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364
제363화
듣자마자 무심코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미궁은 망자가 가득한 곳.
살아있는 이는 강설을 포함해 한 손에 꼽는다.
‘산 자들의 세상으로 망자를 운반하라는 건가?’
고약한 부탁이었다.
귀신의 손은 이미 죽어 사라진 것.
그러나 망자가 된 그들은 신유가 자신들과는 다르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강설의 말에 진중한 신립은 물론이고 활기찬 신현까지 멋쩍게 웃을 뿐이었다.
“고맙구나, 참으로.”
‘이미 죽어 귀신이 된 동생에게 자유를 되찾아주고 싶다니….’
별난 형제들이다.
물론, 신유도 그 형제에 포함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무식한 방법으로 찾아내고 깨울 줄이야….’
만일 신립과 신현을 찾지 못했다면 어쩔 생각이었는지.
아니, 애초에 그런 녀석이 아니긴 했다.
오랜만에 신강의 시점으로 떠올린 신유는 고집불통에 하고자 하는 일은 억지로라도 해내고 마는 녀석이었다.
‘이번 경우에는 운이 크게 따랐지만….’
그런 신유라서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수행에 있어 막히는 부분이 있더냐?”
강설이 잠시 과거를 떠올리는 사이 신립이 그에게 수행에 관해 물어봤다.
그는 잠시 대답을 고르다 이렇게 답했다.
“직접 궁리해볼 생각입니다.”
신립과 신현이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생각할 과제만 던져주고 직접 뭔가를 가르친 적이 없긴 했지만, 준비만 되면 언제든 필요한 것들을 전수할 생각이었는데 강설은 그것을 나중으로 미뤘다.
“흐음….”
“호….”
끄덕…
“훌륭한 결정이다. 그럼 당분간 내버려 두도록 하마.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말하거라. 줄 수 있는 한 도움을 주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그런데, 신현이 자리를 파하기 전 남긴 말이 있었다.
“히히히… 일단은 우리야 그렇게 한다만, 신유 녀석이 어떨지….”
신립이 신현을 노려보았다.
“너, 그 아이를 만났느냐?”
“어쩌다가 좀… 미궁에 돌아다니는 인간들에 관해 묻더이다.”
“…뭐라 대답했느냐?”
“그냥 뭐… 적당히 대답했지요.”
“반응은?”
“꽤 덤덤했습니다.”
“흠… 되었다.”
신립은 강설에게 걱정의 말을 남겼다.
“신유, 그 아이에게 외골수 면모가 있어서 널 시험하려 들지도 모른다. 네가 대적할 수 없는 녀석이 나타나면 그 녀석인 줄 알아라. 신유도 네게 해를 입힐 생각은 없을 테니 우리도 나서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나서는 게 그 아이를 자극할 수 있다.”
신유가 찾아올 수 있다.
강설은 꺼림칙한 인상을 받았지만 일단 알겠다고 답했다.
* * *
그날 후로 생활은 다시 예전처럼 돌아갔다.
그러니까, 신립과 신현을 만나기 전처럼 말이다.
낮엔 수행과 휴식을, 밤엔 온전히 사냥을.
사냥 수단은 바뀌었다.
검술에서 소환술로.
콰지이이이익-!
“우선 한 녀석….”
주르륵 흘러내리는 소형 밤짐승.
휘오오오…
[어둠을 그러모읍니다.]
[어둠이 아주 조금 쌓였습니다.]
[지속 : 끈적한 어둠에 그림자가 호응합니다.]
[그림자를 흡수합니다.]
[그림자 공간이 영구히 30만큼 늘어납니다.]
[어둠의 은총이 내립니다.]
[그림자 관련 능력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
매일 밤, 최소 20마리는 사냥하는 강설.
그림자 공간은 터무니없이 늘어났지만, 이는 전부 미궁에서 빠져나가야 소용이 있는 것이었다.
‘그건 그렇고… 이 녀석들 전혀 줄지 않는데?’
밤마다 사냥에 최선을 다하는데도 오히려 밤짐승의 수는 점차 불어났다. 그 성장세가 눈에 띌 정도로.
