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327
제326화
브론은 타고난 길잡이였다.
아니, 휘겔텅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직접 주무르는 것처럼 지리를 꿰고 있었다.
“이쪽은 포기. 도중에 매복을 만나면 꼼짝없이 노출된다.”
“지하에 동굴이 있다, 제법 길긴 하지만, 반대쪽으로 이어져 있어.”
“조심해라, 이곳의 박쥐들은 병을 옮긴다.”
다행인 점은, 휘겔텅 지천에 소규모로 조직된 두더지 정찰 병력이 깔려 있었지만 단 한 차례도 마주친 전적이 없었다.
그 말은, 일단 숨결의 무덤까지는 무사히 도착할 수 있다는 얘기나 마찬가지였다.
“놈들은 우리가 성채에 틀어박혀 가만히 말라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 예상했을 거야. 제대로 된 머리가 몇 없기 때문이지.”
그렇게, 강설과 쟈마드 그리고 브론은 숨결의 무덤 초입에 진입할 수 있었다.
숨결의 무덤 지형은 얼음 협곡이라고 볼 수 있었다. 지하와 지상을 넘나드는 지형, 까딱하면 부서지는 얼음 바닥도 문제지만 지독한 한기도 이곳이 악명 높은 이유였다.
“그래… 이곳에서 녀석을 상대했었지.”
“…강해?”
녀석은 이리자드를 말하는 것이리라.
브론은 강설의 말에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잠시 떠올렸다. 아주, 끔찍하고 무력한 기억이었다.
– 피해에에에!
– 브론! 주술이 잠식당했다! 놈이 내 주술을….
– 빙하아귀의 전사들이여! 죽음을 두려워 마라!
피가.
숨이.
모든 게 얼어붙어 사라졌다.
처음부터 투명하게 조각되었던 것처럼, 많은 생명을 잃었다. 원신에게 도전했던 자는, 다시 일어설 수 없다. 죽음과 같은 공포를 초월적인 존재에게서 느꼈으니까.
하지만,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자는 다시금 도전하려 한다. 어쩌면 브론은, 그 불가능에 도전하는 자일지도 몰랐다.
“당연하지. 손도 못 쓸 정도로 강하다고.”
“하긴….”
저벅…
저벅…
하늘이 뻥 뚫린 공간을 지나자, 얼음으로 된 천장이 빛을 가렸다. 주변 시야가 점차 어두워졌다.
휘오오오오오…
휘겔텅은 기본적으로 추웠다.
일반인이 아무런 도움 없이 생존할 환경은 절대 아니었다.
숨결의 무덤은 휘겔텅에서도 한파가 극심한 곳으로 전해졌다.
“심각하게 추워지네.”
“큭큭… 눈썹에 고드름이 맺히겠어.”
“원래 이런 곳이야?”
“아니,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빙하아귀도 동사할 지경이군… 아마도 내 금술의 영향이거나….”
브론이 표정을 찡그렸다.
“이리자드의 짓이겠지.”
휘오오오오오…
“버틸 수 있겠나?”
화르륵…
브론의 질문에 밤까마귀는 따뜻한 빛으로 변한 눈을 보여주었다.
유황의 근원을 끌어올렸기에 추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만 조심하면 되겠군.”
“금술을 사용한 지점은 이곳보다 더 깊은 곳에 있나?”
“지겹게 가야 할 거야, 발밑을 조심해라. 꽤 단단하게 얼어있지만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곳이야.”
저벅…
저벅…
그들이 한참을 걸어갔을 때, 밤까마귀가 걸음을 멈추었다.
“강대한 기운이 느껴진다.”
“흐흐… 내가 펼친 금술이군. 거기다….”
브론이 일대에 펼쳐진 주술을 확인하고는 웃었다.
“이리자드 녀석, 꽁꽁 싸매놨군! 하하하! 녀석도 내 금술을 해제하지 못한 거야! 암! 이 브론이 목숨을 걸고 짜낸 금단의 주술인데 어딜….”
원신의 파편조차 해제하지 못한 주술.
브론의 전성기 시절 힘이 얼마나 거대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브론, 궁금한 게 있다.”
“말해.”
“이곳에 잠든 원정대의 규모는 얼마나 되지?”
“…….”
“지금 성채에 있는 병력의 반은 되나?”
“글쎄… 죽기 직전이라 얼마나 살아남았는지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아. 그래도 대강 헤아려 보면….”
브론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몇 배는 되겠지.”
“…뭐? 전부 정예 병력이라 하지 않았나?”
“큭큭… 빙하아귀의 황금기에 축적한 힘이다. 그것들을 전부 끌어와 이리자드와 싸웠으니 당연한 거지.”
