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329
제328화
한편, 예바와 이시이는 빙하아귀의 얼음 성채에서 강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예바,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 확 도망칠까?”
“가능은 하고?”
“하아….”
그들은 땅이 꺼지도록 한숨 쉬었다.
“일이 이렇게 복잡하고 커질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강설을 주둔지에 데려오지 말 걸 그랬어.”
“강설이 없었으면 이미 한참 전에 죽었을 텐데 무슨…. 그냥 우리가 재수 없게 휘말린 거지.”
“강설 말이야, 정말 전이자 맞을까?”
“그렇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의심스럽긴 해… 전이자가 저렇게 강할 수가 있을까?”
“트롤어 하는 전이자 봤어?”
“아니….”
“나도 그래….”
생각을 거듭할수록 고민만 깊어져 갔다. 강설의 정체에 대해서는 의심이 갔지만 그것을 속 시원하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어디까지나 예바와 이시이는 이 전쟁의 주변인이고 또한 약자였으니까.
“이거… 이대로면 어떻게 되는 걸까?”
“에몬이랑… 빙하아귀랑 대차게 싸우겠지.”
“싸움이 크게 번지겠지?”
“장난하냐? 당연하지! 이번에 둘 중 하나는 완전히 쓸릴 것 같은데….”
“누가 이길 것 같아?”
“당연히… 에몬이지….”
“그, 그렇지?”
“봤잖아, 너도… 바글바글한 거. 도저히 상대할 엄두가 안 나더라.”
브론과 그의 병력이 합류하긴 했지만, 성채를 점령했던 두더지 군세 또한 에몬의 일부에 불과했다.
즉, 총력전을 펼칠수록 빙하아귀 측이 불리하다는 결론.
“…그럼, 누가 이겼으면 좋겠냐?”
“일단 에몬은 아니야.”
“나도… 이럴 때 연방 소속은 어떻게 행동해야 옳은 거지?”
“그야 훌륭한 연방의 구성원은 이곳에서 탈출해 연방 수뇌부에 현재 휘겔텅의 군사 상황을 보고해야겠지.”
“근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는 거지?”
“그야 우리는 훌륭하지 않으니까!”
“정답.”
“애초에 믿어주지도 않을 것 같은데… 기록이라도 제대로 해두자. 나중에는 배신자로 몰릴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좋은 생각!”
예바가 푸념했다.
“근데 빙하아귀가 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 나 이상한 거야?”
“어… 그래도 말이라도 섞어 본 트롤 쪽이 낫지 않을까? 딱히 이상하진 않은….”
그때였다.
“성문을 열어라! 어서!”
갑작스럽게 소란스러워진 성채.
“가볼까? 이시이?”
“얼른 안 가고 뭐 해?”
팟-!
그들은 성벽 위로 올라가 설산을 오르며 성채로 다가오고 있는 이들을 바라봤다.
“…맙소사.”
“저, 저게 뭐야….”
일전에 성채를 탈환했을 때도 마치 개선장군이 된 듯한 기분을 받았었다.
그런데, 정말 개선장군과 같은 위엄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나 흘러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성채로 다가오는 빙하아귀 병력의 숫자도 숫자였지만 그들이 내뿜는 기운이, 너무도 소름 끼쳤다.
“이게… 빙하아귀… 휘겔텅의 패자….”
“…이시이.”
“응?”
“연방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광경을 보고받으면 믿을까?”
“서류로 예바의 머리통을 내려치지 않을까.”
“그렇겠지?”
사박… 사박…
선두의 거대한 트롤이 소리쳤다.
“스콜라가 돌아왔다! 문을 열어라!”
그가 뭐라 말하는지 단 한 글자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예바와 이시이는 그 목소리에 몸을 떨었다.
“이시이… 어쩌면, 이 싸움….”
“방금, 나도 같은 생각이 들었어.”
휘겔텅의 패권을 건 전쟁이 당면했다.
시간이 갈수록 그 승패가 점차 불분명해져만 갔다.
* * *
권좌에 앉은 브론이 전당에 모인 이들을 둘러보았다. 좌우로 나뉘어 하나의 의제를 두고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지금이 적기다! 놈들이 대비하지 못한 지금, 당장 이리자드가 있는 곳까지 진격해 끝장을 봐야 해!”
“한숨이 나오는 판단입니다. 일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두더지들의 숫자는 전례 없을 정도로 불어났고 그들 중에는 무시할 수 없는 강자들도 있습니다.”
“시간을 끈다고 달라지는 게 있다면 네 말이….”
설전이 오가는 와중, 브론이 손을 들어 논의를 멈추었다.
“…….”
그는 부르툴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부르툴.”
“예.”
“네가 가장 잘 알지 않겠느냐, 에몬의 병력은 지금의 우리와 비교해 어떻지?”
“비등하거나 약간의 우위를 가집니다.”
“솔직히 말해도 좋다.”
“…아직은 에몬이 우위입니다.”
브론 사후에도 두더지들과 사투를 벌여온 부르툴이다. 에몬의 규모는 파악하고 있었다.
“뭐? 이 스콜라가 있는데도 그깟 두더지 새끼들이 우위라고?”
