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322
제321화
의자에 앉은 부르툴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맞이한 황당한 일.
“…어떻게 들어온 거지?”
“경계가 허술해서. 다른 이유가 있겠어?”
“…틀린 말은 아니지.”
“즈, 즉시 경계 강화 지시를 하달하겠습니다.”
“되었다. 경계를 강화한다 한들 이 자를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니.”
“…….”
이시이와 예바는 강설이 그들을 구하러 왔다는 사실에 뛸 듯이 기뻐했지만, 그것도 잠시 강설이 트롤어를 구사하자 조금 불안해했다.
“트, 트롤어 맞지? 지금….”
“조용히 해….”
“설마 한패는….”
“으이구! 제발 조용히 좀 있어.”
강설이 능숙한 트롤어로 자신들과 대화를 나누자 부르툴과 주술사는 이 기이한 존재에게 흥미를 느꼈다.
“재밌구나, 말은 어디서 배운 거지?”
“그쪽과 관련된 일을 종종 했거든.”
“흐음….”
“그런 의미에서 제안하지.”
“제안?”
“이야기를 들려줘, 사태가 이 지경이 된 이유에 대해서.”
주술사가 부르툴을 쳐다보았다.
자신은 발언권이 없으니 부르툴의 입이 열리는 것을 기다리는 것 외에 다른 반응은 없을 것이라는 의미였다.
“흐음….”
부르툴은 잠시 고민하다 이렇게 말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후에는?”
“그건 차차 생각해보고. 어쨌든 빙하아귀와 충돌을 일으키고 싶은 마음은 없어.”
“네 부하를 데리고 이곳에서 도주하겠다는 의미로구나. 그게 가능할 것 같으냐?”
강설이 생글생글 웃었다.
그 미소에서 섬찟함을 느낀 부르툴은 잠시 이마를 짚었다가 말을 이었다.
“좋다, 어차피 곧 인간들에게도 알려질 얘기일 테니.”
그는 불안한 듯 연신 손을 꼼지락거리며 상황이 이렇게 흘러간 이유를 설명했다.
“에몬이 준동했다.”
“두더지가? 여태껏 잘 막아왔잖아?”
“그것도 한계에 달한 것이지. 이제는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이상한 일이었다.
에몬의 세력은 과거에도 존재했었다.
그들은 이 험한 극지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존재이자 지능이 그리 뛰어나지 않은 종족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건… 한 가지 이유만이 아니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문제를 일으켰다. 첫째, 에몬이 영악해졌다.”
“영악해져?”
“과거였다면 머릿수를 믿고 몸부터 들이미는 것이 그들이었다. 하지만… 어떤 일을 계기로 그들은 이전의 에몬과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다. 이제는 말까지 하더군.”
“…말을?”
들개들이 지성을 가져 대등한 위치를 점한 것이다. 강설도 이 부분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뜻밖의 말을 들은 강설은 이 일에 더욱 흥미가 생겼다.
‘생각보다 일이 복잡한데?’
세력 균형의 변동 정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부르툴의 말이 사실이라면 어쩌면 지금 이 일은 북부 전역에 영향을 미칠 중대한 사안일 수도 있었다.
“지능이 늘어났다면 휴전 협정 같은 것도 고려해 볼 수 있었던 거 아니야?”
“그렇지 않다. 에몬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그건. 놈들은 탐욕이 넘쳐흐른다. 번식욕, 확장욕, 정복욕까지. 구름처럼 모여들어 모든 것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지성이 통하지 않는 상대다.”
“우리의 사자를 죽여버리기까지 했지. 에몬은 상종 못 할 녀석들이다.”
주술사까지 말을 거들었다.
강설이 그를 잠시 흘겨보았다.
“읏….”
그 눈빛을 받은 주술사가 움찔했다.
살의를 깃들여 보낸 것도 아닌데 반응이 과했다.
‘격차가 심해서 그래.’
보통 족장, 그러니까 빙하아귀 정도 되는 규모라면 대족장의 위치일 것이고 그들의 측근은 대주술사인 경우가 흔했다.
‘그런데 이 녀석은….’
대주술사에 한참이나 미치지 못하는 주술력.
거기에 다른 재주도 없어 보였다.
