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344
제343화
습지에서 벗어난 후, 다시 이틀.
강설의 꾀는 대부분 상대의 허점을 찔러 큰 이득을 보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과정이 계속될수록 피로는 누적되어 갔다.
‘끝이 없어, 이 녀석들….’
죽이고 죽이다 보면 추격이 끊어질 거라 판단했던 것은 잘못된 판단일지도.
‘그래도 여기서 다시 시간을 벌면….’
깊은 잠의 지하 정원.
그곳까지는 충분히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까지만 도달하면 사실상 추격을 뿌리칠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강설만큼 그곳에 대해 자세히 아는 자는 드물 테니까. 상대가 설령 천공 용 아자닉이라 해도 말이다.
“어디….”
강설은 주변에 웅크리고 있는 짐승들을 바라보았다. 하나 같이 덩치가 커다란 맹수들.
그러나 긴 잠에 빠져 강설이 다가왔는데도 코를 골 뿐이었다.
[이곳에 잠든 짐승들은 어쩌면 추격을 뿌리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1. 이들을 건드려 깨운다.
2. [필요 : 자뭇] 제단에 채취한 자뭇을 올려둔다.
3. 크게 소리쳐 깨운다.
4. 가만히 내버려 둔다.
……
강설은 이곳에 오기 전 미리 챙겨두었던 열매 자뭇을 꺼내 제단에 올려두었다. 향이 무척 강해 후각을 마비시킬 정도였지만, 이토록 강한 향은 잠든 그들을 깨울 것이다.
아무래도 누군가 깨워서 일어나는 것보단 좋은 냄새에 눈이 번쩍 떠지는 게 나을 것이다.
열매를 올려놓고 잠시 물러나 상황을 지켜보는 강설과 일행.
킁킁…
킁킁…
코를 골며 자던 짐승들이 냄새를 맡더니 벌떡 일어났다.
“…성공했군.”
탄투이누의 말에 강설이 고개를 저었다.
“틀렸습니다. 아무래도 이 계획은 없던 것으로 해야겠군요.”
“…뭐?”
크아아아아앙-!
깨어난 거대 짐승들이 서로를 보며 이빨과 발톱을 드러냈다. 그들은 열매를 차지하기 위해 적이 아닌 다른 짐승과 싸웠다.
“…어째서 저런 반응이 나타난 것인가.”
강설이 짐승의 목덜미를 가리켰다.
“…저건!”
목덜미에 만들어진 검은 반점은 서서히 영역을 넓혀가 짐승의 몸을 완전히 뒤덮었다.
“타락!”
“아자닉과의 거리가 가까워진 모양입니다.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야 합니다.”
타락하는 과정이 근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건 그 숙주인 아자닉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
그와 마주친다면 지금으로선 살아남기 어려우니 재빨리 벗어나야 했다.
팟-! 파아앗-!
‘다행히 지하 정원의 입구는 가까이에 있다. 거기까지 도달하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거야.’
아자닉이 지하 정원에 방문한 적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곳에서라면 그에게 대항할 수 있었다.
그렇게 다시 꼬박 하루를 달리는 데만 소모했다. 이 이상의 꾀는 잔재주일 뿐이고 아자닉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면 오히려 시간을 버린 행동이 될 것이다.
그들의 판단은 나름 정확했다.
나무 덩굴로 가리어진 유적의 초입이 드러났다.
“허억… 허억….”
“저깁니다! 저기….”
타락이 가까워지자 거의 전력 질주에 가까운 속도로 반나절 이상 내달렸고 강설과 탄투이누는 지쳐있었다.
“지하 정원에 들어가면 조금은 쉴 수 있나?”
“네. 어쩌면 조금은….”
유적의 입구에 도달하자 선택지가 떠올랐다.
[당신은 수상한 유적의 입구로 보이는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문은 개방되어 있지 않았고 문을 열기 위해선 뭔가 방법을 찾아야만 할 것 같습니다. 우선 몇 가지를….]
그때였다.
“거기까지.”
누군가 바로 옆에서 말을 걸어온 듯한 느낌.
