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34
제33화
강설은 드디어 차오의 흔적을 발견했다.
여기까지 오는데 별달리 위험했던 상황은 없었지만, 그것은 강설이 비밀 연구소가 어떤 구조로 되어있는지 대강은 알고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다.
‘쪽지가 여기 남겨져 있다는 건, 차오는 여기서 되돌아간 건가?’
그렇다면, 차오의 현재 위치는 이곳이 아니라는 얘기.
모험 5. ‘그리즈의 비밀 연구소’
차오의 흔적이 이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다만, 차오는 목적을 이루고 이곳을 떠난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래도 그녀를 여기서 만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아직 비밀 연구소의 초입에 있습니다. 지금보다 더 깊은 곳에 차오의 흔적보다 엄청난 것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당신은 그것들을 손에 넣어야 합니다.
목표 : 그리즈의 비밀 연구소를 끝까지 수색.
현재 남은 시간 「70 : 41」
– 쩝, 허탕이네.
– ㄴㄴ 그리즈가 누군지 모름?
– 모르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앎? 님은 앎?
– 나도 모름. 몰라서 물어본 거
– 설정집에 짤막하게 적혀있음.
– 뭐라 적혔음?
– 엄청난 천재. 그리고 엄청나게 이상한 사람이라는데?
– ㅋㅋㅋㅋㅋㅋ 존나 불안한 인물평이네
강설은 바뀐 모험 목표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여기서 멈출 생각은 없었으니까.’
이곳엔 차오를 찾기 위해 온 것도 있지만, 사실 비밀 연구소에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무언가를 노리고 온 것도 있었다.
그리즈는 명실상부 기계공학의 대가이자 주옥같은 보물들의 창조주였다. 이 비밀 연구소에 그의 보물이 손톱만큼이라도 아직 남았다면, 샅샅이 수색해 보는 것이 옳았다.
‘그런데 대체 차오가 가져간 물건이 뭐지?’
비밀 연구소의 위치를 직접 알아내고, 먼저 물건을 도둑질한 그녀는 강설에게도 범상치 않은 인물로 느껴졌다.
그런 그녀가 관심을 가질 만한 물건이란 게 도대체 무엇일까.
“주인님. 이것을.”
카루나가 강설에게 서류뭉치를 내밀었다.
빳빳한 종이에 적힌 것을 대충 훑어보니 이 발명품의 연구 목적과 그 내용이었다.
“죽음에 관한 의문들?”
그리즈의 연구는 보통 터무니없는 발상에서 시작한다. 그가 남긴 메시지에서도 그것을 알 수 있었다.
– 죽음이란 무엇일까? 죽으면 아플까? 죽는다면 나는 정말 분해되어 아무것도 없는 허무로 사라지는 걸까? 그도 아니라면 신을 믿는 자들의 말대로 죽은 이후의 세상이 있는 것일까? 궁금하다, 궁금해. 궁금해서 못 참겠어! 그러니까 밝혀내겠다!
서류는 도입부부터 이 연구는 그리즈가 주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내용이 가득했다.
– 이 넓은 대륙에 죽음을 경험한 자는 없다. 아, 언데드가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죽음을 거부한 자들이니 예외로 한다. 죽음의 진정한 모습을 엿보기 위하여 이 장치를 만들었다.
“가사(假死) 유도 장치…. 미쳤군.”
죽어보기 위하여 만든 물건.
일지의 끝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었다.
– 정말로… 정말로 끔찍하구나! 되도록 죽지 말아야지!
툭…
서류를 주인 없는 책상에 내려놓은 강설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걸 차오가 훔쳤다고? 왜?’
발상부터 효과까지 정말 끔찍한 물건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물건을 훔쳐 간 그녀의 목적이 궁금해졌다.
– 비밀 연구소가 비밀인 이유가 있었네^^?
– 전부 이딴 거만 있는 거 아님? ㅋㅋㅋ
– 꽝이 예정되어 있네요 ㅋ
“그래도… 더 들어가 봐야겠어.”