‘빙하아귀는 대체 어디까지 추락한 거지?’
강설은 잠시 그들에 대한 평가를 미루고 얘기에 집중했다.
“놈들이 어디까지 밀어닥친 거지?”
“휘겔텅의 거의 모든 곳에 에몬의 눈과 귀가 닿는다. 아마 지금도 이곳 지하에 숨어 우리의 얘기를 훔쳐 듣고 있는지도 모르지.”
“…상황이 심각하네.”
휘겔텅 전역이 두더지의 영역이 되었다.
이럴 때 다른 전이자였다면 가장 편리한 방법을 고려했을 것이다.
휘겔텅을 떠나는 것.
하지만, 강설은 생각하는 방식이 약간 달랐다.
그는 말의 위치에서 생각하지 않았다.
판데아 전체를 거대한 게임판처럼 생각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를 고려했다.
‘에몬을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가는 세력 구도가 바뀌게 될 거야.’
과거에도 몇 번 이런 경험이 있었다.
그저 조금 과하다 싶었던 세력들의 팽창을 주저하며 막지 않았다가, 큰 곤란을 겪게 되었던 일.
에몬의 세력이 팽창하면 필연적으로 북부에 군림하는 인간과 난쟁이의 연방과 부딪힐 것이며 연방이 흔들린다는 건 또 그만큼의 틈이 생긴다는 것이다.
게임판이 흔들리는 건, 그곳에서 살아가는 전이자에게 중대한 악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에몬이 극지의 패자로 군림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말이 통하는 연방이나 빙하아귀가 차라리 낫지 않겠는가.
“그런데, 고작 그 정도로 빙하 아귀가 여기까지 밀려났다고?”
“그건 아니다. 말했듯이 복합적인 이유에서다. …빙하아귀는 과거의 강대했던 빙하아귀가 아니다.”
“어째서?”
“모두 나의 모자람 때문이다.”
“부르툴 님!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건….”
“그만, 내 생각을 말할 뿐이다. 에몬에게 단초를 제공한 건 내가 선대만큼 재능이 없어서다.”
“…….”
틀린 말은 아니었다.
강설은 부르툴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 아버지의 반도 따라오지 못하는 지도자.
안타깝지만 이건 사실이었다.
브론이든 브란카든 그들이 존재했던 시절이 빙하아귀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였다.
개인의 무력은 물론이고 부족을 강성하게 만들었던 지도력까지.
“그런데 고작 그런 이유로 설산을 빼앗겼다는 건 믿기 어려운데….”
설산은 빙하아귀가 오랫동안 다스려온 영역이었다. 천혜의 요새이며 버티기만 해도 눈보라가 휘몰아쳐 적들을 물리쳐주는 훌륭한 지형이었다.
정작 그 안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빙하아귀도 괴로운 건 논외로 치더라도 말이다.
“…놈들이 어떤 유물을 손에 넣었다.”
“유물?”
“놈들의 장군 중 하나인 자크챠라는 놈이 대주술사 크롬과 함께 성을 공격했다. 우리가 열세이긴 했지만, 지형을 발판 삼아 무리 없이 격퇴하리라 생각했는데….”
부르툴이 몸을 떨었다.
“크롬이 지팡이를 휘두르자 모든 게 얼어붙었다. 눈보라보다도 더한 한기가 몰아쳤어.”
“…지팡이?”
“푸른색 수정구가 달린 지팡이였다.”
푸른색 수정구.
강설이 그 말을 듣고 눈썹을 꿈틀했다.
뭔가 감이 올 듯 말 듯 했다.
“혹시 수정구의 생김새를 기억해?”
“생김새?”
부르툴과 주술사가 서로를 잠시 쳐다보다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흰 새 문양이 그려진….”
“이런….”
“왜 그러지? 유물의 존재를 눈치챈 건가?”
“아, 아아….”
강설의 심장이 크게 동요했다.
그 동요는 허무에도 전해졌다.
– 왜 그러지? 아는 물건인가?
강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즈란의 물건이야. 새벽녘의 수정.’
– …정말이냐? 아즈란의 물건이라고?
‘그래, 그가 깨달음을 얻은 후엔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꽤 오랫동안 사용한 물건이지.’
