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318
제317화
이제는 땅에 떨어져 유현이 아닌 얼굴로 당황한 표정을 짓는 야차.
– 쓸모없는 녀석! 죽어서까지 쓸모가 없구나!
야차는 유현의 가치를 깎아내리며 울부짖었다.
강설은 그런 야차를 무시한 채로 유현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유현’의 전승이 시작됩니다.]
강설은 순식간에, 유현의 기억 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강설은 유현이 되었다.
* * *
……
“컥… 커허억….”
푸화아아아아악-!
검에 베여, 피를 잔뜩 쏟아내는 검사.
방금까지 자신을 상대하던 검사는 피범벅이 되어 몸을 자신에게 치대었다.
“도… 도망…쳐….”
“…뭐라고?”
“…도망쳐야… 너….”
털썩…
가면을 쓴 악마.
일대를 피로 물들였던 살인귀를 드디어 처단했다.
그러나, 그 뒷맛은 씁쓸했다.
‘분명히… 이상했지?’
그의 주검 앞에 서서 유현은 골똘히 생각했다.
“강했어… 무척이나.”
감각보다 빠르게 날아드는 검, 맞붙는 순간 기운을 빨아들이는 검은 제아무리 유현이라 할지라도 버거웠다.
그래도, 그를 쓰러트렸다.
이제 이자에게 희생될 수많은 이들을 구원한 것이다.
그리고 이자에게 무참히 쓰러진 영혼들을 달랜 것이기도 했고.
“응?”
유현은 살인귀가 사용하던 검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아름다워….”
그만큼 피를 먹었음에도, 요염한 기운을 뿜어내는 검.
검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 가지고 싶지?
철컥…
“누구냐!”
유현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 네 것이야, 가져가도 좋아.
“이게 무슨….”
유현은 혹시나 하여 죽은 살인귀의 얼굴을 살폈다.
죽었다.
확실히 죽었다.
대신, 그의 가면이 흉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 날 취해라, 검사. 네가 누려보지 못한 것을 갖게 해주마.
“난….”
자연스럽게 야차의 가면을 손에 쥐는 유현.
화려한 무늬로 곤충을 유인하여 결국에, 끔찍한 결말을 맞게 하는 식충식물처럼 야차는 유현을 유혹했다.
…안 돼!
‘어… 신님?’
분명히,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환청이라 할 만큼 흔적이 남지 않는 목소리를.
치직…
기억에 안개가 꼈다.
뿌옇게 변해 제대로 보이지가 않았다.
푸화아아아악-!
“이… 미친… 살인귀… 널… 누군가….”
푸화아악-!
“끅….”
이상하다.
방금 죽어간 사내의 동공에 비친 건, 분명히 가면이었다.
가면을 쓴 자가 서 있었다.
유현이 사내를 죽인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여긴… 어디야? 난… 난… 누구지?”
유현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난… 대체….”
이미 통제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흐름에 몸을 맡긴 유현은, 야차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 너는 야차, 피와 살육을 위해 깨어난 자.
유현이 흐릿한 눈을 한 채 중얼거렸다.
“나는… 야차….”
쏴아아아아아…
비가 뒤집어쓴 핏물을 씻어내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착각일지도.
하늘에서 내리는 것은 핏물이었다.
더 많은 피가 하늘에서 쏟아진다.
그리고 유현의 숨을 틀어막는다.
쏴아아…
유현이라는 존재가, 세상에서 지워져 간다.
오직 야차만이 존재하는 세상으로 바뀌어만 간다.
“숨 막혀….”
심장은 뛰지 않는다.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햇살이 얼굴에 드리웠던 적이 언제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 나무는 베지 않는 편이 좋았을지도. 영원히 그곳에서 머물렀다면, 지금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유현이 울먹거렸다.
세상이 핏물에 잠긴다.
수위는 허리를 넘어 가슴 위까지.
곧, 머리끝까지 잠길 것이다.
“구해줘… 누가 나를… 나 좀… 나, 이렇게 사라지고 싶지 않아.”
