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350
제349화
“허억… 허억….”
아자닉의 본 모습을 목격한 순간, 심장이 비명을 질렀다.
이리자드 때와는 또 다른 충격이었다.
혼자서 용과 맞서야 하는 순간이었으니 어쩌면 더 큰 충격이 오는 게 당연한지도. 아니, 맞서기는커녕 도주라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강설은 들판을 날 듯이 달렸다.
너무 빠르지도 않고, 너무 느리지도 않게.
“하아… 하아….”
판데아에는 용에 관한 이야기가 참 많았다.
구전으로 이어지는 초월적인 존재 중에 많은 이에게 회자될 정도로 매력이 있는 존재는 아마 용뿐인가 싶을 정도로.
그들에게 맞섰던, 두려움이 없던 주인공들을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였을까.
‘죄다 미친 녀석들이야!’
아마도 그 이야기들은 전부 허구이거나, 용에게 맞섰던 이들의 심장이 하나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저 압도적인 신체에 깃드는 아름다움이란.
또 숨 막히는 고귀함이란.
단숨에 열등종으로 처박히는 모멸감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런 존재와 대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찾아오는 희열이란!
강설은 달리면서 웃었다.
입가에 미소가 만연했는데, 그만 몰랐다.
웃으면서 달린다.
늘 그랬다.
그는 그의 말들을 저 심연의 구렁텅이에 뒹굴게 하면서, 고민한 적이 있었다.
자신은 안전한 곳에 숨어 남의 고통을 즐기는, 그런 끔찍하고 저열한 인간인 건 아닌지.
그리고 이쯤 와서 생각해 보니, 그건 착각이었다.
그는 두근거림을 즐겼다.
그야말로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마지막 말이었다.
“으하하하하하-!”
아마도, 용과 대적한 녀석들은 엄청난 자극에 모두 미친 녀석들인지도.
화르르륵-!
‘…어?’
그런데 어느 순간, 오른팔이 불타고 있었다.
[천공 용 아자닉의 불꽃에 휩싸입니다.]
[아자닉의 불꽃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꺼지지 않습니다.]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어야 하는 상황.
서걱-!
하지만, 강설은 비탄을 늘어트려 오른팔을 어깨 아래로 잘라냈다.
푸화아악-!
피가 쏟아져 나왔다.
“크아아아아악-!”
불붙은 팔을 떼어 낸 후에야 바닥을 굴렀다.
“하아… 하아….”
오래된 구렁의 바로 앞까지 도착한 강설은 뒤로 돌아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아자닉을 보았다.
“…더는 웃지 않는 것이냐?”
“헤헤….”
강설의 팔이 다시 재생되기 시작했다.
시초의 피가 오랜만에 입은 상처에 맹렬하게 순환했다.
“탄크리드, 그녀의 유지를 내놓아라. 목숨만은 살려주마.”
“아, 살려주나? 그럼… 내 질문에 먼저 대답해라.”
아자닉의 눈이 타올랐다.
“감히….”
“하나, 탄크리드는 처음부터 제거할 생각이었나?”
탄크리드의 이야기가 나오자, 아자닉은 잠깐 정도는 대화에 어울려줘도 괜찮겠다 여겼다.
“나, 아자닉의 뜻에 반하는 용은 필요 없다.”
강설이 인상을 쓰며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하나, 그녀가 사라짐으로써 판데아에 악이 준동할 것이라는 데까진 생각이 미치지 않았나?”
아자닉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선택한 길은 더는 수호의 의지가 아니었다.
“…이 땅은 이제 수호할 가치가 없나니. 신성한 의무 또한 빛바랬다.”
강설은 고개를 푹 떨구고 고통에 신음하며 질문했다.
“하나, 내가 준비한 선물은 모두 잘 받았나?”
“네 성의 없는 선물에는 솔직히 실망했다. 형편없더군.”
“염치없이 받기는 다 받았나 보네… 그럼, 마지막으로 묻겠다.”
아자닉에게 던지는 마지막 질문.
“콧수염이 난 남자를 만나지 못했어?”
“콧수염? 그게 무슨….”
바로 그때.
움찔…
아자닉이 느끼기에 몸 전체가 서늘해졌다. 갑자기 혈관이 꽉 막혀 피가 통하지 않는 듯한 감각이 찾아왔다.
“카학….”
각혈.
검은 피가 용의 입에서 토해졌다.
강설은 웃었다.
지하 정원은 반드시 3개의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그리고 문을 통과하려면 강설이 준비한 3가지 독을 전부 들이마셔야 하고.