“스콜라, 진정해라. 마지막 원정에서도 세력은 엇비슷했다. 하물며 원정이 실패로 돌아갔었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 에몬의 세력은 견제 없이 거대해졌을 것이다.”
“끄응…”
브론은 부르툴이 솔직하게 평가했듯, 그 또한 작금의 사태에 대해 정확하게 진단했다.
“부딪히면 파멸이다.”
“이봐….”
“아니, 내가 말하는 건 빙하아귀의 파멸을 말하는 게 아니다. 양측 모두의 파멸이야.”
“…….”
“멀쩡한 구석 없이 에몬과 빙하아귀 모두 공멸이다.”
“그건… 붙어보지 않으면….”
“아니, 변수가 거의 없다. 놈들은 변변한 거점도 없이 머릿수만 많은 종족이니 전투는 필연적으로 설원에서 펼쳐질 것이다.”
“…….”
“이쪽이나 그쪽이나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공격해오기는 쉽지 않지.”
부르툴이 물었다.
“아버지, 혹 생각하시는 바가 있으십니까?”
“압도적인 힘을 가져야 한다.”
“…예?”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눌러야 그나마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줄어들 것이다.”
당연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쉬운가.
부르툴이 인상을 쓰며 답했다.
“하지만, 단기간에 전력을 그만큼 증강하는 방법이….”
“서리아귀들을 만날 것이다.”
강설이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브론이 내뱉은 말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럴 것이라 예상하긴 했지만… 반응은 역시 엄청나네.’
가장 먼저 스콜라가 악을 썼다.
“브론! 제정신이냐! 서리아귀라니!”
스콜라가 운을 띄우자 다른 트롤들도 지지 않고 브론을 몰아세웠다.
“서리아귀는 브론, 네가 추방했어. 그들은 우리를 돕지 않을 거야.”
“우리에게 악감정을 가졌을 게 분명합니다. 아마 에몬과의 공멸을 기다렸다가 순식간에 패권을 노릴지도 모르고요.”
“애초에 왜 그들을 내쳤는지 잊어버리기라도 했단 말인가!”
강설은 브론이 말하기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잠시, 트롤들의 원성이 끊어지자 브론이 입을 열었다.
“이곳엔 죽음을 경험한 이들이 있다. 그 녀석들이라면 알 테지. 이봐, 너.”
“예….”
“죽음 너머에 뭐가 있더냐?”
지목받은 전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 맞다. 아무것도 없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죽음에 있어서는….”
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우리는 이 혹한의 땅에 뿌리내렸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나 가치 없는 죽음은 두려워해야 마땅하다.”
브론이 언급한 가치는 바로 생존이다.
“살아남는다, 그것 외에 다른 가치는 부차적인 것들이다.”
스콜라가 웃었다.
“크하하하! 살아남는다라… 브론, 녀석들이 순순히 네 뜻에 따를까? 우리 역시 이 싸움이 미래를 결정지을 것이라는 건 잘 알지만 애초에 서리아귀와 우리는….”
“그러니까 부딪혀 볼 생각이다.”
“…뭐?”
“그들이 어떤 심정인지, 혹시나 영령의 저주를 떨쳐낼 수는 있는지, 그리고 우리와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지.”
부르툴이 소리쳤다.
“아버지! 그자들은 살육에 미친 자들입니다! 나의 어머니이자 당신의 반려를 죽인 자들이라고요!”
“…….”
“그런데 어떻게 그런 말을….”
강설이 침음했다.
‘그런 비사가 있었군… 서리아귀가 추방된 건 그런 이유에서인가?’
부르툴이 열을 낼만 했다.
하지만, 죽음을 경험한 브론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부르툴, 누구보다 서리아귀를 증오했던 건 바로 나다.”
“…한데 어째서?”
“내게 생각을 바꿀 시간이 주어졌듯이, 그들에게도 동등한 시간이 주어졌다. 그러니 이번엔….”
브론이 눈을 감았다.
“또 다른 결론에 도달할지도 모르지.”
“…저도 가겠습니다.”
“…네가?”
“예,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진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좋다. 나와 스콜라, 그리고 부르툴.”
스윽…
브론이 강설을 쳐다보았다.
“대주와 인간들까지.”
예바와 이시이는 브론의 손가락이 자신들을 가리키자 강설에게 물었다.
“뭐라는 거야?”
“너희들도 이번 일정에 같이 간다는데?”
“아… 그렇구나……. 엥? 우리도?”
꿀꺽…
이시이와 예바가 침을 꿀꺽 삼키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서리아귀와 협상을 위해 나설 것이다.”
스콜라가 잔뜩 긴장한 예바와 이시이를 보며 웃었다.
“뭐? 크하하하! 인간들은 살아 돌아오긴 글렀군그래!”
예바가 강설에게 물었다.
“뭐라는 거야?”
“앞으로 잘 부탁한대. 무슨 일 있으면 자기만 믿으래.”
“뭐? 난 또….”
예바가 어설프게 웃었다.
“고, 고마워 트롤! 듬직하네!”
