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358
제357화
강설은 불완전한 그림자에 둘러싸인 채 한쪽 광대부터 눈까지 얼굴의 일부만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이미 죽은 자의 얼굴이라 해도 그리 이상하게 여겨지진 않았다.
“미궁에는 어떤 이유로 들어온 거냐? 아니지, 히히히… 미궁을 찾는 이유야 뻔하지. 강해지기 위해서겠지?”
둘째인 신현이 웃으며 묻자, 강설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 호응했다.
미궁을 찾는 이들에게 다른 목적이 있을 수는 없었다.
오로지 강해지기 위해서다.
신립은 말없이 앞에서 걷고 신현은 연신 강설이 신기한지 말을 걸어왔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당연히 우리의 거처지, 어디긴 어디야.”
이들은 돌산의 한 봉우리에 사는 듯했다.
가는 방향이 봉긋 솟은 그곳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거지?’
강설은 검은 껍질에 둘러싸여 방황했다.
그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굉장히 불쾌한 경험이었다.
죽을 수도 있었다.
아니, 죽었었다는 말이 더 근사치일지도.
그런데, 그러한 상황이 뜻밖에도 행운을 불러왔다.
신립과 신현.
강설의 말이기도 했던 두 강자를 마주한 것이다.
‘한데… 어떻게 둘이 같이 있는 것이지?’
칠흑의 미궁은 그 끝에 도달하지 않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분명, 둘은 각기 다른 문으로 향했었고 모두 미궁의 끝에 도달하지 못했으니 마주칠 일 또한 없어야 정상이었다.
‘설마, 신강이 미궁을 빠져나가면서 균열이 생긴 것일까?’
외팔이 검성이 된 신강이 어둠을 베고 칠흑의 미궁을 빠져나갔을 때 미궁 전역에 뒤틀림이 발생했다면, 지금 같은 상황도 말이 되었다.
“뭘 그리 생각하느냐?”
“두 분은 처음부터 함께였습니까?”
“……궁금한 것도 네놈이 생겨 먹은 것만큼 괴상하구나. 음… 이야기가 기니 나중에 일러주마.”
대답할 생각이 없는 듯해, 강설은 비탄을 어깨에 얹고 그들의 거처로 향했다.
마침내, 돌산 중턱에 도달하자 그들의 거처가 나타났다.
거처 외부에는 미궁의 나무로 만들어진 평상이 있었다. 꽤 멀쩡하게 생긴 만듦새에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이쪽에 앉아라.”
강설은 신립이 그에게 말한 대로 평상에 가 앉았다.
“이미 말했지만 너는 이미 한 번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저 괴상하게 생긴 존재가 없었다면 영문도 모른 채 미궁에 의식을 빼앗겼겠지.”
그의 말대로였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 알고 싶어진 것 한 가지.
“신립, 그리고 신현. 그럼 당신들은….”
“우리는 이미 네가 겪은 그 과정을 과거에 한 차례 경험했다. 같은 일을 경험했지만 같은 처지라고는 볼 수 없겠지. 넌 살아있고 우린 죽었으니까.”
“…….”
신립과 신현은 강설의 표현대로 말하자면 밤짐승이었다.
검은 인형에 영혼을 싣고 움직이는 짐승.
물론 다른 존재들과는 달리 뚜렷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쨌든 존재 자체는 그렇게 규정할 수 있었다.
어둠에 안긴 그 불온한 존재들은 믿기 어려운 힘을 발휘했다.
설령 그 안에 깃든 게 생전에 힘 한번 쓰지 못한 연약한 자의 영혼이라 하여도.
그것도 모자라 칠흑의 미궁의 밤짐승들은, 생전의 강함에 영향을 받는다. 과거에 강자였다면 밤짐승이 된 자 또한 강한 것이다.
애초에 강설이 부딪혔던 그 검사는 강설이 사냥했던 다른 존재들과는 달리 직접 미궁을 찾은 모험가일 것이다.
당연히, 전투와는 관련 없는 영혼이 깃든 다른 밤짐승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했다.
강설이 억지로 밤까마귀가 되지 않고서는 도저히 상대가 불가능할 정도였으니까.