그러나 강설과 탄투이누, 그리고 쟈마드의 시선은 저 멀리 떨어진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휘오오오오…
너무도 압도적인 존재감이 그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기에.
“…….”
“몇 가지 답을 해줘야겠다.”
소름이 다 끼치는 용의 눈을 한 인간이 이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강설은 그의 특징을 빠르게 살폈다.
그도 눈은 꽤 좋은 편이었고 아무리 멀리 떨어진 자라도 특징 같은 것들은 쉽게 눈에 익힐 수 있었다.
‘왼쪽 얼굴에 문신, 코를 가로지르는 흉터. 그리고 거대한 검은 뿔.’
그가 기억하는 아자닉의 인간 형태의 모습 그대로였다.
아자닉이 그들을 향해 물었다.
“하나, 너희는 지금 자신들이 어떤 일에 가담하고 있는지 알고 있나?”
“…….”
“내가 물었다.”
휘오오오오…
위압감이 전해져왔다.
강설은 일단 그의 질문에 답하는 것이 시간을 벌기 위한 훌륭한 작전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답했다.
“모든 사실을 아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알 만한 것들은 전부 알고 있지.”
대답을 들은 아자닉이 무표정한 얼굴로 다음 질문을 던졌다.
“하나, 너희가 지키려 하는 그녀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알고 있나?”
“큭….”
탄투이누가 발작하듯 이를 꽉 물었다. 강설과 쟈마드는 아자닉의 말에 크게 동요했다. 그들의 시선이 탄투이누에게 닿았다.
탄투이누는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그것을 본 강설과 쟈마드에게 생기는 당연한 의문.
‘설마 탄크리드의 몸에 이상이 있는 건가?’
쟈마드의 안색이 굳었다.
붉은 감옥을 통해 이동해야만 했던 이유가 그녀의 입이 아닌 아자닉의 입을 통해 밝혀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둠 속에서 아자닉의 문신과 눈빛만이 전해졌다. 그는 여유로웠다.
방금의 질문으로 양측 모두 답을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탄크리드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고 새로이 합류한 조력자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하나, 그것의 행방을 알고 있나?”
“…그것이라고?”
강설의 되물음에 짜증이 솟구친 듯한 아자닉. ‘그것’이라고 표현한 아자닉에게는 탄크리드의 조력자가 정작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는 게 화가 치미는 모양이었다.
“마지막….”
아자닉이 질문 공세를 받아내던 도중 틈틈이 뭔가를 준비하는 강설.
‘조금만 더 시간을 끌면….’
유적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러면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
그런데, 아자닉의 질문은 여기서 끝이었다.
“하나, 내게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글쎄.”
강설이 조각상의 위치를 재조정하며 말했다.
“어떻게 지금 불편한 상황만 넘기면 좀 괜찮을 것 같은데….”
“…치우지.”
아자닉이 일어나 오른손에 불꽃을 모았다.
후우우우우우우…
휘오오오오오…
공간이 빨려드는 듯한 감각.
지독한 열기가 그의 손에 균열을 만들어냈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팔에 금이 쩍쩍 갔다.
쩌저저적…
화르르르르르르륵-!
순식간에 타버리는 주변 지형.
아니, 이것을 타버렸다고 표현하는 게 적절할까.
어떻게 보면 ‘소멸했다’에 가까운 힘.
“사라져라.”
화륵…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투우우웅…
아자닉의 오른손이 박살이 나며 날아오는 불꽃.
불꽃은 마주한 모든 것들을 불태웠다.
나무도, 대기도, 그리고 그것을 마주한 자들의 생각도.
아무런 생각도 해낼 수 없는, 막을 수 없는 불꽃.
‘빌어먹을!’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쟈마드였다.
짜아아악-!
아직 온전한 지고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쟈마드의 주술.
“호….”
아자닉은 짧은 감탄성을 내뱉었지만,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았다.
콰지이이이익-!
쟈마드가 만들어낸 바위들은 순식간에 부서지고 그 앞까지 화염이 도달했다.
바로 그때.
빠지직…
붉은 감옥이 깨져나가며 이마 양쪽에 거대한 뿔을 매단 여인이 나타났다.
