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346
제345화
쟈넷의 질문에 강설이 잠시 고민했다.
‘광기가 정확히 얼마나 있는 거지?’
한동안 광기 상점에 출입하지 않았으니 꽤 많은 양의 광기가 쌓였을 것이다. 그건 쟈넷의 입가에 띄워진 미소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동공이 자꾸만 번쩍번쩍한 장비 쪽을 바라보는 것이, 아마도 강설이 값이 꽤 나가는 물건을 사줬으면 싶은 모양이었다.
‘일단 장비는 필요 없고….’
광기 상점의 장비들은 당장 아자닉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강설이 착용하고 있는 장비들은 대부분이 강화를 거친 불세출 등급의 물건. 무릇 가치가 올라갈수록 약간의 가치만 더해져도 그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기 마련이었다.
광기를 쏟아부어 잘 쓰고 있는 장비들을 교체하는 건 제정신이 박힌 자라면 할 만한 짓이 아니었다.
“제 광기가 얼마나 있는 겁니까?”
“음….”
쟈넷이 조금 머뭇거리며 말했다.
“칠….”
“칠?”
“칠십만 정도….”
70만 광기.
‘지난번에 비해 족히 50만은 더 쌓아서 들어온 건가?’
마지막으로 광기를 털어낸 것이 남부에서 빠져나오기 직전이었으므로 강설은 꽤 오랫동안 광기를 축적해왔다. 거기다, 동부에 오면서 그가 경험한 대형 모험들을 생각해 본다면 70만 광기라는 어마어마한 수치가 언뜻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광기가 모자랄 일은 없겠네.’
쟈넷이 싱긋 웃고는 강설이 편하게 물건을 고를 수 있도록 안내했다.
“어디… 아자닉이란 용에게 쫓기고 계시고… 잠꾸러기의 지하 정원에 숨어드신 상황… 절망적이군요.”
“전부 알고 있는 겁니까?”
“아자닉이요?”
“잠꾸러기까지. 이곳의 주인에 대해 말한 적 없는데.”
탁-!
쥘부채를 편 쟈넷이 비웃음을 숨겼다.
쟈넷의 웃음.
“우리는 모든 것을 알고 있어요. 신뢰와 양심을 제외한 모든 것을 팔아야 하니까.”
“…그건 안 팝니까?”
“사실 가격만 맞으면 팔기도 해요.”
용에게 쫓기는 상황을 그저 안타까운 사람 바라보듯 말하는 쟈넷. 그에게 이런 상황 자체는 아무렇지 않은 것일까.
“사실,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어요.”
그녀는 강설의 행동을 꼬집었다.
“당신은 얼마든지 아자닉에게서 빠져나갈 수 있잖아요?”
“…….”
“어째서 그에게 맞서려 하는 건가요? 무리라는 걸 알면서도.”
이건 쟈넷만의 의문이 아니었다.
위험천만한 곡예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땅에 붙어있으면서도 다리가 후들거리기 마련이었다.
그들은 줄 위에 서서 비틀거리는 곡예사를 바라보는 것을 즐기기도 했지만 괴로워하기도 했다.
강설이 씨익 웃었다.
“무리가 아닙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요.”
“늘 당신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듬직한 트롤과 고대의 마법사, 그리고 기사들까지. 모두 흥미로운 자들이지만… 전 당신이 궁금해요.”
쟈넷이 강설을 꿰뚫어 보며 이렇게 말했다.
“무엇을 위해 이런 짓을 하는 겁니까? 이미 당신은….”
“보상이 있으니까.”
“…네?”
강설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모든 행동엔 보상이 뒤따르니까.”
“…어지간히도 미쳐있군요.”
저벅… 저벅…
“찾으시는 물건은 아마도 이쪽에 있을 거예요.”
강설이 멈춰 선 곳은 각종 씨앗과 정체불명의 빻은 가루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사악… 사아악…
강설은 그것들을 만져보기도 하고 냄새를 맡기도 하며 확인했다.
그리고 그것 중 그의 이목을 확 잡아끄는 게 있었다.
“…이건.”