새벽녘의 수정은 어쩌면 지금 강설, 아니 우르에게 가장 필요한 물건일지도 몰랐다. 그는 금서인 얼어붙은 진리로 서리 마법을 깨우치고 있었으니 여기에 새벽녘의 수정까지 더해진다면 그의 경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강설.
우르가 진중하게 얘기했다.
– 아무래도 결국 이 일이 우리와 무관하지 않게 될 것 같은데.
‘마침 나도 같은 생각이야.’
그런데, 강설이 대화를 이어나가려고 하는 그때.
드드드드드드…
임시 주둔지가 흔들렸다.
‘지진? 아니, 이건….’
주술사가 소리쳤다.
“무슨 일이냐!”
“두더지입니다! 에몬들이 나타났습니다!”
“이런… 부르툴 님! 명을!”
부르툴이 지친 눈빛으로 강설을 바라보다가 주술사에게 명했다.
“직접 나서겠다. 놈들을 맞이할 준비를 해라.”
“그럼 이자들은….”
“…너희는 적당한 때를 봐서 빠져나가라, 두더지들에게서 도망칠 수 있다면 말이다.”
예바와 이시이가 서로를 잠시 쳐다보았다가 강설에게 시선을 돌렸다.
강설은 어깨를 으쓱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 *
“크아아악!”
“막아라! 발밑을 조심해!”
습격은 한밤중에 시작되었다.
푸화아아아악-!
“컥….”
빨간 피가 새하얀 눈에 그림을 그렸다.
창을 쥔 두더지들은 잘 쳐줘 봐야 빙하 아귀의 신장에 반도 안 되는 크기였다.
그러나 싸움은 대등했다.
두더지들을 선두에서 이끄는 누군가 때문이었다.
“히히히! 이리자드 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셨다! 너희를! 너희를 모두 죽일 것이다!”
요상하고 화려한 갑옷을 입은 에몬은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이리자드 님의 충실한 종! 쿠악하다! 나와라, 부르툴! 널 소금에 절여 구워주마!”
까드드득…
습격 소식에 황급히 밖으로 나온 부르툴이 인상을 쓰며 앞으로 나섰다.
“끽끽끽… 도망치지 않았구나?”
“빙하아귀는 두더지 따위에게 도망치지 않는다.”
“끽끼익! 네놈의 엉성한 왕좌는 이미 우리 손에 들어왔다, 그러니까 말해!”
두더지의 눈이 번들거렸다.
“그녀를 어디에 숨겼나?”
“누가 두더지 아니랄까 봐, 주둥이가 길기도 하구나.”
“죽일!”
[쿠악하가 고드름 난자를 사용합니다.]
[3연격이 발동합니다.]
[상처 부위가 얼어붙어 체온을 떨어트립니다.]
“어딜!”
후우웅-!
부르툴도 그의 몸에 걸맞은 크기의 창을 사용했다.
휘리릭-!
탕! 타앙! 타아앙!
3연격을 어렵지 않게 막아낸 부르툴.
‘오… 제법…이 아닌가?’
얼음 두더지 쿠악하는 잘 쳐줘 봐야 초월 중급에 도달한 전천후 전사. 큰 규모의 부족을 이끄는 부르툴이 고전해서는 안 되는 상대였다.
하지만, 부르툴의 손이 부르르 떨리는 것으로 보아하니 그에게 지금의 싸움은 버거워 보였다.
“키익힉! 넌 약하다, 부르툴. 대체 언제까지 약할 셈이냐?”
“말로는 벌써 나를 쓰러트렸구나, 두더지.”
휘릭-!
[부르툴이 파편 타격을 사용합니다.]
[참격의 방향을 따라 지면에서 얼음 파편이 솟아납니다.]
[참격에 적중한 적이 얼음 파편에 적중할 경우, 확정적으로 얼어붙습니다.]
쒜에에엑-!
으드드드드드드드-!
부르툴의 거친 공격.
“키힉! 하품이 나온다고!”
팟-!
쿠악하는 날 쎈 몸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알았다. 참격도, 얼음 파편도 전혀 맞지를 않았다.
‘부르툴이 지겠군.’