촤아아아아아아-!
쟈마드가 언젠가는 도달할, 단단한 바위의 힘이 화염을 가로막았다.
“허억… 허억….”
숨을 헐떡이는 여인.
쟈마드는 그녀의 모습을 일견했다.
“탄…크리드.”
그리고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탄크리드의 몸에서 생명의 기운이 사그라들고 있었다. 마치 꺼지기 직전의 촛불처럼.
“아자닉….”
“…….”
“그대는 나에게서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두고 볼 일이지. 저 연약한 존재들을 믿나?”
털썩…
쓰러지는 탄크리드의 몸을 탄투이누가 지탱했다.
화르르르륵…
이번엔 아자닉의 반대쪽 손에 두 번째 화염이 모여들고 있었다.
탄크리드까지 쓰러진 이상 다음 화염은 막지 못한다. 하지만, 막을 필요도 없었다.
철컥…
강설이 마지막 조각상을 재배치했다.
[깊은 잠의 지하 정원의 비밀을 풀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들판에 서 있습니다.]
[주의하십시오. 지하 정원은 잠꾸러기의 영역, 그의 뜻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쿠구구구궁…
유적의 문이 열리더니 안에서 엄청난 바람이 빠져나와 일행을 집어삼켰다.
휘오오오오오오…
“모두 꽉 붙잡아.”
콰아아아앙-!
그들을 집어삼킨 유적의 문이 닫히자, 불꽃을 꺼트리는 아자닉.
그가 입구까지 다가와 잠시 뭔가를 살피다 중얼거렸다.
“…시간을 벌었군.”
[강대한 적에게서 도망쳤습니다.]
[특수 업적 ‘위기일발’을 달성합니다.]
[특수 칭호 「행운아」를 얻습니다.]
* * *
……
스으으으…
스으으으으으으…
“일어나라, 강설.”
“으윽….”
탄투이누의 말에 몸을 일으킨 강설은 주변을 살폈다.
온통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심지어 지하가 분명한데도 하늘이 존재했고 노을이 짙게 깔려 있었다.
‘놀랍긴 하네… 이런 공간이라니.’
게임판에서 보았던 설정과 똑같은 모습.
탄투이누가 그에게 물었다.
“시간은… 우리에게 시간은 얼마나 남은 건가?”
“반나절 정도… 그 이후로 유적의 문이 다시 열릴 겁니다. 그리고 이쪽도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강설은 그 질문을 쟈마드에게 양보했다.
쟈마드는 잠시 들판을 바라보다 탄투이누에게 물었다.
“그녀에게… 시간이 얼마나 남은 거지?”
“…….”
“…대답해.”
쟈마드는 금세 흉악한 얼굴로 변모하려 했다.
하지만, 그런 그를 누군가의 목소리가 막았다.
“그녀를 채근하지 말거라, 쟈마드.”
“…탄크리드?”
탄크리드의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들판 한가운데에 거대한 용이 엎드려 있었다. 노을과 함께하는 모습은 정말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그녀는 고룡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그에 걸맞은 크기와 박력이 있었다. 강설 일행은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런….’
강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힘이 너무도 미약했다.
방금 대적했던 아자닉과는 심각할 정도의 차이였다.
“가까이 오거라, 쟈마드.”
“…날 기억하는가?”
쟈마드는 홀린 듯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탄크리드가 아주 약간 미소 짓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신비한 아이. 난 눈을 보면 미래를 알 수 있다. 너만은 달랐다.”
“뻔하게 살 운명은 아니었다는 거군.”
“…그럴지도.”
그 눈꺼풀을 가누는 것조차 힘겨워 보이는 탄크리드. 그러나 반드시 전해야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아자닉이 침묵을 깼다.”
“그가 어째서 그대를 노리는 거지?”
스으윽…
탄크리드가 거체를 움직여 품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밀쳤다.
보통 알보다는 훨씬 큰, 그러니까 강설이 양손으로 들어야 겨우 들 수 있는 정도 크기의 알이 그녀의 품에서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건… 당신의 후손인가?”
