 구해왔습니다. 어떻게 조언하겠습니까?]
1. 글쎄.
2. 관심 없어.
3. 도와줄게.
4. 잘 못 들었어.
……
선택지가 간결하다는 게 꼭 명확하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았다. 강설은 그때마다 아즈란이 최소한 한 줄의 긴 문장으로라도 의사를 표현해줬으면 했었다.
아마도 우르가 만난 것은 그런 답답한 아즈란이었을 것이다.
그와 대화를 나눴더라도, 원하는 주제로 흘러가지 않았을 확률이 다분했다.
– 왜 웃는 거냐?
확실한 수확을 얻었으니, 마음이 다소 홀가분해졌다. 강설은 우선, 상황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저들은 어떡하지?”
강설이 가리킨 건 두 대마법사와 브론.
그리고 관장과 브란카의 사체였다.
– 시간이 지나면 녹기는 하겠다만, 이래선 한참 걸릴 것 같군. 손을 쓸까?
‘손을 쓰다니? 가능해? 아즈란의 힘인데?’
– 아즈란이 사용한 마법은 딱히 고차원적인 진리가 들어간 게 아니다. 해동 유도 마법도 여기에 자세히 나와 있으니 어렵지 않을 거다.
‘내 말은, 허무 안에서 그게 가능하냐는 거야.’
강설의 말에, 우르가 코웃음 쳤다.
– 큭큭… 내가 허투루 시간을 쓰는 줄 알았더냐? 네 분신을 소환해봐라.
그는 재빨리 우르의 말대로 했다.
휘리릭…
그러자, 강설과 똑같은 모습의 분신이 생겨났다.
– 잘 보아라.
츠즈즛…
[일체분신의 통제를 ‘우르’에게 빼앗깁니다.]
순간, 일체분신과의 교감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츠즛…
분신의 눈이 파랗게 변했다.
하아아아…
입김까지 나오는 분신.
그리고 양손을 뻣뻣하게 앞으로 내밀었다.
– 끄응… 쉽지 않군.
중얼거리기 시작한 분신.
자세히 들어보니 주문을 영창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과 똑같은 외모를 가진 존재가 영창을 하는 모습은 굉장히 낯선 광경이었다.
– 빌어먹을, 익숙해지기 전까진 이 추한 영창 작업을 해야 하다니….
후우우우우웅…
한순간, 순풍이 몰아치고.
쩌저저적…
얼어붙어 있던 동료들이 깨어났다.
“허억… 허억….”
“크윽… 이게….”
“무슨 일이….”
일을 저지른 분신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자잘한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강설은 자신도 방금 깨어난 척을 했다. 그편이 제일 깔끔할 것이다. 적어도, 귀찮은 질문 세례를 받지 않을 테니까.
“자네! 괜찮나?”
“저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흉수는 힘을 잃고 부스러진 것 같군요.”
“아즈란! 정말 아즈란 공이었나?”
“얼굴은 보지 못했습니다.”
“목소리는?”
“…목소리도 듣지 못했습니다.”
마치 동경하는 인물에 관해 묻듯, 조네가 꼬치꼬치 캐물었으나 강설도 아는 바가 많지 않다는 듯 어려워하는 기색을 보이자 그마저도 곧 멈추었다.
산티오가 감탄했다.
“그나저나 놀랍군요… 몇 겹으로 저항 마법을 펼쳤는데 단 한순간에 파훼 당했습니다.”
“쯧쯧… 아마 저항 마법과 함께 통째로 얼려버린 걸 거야. 서리 대공쯤 되면 그 정도야 우습지.”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아십니까?”
“…방금 맞아보니 알겠더군. 이렇게 처참한 기분은 오랜만이군.”
“역시, 피격에 있어서는 천재나 다름없는….”
“그만. 놀리지 말게.”
두 대마법사는 일이 어떻게 진행된 건지 대강이라도 짐작할 수 있었으나 브론은 그렇지 못했다. 강설은 책을 찾게 도와줬던 브론에게 방금 벌어진 일들을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했다.
