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356
제355화
눈치를 보는 듯한 말소리에 강설은 자연스럽게 팔에 매달린 존재에게 시선을 보냈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뭐가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비탄?”
【혹시… 나 없어야 하는 거야?】
“…….”
– 마치 엘리베이터에서 노래 부르다가 동네 주민 마주친 것 같은 상황이군요.
– 자연스럽게 메들리로 넘어가!
– 큭큭큭… 세상을 부숴버릴 수도… 아, 엄마! 노크 좀 하고 들어오라고! 세상… 뭐? 그런 말 안 했어! 아 엄마가 잘못 들은 거겠지!
강설은 칠흑의 미궁에서 홀로 고군분투할 각오를 다지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비탄이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저… 비탄은 지금이라도 나가는 문을 찾아볼까?】
“…아니야.”
【있어도 돼?】
“응.”
비탄은 소환수도 아니고 생명이 있지만 다른 생명체와 같은 궤에 올려놓을 수 없었다.
그는 마령.
즉 영혼이자 무기였다.
그렇기에 칠흑의 미궁에 발을 디뎠음에도 멀쩡하게 모든 구역을 쏘다닐 수 있는 것이다.
강설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것은 어떤 두려움이나 놀라움에서 비롯된 느낌이 아니었다.
손에 다가오는 말캉말캉한 이 감촉이,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안도감을 만끽하게 해주었다.
슥… 슥…
그는 비탄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럼, 지금부터 날 좀 도와줄래? 친구들을 당분간 볼 수 없거든.”
쿵쿵!
비탄이 가슴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좋아! 약한 녀석은 비탄이 도와줘야 하니까!】
“……그래.”
– 고맙지, 약한 녀석아?
– 어린 애들은 역시 거짓말 못 해.
– 비탄은 정말 착해! 약한 녀석도 도와주고.
– 정보) 눈사람은 전이자 정도는 혼자서도 꿀밤으로 모내기가 가능하다.
– 이모작까지 가능.
– 문제는 여기선 역 모내기 당할 수도 있다는 거지 ㅋㅋㅋ
약한 녀석이라는 워딩이 심히 거슬렸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참았다.
[숨겨진 모험 ‘적응기’의 조건을 만족합니다.]
[돌발 모험 ‘적응기’가 발생합니다.]
[이 모험은 매우 위험합니다.]
……
위와 같은 문구가 메시지 창을 울렸지만, 안타깝게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메시지 창은 원래 구분이 가능하도록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는 구조로 만들어졌지만, 어둠이 주변을 집어삼키자 아무것도 확인할 수가 없었다.
강설은 우선, 주변 지형부터 가늠해보기로 했다. 그가 기억하기로 이곳은 그렇게 살가운 장소가 아니었었다. 또한, 실내라고 안심했다간 뒤통수를 얻어맞을 수도 있었고.
‘고행의 미궁이나 지하 정원도 그랬지.’
분명히 지하로 들어왔는데도 멀쩡히 보이는 하늘이라던가, 제멋대로 전이되는 환경은 정상이 아니었다.
칠흑의 미궁 또한 그들과 유사한 점이 존재했다.
‘우선 바닥….’
바닥의 질감이 정돈되지 않았다.
널찍한 바위를 밟고 있는 듯한 질감이었다.
‘장소는 바뀌지 않았군.’
예전에 칠흑의 미궁을 무려 3번이나 들락거렸을 때도, 이런 질감의 바닥이라고 읊조리는 말의 대사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돌산이다.’
첫 번째 시작 지형은 돌산.
주변엔 여러 개의 작은 호수를 낀 숲이 있는 지형이었다.
‘식수를 가져오긴 했지만… 언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니 숲으로 내려가야 해.’
식자재도 천년만년 사용할 수 있는 양이 아니라 비교적 사냥이 수월한 숲으로 내려가는 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판단했을 때 현명했다.
‘그건 그렇고… 다들 다른 곳으로 향한 건가?’
마지막 가면을 쓴 두 명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보지는 못했지만, 마주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어차피 고행의 미궁이 그러했듯, 칠흑의 미궁 끝자락에 도달하면 알아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뭐… 딱히 만날 생각은 없지만.’