그들을 손에 넣는다면 분명 커다란 힘이 되어줄 것이다. 하지만, 이 상황은 반대로도 해석할 수 있었다.
“…그만한 병력으로도 승부를 내지 못한 거냐?”
강설과 쟈마드의 물음에 브론이 씁쓸하게 답했다.
“수가 많다고 해서 이리자드를 쓰러트릴 수는 없었다. 이리자드는… 강해.”
“그때의 원정대로도 쓰러트리지 못했던 이리자드에게, 지금에 와서 다시 도전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말했잖아, 그야 지금은 네가 있으니까.”
“…….”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이리자드는 그 절대적인 강함보다도 상대하기 아주 까다로운 특성을 가지고 있지. 네가 있다면… 아니, 대주가 둘이라면 분명히 상대할 수 있다.”
“…뭐, 그런 걸로 하자고. 그럼 그들만 되찾는다면 이리자드와 붙어볼 만한 거냐?”
브론이 잠시 생각하다 이렇게 답했다.
“브란카의 수하들과 싸웠던 적 있지?”
“만상에서 부딪혔었지.”
일반적인 빙하아귀보다 강한 녀석들.
지금도 성채에 그 일부가 섞여 있었다.
덩치도 눈에 띄게 컸던 것 같았다.
“한데 어째서 그런 차이가 생긴 거지?”
“브란카의 욕심으로 선조의 영령을 그 몸에 받아들였기 때문이지. 고대 주술을 사용할 수 있는 괴물들이 되었지만… 그 흉포함을 통제하지 못해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켰다.”
“순혈과 혼혈의 문제로군.”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어, 우리는 내부에서부터 곪아갔다. 그리고 나는….”
“어리석게도 그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눈앞에서 치워버렸지.”
“설마… 갈라선 거냐?”
“…그래, 녀석들을 모두 추방했다. 서로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기로 하고 말이야. 서리아귀라 불리는 녀석들이다. 우리는 강하기에… 분쟁보다는 분열이 나을 거라 생각했다. 부딪히면 양쪽 다 크게 다칠 게 분명했으니까.”
말하자면 브란카의 혈통은 서리아귀로 배척받아 성채를 떠나 독립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강설은 이에 대해 브론에게 몇 가지 더 물어보려 했지만, 상황이 문답이나 하고 있을 정도로 한가하지는 않았다.
“잠깐.”
“흐응….”
“뭔가 있다.”
“두더지겠지?”
“아마도, 근데… 뭔가 이상하군.”
“나도 느꼈다. 수가 그리 많지는 않아.”
“놈들은 우리가 이곳으로 올 줄 몰랐던 거군. 하기야… 이 브론이 살아 돌아올 줄 누가 알았겠어? 큭큭….”
밤까마귀가 물었다.
“여기서 난동을 피우면 잠든 병력은 어떻게 되지?”
“그 문제라면 걱정할 필요 없다. 애초에 그 정도로 균열이 생겨 부서질 정도였다면, 이미 오래전에 부서졌을 테니까.”
“마음껏 날뛰어도 된다는 소리군.”
“할까?”
“해야지.”
두두두두두두…
두더지들이 급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이미 들켰나?”
“낌새로 봐선 방금 들킨 것 같은데.”
“그럼 빠르게 가자.”
팟-!
파아앗-!
브론과 밤까마귀가 협곡 깊숙한 곳으로 뛰어들었다.
그 순간.
푸화아아악!
“끽! 끼이이익!”
“왔다! 정말로 왔어!”
“들여보내면 안 돼!”
날카로운 발톱을 앞세운 정찰병이 밤까마귀를 향해 쇄도했다.
퍼어어엉-!
“켁….”
퍼어어어어엉-!
“으어억….”
별다른 주술을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밤까마귀가 휘두른 주먹에 그대로 나가떨어지는 정찰병들.
“히이익!”
“주술사! 강해!”
“정말이야! 정말로 강했어!”
“두코코! 두코코! 도와줘!”
“두코코! 시키는 대로 했다! 어서 나와 도와줘!”
두코코라는 이름을 외치는 두더지들.
푸화아악!
푸화아아악!
협곡 곳곳에서 두더지들이 잔뜩 나타났다.
“쳇….”
“그래도 수가 그리 많지는 않아. 경계 병력이거나 계산된 배치가 아니야.”
“두코코!”
그때.
드드드드드드드…
콰아아아앙-!
위에서 거대한 두더지가 떨어져 내렸다.
갑옷을 입은 두더지 위에는 고삐를 쥔 두더지 주술사가 타고 있었다.
