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347
제346화
쟈마드와 탄투이누는 강설이 광기 상점에서 물건을 사고, 들지기의 부탁을 들어주는 사이, 초고속으로 관문을 격파했다.
아니, 격파라는 표현은 옳지 않았다.
강설의 말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관문만을 찾아 통과했다.
– 지하 정원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어갈 수 없어. 대신, 해코지만 저지르지 않으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을 수 있어.
첫 번째,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관문까지.
들지기를 비롯하여 각 지역의 관리자들을 모두 마주쳤지만, 그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저 다음 지역으로 향하는 위치가 어디인지만 물어보았을 뿐.
“…여기로군.”
“여기가… 오래된 구렁?”
감조차 잡지 못할 정도로 거대한 나무가 부러진 흔적이 그곳에 있었다.
이제는 텅 비어 나무껍질만 남아있는 형상이었지만, 찌꺼기에 불과한 나무껍질의 크기만 보더라도 압도될 정도로 엄청난 크기였다.
이 나무가 어째서 부러진 건지, 어째서 속이 텅텅 빈 것인지 알고 있는 자가 존재는 할는지.
‘아니, 강설이라면 알고 있을 수도….’
세계의 비밀에 가장 근접한 자는 바로 강설. 그리고 그의 기억을 읽은 바 있는 쟈마드 정도였다.
쟈마드는 강설이라면 지하 정원에 숨겨진 비밀들을 낱낱이 꿰고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놀랍구나… 이런… 이런 규모라니….”
탄투이누는 지하 정원이 감추고 있던 경이로운 풍경을 보고 넋을 잃었다.
마치 판데아의 비밀 정원에 온 듯한 느낌.
“…들어가지.”
여태까지 마주쳤던 관리자들이 하나같이 했던 말.
– 그런데, 잠꾸러기 아저씨와는 약속하고 온 거야?
– 잠꾸러기는 잠이 많아서 만나기 힘들 텐데….
– 혹시 인장이 필요해?
알 수 없는 소리를 떠들어대던 그들.
쟈마드는 어차피 강설이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무시했다.
“같이 가지, 이쪽인 것 같구나.”
구렁은 원형 계단처럼 벽을 따라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아슬아슬해 실수로 발을 헛디디면 그대로 저 어두운 구렁의 밑바닥까지 추락할 것만 같은 느낌.
길이 좁았기에 탄투이누는 쟈마드를 따라 뒤에서 걸었다.
쟈마드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그다지 말이 없었다.
“…강설을 믿는가?”
“뭐?”
“걱정되지 않는가? 염려되지 않는가?”
걱정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
“우리는 이제 이곳에서 용을 기다려야 한다. 올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은 강설도 함께 말이야.”
“녀석은 온다.”
탄투이누의 눈빛이 흔들렸다.
“어째서 그렇게 인간을 믿는 거지? 오랜 세월 트롤과 인간은 앙숙이 아니었나?”
“모른다, 진부한 역사 따위 알 게 무엇이냐. 강설은 나의 형제이고 언제나 틀리지 않는다.”
“과한 믿음이군.”
“믿을 만한 상대를 믿는 건 맹목적인 신앙도 천박한 억지 믿음도 아니다. 신뢰라는 거지.”
“…어머니께서는 어째서 너희에게 미래를 맡기셨을까.”
“알 게 뭔가, 이미 일은 시작됐다. 덕분에 용에게 쫓기는 몸이 되었으니 방법을 찾을 뿐….”
“…….”
“슬슬 바닥이 보이는군.”
쟈마드의 말에 탄투이누의 시선이 돌아갔다. 정말 쟈마드의 말대로 구렁의 밑바닥에 거의 도착했다.
그리고 이곳이 바로 강설이 최선의 공격을 준비한 채로 기다리고 있으란 장소였다.
탄투이누는 구렁의 밑바닥까지 도달한 후에야, 강설의 의도를 어설프게나마 알아차렸다.
“강설의 말이 맞았구나, 확실히 이곳이라면… 피할 곳은 없을 테지.”
“…….”
스윽…
쟈마드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눈을 감았다.
휘오오오오…
금세 막대한 양의 주술력을 끌어모으는 쟈마드. 그런 쟈마드를 지켜보는 탄투이누가 물었다.
“…아자닉에게 공격을 성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나?”
“모른다.”
“그럼 어째서 이런 도박을….”
“강설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 조용히 해라. 내가 보아온 용 중에 가장 시끄러운 용이다, 넌.”
탄투이누는 잠시 침묵하다 쟈마드의 곁으로 가 그의 등에 양손을 얹었다.
“…뭐 하는 짓인가?”
“어머니의 기운이 네 안에 흡수되지 않은 채로 떠돌고 있다. 분명 웅대한 그 힘을 네 것으로 만든다면… 조금은 승산이 있을지도.”
“…흥.”
휘오오오오오오오…
쟈마드는 날뛰는 탄크리드의 기운을 한차례 확인한 후 다짐했다.
‘반드시… 반드시 이곳에서 벽을 깨부순다.’
몇 시간이 지난 후, 용이 이곳에 올 것이다.