강설이 가만히 서서 생각하고 있는 사이, 비탄이 소매를 잡아 끌었다.
【우리 이제 어떻게 해야 해?】
“쉬이… 적이 있을 수도 있어, 비탄. 조용히 말해야 해.”
【이렇게?】
비탄의 성량이 워낙 우렁차 작게 줄여도 여전히 볼륨이 컸다.
“그거보다 더.”
【으으으으으….】
〔이렇게?〕
마치 뾰롱! 하는 듯한 느낌으로 비탄의 말이 머릿속을 울렸다.
이와 같은 행동을 일전에도 여러 번 한 적이 있지만, 의식적으로 한 적은 딱히 없었었다.
– 좋아, 어떻게 한 거야?
강설은 이미 소환수들과의 대화가 익숙하기에 금세 대답할 수 있었다.
〔음… 비탄이 알려줄게! 조용히 말하려고 하니까 됐어!〕
– …뭐, 아무튼.
강설이 주변을 더듬거렸다.
드디어 탐색을 시작한 것이다.
주변에 묵직한 존재감을 발하는 물체가 있었다.
‘바위다, 크기는 어느 정도지?’
더듬더듬 바위의 폭을 확인하는 강설.
바위는 사람 여럿이 양팔을 벌려야 감쌀 수 있는 크기였다.
꼼꼼하게 그 주변부까지 더듬더듬 확인하는 강설.
추측하기로 돌산에서도 높은 위치에 있는 장소인 것 같았다.
후우……
이미 출항했으니, 항구를 돌아볼 생각은 없었다.
강설은 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이 자세가 특별히 편하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혜명에게 건너 들었던 말로는 집중력이 필요한 일을 할 때 이만한 자세가 없다는 것이었다.
미지의 세계.
이곳은 어디인가.
또 어디쯤 서 있는가.
강설은 이럴 때 적합한 능력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중급 간파가 발동합니다.]
[주변 지형이 흐릿하게 느껴집니다.]
[강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중급 간파가 발동합니다.]
……
떠오르는 메시지들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메시지에 적힌 문구만큼은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주변의 바위가 어떤 느낌으로 솟아있는지, 벼랑이 있는지 등 중요한 정보가 강설에게 전해졌다.
〔이제 여기서 뭘 하면 되는 거야?〕
– …적응해야지.
칠흑의 미궁에 자리 잡은 관문들은 단순히 보상을 얻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시련이 아니었다.
‘오히려 수행에 가깝지.’
그것이 칠흑의 미궁이 드러났을 때 발길을 이쪽으로 돌려야겠다고 결심한 이유 중 하나였다.
5개의 문.
그리고 그곳에 숨겨진 문양.
편의상 부속성이라고도 말하는 그것.
꿈은 마법의, 피는 격투술의 문양이 숨겨져 있었다. 강설에겐 안타깝게도 칠흑의 미궁엔 소환술을 수행하는 공간이 따로 없었다.
그렇기에 차선책으로 본래 속성인 그림자를 고를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이 문에 숨겨진 부속성도 자연스럽게 수행하게 되었다.
‘이곳의 부속성은….’
무기술.
그림자의 문은 무기술을 부속성으로 가지고 있었다.
‘속성만 따지면 루시아인지 뭔지 하는 여자도 이곳으로 왔어야 했는데.’
신중히 고르라는 자신의 말을 흘려넘겼으니 자기 복이다.
아무튼, 소환사가 무기술이라니 좀 어설픈 느낌이 드는 것은 맞았지만 강설은 소환사 중에서 가장 드문 케이스인 전용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전이자였다.
술법서, 단지팡이, 지팡이, 수정구 등 소환사가 사용할 법한 무구를 단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비탄을 그렇게 변형할 수도 없으니까.’
비탄은 형태가 변화하면 성질도 변화하는 무구.
처음에는 등불이었지만 이제는 등불 밖으로 나와 세상을 거닐었다.
그 형태는 철저히 그림자의 성질을 따랐다. 쟈마드와 합일을 이루면 투갑이, 카렌 혹은 카루나와 합일을 이루면 검이 되었다.