탄크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자닉이 노린 것은 네 아이라는 말이로군.”
“아자닉은 온 세상을 불태우려 한다. 그것이 이 세계가 자유로워지는 유일한 방법이라 말하며.”
“…뭐? 그게 무슨….”
“쟈마드, 그대는 신을 본 적이 있는가?”
다소 황당한 질문.
쟈마드는 그녀의 말에 답했다.
“원시 신 또한 신이라면… 그렇다 할 수 있겠군.”
“아니, 그것들은 신이 아니다. 그저 발생한 존재들이지.”
“발생한… 존재?”
“나를 포함한 이 세계의 초월자들은 모두 마찬가지이다. 섬김을 받지만, 딱히 대단치는 않은 존재들이다. 나는 태어난 그 순간부터 판데아의 대지를 수호했다. 그러나 그것이 옳은가?”
“…….”
“만일 옳은 일을 한 것이라면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인가? 신? 그렇다면 신은 누구인가?”
“…….”
“이것은 한때 나의 의문이었으나 이제는 아자닉의 의문이 되었다. 아자닉은 만일 신이 있다면 어째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고 세상의 고통을 바로잡지 않는 것인지 스스로 찾겠다 말했다. 그리고….”
탄크리드가 고개를 푹 떨구었다.
“심연에 빠졌다.”
“…….”
“그는 절망했다. 신이 이 세계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지. 그래서 부수고자 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어쩌면 그들에게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완전히 미쳤군.”
“광기에 파묻힌 자인 것은 분명하지…. 하나, 나는 그를 말리지 못했다. 아자닉은… 하늘의 용은 강하다.”
“그대의 아이를 빼앗으려는 것도 그 계획의 일부인가?”
“물론. 다음 세대에게 힘을 넘기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하나, 아자닉은 그러지 않았지. 후손을 만들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토록 강한 모습으로 남겨진 것이겠지.”
“네 아이를 빼앗아 무엇을 하려는 거냐?”
“나의 힘을 이어받은 후손에겐 그만한 잠재력이 깃들어 있다. 어쩌면 아자닉이 바라는 건 그 스스로 신이 되는 것. 혹은… 신을 만들어내는 것.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다.”
“전자이든 후자이든 아직 태어나지 않은 당신의 후손을 이용하려 한다는 것이군.”
탄크리드는 미미하게 웃었다.
“새로운 생명은 미래다. 다음 세대가 전진할 수 있는 동력이 되어준다. 그들을 믿어야 함을, 아자닉은 모른다. 쟈마드, 대지의 아이여. 그대에게 청이 있다.”
“…….”
“이 아이를, 지켜다오. 나의 숨은 곧 끝이 날 것이다.”
“어째서… 내게….”
스으으으으으으…
들판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
그것에 깃든 가치는 청량함이었지만 동시에 아련한 느낌이었다.
“쟈마드, 넌 내가 보아온 그 어떤 생명보다 강인하다.”
“…….”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러하다. 그리고… 찾아올 암담한 시대에도 그러할 것이다. 그런 너이기에….”
탄크리드가 강설을 쳐다보았다.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 것이겠지.”
“말해다오, 탄크리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그대는 이미 답을 안다. 시대를 이끄는 자이기에.”
노을이 사라져 간다.
밤이 고개를 내민다.
“이 삶을 대지의 수호자로 살았으나,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기억이 많다.”
“…….”
“가능성이란 핑계로 작은 가치에 몰두하는 생명들. 그들에게 개입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는 것만이 답이라니… 나는 인정할 수 없었던 적도 있었다.”
후우우우우…
탄크리드의 코에서 지친 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그대를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쟈마드여.”
“탄크리드.”
“이윽고 죽음이 다가왔을 때, 나는 깨닫는구나. 너희의 삶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임을. 나의 의무가 헛되지 않았음을….”
“이런… 이런 결말을 원한 게 아니다, 탄크리드. 난… 난… 이런 결말을 원하지 않았어!”
탄크리드가 웃었다.
