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321
제320화
야차 대전이 벌어진 후, 7개월.
칸에 뚫린 구멍으로 넘어왔던 귀신들은 대부분 원래의 귀계로 되돌아가거나 중앙군에 의해 소멸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 법.
야차 대전을 직접 목격한 제국민들은 야차 대전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웠던 몇몇 용화들을 기억했다.
당연하게도 태율과 신요 그리고 설홍이 여기에 포함되었다.
태율의 야차 대전 중에 보였던 이성적인 태도에는 호불호가 존재했지만, 그가 있었기에 야차 대전이 더 큰 피해 없이 일단락되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자들은 없었다.
신요는 장두와 함께 야차 대전 이곳저곳에서 활약했다. 다만,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그녀의 행동거지 때문인지 민중들은 그녀를 다가갈 수 없는 존재라 규정했다.
그리고, 설홍.
“설홍 님! 여기 좀 봐주세요!”
“아, 좋은 냄새가 나는구나.”
“네! 빵이 나왔어요! 여기요!”
종이에 담긴 빵을 황급히 건네는 제국민.
설홍은 그것을 웃으며 받아들었다.
그녀의 호위병 중 하나가 만류했다.
“설홍 님, 음식물은 혹시 모를….”
앙…
말을 하는 사이, 설홍은 이미 빵을 베어 물고 있었다.
“서, 설홍 님!”
“괜찮다.”
그녀가 지나다니는 곳마다 사람이 에워쌌다.
특이한 점은, 그들의 옷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누군가는 장식이 주렁주렁 달린 황금빛 비단을 두르고 있었으나, 또 누군가는 헤져서 올과 올 사이의 간격이 늘어난 옷을 입고 있었다.
빈민과 부유층이 모두 그녀를 좋아했다.
그녀가 이룩한 업적뿐만 아니라, 그녀가 여기까지 도달한 그 길에 얽힌 이야기들까지 좋아했다.
지하에서 구름까지.
설홍의 이야기는 매력이 있었다.
용궁의 내부 평가는 어떨지 모르나, 제국민들의 설홍을 향한 사랑은 점차 커져만 갔다.
다각…
다각…
설홍이 탄 말이 궁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곧 말에서 내리며 고삐를 신하에게 내어주었다.
“부탁하마.”
“예….”
말을 데리고 사라지는 신하.
이윽고, 치우와 설홍 둘만이 남았다.
“설홍.”
“…….”
“설홍?”
“…아, 잠시 딴생각을 했어.”
설홍의 키는 전보다 더 컸다.
생전 유화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점차 그녀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었다.
육체는 이렇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나는 이만큼 자라나고 있어요, 하는 경과를 세세하고 알아보기 쉽게.
그러나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성장하기는커녕 도리어 줄어들기도 하는 게 마음이었다.
“소식은?”
“…없어, 아직.”
“…그렇구나, 조금 더 기다려야겠네.”
치우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벌써 7개월이다.
계절이 지나고, 계절이 지나고, 계절이 지날 무렵인 것이다.
강설은 사라졌다, 찾을 수 없는 어딘가로.
“그만하는 게… 좋지 않을까?”
“무슨 소리야?”
“강설 말이야….”
치우는 소리를 먹으며 말했다.
“죽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잖아….”
진려가 하품을 하며 다가와 설홍의 옆에 자리했다. 창가에 몸을 기댄 그녀가 말했다.
“설홍 님, 저 먹구름 보이시나요?”
“먹구름?”
“네, 먹구름. 요즘 들어 비가 너무 자주 오는 것 같아요. 꼭 커다란 뱀이 용이 되려는 것처럼.”
“…그러게.”
진려는 창가에 비친 먹구름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얘기했다.
“저는 북방에서 왔어요. 이곳의 문화도 사람도 잘 몰랐죠. 태율 님이 짬이 날 때면 꼭 어린아이를 대하는 것처럼 이것저것 얘기해줬어요. 저 먹구름을 보니까 그때 해줬던 전설 얘기가 떠오르네요.”
“전설? 어떤 전설?”