코를 막아도 소용이 없다. 신체에 들러붙어 흡수되기도 하니까.
“3번째 문을 통과하면….”
강설은 최근 강해진다는 것에 불감증을 느끼고 있었다. 쟈마드도 그렇고 카렌도 그렇고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전히 자신은 그대로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오늘 그는 깨달았다.
그가 추구하는 강함은 그들과는 다른 종류의 강함이라는 걸.
싸워서 쟁취하는 강함이 아닌…
“찰리를 만날 거야. 네가 졌어.”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강함이라는 것을.
[천공 용 아자닉이 찰리 특선 : 외투 훔치기에 중독됩니다.]
[독의 대가가 합성한 물질이 아닙니다.]
[독의 효과가 난치병에서 만성질환으로 격하합니다.]
[찰리가 방문합니다.]
휘오오오오오오…
아자닉의 눈이 빛을 잃었다.
새하얘진 그의 눈.
시커먼 공간에 그는 서 있다.
“어째서….”
권능이 존재하는 한, 그 어떤 위협도 용의 육체를 훼손할 수 없었다.
한데, 어째서인지 그는 지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갑옷을 입고 있던 그가, 어째서인지 발가벗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움츠리며 고개를 돌리니, 누군가 서 있었다.
중절모를 쓴 남자.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콧수염이 인상적이었다.
‘…콧수염?’
– 콧수염이 난 남자를 만나지 못했어?
남자는 양손에 단검을 쥐고 모자를 살포시 벗었다.
화르르륵-!
아자닉이 손에서 불길을 일으켰다.
허튼짓을 저지르기 전에 불태워버리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말도 안 돼!’
서늘한 감각이 목을 타고 뇌리에 울렸다.
푸욱…
단검이 양쪽에서 목을 파고들어 절단하는 느낌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머리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비명을 지르는 아자닉.
“크아아아아아악!”
그래, 환상이다.
모든 것은 환상.
지금 목이 떨어진 것 또한 환상일 것이다.
인간 따위에게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목을 내어줄 리가 없었다.
그 순간, 그의 심장에 낙인이 새겨지며 환상을 빠져나왔다.
[천공 용 아자닉이 찰리 특선 : 외투 훔치기에 중독됩니다.]
[찰리가 아자닉의 권능을 강탈합니다.]
[만성질환 : 피해망상을 해독하기 전까지 권능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권능 : 용을 빼앗깁니다.]
[숨결을 내뿜을 수 없습니다.]
[모든 저항력이 50% 저하됩니다.]
……
환상에서 빠져나오자 강설이 이죽거리고 있었다. 어느새 그의 팔이 전부 재생되었다.
“찰리를 만났나 보네.”
“네놈… 네놈! 내게 무슨 짓을 한 거냐!”
씨익…
“이건 그저 인사일 뿐이야, 다음에 또 보자고.”
강설이 재생된 오른손을 이마까지 올리며 경례했다.
스륵…
그리고 그대로 몸을 기울여 구렁으로 떨어졌다.
아자닉이 재빨리 구렁을 향해 날았다.
파아아아아앙-!
놈이 이대로 자살한다면 그에게 있어서도 큰 문제였으니.
엄청난 속도로 구렁의 입구에 다가가자, 저 밑으로 양팔을 벌리고 떨어지는 강설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놓칠 것 같으냐!”
구렁 안으로 향하는 아자닉.
구렁이 그와 딱 맞는 크기였기에 어쩔 수 없이 나선 계단을 짚으며 밑으로 향했다.
용이 아니라, 도마뱀이라도 된 것처럼.
간담이 서늘했다.
이토록 두려움을 느끼게 만든 인간은, 날개 산맥에서 상대했던 그자뿐이었다.
깊은 구렁 속으로 아자닉이 충분히 내려왔을 때, 이번엔 다른 이의 목소리가 구렁을 울렸다.
“용이여….”
순간, 어둠을 꿰뚫는 용의 눈이 구렁의 밑바닥을 훑었다.
트롤이 눈을 빛내며 움츠린 상태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은, 투쟁이었다.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
아자닉은 당분간 권능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
불도 뿜을 수 없을뿐더러 강인한 육체의 이점도 사라졌다.
감각이 경고했다.
하늘로 날아오르라고.
“제기라아알-!”
그의 날개가 펴지는 찰나, 구렁에 진동이 찾아왔다.
“네놈은 추락할 것이다.”
쟈마드가 대지를 당겨와 하늘을 향해 주먹을 내뻗었다.