스콜라가 강설을 쳐다봤다.
“음? 뭐라는 거냐?”
“고작해야 죽음 따위로 자신들을 막을 순 없다는군.”
“큭큭큭! 과연! 범상치 않은 녀석들이구나!”
브론과 원정대는 굳이 풀 필요 없는 작은 오해를 지닌 채, 다음 날이 되어 서리아귀의 거주지를 향해 발걸음을 떼었다.
* * *
으득…
으드득…
“스콜라, 작작 처먹어라. 식량을 혼자서 다 처먹으면 돌아올 때는 어쩔 셈이냐?”
“서리아귀들에게 쳐들어가는 거 아니었어? 배를 채워야 싸울 거 아니야.”
“싸울 생각으로 가면 반드시 싸워야만 하는 일이 생긴다.”
“싸우지 않을 생각으로 가면 싸워야만 하는 일이 생겼을 때 대응할 수 없다고.”
잠시 스콜라와 브론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풉…….”
“큭큭….”
“…여전하구나.”
“그래, 네가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가 되었는데도 대화가 통하는 걸 보면 우린 제법 잘 통했던 것 같군.”
스콜라가 예바와 이시이의 어깨를 두들겼다.
툭툭…
“흐끼약!”
“바, 방금 내 어깨에 철근이 떨어졌어!”
그들의 호들갑을 들은 체 만 체하며 스콜라가 말했다.
“만일, 서리아귀 녀석들이 헛수작을 부리면 이 스콜라가 원수 정도는 갚아주마.”
반복된 여정이 조금 피곤하기는 했지만, 장거리 원정을 자주 다녔던 강설이 일행에 속해있었기에 원정 중에 일어날 만한 사고는 모두 차단되었다.
중간에 눈보라를 피하느라 꼼짝없이 주인 없는 동굴에 갇혀있던 시간을 제외하고도 꽤 시간을 소모하고 나서야 휘겔텅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서리아귀의 주둔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크르르륵…
거대한 백색 늑대가 아담한 말뚝에 묶여 이쪽을 보며 으르렁거렸다.
“저, 저거 말뚝 멀쩡한 거 맞아?”
“우리한테 달려들면 그대로 뽑혀 나올 것 같은데….”
“야! 불길한 소리 하지 마.”
늑대뿐만이 아니었다.
설원 독수리를 비롯한 곰과 설표까지.
동물원에라도 온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으윽… 저건 뭐야?”
“가죽이랑… 살 같은데….”
마물들의 가죽과 살이 분리되어 이곳저곳에 자리했다. 죽음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환경이었다.
예바와 이시이가 바짝 얼어붙었지만, 다른 일행은 대수롭지 않게 안쪽으로 향했다.
“멈춰라….”
거대한 트롤이 브론을 내려다보았다.
“브론… 브론인가?”
“그래, 브람을 만나고자 왔다.”
“흐흐흐… 브람에게 전하지.”
문지기 트롤은 혀를 날름거리며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따라오라는 제스처로 일행을 주둔지 안으로 들였다.
스읍…
강설이 숨을 들이마시다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다.
‘이건….’
그가 안색을 굳히며 브론에게 귀띔했다.
“브론, 먼저 온 손님이 있다.”
“…그래. 나도 맡았다.”
주둔지의 규모는 엄청났다.
일종의 부락 정도 되겠거니 했는데, 알고 보니 성채에 주둔 중인 빙하아귀의 병력에 비할 정도였다.
저 안쪽에서 일행을 맞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브론, 나의 형제여.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 네가 올 것이라 생각했지.”
“브람… 그런 것치고는 대접이 좀 서운한데… 나 말고 다른 손님도 있고 말이야.”
“킥킥킥… 내버려 둬라, 너처럼 제멋대로 찾아와서 말이지.”
먼저 도착한 손님.
그들이 뒤로 돌아 강설 일행을 바라보았다.
강설은 미리 짐작하고 있었지만, 예바와 이시이는 생각지도 못한 인물들을 이곳에서 마주한 듯했다.
“두… 두더지….”
브람은 브란카를 쏙 빼닮았다.
그만큼 거대하고 흉측한 몸을 가졌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인사하지, 이 녀석은 자크챠라는 놈이다.”
부르툴이 주먹을 꽉 쥐었다.
강설은 부르툴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 놈들의 장군 중 하나인 자크챠라는 놈이 대주술사 크롬과 함께 성을 공격했다. 우리가 열세이긴 했지만, 지형을 발판 삼아 무리 없이 격퇴하리라 생각했는데….
두더지 장군, 자크챠.
‘평범한 녀석이 아니다. 그 힘도….’
이리자드의 힘을 가장 강하게 넘겨받았는지, 두더지 중 가장 강한 녀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기운을 뿜어냈다.
‘그럼 저 옆에 있는 녀석은….’
대주술사 크롬일 것이다.
강설은 크롬이 손에 쥔 지팡이를 자세히 살폈다.
분명, 지팡이의 머리 부분에 흰 새가 새겨진 푸른 수정이 박혀 있었다.
‘찾았다.’
강설이 히죽 웃으며 크롬과 눈을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