“이곳에는 너처럼 어설픈 녀석도 손쉽게 처치할 수 있는 작은 짐승도 있지만, 지금의 우리로서도 상대가 버거운 위험한 짐승도 있다.”
“맞다고. 네가 미궁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선 적어도 혼자서 그들을 쓰러트릴 수 있을 정도는 강해져야겠지.”
신립과 신현이 버거워할 정도의 짐승이라니.
신립의 말을 신현이 받았다.
“뭐, 꼬락서니를 보니 한참 걸리겠지만.”
강설은 그의 말을 듣다 문득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고 밤까마귀 상태를 해제하려 했다.
파츠즈즈즛…
‘…어?’
츠즈즈즛…
‘왜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는 거지?’
젖은 코트 같은 무거운 외투를 입고 있는 것 같은 답답한 느낌.
신립이 잠시 그의 상태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네 힘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둠을 이해하지 못한 녀석이 무턱대고 그것을 덮어쓰니 주변에 있던 어둠이 기회를 보고 달려든 것이지.”
“그런… 그 말은….”
“그러면 어떻게….”
“벗기 전에 적응부터 해야지. 벗는 건 그다음이다.”
신현이 낄낄 웃었다.
“히히히히! 넌 지금 그림자에 잡아먹힌 상태야. 넌 아주 멍청한 짓거리를 했다. 칠흑의 미궁에 감히 겁도 없이 그림자를 다루는 놈이 들어와?”
“…….”
강제로 완전한 밤까마귀를 시도했다가 겪게 된 부작용이었다.
어떻게든 이것을 벗어야 다시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런데, 마땅히 방법이 없었다. 잠시 신현의 말을 경청했다.
“칠흑의 미궁은 그림자를 다루는 놈이 들어와서는 안 되는 곳이야. 미궁이 네 그림자와 널 집어삼키는 건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네가 그림자의 힘을 다루는 이상 얼마나 강하든 그건 상관없어! 미궁에게 있어 지금의 넌 그저 살이 통통하게 오른 먹이일 뿐이니까.”
“…….”
“한마디로 상성이 최악이야! 네가 자랑하는 무기가 도리어 널 찌른 거다. 멋대로 그림자를 사용하면 미궁이 그걸 매개로 다시 널 멋대로 휘두를 거다.”
신현이 말하고 신립이 말을 이었다.
“이제 네게 미궁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려주마. 우선… 첫 번째.”
신립이 검지와 중지를 펴 그의 눈을 가리켰다.
“보는 것이다, 어둠을.”
“너, 지금 우리를 왜곡해서 보고 있지? 눈이 아닌 다른 것으로 말이야.”
“…….”
강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단 한 번의 접촉만으로 강설의 이모저모를 파악하고 있었다.
“너란 녀석이 대강 어떤 녀석인 줄 알 것 같단 말이지.”
신현이 강설의 행동을 비꼬았다.
“무의식중에서도 힘을 염원하는 녀석이, 정면 돌파는커녕 쉬운 길을 찾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으니…. 쯧쯧.”
“네가 강해지기 위해선 우선, 그 몹쓸 버릇부터 고쳐야 할 것이다.”
“그전까진 짐승들의 근처엔 얼씬도 하지 말아! 먹고 자고 싸고 남는 시간은 전부 눈을 뜨는 데 쓸 거다.”
폐관 수련이나 다름없는 방책.
효율을 추구하는 강설은 자신도 모르게 질문을 던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러야 눈을 뜰 수 있는 겁니까?”
“그걸 묻는다는 것부터가 글러 먹었어. 잘 들어라. 시간이 아무리 흘러봐야 평생 앞을 보지 못할 거다. 시간은….”
신현이 강설의 가슴을 쿡 찔렀다.
“쓰는 사람이 용도를 결정하는 거니까. 원하는 게 있으면 시간을 써서 성취해. 원하는 게 많은 녀석이 어째서 뭐든 헐값에 얻으려 하는 것이냐? 세상이 만만해?”
“진정해라, 현아. 별채를 안내해주고.”
“알았수다. 따라와라.”
신현이 벌떡 일어나 강설을 어딘가로 데려갔다. 거처에서 조금 떨어진 별채였다.