문제는, 정작 주인인 강설이 사용할 때 제멋대로 무기의 형태가 뒤바뀐다.
‘정말 고쳐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네….’
그간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성장해왔는지, 알 것 같았다.
유연한 형태를 가지는 게 장점일 수도 있었지만, 이점을 가지는 무기 종류가 단 하나도 없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이래선 돼지 목의 진주였다.
강설은 이곳에서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많은 것을 바로잡을 생각이었다.
밤까마귀 이후에 탄생한 절기는 전부 그림자들의 것.
카루나의 아수라도, 카렌의 완전 연소도 그랬다.
자신의 것은 하나도 없었다.
기형적인 성장은 결국 정체를 맞이했다.
축 늘어지게 되는 강설.
하아….
‘뭐부터 시작해야 하나?’
강설은 바위에 기대어 계획을 정리하려 했다.
누군가의 기척이 들려오지 않았다면.
쿵…
쿵…
강설은 바위 뒤에 몸을 감춘 상태였기에 기척을 의도적으로 죽였다.
크르르르르…
짐승의 소리와 바위 근처까지 전해지는 악취까지.
그리고 비범한 기세.
‘강해!’
쟈마드가 있었다면 쉬운 상대겠지만, 지금으로선 최대한 조심해야 했다.
쿵…
쿵…
사라지는 짐승.
두 발로 걷는 짐승이 사라지자, 강설이 한숨 쉬었다.
“하아….”
이렇게나 허약할 수가.
비탄이 강설의 팔을 흔들며 말했다.
〔괜찮아.〕
“…….”
〔비탄도 숨었어.〕
* * *
강설이 이곳에 도착한 지 일주일쯤 됐을 때, 그는 숲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빛이 없는 곳에도 낮과 밤은 있었다.
단지 그것을 구분하는 것이 해와 달이 아닐 뿐.
크르르르…
쿵…
쿵…
숲을 걸어 다니는 저 이족보행 마수를 밤짐승이라 부르기로 했다. 실제로 과거에도 그렇게 불렀었다.
‘오래됐지….’
밤짐승은 오로지 밤에만 나타났다.
아니, 밤짐승이 나타나는 시간대를 밤이라 부르니 선후가 잘못되었을 수도.
이들의 크기는 모두 제각각이었다.
어떤 짐승은 작은 동산만 한 녀석도 있는 반면에, 또 어떤 짐승은 인간보다도 훨씬 작은 크기였다.
‘쓰러트릴 수 있을까?’
강설이 지금 사용할 수 있는 힘은 와탈라의 유적에서 손에 넣었던 정신의 힘.
그리고 그림자 소환수 없이 사용하는 반쪽짜리 밤까마귀.
이조차도 제대로 이루지 못해 신체의 절반도 제대로 변하지 못했다.
‘대체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나?’
그 우여곡절을 겪고도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일지도.
그나마 다행인 점은 첫 번째 관문을 빠져나가는 방법을, 아니 정확히는 두 번째 관문을 오고 갈 방법을 강설이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밤짐승을 사냥해 어둠을 모으는 것.’
문제는 그 수치가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다는 거다.
‘아니지, 말은 느낄 수 있다고 했으니… 나한테도 느낌이 오겠지.’
사실, 어둠을 얼마나 더 모아야 하는지를 확인하는 건 부질없는 짓이었다.
애초부터 이곳에 온 목적이 칠흑의 미궁 보상을 획득하는 게 아닌, 강해지는 것이었으니까.
그가 만족할 수 있을 때까진, 이곳에서 빠져나갈 계획이 없었다.
강설은 밤이 되자, 숲에 밤짐승들이 하나둘 모여드는 것을 느꼈다.
앞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는 데 싸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었지만, 예상 밖의 수확이 있었다. 와탈라의 유적에서 얻었던 정신의 힘이 큰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정신의 힘은 밤짐승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마치 형광물질을 발라놓은 것처럼, 밤짐승의 위치와 행동을 정확하게 보여주었다.
문제는…
우욱…
밤짐승의 본질 그 자체였다.
검은 껍질 안에 들어차 있는 영혼.
저건 실패자의 영혼이었다.
미궁에서 죽은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은 영혼.