“용제 홍천이 원래는 연어였는데, 화그무의 패악질에 참지 못하고 강물을 거슬러 올라 스스로 용이 되었다는 전설이에요. 웃기죠? 뱀도 아니고 연어가 어떻게 용이 돼요.”
“칸은 연어를 신성시하니까. 그래서 전설에 연어가 종종 등장하긴 하는데… 그런 전설이 있는 줄은 몰랐네.”
“어쩌면… 어쩌면 말이에요….”
진려는 설홍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강설 님은 연어가 아닐까요?”
“연어?”
“네! 소천의 용께서 연어를 언급하셨잖아요. 연어는 돌아오는 법! 돌아올 자는… 아마 그분이 아닐까요?”
설홍이 잠시 생각을 이어가다 빙긋 웃었다.
“네 말이 사실이면 좋겠구나.”
* * *
그 시각, 강설은 이시이와 예바를 데려간 존재들을 추격하고 있었다.
[쟈마드가 고대 빙하 주술 : 설인의 인도를 사용합니다.]
[설원 지형에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눈을 밟고 지나간 존재의 흔적을 정확히 추적합니다.]
“이쪽으로 지나갔어.”
– 이 발자국…
“인간은 확실히 아니고….”
애초에 방향이 휘겔텅 쪽으로 잡혀있었다.
휘겔텅 쪽의 주민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얼음 두더지 에몬, 그리고 몰락한 빙하아귀 트롤.
이 경우에는…
“빙하아귀잖아.”
– 에몬들은 땅속을 헤집고 다니니까.
“어째서일까? 만일 충돌이었다면 곧장 이시와 예바를 죽였을 텐데 왜 인간을 데려간 거지?”
직접 그들과 대면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팔자에도 없는 보모 역할을 하고 있었으니, 강설은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가끔은 이런 것도 좋지.’
너무 심각한 일들만 연이어 벌어졌기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던 동방. 어쩌면 칸의 위기에 때맞추어 강설이 나타나서 그랬는지도.
강설은 그 긴장이 그리우면서도 잠시의 해방감을 만끽했다.
사실, 빙하아귀를 휘겔텅까지 추격하며 콧노래를 부르며 따라나서는 강설이 이상한 것이었지만.
“잠깐….”
강설이 빙하 주술을 따라가다 인상을 찌푸렸다.
“설산 방향이 아니잖아?”
분명, 빙하아귀는 휘겔텅의 설산을 거점으로 삼아 극지에서 군림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의 위세가 땅에 떨어졌다고 해서 이것까지 바뀌지는 않았을 텐데….
“…설마, 에몬이?”
– 요새를 두더지에게 빼앗긴 것인가?
쟈마드도 헛웃음을 지었다.
강설과 쟈마드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만약 착각이 아니라 빙하아귀가 정말 에몬에게 설산의 요새를 빼앗겼다면 그것만으로도 전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 할지라도, 그것이 지금의 상황과 썩 연결이 매끄럽지는 않았다.
애꿎은 연방의 경계조를 습격해서 해당 인원들을 납치했다. 대체 무슨 이유로?
강설이 눈썹을 꿈틀하며 그들이 사라진 방향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것 봐라?”
– 강설.
속도를 높여 휘겔텅 깊숙한 곳까지 추격을 시작한 강설.
[뜨거운 입김의 물약을 복용하였습니다.]
[냉기 저항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체온이 쉽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응?”
– 개입할 생각이냐? 에몬과 빙하아귀의 싸움에.
강설이 턱을 긁적였다.
“글쎄….”
– 에몬과 빙하아귀의 싸움은 오래되었다. 전세가 굳어진 이상… 뒤집기는 쉽지 않을 거다.
“…일단은 지켜보자고. 아직은 개입할 이유가 없으니까.”
– 그래, 일단은 추격에 집중하자.
추격은 그렇게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만일 빙하아귀가 설산으로 향했다면 극지 중의 극지로 향해야 했지만, 그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진로를 멈추었다.
“…잡았다.”
마침내, 빙하아귀의 흔적이 멈추었다.