거의 헛간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방치된 상태이긴 했지만, 그런대로 잠을 청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앞으로 너는 이곳에서 지낼 것이다. 같잖은 수작을 이용해 주변을 확인하는 수작은 이제 그만 둬. 시간을 우습게 보지 마라! 피와 땀을 하찮게 여기는 녀석은 도태될 수밖에 없어! 기억해라, 오로지 몰두하는 것만이 네가 눈을 뜰 수 있게 해줄 테니까.”
* * *
졸지에 헛간 같은 별채에 방치된 강설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하루의 시간이 흐르고, 지금의 상황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실패했다.’
신립과 신현, 그들의 말이 맞았다.
모든 일을 가장 쉬운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습관이 기어코 발목을 잡았다.
달그락…
발치에 뭔가 걸려 휘청이며 넘어질 뻔했다.
그만큼 지금의 강설은 무기력한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정신의 힘을 봉한 채, 신립과 신현이 말한 대로 정면 돌파를 택한 대가였다.
괴로웠다.
그러나 동시에 이 방법에 확신을 가졌다.
끔뻑끔뻑 눈을 떴다 감았다 하지만, 그것은 감각으로 전달되는 신호일 뿐 실제로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일주일이 지났을 때, ‘신씨 형제의 약속을 잘 지키는 성격은 여전하구나.’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신현은 정해진 시각에, 정해진 양의 식사를 전해주었다. 발걸음 소리도, 기척도 없었다.
볼 수도 없으니 정말 귀신이 왔다 간 것처럼 식사만 놓여있을 뿐이었다.
마치 투병 생활을 하는 노인이라도 된 것 같은 심정이었다.
이렇게 되고 나니, 모든 문제점이 자신에게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나는… 틀렸었다.’
10인의 전설적인 말들.
그들의 힘을 동경했다.
판타지니까.
오락이니까.
내가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곳에 도달하는 자를 지켜보며 느끼는 희열.
강설이 그들에게 느꼈던 감정 중 일부는 분명 그것이었다.
그에게도 기회는 왔다.
판데아로의 전이는 어쩌면 삶이 그에게 선택지를 던진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런 세계에 직접 들어와, 도전해 볼 수 있는 기회.
그가 동경했던 영웅들처럼 칼을 휘두르거나 활을 쏘고 또 마법을 사용하며 그들이 도달한 곳에 발을 내디딜 수 있는.
‘…그러지 않았지.’
후회하는 이유는, 강설은 자신이 그 기회를 너무 가볍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의 전설적인 말들이 고난을 통해, 시간을 들여 수행하며 강해졌던 일을 까마득하게 잊고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이용하는 것에 집중했었다.
그것은 한동안 꽤 잘 통했었다.
성장은 기괴할 정도로 빨랐으며, 성취는 이미 다른 전이자가 따라잡기 어려운 지경까지 왔다.
하지만… 결국은 벽에 부딪혔다.
이제부턴 ‘진짜’의 시간이 필요했다.
강해지는 것에 열의를 가지고 시간을 들여 진정으로 몰두한 적이 있었던가.
‘어쩌면… 유현과 만났을 때….’
야차 유현을 만났을 때, 이미 균열은 시작되었다.
야차가 된 유현은, 오히려 오래전 잃은 유현 그 자신의 모습일 때가 훨씬 강했다.
원래대로 되돌아온 그는, 과거에 사용했던 검술을 펼쳤고 당시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했던 강설을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강설이 얻었던 힘들은 그의 정순한 힘에 잠시 밀릴 정도였으니….
이제는 직시해야 했다.
벽을 깨기 위해선, 그들처럼 행동해야 했다.
잠꾸러기가 말한 것처럼, 지름길은 없었다.
그들보다 빨리 도달하고 싶다면, 걷는 대신 달려야만 했다.
그렇게 마음먹은 순간부터, 강설의 지옥 같은 시간이 시작되었다.
강설은 앞을 보지 못하니 비탄의 도움을 받거나 더듬거리며 감각을 깨쳐야 했다.
반사적으로 정신의 힘을 사용하려 할 땐 어금니를 악물어 아예 감각을 봉했다.
정확히 한 달이 지났을 때까지도 그는 감각에만 몰두했다.
그러나, 어둠을 볼 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