상대의 장기가 속도라면, 육탄전으로 돌입해 붙들어둬야 했다. 무게와 힘을 이용해 상대의 속도를 봉쇄해야 했다.
‘저런 건 맞아주는 게 바보라고.’
아마 맞은편의 두더지도 강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부르툴의 나이는 적지 않아 보였는데도, 전투에는 미숙함을 보였다.
그럴 수 있다.
재능이 없다면.
‘하필 그 재능 없는 자가 부족의 족장이라면 얘기가 다르지만.’
휘리릭-!
카가가가강-!
두더지가 그의 창을 손쉽게 받아넘기며 조롱했다
“끽끽… 네놈이 북부의 왕이라고 생각했느냐? 킥킥… 어림없는 소리!”
“…….”
휘릭-!
카아아아아앙-!
“신하 없는 왕이 있더냐? 킥킥킥킥킥!”
우지지지직…
쿠악하는 빙하아귀가 감당하기 어려운 존재는 아니었다. 그 경지도 기껏해야 초월 중급.
그러나, 쿠악하는 부르툴에게 만큼은 악마와도 같은 힘을 보였다.
부르툴이 그만큼 뒤떨어진 존재였기에.
“허억… 허억….”
“네 아들은 아비와는 달리 재능있다 들었는데… 사실이냐? 사실이라면 미리 처리해둬야겠군.”
“노옴! 여기서 내게 죽을 놈이 내 아들까지 넘볼 생각하지 말아라!”
“킥킥… 내가 죽는다고? 아! 죽을 수 있지.”
팟-!
“하지만 네게 죽을 내가 아니다.”
푸우욱-!
“크으으윽….”
털썩…
어깨에 창이 틀어박혀 나자빠지는 부르툴.
“부르툴 님!”
“족장님!”
“키하하하하하하! 이제 쿠악하가 왕이다! 쿠악하는 왕이야! 너희를 노예로 부릴 거야!”
“하아… 하아….”
쑤우욱…
창을 뽑는 쿠악하.
“크아아악-!”
“키힉! 쿠악하는 왕이 되면 뭐부터 할까? 매일 너희를 죽여도 되겠지? 응? 그래도 된다고 말해.”
“…….”
“싫으면 죽어.”
쒜에에에엑-!
사슬이 달린 창이 부르툴의 얼굴로 날아왔다.
파아아아아아악-!
“키힉… 어라? 인간?”
가만히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강설이 쿠악하의 창을 막아선 것이다.
“인간이 왜 여깄지?”
“쫑알쫑알 시끄럽네.”
“쿠악하가 시끄러워? 키힉… 시끄럽다고?”
“그래.”
“쿠악하 보고 시끄럽다고 말한 녀석들, 다 죽었어! 쿠악하가 죽일 거야!”
예바와 이시이가 소리쳤다.
“가, 강설! 위험해!”
“나서면 안 돼!”
강설의 힘을 모르는 자들은 늘 그의 행동을 무모하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역시나 그랬고.
휘리리릭-!
사슬을 잡아당겨 창을 되찾아오는 쿠악하.
스으으…
후우우우…
강설이 심호흡을 했다.
“긴장했어? 응? 키힉… 키히히힉….”
[쿠악하가 북서풍을 사용합니다.]
[병기가 차가운 바람을 내뿜습니다.]
[바람은 날붙이 효과를 적용받습니다.]
휘리리리릭-!
파파팟!
쿠악하가 강설을 중심으로 회전했다.
파아아앗!
파아아아앗!
후우우우우우웅!
“키히힉! 어때? 안 보이지? 응? 못 찾겠지?”
그 순간.
쟈마드가 깨어나 강설의 몸을 휘감았다.
파츠즈즈즈즈즛…
쿠악하가 불길함을 감지한 것도 거의 동시였다. 그리고 피해야겠다고 판단을 하고 그것을 실행했다.
아니, 실행하려 했다.
파아아아아앙-!
콰지이이이이이이이익!
“끽… 끼이익….”
[대지 주술 : 바위 손을 사용합니다.]
[대상을 구속합니다.]
[근력과 지능이 악력을 결정합니다.]
“놔! 이거 놔, 놔!”
바위로 이루어진 거대한 손이 쿠악하를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