그때가 승부처다.
입을 꾹 다물고 힘을 모은다.
탄크리드의 말과 그녀의 흔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네 복수다, 탄크리드. 부디 힘을 보태다오.’
난폭하게 굴던 대지의 기운이 단단하게 뭉치기 시작했다.
* * *
“고마워! 좋은 거래였어! 자, 내 호의의 증표를 줄게.”
치이이…
손등에 둥그런 형태의 인장이 새겨졌다.
그 안에는 들판을 형상화한 그림이 왼쪽에 치우쳐서 그려져 있었다.
[들지기의 인장을 획득합니다.]
[잠꾸러기가 당신을 만나줄지도 모릅니다.]
‘인장까지… 됐다!’
차근차근 모을 예정인 맹독들이 공격 수단이라면, 들지기의 인장은 아자닉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지하 정원에서 강설은 신비로운 독초들과 관리자들의 인장을 함께 모을 예정이었다.
‘깜빡이 꽃에 이어 인장까지 확보했으니 이곳에 더 남아있을 이유는 없겠어.’
시간이 촉박하다.
강설은 아자닉이 유적의 문이 다시 열리는 것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떠올린 후, 들지기에게 작별을 고했다.
“응! 저기로 가면 커다란 동굴이 나올 거야! 거기로 가면 숲으로 이어져!”
“고마워, 잘 있어.”
“다음에 또 봐!”
다음에 또 보자는 말.
강설은 그 말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의 말, 그러니까 강설이 꼽은 가장 강한 말 중 하나인 ‘찰리’가 이곳에서 전승 모험을 치를 때 저 말을 가장 싫어했었다.
이 지긋지긋한 지하 정원에 다시는 오기 싫었기 때문에. 대륙을 가로지르는 심부름이라니, 도를 지나쳐도 한참 지나쳤다.
그래서 전승 모험과 함께 몇 개의 절기를 더 창안해낸 이후 지하 정원에는 완전히 발길을 끊었다.
다시는, 정말로 다시는 이곳에 올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건가….’
떠나는 들지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강설이 피식 웃었다.
이곳에서의 경험이 앞으로의 일에 크나큰 보탬이 되어주는 건 확실했으니, 쓸데없이 감회에 젖지 말고 준비를 철저히 해야 했다.
잠시 후, 그는 커다란 동굴 앞에 도착했다.
강설은 머릿속의 약도를 꺼내 이 길이 어떻게 이어질지 떠올렸다.
지하 정원은 흔한 유적의 형태와는 달리 직선형 구조를 띠고 있었다.
즉, 앞으로만 가면 심처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오히려 추격전에 있어 불리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겨날 수 있다.
합당한 의문이었다.
그저 길을 따라가기만 해도 따라잡힐 수 있다면, 아자닉에게 살해당할 테니까.
그런 상황을 방지해줄 수 있는 게 바로 지금 보고 있는 관문이었다.
1관문, 2관문, 3관문.
각기 들과 숲, 그리고 늪 그리고 오래된 구렁까지.
구역의 사이사이를 잇는 이 관문은 동굴의 형태를 하고 있고 커다란 짐승이나 마물도 들락거릴 수 있을 만큼 천정이 높았다.
‘불사신도 예전에 이곳을 지나쳐왔으니….’
다소 과대평가되어 불사신이라 이름 붙여진 거대한 마물도 이 관문을 지나칠 수 있었을 정도로 관문의 규모가 컸다.
그러나 관문은 그저 관문일 뿐, 아자닉 같은 존재에게 있어서 특별한 저항력을 발휘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뭔가 꾀를 내지 않는 이상.
‘원래였다면 관리자들을 이용했겠지만….’
관리자들을 이용하면 관문에도 수작을 부리는 게 가능했다. 다만, 품과 시간이 많이 드는 것들이라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 했다.
그는 품에서 대량으로 구매한 강철 억새 씨앗을 꺼내 흩뿌리기 시작했다.
‘이쯤이면 됐나?’
강철 억새는 무척 위험한 식물이었다.
그 강도는 강철 검과 비견될 정도였고 불에 닿으면 도리어 단단해지는 성질까지.
부러지면 그 희귀한 성질을 잃어버리는 탓에 소재로는 꽝이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바리케이드로 제격이지.’
본래도 강철 억새는 엄청난 속도로 성장한다. 그런 강철 억새의 성장에 힘을 보태줄 수 있는 개량된 생명력 가루까지 흩뿌리는 강설.
그러자, 씨앗이 동굴 바닥을 파고들며 맹렬하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우드드드드득-!
[훌륭한 강철 억새 밭을 일구었습니다.]
[의외의 재능! 농사 1을 깨우칩니다.]
[채집하는 작물이 일정 효과를 지닙니다.]
[식물의 생장에 관여합니다.]
동굴이 순식간에 강철 억새로 가득 찼다.
‘다음은….’
방금 얻은 깜빡이 꽃잎을 곱게 빻아 펑펑이의 씨앗과 함께 놓고 생명력 가루를 끼얹었다.
우지지지지직-!