유현이 어린아이처럼 울면서 소리쳤다.
“구해줘요! 으흑… 누가 나 좀 구해줘… 누가 날… 제발….”
누가 자신을 구할 것인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멀리 왔는데.
만약, 그런 자가 있다면 세상에 단 한 명뿐일 것이다.
“구해줘… 신님….”
그때였다.
– 기다려어어어! 유현!
잊고 있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도, 나를 버리지 않았구나.
“미안해요… 나… 나 이제….”
존재가 사라진다, 유현은 야차가 되어 간다.
그를 기억하는 이는, 모두 사라지고 오직 신만이 기억할 것이다.
– 잊지 마라! 유현! 꼭 구할 테니까! 기다려!
“그래, 나… 유현….”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정말로 지켜보고 계셨구나….”
– 제발… 기다려… 기다려… 끄으으….
사라지는 유현이 하늘을 보며 미소지었다.
“울지 마요, 신님. 반드시 잊지 않고, 기다릴 테니까. 그러니까….”
쏴아아아…
핏물에 몸을 맡긴다.
정처 없이, 피의 강을 따라 몸이 흘러간다.
‘기다릴 테니까… 꼭 와줬으면 해….’
가라앉았다.
끝을 헤아릴 수 없는 곳으로.
영원히, 떠오르지 않을 것 같았다.
따아아아앙-!
……
따아아아아아아앙-!
‘아, 여기는….’
익숙한 감각.
손에 잡혀있는 건 검.
손아귀가 전부 찢어질 정도로 치열하게 검을 휘둘렀을 때다.
스륵…
눈을 감고, 온 힘을 다해 검을 휘두른다.
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나무가 잘려 나간다.
다시, 눈을 뜬다.
‘…어?’
나무를 따라 풍경도 잘려 나간다.
기사가 자신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뭐지, 나 검을 휘두른 건가?’
익숙하다, 이 감각.
얼굴에 드리운 햇살과 함께, 땀으로 범벅이 되었던 그때와 같은 감각이다.
맑다.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차올랐다.
어째서 저자와 싸워야만 하는 것일까.
퍽, 그리운 느낌인데도.
의문은 나중.
익숙한 동작, 익숙한 기합으로 최선을 다한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상대도 역시나 최선을 다한다.
“으아아아아아아!”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이 서로에게 전해진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다가오는 기사의 눈에 담긴 감정이 어째서인지 선명하게 다가왔다.
‘슬퍼하고 있어. …왜?’
복잡한 감정이 검과 함께 교차한다.
검을 맞댄 순간, 울컥하며 감정이 물밀 듯이 올라왔다.
그동안 얼어붙어 있던 것들이.
“감사…합니다….”
너무도 훌륭한 검이었다.
유현은 쓰러지며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너구나! 왜 우는 거야, 네가 이겼는데….’
세상이 기운다.
더는 걸을 수가 없다.
끄르륵…
입에서 핏물이 꾸역꾸역 흘러나왔다.
춥다.
내가 이곳에 왜 있는 거지?
모르겠다.
시야가 점차 멀어져 간다.
누군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얼룩진 그림자뿐.
그래도 좋다.
이로써, 모든 게 끝이 난 건가?
“감사…합…니….”
“유현….”
유현?
유현, 나의 이름!
“내 이름… 유… 현….”
품을 뒤적였다.
있을 텐데.
있어야 하는데, 전해주고 싶었잖아.
…찾았다.
스윽…
천신목으로 조각한 신의 모습.
“정말로… 와줬어….”
“…뭐?”
“꼭… 구할… 테니까… 기다려….”
“…….”
“기다려… 기다려….”
나, 들었어.
당신의 목소리.
울어줬잖아, 신님이.
“…정말로, 들린 거냐?”
응, 들렸어.
“기다렸어… 늦었잖아… 그래도… 와줬어….”
웃어야 하는데… 웃어 주고 싶은데 표정을 지을 수가 없네….
지켜봐 줘서 고마워.
“…감사합니다.”