강설은 그들을 따라 허술하게 조성된 성채로 빠르게 스며들었다.
* * *
“너 때문이야.”
“아닌데, 너 때문인데.”
이시이와 예바가 차가운 철창이 가로막은 장소에 투옥되었다.
그래도 빙하아귀가 인정머리가 아예 없지는 않은 건지 덮을 담요 정도는 넣어줬다.
“으… 추워… 휘겔텅… 추워….”
“우리가 없는 사이에 보급이 오면 어떡하지?”
예바의 물음에 이시이가 으르렁거렸다.
“개소리할래? 지금 보급이 문제야? 트롤은 사람을 먹는다잖아!”
“…정말? 난 살도 별로 없는데!”
“그거야말로 정말이냐?”
“꼭 따져야겠니? 넌 그러니까 여자친구가 없는 거야.”
“예바….”
이시이가 예바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턱수염이 유난히 느끼하게 보였다. 예바는 꺼림칙해하며 물었다.
“왜… 왜!”
“사실… 줄곧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
“야! 이, 이런 곳에서 말하면 어떡해….”
“…하지 말까?”
“얘기를 꺼냈으면 해! 준, 준비됐으니까.”
“지난번 보급 때, 네 담배 누락 된 거 아니야. 내가 챙겼어.”
“우리 사이가… 뭐? 이런, 개새끼가!”
“그래도 양심상 나눠 폈어.”
“미친놈아, 내 담배로 생색냈잖아! 난… 난 그것도 모르고 널 의리 있는 놈이라 생각했는데….”
예바가 이시이를 저주했다.
“트롤에게 잡아먹혀라, 망할 자식.”
“나 먹히면, 너도 먹히는 거야.”
“…그렇겠지? 그럼 취소.”
하아…
둘의 한숨이 입김이 되어 요새를 맴돌았다.
이시이가 물었다.
“우릴 왜 데려온 걸까?”
“그러게, 죽이지도 않고 착실하게 잘도 모셔온 게 참… 이해할 수가 없네.”
“연방에서는 이럴 때 어떻게 하라고 했지?”
“알아서 살아남아라! 라고 하지 않았겠어?”
“큭큭… 연방다워. …쓰레기 자식들.”
예바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걔는 잘 도망쳤을까?”
“누구? 아, 한국인….”
“강설 말이야, 그래.”
“몰라, 도망치든 얼어 죽든 했겠지.”
“혹시 우리를 구해주거나 하는 상황을 기대해보는 건 어떻게 생각해?”
“일본인의 시각에서 판단했을 때 굉장히 쓰레기 같은 발상이라 생각해.”
“역시, 만국 공통이구나. 방금 러시아도 같은 생각을 했거든.”
“…….”
“…….”
예바가 구속된 상태로 벽에 기댄 채 중얼거렸다.
“한국인은 정이 많다던데….”
“김치도 먹어 볼 만해, 나랑은 안 맞긴 했지만.”
“곤경에 처한 사람을 두고 못 보지 않을까?”
“치안율도 높긴 하지.”
“병신아, 치안율이랑 지금 무슨 상관이야.”
“정 많다고 여길 쳐들어오면 그게 사람이냐? 하여튼 생각하는 거 하곤….”
크와아아악-!
빙하아귀 트롤이 다가와 소리쳤다.
“아, 알았어요! 조용히 할게요….”
“어? 어어? 이 새끼들 문 여는데?”
“안 돼! 죽기 싫어! 안 가! 안 갈래!”
그들은 포박된 상태에서 빙하아귀 트롤에게 이끌려 어딘가로 향했다.
크르윽…
와아악! 칵!
“뭔 말이야… 제기랄….”
“입 냄새도 엄청 심해. 이시이, 너보다 심한 것 같아.”
“야, 애초에 비교한다는 것부터가 잘못됐어. 얼른 방귀나 뀌어, 요새 무너트리게.”
“이 새끼가… 그거 나 아니라고.”
“나 아니면 너밖에 없는데 무슨….”
크왁! 카아아악!
“죄, 죄송해요, 조용히 할게요. 예?”