커다란 박처럼 생긴 펑펑이가 금방 성장해 강철 억새의 틈바구니에 숨었다.
펑펑이는 아주 작은 충격으로도 폭발하여 안에 든 포자를 흩날리는 식물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성장의 유연성이 탁월해 독효든 약효든 효과가 있는 식물의 가루를 비료로 주면 씨앗이 그 성질을 빨아들이는 효과까지 있었다.
즉, 저 커다란 펑펑이가 터지면 그 즉시 깜빡이 꽃이 가진 독성이 사방으로 퍼진다는 것이다.
‘일단은 이 정도로.’
첫 번째 통로를 봉쇄한 강설은 곧장 다음 구역으로 향했다.
동굴을 빠져나오니 이번엔 숲이 펼쳐져 있었다.
온갖 새들이 나무 위로 푸드덕 날아가는 모습에 강설이 인상을 썼다.
숲에는 좋지 않은 추억이 한가득이었다.
“안녕! 나는 숲지기!”
앵무새를 똑 닮은 숲지기가 성큼성큼 걸어와 강설을 반겼다.
“숲에 온 걸 환영해, 인간!”
“아, 응.”
참고로, 숲지기는 관리자 중 가장 수다쟁이였다.
“한 가지 비밀을 알려주자면 잠꾸러기님의 영역에서는 조용히 하는 게 좋을 거야. 쿡쿡쿡….”
“…….”
“혹시 다른 비밀도 궁금해? 응? 궁금해?”
[말이 많은 숲지기가 당신에게 궁금한 게 있는지 물어봅니다. 당신은 그에게 궁금한 게 있습니까?]
1. 이 숲은 어떻게 만들어진 거야?
2. 지하 정원은 대체 어떤 힘이 작용하는 거지?
3. 출구는 어디야?
4. 잠꾸러기가 누군데? 잠꾸러기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해?
……
“잠꾸러기를 만나고 싶은데 가능할까?”
“아, 그거라면 말해줄 수 있지. 사실 별거 아니야. 잠꾸러기는 우리를 참 좋아하거든.”
“우리?”
“관리자들 말이야! 잠꾸러기의 정원을 그가 잠든 사이에 잘 가꿔주니까! 그러니까, 우리한테 잘 보이면 돼!”
강설은 다음 선택지가 떠오르기 전에 재빨리 연계된 질문을 던졌다.
“너한테 잘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어… 나, 나한테? 나한테 잘 보이려고?”
“응.”
“그, 그, 그러면… 내 부탁을 들어주면 돼!”
“좋아, 나에게 부탁할 일이 있다면 내가 그 부탁을 들어줄게.”
“정말이야? 그럼 내 부탁은….”
바로 이 부분.
강설이 아자닉을 공격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했다.
숲지기는 매번 부탁이 제멋대로였다. 어떨 때는 숲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거대한 멧돼지를 사냥해달라고 했으며 또 어떨 때는 얕은 호수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물뱀을 쫓아내달라고도 했다.
이와 같은 일을 그를 대신해 처리해주면, 인장과 함께 보상이 지급되었다.
보상은 바로 그의 골칫덩이였던 존재의 독이다.
바로 이 부분 때문에 강설이 긴장한 것이다.
‘부탁을 두 번이나 들어줄 시간은 없어.’
최후에 어떤 독이 완성될지는 지금 받는 부탁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최악의 경우, 아자닉에게 아무런 피해를 줄 수 없는 독이 완성되어 버리면 그냥 도주를 택해야 했다.
‘거인 벌 퇴치 정도가 적당하겠군. 거인 벌….’
강설이 앵무새의 부리 모양을 뚫어지게 보며 그의 입에서 어떤 부탁이 흘러나오는지 기다렸다.
“으음… 고민이 많은데 뭘 부탁하지… 도마뱀도 극성이고 모기떼도 고민이야. 또 과일을 썩게 만드는 새들은 어떻고!”
“……벌.”
“응? 뭐라고 했어? 아무튼, 숲이 가장 할 일이 많은 것 같아. 나는 매일 일하기 바빠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잠꾸러기가 일어나면 바꿔 달라고 말해야겠어.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벌.”
“응? 벌? 벌이라고?”
“…아니야.”
숲지기가 고개를 까딱하다가 눈이 커졌다.
“맞아! 벌! 아무래도 그걸 부탁해야겠어!”
“그거라면….”
“벌! 거인 벌! 예전에 어떤 인간이 도와주긴 했었는데 금세 또 번성했지 뭐야? 일대에 다가갈 수가 없어서 고역이라고.”
강설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이런! 정말 큰일이군! 거인 벌을 빨리 퇴치하지 않으면 점점 커질 거야! 거인 벌은 나이가 들어도 계속 커져 날갯짓 소리만으로도 공포니까!”
“맞아! 어… 그, 근데 왜 이렇게 자세히 아는 거야?”
숲지기가 움츠러들며 묻자 강설이 씨익 웃었다.
“나한테 맡겨, 거인 벌. 이번엔 제대로 준비해왔으니까.”
“…이번엔?”
“…아무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