“바로 알아보시네요?”
“일전에 사용한 적이 있으니까….”
이건 분명 온전한 생명력 가루였다.
전이 초창기, 검은 꽃을 하루 만에 괴물 같은 크기로 키워낸 물질.
그리즈의 비밀 연구소 중 한 곳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고 보상으로 얻었던 것이었다.
큼큼…
냄새를 맡던 강설은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전과는 약간 달라진 듯한 냄새.
“변화도 눈치채셨군요?”
“…개량한 겁니까?”
“예! 상품성이 있으니까요! 돈 되는 거라면 뭐든 한답니다. 이제는 가루를 흩뿌리고 손가락을 다 펴기도 전에 식물이 거대하게 성장한답니다?”
“사죠.”
“수량은….”
“준비된 건 얼마나 됩니까?”
“마차로 두 대 분량 정도예요.”
“전부 주세요.”
쟈넷이 싱긋 웃었다.
강설은 그녀와 거래하는 것이 정말로 편했다. 무엇이 필요할지, 또 얼마나 필요할지 나름 어림을 해서 오는 것인지 척척 물건을 내놓았다.
‘…어떻게 이렇게 예상이라도 한 듯이 준비할 수 있는 거지?’
싱글벙글 연신 웃으면서 다른 물건을 준비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강설은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어쩌면, 그녀의 존재 자체가 다가오는 위협인 아자닉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지금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지만.’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신들과 얽혀있는 거래에 대해 더 자세히 들을 기회가 있을지도.
“흠… 씨앗을 좀 보고 싶습니다.”
“씨앗? 아! 씨앗은….”
“…없는 겁니까?”
씨익.
짜악-!
덜덜거리며 수레가 계속 들어왔다.
“그럴 리가요.”
강설도 이만큼 많은 씨앗을 준비해두었을 줄은 몰랐던지라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원하시는 씨앗이 있으시면….”
“펑펑이, 악취풀. 그리고 이거는 더 없습니까?”
“아… 주로 가격대가 낮은 걸 찾으시는….”
“필요한 걸 찾는 겁니다.”
“당연히 더 있어요. 전부 챙겨드릴까요?”
“부탁드립니다.”
양이 상당한지라 저렴한 물품일지라도 광기가 뭉텅뭉텅 깎여나갔을 것이다.
‘강철 억새는 꼭 필요한 거니까….’
강설이 잔뜩 산 씨앗은 강철 억새의 씨앗이었다.
강철 억새까지 잔뜩 챙기자, 쟈넷이 말을 걸어왔다.
“그런데 이건 지독히 개인적인 궁금증입니다만….”
“음?”
쟈넷이 나지막이 개인적인 의문을 표출했다.
“지하 정원에서 과거에 벌어졌던 일을 아시나요?”
“…과거에 벌어졌던 일?”
“저는 고객 한 분 한 분의 모든 것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아자닉에게 쫓기는 것도, 지하 정원으로 도주하는 것도 이미 예상해둔 일이었죠. 덕분에 지하 정원에서 벌어졌던 과거의 일들을 또 잔뜩 공부했답니다.”
“…….”
그녀가 일류 장사꾼인 이유가 바로 이것일 것이다. 방대한 정보를 활용해 고객이 가장 필요로 하는 물건들을 찾아내는 것.
다만, 가끔은 너무 자세히 파고드는 경향이 있었다.
“잠든 자의 숲에는 과거에 사람들에게 불사신이라 이름 붙여진 거대한 마물이 살았었는데….”
“그만, 그 이야기는 별로 궁금하지 않군요.”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저와는 관련 없는 이야기지 않습니까?”
“하기야… 그렇긴 하죠.”
강설도 알고 있다.
불사신이라 이름 붙여진 거대한 마물.
그가 지하 정원을 들락거릴 때마다 훼방을 놓던 마물이었다.
어느 날은, 그 마물이 지하 정원까지 따라 들어온 날이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날이 마물의 숨이 끊어진 날이었다.
지금, 잠든 자의 숲에 주인이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고르시는 물건들이 그런 쪽과 관련이 있어 보여서 제가 잠시 오지랖을 부렸네요. 더 찾으시는 게 있을까요?”