“알아듣겠냐….”
“시끄러!”
쿠구우우웅…
끼이이익…
예바와 이시이가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는 공간에 내팽개쳐졌다.
앞에는 거대한 의자에 앉은 트롤과 그의 하수인으로 보이는 주술사가 있었다.
“빌어먹을… 역시 곱게 데려온 이유가 있었어.”
“바쳐지는 건가?”
크르륵…
크와아아아악!
트롤이 뭐라 말하자 주술사가 앞으로 나섰다.
후우우우웅…
수정구를 든 주술사가 중얼중얼 말하다 이시이와 예바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아악! 죽기 싫어!”
“하지 마!”
쉬이…
트롤 주술사가 말했다.
“엄숙하라, 인간이여.”
“어? 이, 인간 말을….”
“통역 주술이구나! 우리 말을 들으려 하는 거야! …어째서?”
이시이와 예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의자에 앉은 트롤이 물었다.
“인간이여, 몇 가지 질문을 하겠다.”
“어, 얼마든지! 대답만 잘하면 살려주는 거야?”
트롤의 질문은 이시이와 예바가 예상했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에몬들이 휘겔텅에서 흘러넘친다면, 인간의 대응은 어떻게 되지?”
“뭐? 그야….”
착실하게 대답해나가는 예바와 이시이.
하지만 대답할수록,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휘겔텅을 떠나려는 거야?”
“알 것 없다. 다음….”
역시나 계속된 질문에도 마찬가지.
주술사가 질문을 던지던 트롤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에몬의 경계를 피해 모든 병력이 휘겔텅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끝이로군….”
“제가 남겠습니다.”
“…자네가?”
“예. 시간을 벌어 볼 테니 부르툴 님만이라도 속히 휘겔텅을 떠나셔야 합니다. 언젠가 찾아올 빙하아귀의 다음 시대를 위해….”
부르툴이라는 트롤이 큭큭 대며 웃었다.
“빙하아귀의 다음 시대라… 듣기 좋은 말이군. 하나,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부르툴 님!”
“이대로 도망치면 어디로 간단 말이냐, 빙하 아귀는 싸운다. 싸운다면, 전력이다.”
스윽…
부르툴이 벌떡 일어나 말했다.
“싸우기로 결심했다면 등 돌리지 않는다! 내가 아버지에게 배운 것은 이것뿐이다.”
“…계책을 마련해보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부르툴이 예바와 이시이를 잠시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다가올 싸움에 여력이 없다. 죽여라.”
“뭐? 자, 잠깐만요….”
“안 돼… 죽기 싫어….”
주술사가 끄덕였다.
휘오오오오…
빙하 주술이 주술사의 손에 맴돌았다.
“고통스럽진 않을 거다, 인간들이여.”
“안 돼에에에에!”
휘이이이이잉…
쐐에에에엑-!
찬바람이 휘날리듯, 결정화된 바람이 예바를 향해 날아갔다.
파악-!
이시이가 생선처럼 펄쩍 뛰어 예바의 앞을 틀어막았다.
“이시이!”
“……응?”
눈을 감고 죽음을 기다리던 이시이가 눈을 슬쩍 떴다. 아무리 기다려도 고통이 찾아오지 않아서였다.
휘오오오오오…
예바와 이시이의 눈앞에 검은 형체가 어른거렸다. 그리고 그 검은 형체의 손에는 방금 주술사가 쏘아낸 빙하 주술이 붙잡혀 있었다.
“성급하기는….”
“무, 무슨! 경비병!”
이시이와 예바는 방금의 목소리로 검은 존재가 누구인지 알아챘다.
강설이었다.
“내, 내가 한국인은 정이 많다 그랬지?”
“흐어어엉… 강설… 우리 좀 살려줘….”
강설이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예바와 이시이를 잠시 바라보았다가 부르툴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네놈은 뭐냐?”
“지구촌 주민.”
“뭐?”
“얘기 좀 하지.”
“관심 없다.”
피식 웃는 강설.
“글쎄… 관심이 있어야 할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