일부만 보고 전체를 짐작하는 것만큼 멍청한 일이 없었다.
코끼리 다리를 만지고 코끼리를 기둥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분명 내가 사용할 만한 것도 남겨져 있을 거야.’
그리즈는 끈기가 약한 사람답게 한 가지 연구를 오래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아마 연구소에는 이 장치와는 다른 결의 물건들이 있을 것이다.
끼이이익…
강설이 다시 복도를 통해 걸었다.
복도는 지루할 만큼 길었고, 갈수록 지하를 향해 내려갔다.
– 제2 연구실
어느덧, 그는 제2 연구실 앞에 도착해 있었다.
[간파가 발동합니다.]
[문 너머로 기척이 느껴집니다.]
“주인님.”
“아.”
카루나 또한 기척을 감지했는지 한 팔을 내밀어 강설을 뒤로 물렸다.
그리고, 문을 걷어찼다.
콰지이익!
문은 생각보다 얇아서 그대로 찢겨 나갔다.
“오류 발생! 오류 발생!”
문 앞에 있던 것은 기계로 만들어진 골렘이었다.
쟈마드보다 거대한 덩치였기에 강설은 긴장했다.
“출입문… 폐쇄….”
기계가 손을 우악스럽게 뻗어오며 카루나를 향해 뒤뚱뒤뚱 걸어왔다.
덜컹… 덜컹…
덩치와 박력에 비하면, 다소 어설픈 움직임이었다.
‘뭔가… 이상한데?’
무슨 문제가 생긴 건지, 엉성한 걸음이 뚝뚝 끊겼다.
카루나가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월광검에 손을 가져갔을 때 강설이 소리쳤다.
“카루나!”
“…예.”
“손대지 말아봐.”
기계 골렘은 몇 발자국 더 걷다가 결국, 가동을 중지했다.
“중대한… 오류….”
끼긱… 끼기기기긱…
강설은 골렘의 몸을 살폈다.
이 정도로 이상이 있다면 겉으로 보이는 곳에도 표시가 날 것이다.
하지만 녹이 슬었다거나 하는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오래된 집의 담장처럼 넝쿨에 휩싸여있는 것을 빼고는.
‘넝쿨?’
불길한 예감이 든 강설은 카루나에게 명령했다.
“여기, 넝쿨을 좀 잘라줘.”
“알겠습니다.”
스릉-
카루나는 검을 뽑으면 기세가 변한다. 고작 골렘의 몸에 달라붙은 넝쿨을 제거하는 것뿐이었지만, 그 모습은 우아하기 그지없었다.
촤아악-! 촤악-!
기계 골렘의 몸에 붙은 넝쿨이 삽시간에 제거되어 갔다.
투둑… 툭!
이제 골렘의 목을 휘감은 큰 넝쿨 하나만을 남겨둔 강설은 침을 삼켰다.
저 넝쿨이 제거되었을 때 골렘이 혹시라도 덤벼들 수 있었으니 쟈마드가 강설의 곁에서 엄중히 경호했다.
사각-!
“끄으으으으….”
끼기긱… 끼긱!
기계 골렘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붉은 흉광이 흘러나오는 골렘의 눈.
그런데 갑자기, 그 붉은 안광이 씻은 듯이 사라지며 푸른빛으로 변했다.
“반갑습니다, 인간. 이곳은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그리즈 님의 제81 연구소이며 저는 이곳의 소장 아르타-2입니다. 이후의 호칭은 아르타로 불러주셨으면 합니다.”
“…뭐?”
“그리즈 님의 연구소에 방문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그리즈 님은 현재 부재중이십니다. 혹시 방문이 예정되어 있던 손님이십니까?”
“이게 무슨….”
기계 골렘은 마치 이중인격처럼 아까와는 상반된 태도를 보였다. 그래도 강설은 자신이 불법 침입자인 것을 밝힐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에 한숨 쉬며 대꾸했다.
“연락 없이 방문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즈 님을 만나실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연구소를 둘러보시는 거라면 가능합니다. 저 아르타가 안내해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안내?”