브론은 그 얘길 듣고 파안대소했다.
“푸하하하하! 맙소사, 이 브론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대를 만나다니. 목숨을 잃을 때까지도 보지 못했던 강자를…. 이런 적은 처음이야….”
브론이 감탄하는 사이, 강설의 그림자에서 쟈마드가 불쑥 튀어나왔다.
휘리릭…
쿵… 쿵…
쟈마드는 천천히 어딘가로 걸어갔다.
브론과 강설도 곧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쟈마드가 멈춰 선 곳에서 브론이 말했다.
“…생명이란 참으로 덧없으면서도, 기이하게 굽이치는구나.”
“…브론.”
“알아, 무슨 말을 하려는지.”
브론이 씨익 웃었다.
“브란카의 주술이 필요한 거지?”
그들의 앞에는 관장과 함께 쓰러져 있는 브란카의 사체가 있었다.
끄덕…
쟈마드가 고개를 끄덕이자, 브론이 어깨를 으쓱했다.
“가져가, 브란카의 힘은 내게는 쓸모없는 것들이야. 하지만 네게는 다르겠지.”
“하지만….”
“그리고 허락도 필요 없어. 브란카는 정당한 싸움에서 네게 패했다. 패자의 힘을 취하는 건 승자의 권리야. 브란카도 아쉽진 않을 거다. 그도 지금 지하에서 만상의 힘을 자신의 힘으로 착각했던 실수를 부끄러워하고 있을 테니까. 제발 자신의 힘을 거둬가 줬으면 할 것이다. 그편이 훨씬 홀가분할 테니까.”
“…알았다.”
결국, 돌고 돌아 정해진 길 위에 섰다.
쟈마드는, 브란카의 시체 위에 손을 올렸다.
휘이이이이…
그가 주술을 발동하자, 주위에 눈보라가 몰아쳤다.
“크윽….”
“저항하는 건가?”
“아니, 그게 아니다.”
브론이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기뻐하고 있는 거야.”
으지지지직…
쟈마드의 근육이 자라났다.
덩치가 전보다도 훨씬 커지고 있었다.
눈매는 깊어지고, 기운은 증폭되었다.
휘이이잉…
[브란카의 고대 주술을 흡수합니다.]
[삼라만상의 쟈마드가 대주(大呪) 쟈마드로 강화됩니다.]
[소환수는 이제 대지의 힘을 지탱합니다.]
[소환수가 근원력 : 빙하를 깨우칩니다.]
[빙하의 근원이 폭포의 근원을 대체합니다.]
[불벼락 태세가 근원혼으로 강화됩니다.]
[지속 : 오들오들을 깨우칩니다.]
[지속 : 만통(萬通)을 깨우칩니다.]
[지속 : 고대의 영혼을 깨우칩니다.]
……
쟈마드의 눈에서, 브란카의 눈에서 피어올랐던 푸른 불꽃이 피어올랐다.
“…앞으로, 두 걸음.”
“하… 하하….”
브론이 쟈마드의 뒤바뀐 기세를 느끼고 주춤주춤 물러났다.
“이, 이건….”
“이게 말로만 듣던 계승이로군요….”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또한 자신들도 모르게 뒤로 조금 물러났다.
강설은 쟈마드가 기운을 갈무리하는 동안, 부서진 관장에 시선을 돌렸다.
이 끔찍한 힘을 가진 기계장치는 과연, 누가 만든 것이고 만상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그는 손바닥으로 관장을 쓸어 뭔가 알아볼 만한 것이 없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그 행동이, 관장의 머리 쪽으로 이어졌을 때였다.
끼긱…
“…응?”
[만상 도서관의 관장이 행동 불능 상태입니다.]
[자가 수복 행위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관장 대행이 필요합니다.]
후우웅…
[당신이 지목되었습니다.]
“…어?”
[최초 업적 ‘이번에 새로 오신’을 달성합니다.]
[최초 칭호 「만상(萬象)」을 얻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