[대주술 : 돌주먹을 사용합니다.]
[대상에게 산과 그림자 복합 피해를 줍니다.]
콰지지지지지지지직-!
거대한 그림자 손에 바위가 덧씌워진 주술이 구렁을 역행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커허어억….”
날아오르는 아자닉을 향해 내뻗은 주먹은 기어코 그의 복부를 후려갈겼다.
공중으로 붕 떠오르는 아자닉.
으드드드득…
뼈가 부서지는 감각이 그를 고통에 신음하게 했다.
하나, 원체 단단한 몸이었기에 정신을 잃는 것만큼은 버텨 냈다.
그리고 깨닫게 된 것도 있었다.
‘놈들은 다음 수가 없다!’
느껴지는 기운이 썩 대단치 않았으니 다소 피해를 교환하더라도 반격으로 돌아서는 게 맞았다.
공중으로 떠오른 그가 다시 구렁을 향해 고속으로 내리꽂힌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죽여주마아아아아!”
콰지이이이이이익-!
구렁의 밑바닥에 도착한 아자닉이 주변을 살폈다.
놈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이 사라졌을 만한 곳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반투명한 막 안쪽에서 그들 중 인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장 오래된 나무여! 독대를 청합니다!”
안에서 들려오는 다른 이의 목소리.
“감히 나의 단잠을 깨우다니… 각오는 되었겠지?”
아자닉은 천천히 반투명한 막까지 다가가 그의 존재를 확인했다.
거대한 나무.
아마 오래된 구렁의 속을 메우고 있었던 것은 바로 그 같았다.
거대한 나무가 지하에 숨어 잠을 자고 있었다.
아자닉 또한 저렇게 큰 나무는 생전 본 적이 없었다.
그 크기가 아자닉보다도 훨씬 컸다.
오늘은 정말로 운이 나빴다.
잠꾸러기가 줄기로 눈을 비비며 말했다.
“정원 일을 도왔구나. 좋다, 얘기 정도는 나누어주마. 그런데….”
아자닉은 나무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반투명한 막이 그의 진입을 막고 있었다. 어떻게 초월자인 그를 막아설 수 있는 것일까.
답은 이 반투명한 막이 평범한 마법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초월자 잠꾸러기의 권능 그 자체.
아자닉과 마찬가지로 지하에 잠든 잠꾸러기도 초월자에 가까웠다.
“저 용도 네 일행인 것이냐?”
아자닉이 거친 숨결을 내뱉으며 강설을 노려보았다. 그의 눈이 이글이글 타오르며 강설을 위협하자, 강설이 손사래를 쳤다.
“어이쿠, 무서워! 요 앞에서 잠깐 마주쳤는데 처음 보는 사이입니다.”
아자닉의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죽여주마! 내 너를… 내 너를!”
“그렇군, 알겠다. 흐아아암….”
잠꾸러기가 하품하며 아자닉을 바라보았다.
“그럼….”
잠꾸러기의 눈이 푸르게 타올랐다.
곧, 아자닉의 몸이 푸른 입자로 감싸였다.
“내 정원에서 꺼져라, 도마뱀.”
[잠꾸러기가 권능 : 헛걸음을 사용합니다.]
[잠꾸러기는 천공 용 아자닉을 만날 생각이 당분간 없습니다.]
[천공 용 아자닉이 임의의 숲으로 전이됩니다.]
존재 자체가 튕겨 나가려는 듯한 느낌.
줄기가 아자닉을 휘감았다.
정말로,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인간과 트롤 따위에게 당해 권능을 봉쇄당한 것도 모자라 육체적 손상까지 입었다니.
탄크리드의 후손의 행방도 중요했지만, 지금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복수심이었다.
[세력 : 천공 용과 원수 관계가 됩니다.]
……
아자닉이 온 힘을 다해 추방을 미루면서까지 그들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기억했다! 반드시… 너희들을… 찾아내서….”
강설이 웃으며 손을 휘저었다.
“그럴 필요 없을걸.”
휘리릭-!
쟈마드가 강설의 몸에서 빠져나와 아자닉을 같이 비웃었다.
탄투이누는 어안이 벙벙해 두리번거릴 뿐이었지만 쟈마드가 합류하며 비웃는 이가 둘로 늘어나니 아자닉의 심적 고통은 배가 되었다.
강설은 많은 의미가 담긴 웃음으로 아자닉에게 작별을 고했다.
“다음엔 우리가 찾아갈 테니….”
아자닉이 생애 두 번째로 맞이하는 패배였다.
“기다리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