“그리고 이런 물건을 찾는데….”
강설이 쟈넷에게 귓속말로 찾는 물건들을 말했다. 쟈넷이 잠시 멈칫하더니 답했다.
“…이건 가격대가 좀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도.”
“…이것도 마찬가지로요. 그런데….”
그녀가 당혹스러워하며 물었다.
“이것들로 무엇을 하시려는 겁니까? 도무지 연결고리가 없는데요?”
씨익…
강설이 웃으며 답했다.
“모든 걸 다 아시는 것 아니셨습니까?”
* * *
움찔… 움찔…
강설이 꿈에서 깨어나며 발작하듯 몸을 일으켰다. 그는 들판을 잠시 둘러보며 누군가를 찾았다.
이제 더는 머뭇거릴 시간이 없으니 곧바로 행동에 들어간 것이다.
‘여기 있을 거다, 슬슬 나타날 때가 됐는데….’
혹시 자신이 아닌 먼저 떠난 쟈마드와 탄투이누와 마주친 것은 아닐까. 아니 그렇다고 한들 상관은 없었지만. 예상대로 일이 풀리지 않자 강설이 초조함을 느꼈다.
바로 그때.
“뭐 찾아?”
강설이 움찔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꼭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토끼처럼 두 발로 똑바로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존재.
토끼 인간이라고 해야 할지 인간 토끼라고 해야 할지 그도 아니면 거대 토끼라고 해야 할지….
곧, 강설의 눈앞에 선택지가 떠올랐다.
[당신의 눈앞에 서 있는 건, 지하 정원의 주민이 분명합니다. 아마 이자에게서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질문을 하시겠습니까?]
1. 넌 누구야?
2. 여기서 나가는 법을 알려줄 수 있어?
3. 이곳에 관해 설명해줄래?
4. 지하 정원은 어떻게 만들어진 거야?
……
“넌 누구야?”
답을 알지만, 차근차근 밟아가야 하는 단계가 있었다.
마치 방정식처럼 정해진 값을 넣어야 원하는 답이 나오는 것처럼.
“나는 들지기! 이 넓은 들을 담당하고 있어! 너는 인간! 갑자기 나타났어! 혹시 내가 도와줄 일이 없을까?”
[자신을 들지기라 소개한 토끼는, 당신을 도와줄 모양입니다. 원하는 바를 말해야 합니다.]
1. 나와 함께 싸움에 나서줄래?
2. 지하 정원을 손에 넣고 싶어.
3. 혹시 내가 이곳의 꽃을 조금 얻을 수 있을까?
4. 이곳 너머에는 뭐가 있는지 알려줄래?
……
“혹시 내가 이곳 들판에서 나는 꽃을 조금 얻을 수 있을까?”
타도 아자닉을 위한 순서 첫 번째.
들판에서 정해진 꽃을 얻어야 했다.
“꽃? 꽃? 어떤 꽃을 찾는데? 색은?”
선택지가 떠올랐다.
여러 종류의 색들이 주르륵 늘어졌지만, 강설은 또박또박 원하는 바를 말했다.
“연보랏빛이었던 것 같아.”
“연보랏빛… 향은?”
“향은….”
강설이 꽃의 특징을 하나하나 짚었다.
연보랏빛의 꽃, 향은 미미하다 싶을 정도로 희박하며 꽃잎이 크고 맛은 아주 쓰다. 거기에 줄기 부분에 방울처럼 특징적인 기관이 달려 있다.
강설이 과거에 경험했던 수많은 선택지를 헤쳐나가자, 들지기가 한마디 했다.
“어… 알았다! 네가 찾는 꽃!”
“정말?”
“응! 깜빡이 꽃이야! 근데 깜빡이 꽃은….”
들지기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무척 희귀하거든. 나한테도 말이야! 그러니까… 소중한 거야!”
“소중한 거….”
거의 다 왔다.
“소중한 거는 소중한 것과 맞바꿔야 해! 그러니까….”
“말해도 돼.”