이렇게 된 원인은 분명 존재했다.
‘아직 사냥할 수 있는 개체가 한정적이라 그래.’
사냥은 사냥꾼이 유리한 위치에서 대상을 쫓는 게 일반적이다. 사냥꾼이 피를 흘린다면 그것은 사냥이 아니라 혈투일 테니.
강설은 소형, 중형, 대형의 밤짐승에 각기 이름을 붙였다.
소형은 토끼, 중형은 이리, 대형은 범.
현재 수준에서 이리 사냥은 다칠 위험이 있었고 범 사냥은 죽을 위험이 있었다.
강설이 현재 하고 있는 사냥의 종류는 토끼 사냥에 가까웠다.
‘아직 중형급들과 부딪히는 건 조심해야 해.’
자신의 밤짐승이 무너지면 그다음은 바로 자신이었다.
사냥이 보름쯤 진행됐을 때, 강설이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이대로면 매일 같은 날이 반복될 뿐이다.’
밤엔 개체 수를 줄이기 위해 사냥에 매달리고 낮엔 휴식과 수련을 겸해야 했다.
그 얼마 안 되는 수련 시간 자체도 집중력이 틀어지면 큰 의미가 없는 나날이 많았고.
실전에서 배운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그 결과물을 추스를 시간이 현저하게 부족했다.
사냥을 통해 보유한 어둠은 점차 불어나고 그림자 공간 또한 미궁에 들어오기 전과 비교했을 때 하늘과 땅 차이가 되었지만, 강설은 어느 순간 깨닫고 말았다.
이렇게 어둠을 흡수해 밤짐승의 개체 수와 크기가 불어나더라도 그것이 진정한 성장은 아닐 것이라고.
분명 무언가 다른 게 필요하다고.
사실, 밤짐승이 아무리 많아지더라도 중형 개체를 이기지 못하면 소용없었고 현재는 그것을 모두 통제할 수도 없었다.
‘사냥 효율을 높이려면….’
간단했다.
해결 방법은 두 가지.
사냥에 걸림돌이 되는 중형 개체를 배제하고 소형 개체만 상대할 방법을 찾든가 혹은 중형 개체 이상으로 강해진 밤짐승을 다수 소환할 수 있다든가.
‘실전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거지.’
이 모든 건, 사냥을 통해 깨우치기 어려웠다.
계란으로 바위를 부수는 법은, 계란으로 여러 번 바위를 내려치는 것보다 어떻게든 계란을 바위만큼 단단하게 만드는 방법을 궁리하는 편이 더 빠를 거니까.
물론 지금으로선 둘 다 막막했지만.
‘지금은 실전보단 통찰이다.’
효율 개선의 경지를 넘어서, 새로운 영역까지 도달해야 했다.
실전에서 얻는 숙련도 상승을 비롯한 각종 이점은 부가적인 효과로 생각해야 했다.
‘미궁에서 살아나가려면… 궁리해야 해.’
궁리.
지금 가진 무기를 전부 활용해야 했다.
강설은 그렇게 결심한 후, 신립과 신현에게 선언했다. 낮의 수련 시간을 늘리는 대신 밤의 사냥 시간을 줄이겠다고.
신립과 신현은 미궁의 밤짐승 대량 증식을 우려했지만, 자신들이 있으니 괜찮을 것 같다고 답해주었다.
그들의 말대로 정말로 모든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더라도 두 형제가 있으니 최악의 상황은 모면할 것이다.
‘비빌 언덕이 있다는 게 든든하긴 하네.’
실패를 겪더라도 뒤가 보장된 실패다.
그러니 원 없이 실패하기 위해 도전해야 했다.
당면한 문제를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1. 현재 실력으로는, 중형 이상은 하루에 한 개체를 사냥하는 것도 버겁다. 부상 위험도 따랐고.
2. 중형 개체의 극복이 가능하더라도 신씨 형제가 날마다 처리하던 만큼의 수를 줄이기는 무리였다.
3. 아직 밤짐승의 힘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전부 밤짐승을 다루는 내가 강해지면 해결될 일이네.’