이로써 나는 당신과 조금이라도 가까워졌을까?
비루한 생이지만…
부디 당신이 나를 기억해주기를.
* * *
[‘유현’의 유지(遺志)를 이어받았습니다.]
[죽은 이의 능력을 전승합니다.]
[한마음을 이어받습니다.]
[당신은 한마음을 이어받습니다.]
……
뭔가 잔뜩 떠오르는 메시지.
그러나 강설은 그것들을 전부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으… 으으… 으….”
그를 지켜보는 많은 이들이 당혹스러워했다.
그가 이만큼 괴로워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기에.
늘 심드렁한 얼굴로 궂은 일들을 마다하지 않던 강설이기에.
“으… 으으… 으아으으….”
유현의 몸이 사라져가며 남긴 빛무리를 손에 쥐기 위해 애쓰는 강설.
그것이 부질없음을 알지만, 멈출 수 없었다.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났으니, 허기를 채워야 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의 비명을 모든 이들이 들었다.
후에 야차흔이라 불리게 되는 경계석의 폭주로 만들어진 현상의 투영.
멀찍이 떨어져서 그것을 통해 강설을 바라보는 이들은 그저 야차가 죽었다는 사실에만 집중했다.
“설홍 님이 해냈다!”
“그분의 용석이 큰일을 했어!”
“칸이 드디어 악몽을 몰아냈다!”
야차의 죽음은, 그들의 기쁨.
마음껏 기뻐해도 좋을 것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강설의 출신을 두고 전이자라는 얘기가 오고 갔기에 이 광경을 목격한 전이자들은 할 말을 잃었다.
“저 괴물이 전이자라고…?”
“말도 안 돼….”
“…거짓말이겠지.”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사태는 결론이 났다.
나머진 강설이 떠안아야 하는 것들이다.
이것은 고행이다.
말을 찾아 헤매는 고난의 길이다.
그럼에도 멈출 수가 없었다.
그의 불안정한 모습을 본 야차가 싱긋 웃었다.
– 나를 써라.
“…뭐?”
– 네 슬픈 기억을 지워주마.
“…….”
– 그리하면 모두 없었던 일이 될 거야. 어떠냐?
덥석…
강설이 야차의 가면을 붙잡았다.
마치, 예전에 유현이 야차에게 홀렸을 때처럼.
씨익…
야차의 웃음이 진해졌다.
“강설!”
설홍이 그런 강설을 향해 소리쳤다.
같은 비극을 되풀이할 작정인가.
강설이 가면을 손에 쥐고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 그래, 나를….
야차의 속삭임은 더욱 커졌다.
– 나를 받아들여…
우직…
바로 그때, 야차의 가면에 작은 실금이 더해졌다.
– …어어?
드드드…
강설이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야차의 가면은 잡아당겨지고 있었다.
양쪽으로.
– 아아아악! 아파아아아아!
야차가 비명을 내지르며 울상으로 변하자, 강설이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말했다.
“왜 그래….”
야차는 강설의 눈을 보았다.
“웃어야지.”
“…뭐?”
그의 눈은 야차마저 공포를 느낄 정도로 깊은 어둠을 간직했다.
좌절감, 상실감, 허무함.
그 모든 것들이 그 동공 안에 녹아 있었다.
야차는 태어나 처음으로, 인간에게 공포를 느꼈다.
“네가 유현의 표정을 가져갔잖아.”
“그만… 그만….”
으직…
“보, 복종할게… 네게 복종할 테니까….”
“필요 없어.”
어둠일 것이다.
강설의 마음이 닿은 곳은 어둠이었다.
“제발… 안 돼에에에!”
오랜 세월, 수많은 검사를 미혹하여 피를 수확했던 괴물.
야차.
빠지지지지지직-!
그 마지막이 바로 지금이었다.
“끄아아아아악….”
야차의 가면이 반으로 쪼개졌다.
휘오오오오오오오오-!
그 안에서 휘몰아치는 부정의 폭풍이 그와 한 쌍이었던 검으로 빨려 들어갔다.