[간악한 두코코가 등장합니다.]
[식탐 많은 다구구가 등장합니다.]
“킥… 키히힉… 정말이네? 두코코가 맞았어! 자크챠 님에게 칭찬받을 거야!”
“크르르르….”
강력한 힘이 느껴지는 이 둘에게서 들어본 이름이 흘러나왔다.
‘자크챠라면… 새벽녘의 수정을 가진 크롬이라는 주술사 놈과 같이 다니는 녀석이로군… 대장군이라고 했던가?’
앞에 있는 두코코는 녀석의 수하인 것 같았다.
그럼 빨리 처치해야겠군.
브론이 물었다.
“설마… 혼자 왔나?”
“응? 두코코와 다구구는 둘인데? 바보냐? 숫자도 못 세게….”
“이런, 내가 바보였을 줄이야… 지원군은?”
“안 불렀지! 네 녀석들의 목을 벤 공은 모두 내 것이야! 키히히히힉!”
– 아이쿠…
– 우리 친구 혼자 오셨구나…
– 혼자서 이런 위험한 데를…
시청자들이 두코코의 미래를 어렴풋이 보았다.
밤까마귀가 말했다.
“뚱뚱한 쪽을 맡지.”
“그럼 난 저 똑똑하신 두코코인지 뭔지 하는 분을 상대하면 되겠어.”
두코코가 소리쳤다.
“가라 다구구! 힘을 보여줘!”
“키이이익!”
우지지직…
다구구의 몸이 공처럼 부풀었다.
쩌저저저저적…
얼음이 곧 녀석의 몸을 감쌌다.
‘미늘?’
마치 갑옷처럼 정교하게 짜인 그 얼음들을 두코코가 자랑했다.
“다구구는 단단하지! 한 번도 뚫린 적이 없다고!”
[식탐 많은 다구구가 몸 부풀리기를 사용합니다.]
[공격 범위가 50% 증가합니다.]
[식탐 많은 다구구가 얼음 미늘을 사용합니다.]
[물리 피해의 30%를 경감하며 총 방어력이 50% 증가합니다.]
“크르르르르! 크와아아아악!”
다구구가 침을 흘리며 밤까마귀에게 돌진했다.
“조심해!”
브론의 말에 밤까마귀가 코웃음 치며 온몸에 대지의 갑옷을 둘렀다.
카드드드드득!
치이이…
뒤로 죽 밀려나긴 했지만, 별다른 상처는 없어 보이는 밤까마귀.
“키히힉! 너도 꽤 단단한데?”
“그래? 근데 넌 아닌 것 같은데.”
“크륵… 크르르륵….”
밤까마귀가 붙잡은 다구구의 얼음 미늘이 부서져 내렸다.
“…어라?”
“크르륵….”
후우웅…
밤까마귀가 한쪽 팔을 뒤로 당겼다가 그대로 다구구의 몸에 꽂아 넣었다.
퍼어어어어어어어엉-!
풍선 터지는 소리가 나며 얼음 미늘이 와장창 깨져나갔다.
“끼이이이! 끼이이이이!”
“다구구! 진정해! 뭐, 뭐지? 어떻게 다구구한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거지? 다구구는 단단한데!”
밤까마귀의 투갑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말랑하던데?】
“…….”
비탄은 평범한 무기가 아니었고 비탄이 덮어쓴 쟈마드의 산의 주먹 또한 마찬가지였다.
대다수의 방어 행위는 충분히 으깨버릴 수 있었다.
후우웅…
쒜에에에에엑-!
퍼어어억!
“끄아아아아악!”
“이런, 빗나갔나?”
두코코의 어깨를 물의 화살이 관통했다. 브론이 방심한 틈을 타 두코코에게 일격을 가하려던 것인데, 다구구가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조준이 살짝 빗나갔다.
“아파… 아파!”
“끽! 끼이익… 밀린다! 두코코가 밀린다! 두코코! 말이 다르잖아!”
“시끄러! 쓸모없는 녀석들! 너희들이 도움이 안 돼서 이렇게 된 거잖아! 도움? 그래, 도움이 돼라! 다구구!”
“크륵… 크르르륵….”
“마음껏 먹어도 좋아!”
[식탐 많은 다구구가 게걸스러운 식사를 사용합니다.]
[식사량에 따라 크기와 능력치가 대폭 증가합니다.]
[이후 격한 움직임을 이어갈 경우, 소화불량에 빠집니다.]
파아악-!
“끼이이익!”
“뭐, 뭐 하는 짓이야!”
다구구가 두더지를, 그러니까 아군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