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360
제359화
강설이 미궁의 어둠을 꿰뚫어 보는 눈을 완성하자, 신현은 수고했다는 말만 던지고 별채를 떠났다.
강설은 별채로 되돌아와 오랜만에 팔다리를 쭉 뻗으며 누웠다.
급격하게 피로가 몰려왔다.
쏴아아아아아…
곧, 비가 내렸다.
미궁에서 눈을 뜨는 건 물속에서 눈을 뜨는 것보다 더 많은 불편함을 몰고 왔다.
예를 들어, 지금 느끼고 있는 눈알이 빠질 것 같은 통증을.
‘좋은 징조지.’
이것이 단순한 통증이었다면 짜증을 유발하는 요소 중 하나였겠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강설은 짐작할 수 있었다.
‘선지안의 진화가 임박했다는 거야.’
이 성장하는 눈은 아마 필요한 양분을 공급해주면 알아서 더 나은 모습으로 변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들어 기껏 얻은 선지안이 무능력한 모습을 종종 보여 맥이 빠지던 찰나, 적당한 시기에 기회를 잡은 것이다.
강설은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에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꼈다.
매일 치열하게 수행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에게 찾아오는 위기는 없었다. 험상궂게 생긴 도마뱀이 쫓아오지도 않고, 부족의 명운을 건 일전도 예정되어 있지 않았다.
강설은 지금, 그냥 강설이었다.
늘 절망의 구렁텅이에 몸을 던지면서 성장했었다. 빠르고 효율도 좋았기 때문도 있지만, 진득하게 뭔가에 몰두하는 걸 자신 없어 했기 때문에.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쪽도 꽤 나쁘지 않았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아직 갈 길이 먼 것은 맞았다.
‘지금은 볼 수 있을 뿐이니까. 아직 멀었지.’
이곳엔 그림자와 관련된 수행을 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고작 미궁의 어둠을 보게 되었다고 해서 자만해서는 안 되었다.
“흐흠….”
문밖에서 기척이 들렸다.
신현은 기척 없이 다니는 남자였으니 일부러 낸 기척이 분명했다.
“들어오시죠.”
“그럴… 아니, 네가 나오는 게 낫겠구나.”
강설은 신현이 무슨 일로 찾아온 건지 궁금하여 별채 밖으로 나섰다.
“윽….”
“히히히… 왜 그러느냐?”
신현은 별채 마당 한쪽에 밤짐승을 쌓아두었다. 모두 사체가 분명했고 그 수는 족히 열은 넘었다.
“이게 다….”
“근방에서 사냥한 밤짐승의 사체. 죄다 잔챙이들이고 영혼들은 이미 소멸한 상태다.”
한마디로 빈 껍데기라는 것.
‘그럼 그걸 왜 나한테 가져온 거지?’
강설의 의문을 눈치챘는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신현.
“이제부터 네가 해야 할 일은, 밤짐승의 허물. 즉 그림자 껍질을 처리하는 것이다.”
“…예에?”
– 에?
– 잘 못 들었습니다?
– 잘슴다?
“뭘 놀라고 있어? 쓸모없는 일일 것 같으냐?”
“아니, 이유가 궁금해서입니다.”
“크흠… 이곳의 망령들은 목을 베거나 내장을 끄집어낸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둘 다 쓸모없는 것들이니까. 말하자면 이 녀석들은 버섯과 같은 거야. 영혼에게 기생하는 그림자지.”
“음….”
“영혼이 사라지면 이것들은 분변처럼 흐물흐물해져서 사라진다.”
“…사라진다고요?”
“그래, 다시 미궁에 흡수되는 거야. 그리고 다시 다른 영혼에 들러붙는다. 즉, 단순히 놈들을 베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영원한 싸움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대강 감이 왔다.
신립과 신현은 미궁에 오래 머물며 미궁이 어떤 방식으로 생태계를 구축하는지 알게 된 것 같았다.
“다행히 방법은 있다. 안에 있는 영혼의 찌꺼기를 긁어낸 후에 불에 태우면 대부분 그대로 사라지지. 안 그러면 항상 녀석들의 승리다. 어둠은 결국 미궁으로 되돌아갈 테니까. 그 영광스러운 일을 이제부터 네게 맡기겠다. 자, 설명은 여기까지다. 할 말은?”
– 요약) 나는 이 일이 귀찮으니 자네가 대신 해줬으면 하네. 영광스러운 진화에 동참하라.
– 세상을 위해 필요한 일일세. 물론 그 일은 자네 것이고.
– 꼬운가? 꼬우면 어쩔 텐가?
– 미궁도 짬순이군요…
– 점점 확신 중. 이곳에서 탈출해야 해….
“없습니다.”
“…….”
강설이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사체 앞으로 갔다.
신현은 잠시 강설을 바라보다가 자리를 떴다.