“예. 규모가 작은 연구소라 그다지 볼 것은 없습니다만, 손님께서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안내 가능합니다.”
강설은 잠시 턱을 괴고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내를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혹시 제3 연구실은 이미 둘러보셨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럼 남은 제2 연구실과 제1 연구실의 안내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개뻔뻔햌’님이 광기를 300만큼 후원하셨습니다!
[도둑질하러 왔는데 손님 대접을 받는다?]
– 스노우맨! 어째 연기력이 나날이 늘어만 가냐고!
– 이젠 로봇까지 속여? 대체 그는…
– 도둑이 참 뻔뻔해 ㅋㅋㅋ
– 그리즈는 소장 교육을 어떻게 한 거야 ㅋㅋ
– 아 거기 도둑님! 신발 털고 들어오세요 ㅎㅎ
– 도둑이 아니라 산타인 줄 알았나 보지.
– 요즘 산타는 굴뚝 뜯고 오나?
아르타는 제2 연구실의 안내를 시작했다.
“이곳은 제2 연구실입니다. 주로 정령함을 연구하는 곳이고 다중 속성 정령함의 이론 검증을 거쳐 실제로 그것을 구현한 곳입니다.”
“다중 속성 정령함? 그걸… 만들었다는 겁니까?”
“예. 그리즈 님의 위대한 업적입니다.”
정령함이란 흔히 세계에 떠도는 정령을 가두기 위해 만들어진 운반 도구, 혹은 구속 도구였다.
“그게 가능한 겁니까?”
“가능했습니다. 정령들은 서로 반발하거나 끌어당기는 성질이 있어 지금까지는 그들을 한곳에 모아두면 충돌이 일어났었지만, 그리즈 님께서 그 문제를 훌륭하게 해결했습니다.”
“방법은?”
“모릅니다.”
“…네? 아르타는 이곳의 소장 아닙니까?”
“직책에 큰 의미는 없습니다. 모든 연구는 그리즈 님께서 직접 하십니다. 다른 존재들은 모두 그분의 시중을 들 뿐입니다.”
제2 연구실에도 제3 연구실과 마찬가지로 종이 뭉치가 있었다.
강설은 그것을 훑어보았다. 찬찬히 살펴보며 내려가던 중, 전혀 예상 밖의 단어를 발견해서 아르타에게 질문했다.
“여기 나와 있는 이 허리띠라는 거… 그게 다중 속성 정령함의 변형인 겁니까?”
“그건 아직 검증을 마치지 않은 이론입니다. 하지만, 그리즈 님의 생각이 틀렸을 확률은 압도적으로 낮습니다. 따라서 다중 속성 정령함의 힘을 허리띠에 담는 게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다양한 정령의 힘을 직접 다루지는 못하더라도 그 정령들이 발산하는 힘을 간접적으로나마 착용자가 얻게 되는 것입니다.”
“완전히 미쳤군. 그래서 그 허리띠는 어디 있는 겁니까?”
“그건 여기 제2 연구실… 어라? 어디 갔지?”
– 어라? 킹디 갔지?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자, 여기 10억 원이 있습니다. 어라? 어디 있지?
– 지금까지 설명은 왜 한 거야 ㅋㅋㅋ
– 뭔 소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개쩌는 허리띠라 이건데…
– 있었지만, 없어졌습니다.
강설은 아르타가 설명한 다중 속성 정령 허리띠가 몹시 탐이 났다.
그가 영원의 세계를 하루 이틀 한 것도 아니고 설명만 대충 들어도 어떤 성능을 발휘할지 바로 예상이 갔다.
“허리띠가 사라졌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아르타는 긁적이는 제스처까지 선보이며 당황했다.
강설은 이 모든 일이 어떤 연관이 있다고 느꼈다.
‘설마, 그 넝쿨?’
아르타는 넝쿨에 휩싸여 이상행동을 보였었다.