용이 웃으면 어떤 표정이 지어지는지, 그녀를 본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결말이 아니다. 이것은 과정이다. 나의 뜻은 이어질 것이며 그대의 삶과 함께할 것이다.”
“안 돼… 안 된다! 나는 아직… 나는 아직 길 위에 놓여있다.”
쟈마드의 눈에 물기가 차올랐다.
강설은 그가 이토록 격앙된 감정을 표출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같은 눈높이로 세계를 바라보며 대등한 대화를 나눌 것이다! 나는… 나는….”
쟈마드가 이를 꽉 물었다.
엄니에서 발음이 새어 나왔다.
“그대의….”
친구가 되고 싶었다.
탄크리드가 고개를 땅에 딱 붙인 채로 말했다.
“쟈마드. 우리는 같은 눈으로 세상을 보았다. 또한 같은 뜻으로 세상에 존재했고 언제나….”
탄크리드의 숨이 끊어져 갔다.
“친구였다.”
쟈마드는 오래전 기억을 끄집어냈다.
– 그 위대한 길, 내가 가게 된다면… 그럼 나는 탄크리드 님이랑 언제라도 얘기할 수 있는 거야?
– 그럼.
– 그럼 우리는 비로소 친구가 되는 거야?
– 아이야….
그녀는 과거와 지금, 같은 대답을 했다.
– 나는 이미 널 친구라고 생각한단다.
그녀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이 땅엔 언제나 수호자가 필요하다. 쟈마드… 내가 사라지면 세계의 균형은 어긋날 것이다.”
그녀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그대가… 이 땅의 수호자가 되어다오.”
“…….”
허억… 허억…
탄크리드의 숨이 거칠어지자 탄투이누가 달려들어 그녀를 품에 안았다.
“어머니! 어머니!”
“나는… 나는… 지금 이곳에서 긴 잠을 청하려 한다. 들판과 생명… 그리고 별무리… 대지여, 나를 거두어가시길.”
스르륵…
탄크리드가 움직이지 않았다.
쟈마드가 탄크리드의 콧잔등에 손을 올렸다.
“대지의 어머니여… 아니, 나의 오랜 친구 탄크리드여.”
그리고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절을 했다.
“그대의 노고에 감사한다. 평안히 잠드소서.”
푸스스스스스…
탄크리드의 몸이 빛무리가 되어 사라져갔다.
그때부터 강설에게 엄청난 양의 메시지가 주르륵 떠올랐다.
[대지의 어머니 탄크리드가 긴 생을 끝마치고 별의 품으로 사라집니다.]
……
하지만, 그것을 전부 살필 겨를이 없었다.
“강설.”
“…쟈마드.”
쟈마드가 뒤로 돌아 강설과 시선을 교차했다.
강설은 그의 눈에 담긴 슬픔보다 거대한 감정을 마주했다.
“도무지… 버틸 수가 없다.”
“…….”
슬픔이 아니다, 그의 감정은.
“이 분노를… 쏟아내지 않고서는….”
그는 지금 복수심에 타오르고 있었다.
“이대로는… 이곳을 떠날 수 없다.”
탄투이누가 다가와 쟈마드를 만류했다.
“어머니의 뜻을 잊었는가! 아자닉에겐 당장엔 대항할 수 없어! 숨어서 힘을 키우고….”
“강설.”
“공격에 성공한다 치더라도 도망칠 수는 없을 거다! 그럼 모든 게… 어머니의 모든 뜻이 사라지게 된다!”
강설이 눈을 감고 뭔가를 떠올렸다.
“생각났다.”
“…뭐?”
“방법이 있을지도.”
이것은 보상을 얻기 위한 또는 살아남기 위한 과정이 아니다.
탄크리드의 허망한 죽음을 기리기 위한 쟈마드의 의식이었다. 그리고 그런 쟈마드에겐 너무나 훌륭한 꾀주머니가 있었다.
“아니, 있어.”
[깨달음 : 지고의 경지가 발생합니다.]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즉시 지고의 힘을 발현할 수 있게 됩니다.]
[돌발 모험 ‘용의 복수’가 발생합니다.]
[이 모험은 매우 위험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