그러니 그것에 매달린다.
그러나…
‘어떻게?’
어떤 것을 강화하더라도 반드시 소재는 필요했다.
기합과 정성만으로 가능한 건 세상천지에 없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게 가능하지 않은 이상.
즉, 밤짐승이라는 완성품에 결합할 부품이 필요하다는 거다.
가장 빠르고 확실한 건, 강설이 지닌 것들을 가르쳐주거나 넘기는 것이다.
‘내가… 뭘 가지고 있지?’
강설은 손가락까지 꼽으며 가진 것들을 열거했다.
시초의 피.
고행의 미궁에서 얻은 이 힘은 아마 지금 그림자가 봉인된 강설이 가진 가장 큰 잠재력일 것이다.
강력한 소환수를 다뤄본 경험.
밤짐승도 넓게 보면 그의 소환수니 비슷한 과정을 거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밖에 피조물을 창조해 본 경험과 정신의 힘, 미궁에 와서 깨우친 공간인지.
거기에 되찾은 말들의 유지까지.
물론 지금까지 얻은 유지는 전투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으니 신경 쓸 필요 없겠지만.
아무튼….
“우선….”
시초의 피부터.
더는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
사정이 환경을 좌지우지하지 않는다.
답이 없는 상황에서도 고개를 휘저으며 마음을 먹는다.
언젠가 미궁을 뚫고 나갈 것이며, 그때는 분명히 강해져 있을 것이다.
그 명확한 미래를 그리며 연마하면 될 뿐.
강설이 길을 걷는 자 중에 가장 빠르고 체력이 강한 자는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승천까지 도달하는 10개의 길을 찾아낸 유일무이한 인간.
올바른 길을 찾는 부분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자… 너를 어쩐다….”
밤짐승의 몸에 피를 흘려보내는 강설.
연구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그렇게 또다시 보름이 지났을 때, 강설이 머리를 긁적였다.
“음 이게… 참.”
그는 이전엔 시초의 피를 곁다리로 생각해왔었다.
이것에 대해 깊이 통찰해본 적이 없음을 반성했다.
시초의 피가 가진 가능성에 기대지 않아도 되었던 과거.
‘그야 그땐 가진 게 많았으니까… 음… 피의 문으로 들어갔어야 했나?’
확실히 그랬다면 지금보다는 더 빠르게 강해졌을 게 분명했다.
‘핀 모드리아 때는….’
신관일 때는 능력 자체가 관련이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강해졌다.
하지만 소환사의 타이틀을 걸고 시초의 피를 연마하니, 영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혈액.
강설은 명확하게 목표를 그렸다.
밤짐승에 자신처럼 무자비한 회복력을 부여하고자 했다.
시초의 피가 그 열쇠라고 생각했는데, 단순히 혈액을 주입한다고 해서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응혈(凝血) 현상이 발생했으니 부작용은 생겼다고 해야 할까.
피가 몸속에서 고이는 것이다.
‘피가 흘러야 하는데… 흐른다… 음… 흐르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밤짐승의 몸에 시초의 피가 흐르게 할 생각.
하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을 퍼붓는다고 물이 흐르진 않는다. 그 자리에 고일 뿐이다.
적어도 그 물이 나아갈 길이 없다면.
‘…가만, 길?’
강설은 눈을 감고 자신의 몸속에서 시초의 피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확인했다. 심장이라는 엔진을 이용해 혈관이라는 만들어진 길을 따라 시초의 피가 이동했다.
그는 시작부터 완성된 기관이 있었던 것이고 시초의 피는 그 기관을 훌륭하게 이용했다.
‘그냥 따라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짜악-!
휘리리릭-!
[밤짐승을 소환합니다.]
[밤짐승의 전투력은 소환에 사용된 어둠의 양과 소환사의 능력치에 비례합니다.]
그와 똑같은 크기의 밤짐승.
강설은 가부좌를 틀고 밤짐승과 양손을 맞대었다.
겉으로 보기엔 똑같은 사람 둘이 마주 보고 앉아있는 듯했다. 마치 거울처럼.