단순히 그리즈의 오랜 부재가 이런 사태를 만들었다고 하기엔 뭔가 의심스러웠다.
“아르타. 제1 연구실에는 뭐가 있습니까?”
“생명 연구 단지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규모는?”
“지금까지 지나오신 곳을 다 합쳐도 제1 연구실의 크기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생명 연구실이라면….”
“미래 식량과 제국의 기아 문제 해결에 일조할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열악한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는 강력한 식물들을 재배하고 있습니다.”
“그것뿐입니까?”
“이 연구소의 통제 중추 또한 그곳에 있습니다.”
“음….”
“제1 연구실의 안내를 원하십니까?”
“예.”
강설은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확신했다.
아르타의 몸에 달라붙어 고장을 일으켰던 넝쿨이나, 제2 연구실의 발명품이 사라진 것까지.
모두 불길한 예감이 들게 했다.
저벅… 저벅…
제1 연구실, 생명 연구 단지로 향하며 강설이 물었다.
“아르타.”
“말씀하십시오.”
“혹시… 밀란에 대해 알고 있는 거 있습니까?”
“제가 아는 단어 중에는 밀란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혹시 사람 이름입니까?”
“…사람 이름입니다.”
“그런 이름은 입력된 적이 없습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 밀란이 뭔데?
– 스노우맨은 지만 아는 거 꼭 얘기함.
– 그것은 폰밀란이었고….
강설이 이 질문을 한 것은 별다른 게 아니었다.
밀란은 그가 육성했던 말 중 마지막 말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 밀란은, 그리즈와 오랫동안 어울렸던 적이 있었다.
강설이 단 한 번, 그리즈를 만났다고 했던 것은 이때를 말하는 것이었다.
– 밀란, 정말 천재적입니다! 나 그리즈는 당신에게서 엄청난 영감과 열등감을 동시에 받는군요! 당신은 세상 모든 지식의 결정체입니다. 왜 밀란이 대현자라고 불리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그래서 괴롭냐고요? 아니요, 너무도 기쁘군요! 나를 온전히 이해해주는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것이!
그리즈는 밀란이란 인물에게 매료되어 그를 따랐지만, 밀란은 모험을 위해 그를 떠났다.
떠나기 전, 미치도록 아쉬워했던 그리즈의 말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 안 가면… 안 되는 건가요? 이 그리즈는 당신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 같군요. 이토록 나라는 존재가 뭔가를 열망했던 기억이 있었을까요?
강설은 밀란과 그리즈의 대화를 머릿속에서 떨쳐냈다.
‘지금은 감상에 젖을 때가 아니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니까.’
강설이 그렇게 과거를 추억하며 제1 연구실에 다다랐을 때쯤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음?’
“다 왔습니다.”
“…아르타.”
“왜 그러십니까?”
“이 연구소에는 당신밖에 없습니까?”
“아닙니다. 시종… 아니 연구원들은 저 말고도 20기가 넘습니다.”
“그랬군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 넓은 공간에서 제가 마주친 건 당신뿐이군요. 혹시, 그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어라? 잘 모르겠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손님께서는 아십니까?”
“저는 알 것 같습니다.”
[간파가 발동합니다.]
[문 너머에서 움직임이 느껴집니다.]
스윽.
카루나와 쟈마드가 각기 강설과 아르타의 앞에 섰다. 그와 동시에 연구실 문이 부서졌다.
콰아아아아아앙-!
쇠몽둥이가 후려치는 듯한 충격과 함께 카루나와 쟈마드가 살짝 뒤로 밀려났다.
그들을 후려친 것은 거대한 식물의 넝쿨이었다.
강설이 황금빛 통찰안으로 넝쿨 너머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은 도망쳐 온 겁니다. 저 괴물에게서.”
넝쿨 너머에는 그와 비슷한 크기의 수많은 넝쿨, 그리고 그와 맞먹는 크기의 이파리들이 넘실거렸다. 마치 거인의 화단에 온 것처럼.
강설의 통찰안이 효과를 발휘해 그의 시야에 정보들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