무기는 가지고 있지도 않고 복장도 싸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람의 모습을 한 밤짐승의 눈은 동공이 없었고 흡사 시체가 걸어 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이성은 남아 있지 않은 듯했다.
후우…
후우우…
‘할 수 있다.’
정말로 오랜만에, 밤까마귀에 의지하지 않고 싸우게 된 느낌이었다.
팟-!
자신감 있게 떨치고 나아간 강설.
크르르르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는 밤짐승.
쒜에에엑-!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하지만.
까가가가각-!
“무슨….”
가장 만만한 크기와 만만한 영혼을 목표로 삼았는데, 밤짐승의 척골, 그러니까 팔목 뼈를 베지 못했다.
빠지직…
“끄으으윽….”
반대쪽 팔을 내뻗어 강설의 어깨를 쥔 밤짐승. 그 한 번의 공격만으로도 정신이 아찔해졌다.
파아아악-!
강설은 거세게 밤짐승을 걷어찼지만, 밤짐승이 밀려난 게 아닌 강설이 그 반동으로 멀리 물러났다.
“하아… 하아….”
– 그간 날먹만 해왔으니 ㅋㅋ 익혀 먹는 게 익숙치 않은가 봐요?
– 타다끼는 취향이 아니신가…
– 아 ㅋㅋ 남들은 다 그렇게 커왔다고 ㅋㅋㅋ
강설의 시야는 어두컴컴했지만, 시청자들이 보는 화면엔 상황이 제대로 보이는 듯했다.
파아앗-!
검을 쓰는 팔이 아니었기에 시초의 피가 회복하도록 내버려 두고 다시금 달려드는 강설.
‘목을 노려야 해!’
다행히, 밤짐승의 움직임은 빠르지 않았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단단했을 뿐.
파지지직…
강설이 손에 밤까마귀의 기운을 둘렀다.
그의 손이 곧, 눈앞에 있는 밤짐승의 피부와 비슷하게 변했다.
밤짐승의 품까지 파고들어 검을 쥔 팔의 팔꿈치를 사용해 녀석의 겨드랑이 쪽을 후려치는 강설.
따아아아앙-!
‘이건 먹힌다!’
팔이 부자연스럽게 올라간 밤짐승.
목을 벨 절호의 기회였지만, 간격이 적절치 못했다.
휘릭-!
강설은 맹렬히 회전하며 검을 수평으로 휘둘렀다.
밤짐승의 반대쪽 손이 목을 향해 휘둘러지는 비탄을 막으려 손을 직각으로 구부렸다.
‘벤다!’
추화아아아악-!
찌릿한 감각과 함께 손목을 베고 지나가는 검.
그와 동시에 둥실 떠오르는 손과 머리.
파아아아악-!
목이 베였는데도 신경이 아직 남아있는지 강설을 걷어차는 밤짐승.
콰지이익-!
“커허어억….”
날아가 나무에 부딪히는 강설.
꽤 심각하게 부딪혔는지, 몸을 까딱조차 할 수 없었다.
쿠우우우웅…
밤짐승이 쓰러졌다.
[어둠을 그러모읍니다.]
[어둠이 아주 조금 쌓였습니다.]
[어둠의 은총이 내립니다.]
[의외의 재능! 중급 검술을 깨우칩니다.]
[검의 움직임을 꽤 능숙하게 이해합니다.]
……
긍정적인 메시지가 떠오르는 소리에도 강설은 고개를 까딱하지 않았다.
전투는 승리했지만, 까딱 잘못했으면 죽었다.
‘나… 뭐 하는 거지?’
이런 실력으로 뭐라도 된 것처럼 굴었던 건가.
밤까마귀 상태에서 보였던 움직임과 힘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형편없는 졸전이었다.
“끄으으윽….”
시초의 피가 몸을 회복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한 듯했다.
강설은 가자미처럼 바닥에 붙어 괴로워했다.
어느새 비탄이 강설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괜찮아.〕
“…….”
〔처음이잖아.〕
비탄의 말을 들은 강설은 조금 더 엎드려 고통을 다스렸다.
정말로 오랜만에, 판데아에 처음 전이됐던 때를 잠시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