아마도 이것이 강설이 경험해야 하는 두 번째 관문인 것 같았다.
물론, 그 수업 내용이 딱히 반갑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신립과 신현은 전설적인 검호니까. 검술을 배워도 나쁘진 않겠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자면 검술을 10년쯤 잡고 몰두하면… 잘하면 신립이나 신현 보다 검을 잘 다루게 될지도 몰랐다.
다만, 그게 적절한가 따지고 들면 전혀 아니라 대답할 것이다.
‘이곳엔 그림자를 위해 왔으니까.’
괜히 그림자와 검술의 애매한 경계 선상에 위치한 스승을 만나 이런 쓸데없는 고민을 하게 된 걸지도.
애초에 소환사라고 해서 무기술의 페널티가 있는 건 아니니까.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있기는 했다.
무거운 병기를 소환사가 들면 전체 능력치를 깎아 먹고 그건 무거운 갑옷 또한 마찬가지다.
무협지에 나오는 무림도 아니고 천 쪼가리만 입고 마물들을 상대하기엔 판데아가 그리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물론, 강설이 입고 있는 의복은 그런 개념을 뭉갤 정도로 굳건한 방어력을 자랑했지만, 아무튼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검술은 얻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 정도다. 우선, 이 지긋지긋한 그림자를 벗어버리는 거다.’
근데, 그림자의 힘을 진일보하기 위한 방법으로도 이 사체 처리는 조금 납득이 가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싸워보는 것도 아니고 시체를 헤집는 작업을 하게 될 줄이야.
‘뭐, 그냥 시키지는 않았을 테니….’
제자는 스승의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법.
그래도 일단은 시키는 대로 할 생각이었다.
스윽…
이 녀석들은 오늘 사냥한 녀석들이다.
숨은 끊어졌지만, 그림자는 흩어지지 않았다. 딱히 영혼이 보이지도 않았고.
‘찌꺼기가 남아있나 보네.’
그런데 그 찌꺼기라는 것을 어떻게 제거해야 하는지는 가르쳐주지 않은 신현.
‘뭐… 이렇게 하면 되겠지.’
비탄을 단검의 형태로 변환해 밤짐승의 명치께에 박아넣었다.
빠직-!
‘그래, 이런 껍질이더라고.’
밤까마귀의 그림자가 피부라면, 밤짐승의 그림자는 껍질이었다.
단단한 갑각.
강설은 비탄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쭉 그었다.
쯔즈즈즈즈즉-!
기분이 어쩐지 이상해지는 소리와 함께 개복.
– 밥 경찰청장님 입장하십니다.
– 밥 검찰총장님까지 함께하십니다.
– 오우쒯;; 밥 한그릇 싹싹 비벼서 먹으면 크… 이게 지옥이지!
강설이 사체의 양 가슴을 열어젖혔다.
쩌적…
마치 공갈빵처럼 속이 텅 비어있는 껍질.
‘영혼의 찌꺼기는 어디에 있는 거지?’
두 눈으로 샅샅이 훑으며 확인하던 중, 뭔가가 눈에 들어왔다.
살점처럼 보이는 뭔가에 연결된 검은 실타래. 그곳에서 희미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영혼의 빛이 분명했다.
‘찾았다.’
살점을 긁어내 살피는 강설.
‘이런 식으로 조종하는 거군.’
실타래가 살점을 파고들어 있었다.
살점은 실타래에서 주입된 뭔가의 영향에 따라 검게 물들었다.
“수법이 악랄하네.”
영혼의 찌꺼기는 무슨 냄새가 날까.
또 질감은 어떨까.
강설은 그것을 코에도 가져가 보고 바로 눈앞으로 가져가 자세히 관찰해보기도 했다.
– 신현 : 이 새끼 뭐 하는 거지?
– 쓰레기를 태우라고 했는데, 그냥 같이 불타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하다.
– 전국인정협회에서 나왔습니다. 이분께서는 굉장한 변태입니다.
“이런 식으로 영혼을 구속해 양분을 착취하는 거였어.”
어쨌든 구속력을 가진다는 어둠, 어쩌면 이 칠흑의 미궁 전역에 퍼져있는 어둠 자체가 적일지도.
‘자… 그럼….’
이제 찌꺼기를 전부 걷어냈으니 문제가 될 건 없었다. 곧 그림자가 무너지겠지.
주르륵…
흘러내리는 그림자.
강설은 준비해둔 불로 그것을 태웠다. 불이 잘 붙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의외로 잘 탔다.
신기한 것은, 이렇듯 불이 존재함에도 미궁의 칠흑에는 속수무책이라는 점이다.
‘눈을 만들지 않았다면 말이지.’
아무튼.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친지 보름쯤 되었을까.
주르륵…
평상시처럼 녀석들을 관찰하고 불태우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는 강설에게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
횃불을 형체가 무너진 그림자에게 가져가려 하자, 그림자가 마치 생명이라도 있는 것처럼 꿈틀꿈틀 움직여 강설 쪽으로 대피했다.