물론, 겉은 그럴지라도 속은 아예 달랐다.
강설은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로 가득했지만 밤짐승은 그저 어둠만이 가득했다.
강설은 사냥이 끝나면 같은 자리에 돌아와 그 자세로 앉았다. 심지어 가끔 그대로 잠들어버릴 때도 있었다.
신립과 신현은 해괴한 짓거리를 한다며 가끔 농담을 던지긴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를 응원했다.
그렇게 또 한 달.
“하아… 다 그렸다.”
그림을 배울 때, 흔히들 대고 그리는 방법을 자주 사용한다. 완성된 작품을 따라 그리며 비슷하게라도 그것을 모방해내는 것.
눈앞에 있는 밤짐승이 강설이 지금껏 시간과 노력을 퍼부어가며 완성하고자 했던 모습이었다.
심장의 역할을 하는 건 애써 저축한 어둠을 일부 응축해 만들어낸 어둠핵.
[어둠핵에 기반한 기관이 밤짐승과 융합합니다.]
[이제 밤짐승의 신체에 시초의 피가 흐릅니다.]
[시초의 피의 회복력은 시조의 경지에 비례합니다.]
……
강설은 재빨리 밤짐승의 가슴팍에 귀를 가져다 댔다.
본래 심장이 있어야 할 위치보다 살짝 틀어져 거의 신체의 정중앙에 위치한 어둠핵. 다행인 점은 전투 중에 어둠핵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옮길 수 있다는 것이다.
두근… 두근…
– 이 안에 너 있다.
– 어맛, 심쿵…
어둠핵이 정상 작동했다.
이제는 소환 시에 이와 같은 기관을 초고속으로 함께 소환할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럼….”
강설은 밤이 되길 기다렸다.
거의 두 달 동안 매달린 일의 성과를 확인하기 위해.
* * *
콰지지직-!
크르르르르륵…
중형 밤짐승.
그러니까, 이리가 강설이 만들어낸 밤짐승을 상대하고 있었다.
팔을 휘두를 때마다 초목이 우수수 부러져 날아갔다.
후우우우웅-!
콰아아아아아아앙!
저 주먹에 한 번이라도 걸리면 강설의 밤짐승은 언제나처럼 으깨질 것이다.
그 때문에 늘 방어적으로 싸움을 벌여온 것이고.
‘하지만….’
후우우우우우웅-!
이제 시험해볼 때였다.
지난 2달간의 성과를.
콰지이이이이익-!
이리의 주먹이 밤짐승의 복부를 으깼다.
주먹은 관통해서 빠져나와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지금!’
휘리리리릭-!
밤짐승의 관통당한 복부가 엄청난 속도로 복구되었다.
뻗은 팔을 회수하기도 전에, 이리는 팔을 붙잡혔다.
“됐어!”
짜악-!
또 한 마리의 밤짐승을 소환해내는 강설.
크르르르륵…
푸가아아악-!
새롭게 나타난 밤짐승은 팔을 봉쇄당해 움직임이 제한된 이리의 머리를 우악스럽게 으깨버렸다.
이제 중형 밤짐승을 2마리나 운용할 만큼 어둠을 축적한 강설이었다.
축 늘어지는 이리.
강설의 밤짐승이 입을 벌리고 그것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휘오오오…
[밤짐승이 어둠을 그러모읍니다.]
[어둠이 아주 조금 쌓였습니다.]
[지속 : 끈적한 어둠에 그림자가 호응합니다.]
[그림자를 흡수합니다.]
[그림자 공간이 영구히 50만큼 늘어납니다.]
[어둠의 은총이 내립니다.]
[그림자 관련 능력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
매번 번거롭게 강설이 직접 회수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으나 이제 그것도 개선이 되었다.
– 자, 다음 버그는 무엇인가요!
– 천재 프로그래머 ㄷㄷ
강설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무려 2달간의 노고가 보상받는 듯한 심정이었다.
쿵… 쿵…
그런데 그가 그런 보람을 만끽하는 것을 누군가 싫어하는 듯, 사건은 갑자기 벌어졌다.