“혹시 단 거 있을까?”
“…단 거?”
능청스러운 연기와 함께 또다시 시작된 선택지.
이번엔 역으로 들지기가 찾는 물건을 맞춰야 했다.
강설은 들지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마찬가지로 순서를 조합했다.
“색은?”
“피처럼 붉은색!”
“생명체야?”
“아니! 어떤 나무의 열매야!”
“모양은?”
“솔방울과 비슷하게 생겼어! 근데 훨씬 딱딱해.”
“무슨 맛이야?”
“천상의 맛! 그걸 먹으면 입 안이 타들어 갈 것처럼 뜨겁다가도 금세 가라앉아.”
지금에 와서 말하는데, 참으로 거지 같은 설명이다. 강설은 피식 웃으며 과거에 들지기와 씨름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딴 설명을 듣고 재깍재깍 대령했었다니….’
새삼 과거의 자신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어디서 자라?”
“음… 그건 잘 모르겠는데… 아마도 뜨거운 곳 아닐까?”
마지막 선택지가 떠올랐다.
[들지기가 원하는 단 것이 무엇일까요?]
1. 미안하지만 그런 건 세상에 없어.
2. 설명을 다시 해줄래? 천천히…
3. [필요 : 정체불명의 단단한 열매] 네가 찾는 게 혹시 이거야?
4. [필요 : 정체불명의 큼큼한 열매] 네가 찾는 게 혹시 이거야?
……
강설이 소지품에서 열매를 꺼내 내밀었다.
[들지기에게 유황 용과를 건넵니다.]
[들지기의 반응은….]
“어? 어떻게 알았어? 이거야, 이거!”
[들지기는 만족했습니다!]
당연하게도 유황 용과는 광기 상점에서 구매한 것이었다.
화산 지대에서 자라나며 특이하게도 매캐한 유황이 피어오르는 위치에서만 자생하니 얻기가 극도로 까다로운 열매.
‘멀기도 더럽게 멀지.’
습득처가 지하 정원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탓에, 들지기의 설명을 듣고 그 정체를 짐작하더라도 지하 정원을 빠져나가 그것을 구해오는 것 자체가 난항이었다.
애초에 조건을 만족하기 위해선 지하 정원을 빈번하게 들락날락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고작해야 풀떼기를 얻기 위해 이 고생을 하겠는가.
하지만, 이곳에 그 풀떼기를 얻기 위해 꼭 와야만 하는 자들이 있었다.
‘전승 모험 장소니까.’
전승 모험.
직업의 일정 수준에 오른 자들이 다음 단계로 향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모험.
전승 모험을 마치게 되면 보통 ‘대가’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나 같은 경우엔… 조금 특수한 경우고.’
강설은 다른 직업보다 훨씬 빠르게 대가 타이틀을 획득했다.
밤까마귀를 전수한 미레이 덕분이었다.
독문 절기를 깨우친 탓에, 실력보다도 타이틀 먼저 얻게 된 상황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었고 대다수는 전승 모험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는….’
깊은 잠의 지하 정원.
이곳은 암살자와 드루이드, 그리고 식물학자의 전승 모험이 주어지는 장소였다.
아마도 사람들의 실력이 향상되면, 후엔 이곳도 지금과는 달리 붐비게 될지도 몰랐다.
‘고생 좀 할 거다.’
전승 모험이 펼쳐지는 깊은 잠의 지하 정원에선 노력에 따라 얻어가는 것이 달랐다. 지하 정원에 숨겨진 귀찮은 비밀들을 하나하나 풀수록 누군가는 더 강한 짐승의 형상을, 누군가는 더 위험한 식물의 씨앗을.
[깜빡이 꽃을 획득합니다.]
[취급을 주의하십시오, 독성이 있는 식물입니다.]
“어… 그런데, 깜빡이 꽃은… 위험한 독초인데 괜찮아?”
“괜찮아.”
그리고 누군가는 더 음험한 독을 얻게 될 것이다.
“알고 있었으니까.”
이곳은, 강설의 전설적인 10인의 말 중 하나가 전승 모험을 치렀던 장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