[야차의 현신을 처치했습니다.]
[이로써 야차의 현신은 소멸하며 가진 힘은 ‘불가사의 – 야차(夜叉)에 귀속됩니다.]
[최초 업적 ‘가질 수 없으면 부숴버리겠어’를 달성합니다.]
[최초 칭호 「유물 파괴자」를 얻습니다.]
……
강설이 고개를 돌려 야광귀를 바라보았다.
휘익-!
야광귀가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하, 항복! 나는 그냥 매구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
그렇게 비로소, 칸을 피로 물들였던 싸움이 끝이 났다.
“와아아아아아아-!”
“끝이야! 정말로 끝났다!”
설홍이 강설에게 다가오려 했다.
“돌아가자….”
하지만, 강설이 고개를 저었다.
돌아갈 수 없었기에.
그가 쟈마드에게 물었다.
“무리였지?”
쟈마드가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 있으면 이 공간에 있는 자들이 경계석이 만들어낸 충격에 휩쓸릴 거다.”
“대책은?”
“얌전히 기다리는 것.”
“휩쓸리면 어떻게 되지?”
“글쎄… 우리라면 몰라도 저들은 갈기갈기 찢어지겠지.”
설홍도 이쯤 되면 쟈마드와 강설의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았다.
그제야, 짧은 시간 막대한 전이를 펼치고도 공간이 무사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설마… 경계석의 폭주를… 틀어막고 있던….”
쟈마드가 억지로 부여잡고 있었던 것이다.
야차가 사라져버린 지금, 경계석의 폭파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없었다.
“뭐, 경계석의 힘은 두억시니가 잘 회수할 거다.”
“그럼 다행이네….”
강설이 쟈마드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을 여기서 내보내 줘. 그건 가능하지?”
“그래, 가능하다. 그리고 네가 그럴 거라 예상했고.”
설홍과 치우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핏기가 완전히 빠져 나갔다.
“강설! 하지 마!”
“강설! 하지 마라! 같이 돌아가자! 아니, 남아야 한다면 나도 곁에 있을게!”
강설이 고개를 저었다.
“저는 떠나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돌아온다고… 약속해….”
“…….”
“약속해!”
“가능하다면, 이런 식의 작별은 아니었으면 했는데….”
“약속해다오! 그러면… 기다릴 수 있다. 강설! 네가 없으면….”
“만약 살아남는다면….”
강설이 빙긋 웃었다.
그는 이 이상, 말과 관련된 문제로 괴로워하기는 싫었다. 이미 가슴은 갈기갈기 찢어져 넝마가 되었으니.
“돌아와 보도록 하죠.”
또 한 번의 약속.
설홍은 기어코 받아 낸 그 약속으로 견뎌낼 수 있었다.
“슬슬 시간이다.”
투우우웅…
설홍과 치우, 그리고 야광귀가 공간 밖으로 튕겨 나갔다.
쑤우우욱…
주변 풍경이 달라져 있었다.
“커헉… 허헉….”
“설홍!”
“치우 님!”
우르르 몰려오는 사람들.
이곳은 야차와 싸움을 처음 시작한 산교의 벌판이었다.
신요와 태율이 가장 먼저 뛰어와 설홍과 치우를 안았다.
“구속해!”
“어… 안, 안 해도 되는데….”
야광귀가 머리를 긁적이며 순순히 지시를 들었다.
설홍이 야차흔을 보며 소리쳤다.
“신요 언니… 태율 오라버니, 구해야… 강설이 저기 갇혀서….”
태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디악에 시급히 전령을 보내라! 용궁의 대주술사님에게도….”
그리고.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삐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눈앞에서 야차흔에 비친 강설의 모습이 사라졌다.
마침내 응축된 경계석의 힘이 폭발한 것이다.
시야가 뿌옇게 변했다.
설홍이 휘청이며 무너졌다.
“강설… 어디로 가버린 거냐….”
죽은 건 아닐 것이다.
죽지는 않았겠지.
그렇다면…
“반드시… 찾아낼 것이다.”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축 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