‘어라? 이 녀석….’
심지어 반대쪽 팔을 타고 오르기까지.
그림자가 영혼이 아닌 강설에게 엉겨 붙어온다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
‘이 녀석들, 지능이 존재하는 건가? 아니면 지능이 아예 없어서 가능한 일인가?’
그림자는 누군가의 의지로 영혼을 빼앗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바다에 가득 차 있는 물과 같은 원리인 것 같았다.
단지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
‘의지가 없다는 거네. 목적도 없고. 그냥… 음?’
강설이 이 그림자의 성질을 약간이나마 알게 된 후, 잠시 생각했다.
‘의지가 없다… 의지가 없다… 그러면 의지를 심어주면? 예를 들어….’
휘오오오오…
강설이 팔에 기어 올라온 그림자를 빨아들인다는 심정으로 손바닥을 기울였다.
실제로 힘을 운용하기도 했고.
그러자.
휘리리이이익익-!
그림자가 장심으로 빨려 들어왔다.
“…어라?”
이제는 볼 수 있게 된 메시지까지 함께였다.
[지속 : 끈적한 어둠에 그림자가 호응합니다.]
[그림자를 흡수합니다.]
[그림자 공간이 영구히 30만큼 늘어납니다.]
[어둠의 은총이 내립니다.]
[그림자 관련 능력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깨달음! 새로운 능력을 깨우칩니다.]
[지속 : 그림자 친화를 깨우칩니다.]
……
【왜 그래?】
비탄이 다가와 강설의 어깨 위에 올랐다. 그리고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응?”
강설의 동공이 흔들리고 있었다.
* * *
“녀석이 꾀부리지 않고 잘하고 있더냐?”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열중이던데, 의욕 없던 처음과는 다르게 뭐든 열심히 하게 된 건가?”
“어찌 됐든 좋은 일이지. 우리도 일을 분담하게 되었으니 근방에 짐승들이 많이 줄었더구나.”
“히히히… 이제 신경 쓰지 않고 베기만 하면 되니까.”
“저 짐승들을 이해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녀석은 아직 놈들과 싸울 전력으로는 부족하기 짝이 없어. 차근차근 밟아가야 해.”
“뭐,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지.”
“그래도 두 달은 족히 허드렛일했는데 군말 없이 따라오다니, 기특하기도 하지.”
밤짐승은 그들이 싸워야 할 대상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현재 강설의 상황 그 자체와 매우 유사했다.
그 때문에 밤짐승의 사체를 처리할 겸, 그들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어째서 강한지 등을 스스로 이해할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이다.
“음….”
강설을 칭찬하는 신립과는 달리, 신현은 뭐가 마음에 걸리는지 턱수염을 매만지고 있었다.
“왜 그러느냐?”
“녀석이 이상한 기질이 있는지, 점점 큰 녀석은 없는지 요구하더라고.”
“음… 확실히 원래의 목적이라면 큰 녀석도 어떻게 어둠에 잠식되어 있는지 확인시켜줘야겠지.”
“그리고… 음… 이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거라.”
신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녀석의 기운이 조금… 이상해졌어.”
“이상해져?”
“무거워졌다고 해야 하나?”
“…밤중에 수행이라도 한 것이냐?”
“별채엔 일부러 정해진 시간 외엔 가지 않으니깐 잘 몰라. 그런데, 확실히 묵직해졌어.”
“신기한 노릇이구나. 직접 별채에 들러볼….”
그때였다.
별채 방향에서 누군가 걸어왔다.
근 5달이 되어가는 동안 별채를 벗어나지 않았던 강설이었다.
그런 강설이 스스로 별채를 벗어나 신립과 신현을 만나러 왔다.
신립과 신현은 반가운 마음보다 걱정이 앞섰다. 보통, 사람이 안 하던 일을 할 땐 이유가 있는 법이다. 대개는 안 좋은 쪽이고.
걸음마다 강설의 기운이 전해져왔다.
신립과 신현은 걸음걸이에서부터 상대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자들.
신립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현아, 네 말이 사실이구나.”
“이상하지?”
어느새 강설이 평상 가까이에 왔다.
“무슨 일이더냐.”
“다름이 아니라, 청이 있습니다.”
“말해 보아라.”
“사체가 아닌, 살아있는 밤짐승을 보고 싶습니다.”
“…음?”
강설은 형제에게 정중하게 청했다.
“이번 사냥에 데려가 주십시오.”
“너는 아직 사냥에 나설 준비가 되지 않았다.”
“사냥에는 나서지 않겠습니다. 단지 그들에게 가까이 가보려 합니다.”
“…어째서냐?”
신립은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곧, 강설이 답을 내놓았다.
“확인해 볼 것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