‘…뭐지?’
멀찍이서 큰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내가 그곳에 도달할 테니 기다리고 있으라는 듯.
멀리서 들려온 발소리는 여느 중형 개체와 같았다. 즉, 이리다.
‘이리라면 이쪽이 우세….’
전투를 준비하기 위해 강설이 상대가 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로 그때.
뭔가가 번쩍! 하는 느낌을 받았다.
‘…뭐?’
파아아앗-!
강설이 소환한 밤짐승의 머리가 두둥실 떠올랐다.
2마리 모두 다.
‘이럴 수가….’
상대는 밤짐승이 분명했으나, 이 근방에서 본 적 없는 개체였다. 이토록 압도적인 강함이라니.
이 정도라면, 신립과 신현이 곧장 등장할 차례였다.
하나…
신씨 형제는 나타나지 않았다.
심지어 그들은 강설의 곁에 있다는 기척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 설마….’
– 신유, 그 아이에게 외골수 면모가 있어서 널 시험하려 들지도 모른다. 네가 대적할 수 없는 녀석이 나타나면 그 녀석인 줄 알아라. 신유도 네게 해를 입힐 생각은 없을 테니 우리도 나서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나서는 게 그 아이를 자극할 수 있다.
신립이 2달 전 했던 말.
강설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 말을 떠올리고 밤짐승의 머리를 날려버린 존재를 보았다.
이리가 분명했다.
그러나 한쪽 팔이 조금 기괴했다.
다른 부분은 마치 지점토로 빚은 듯 조악하고 뭉툭했지만, 오른손은 사람의 손처럼 섬세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상대가 누군지 알아챈 강설이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너구나. 신유가.”
삭…
강설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돌아서는 이리.
오른손엔 조금 큰 나뭇가지를 들고 바닥에 뭔가를 끄적였다.
사삭…
사삭…
놈은 글씨를 쓰고 있었다.
오른팔이 나뭇가지를 쥐고 꼼질꼼질 썼다.
– 날 알아?
“네 형들과 좀 알아서.”
사삭…
– 그랬구나. 나도 널 알아.
사삭…
– 그런데 너 너무 약해.
빠드득…
강설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갑자기 나타나서 조롱이라니.
오랜만에 재회인데도, 신유는 여전했다.
시청자들이 신유가 써 내려간 문장에 낄낄댔다.
– 하하하! 삼촌은 우리 조카랑 맞짱 뜨면 다 이길 수 있어! 조카는 참 약한걸? 리치가 짧잖아!
– 깜찍한 맛은 있었어! 하지만 내 보디블로엔 속수무책이지! 다음부턴 배에 잡지를 넣으렴.
– 2달? 2초도 못 버텼는데? 풉키풉키…
강설은 그래도 좋게 생각하려 했다.
이것은 천재 검호 신유의 시험이었다.
밤짐승의 회복력이 그것을 견뎌낼 수는 없었다.
‘덕분에 보강해야 하는 부분도 알았고….’
이리만을 상대했다면, 알아채는 게 늦었을 테니 뭐 좋은 경험이었다 칠 수 있었다.
사삭…
– 넌 미궁에서 나가지 못할 거야.
이렇게 적지 않았다면 말이다.
강설이 싸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신유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악담이, 강설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내기할래?”
사삭…
– 내기?
“그래, 내기. 내가 네 말대로 미궁에 눌러앉는지 아니면 미궁에서 나가는지.”
사삭…
– 좋아, 네가 지면 내 말동무가 되어줘. 난 뭘 걸면 될까?
사삭…
강설이 웃는 낯으로 똑같이 바닥에 글자를 적고 자리를 떴다.
휘리릭…
순식간에 머리를 복원한 밤짐승이 자리를 뜨는 강설의 몸으로 빨려 들어왔다.
신유가 깃든 이리는 잠시 서서 강설이 적은 글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강설이 내기에서 이길 경우, 신유에게서 받아 가고자 하는 것.
– 너.
간결한 글자가 흙바닥에 쓰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