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367
제366화
첫 번째 관문의 조건이 변경되었다.
분명, 밤짐승들을 처치하고 쌓인 어둠이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수문장을 쓰러트리는 조건으로 변경된 것이다.
‘범보다도 훨씬 위험한 녀석이겠네….’
대형 개체와도 아직 충돌한 적이 없는데 그보다 거대한 개체라면….
‘당장은 무리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신강이 정해진 문으로 나가지 않은 게 화근이 된 것 같다. 다섯 갈래의 길이 합쳐지지 않나, 그곳에 군림하던 마수들이 싸워 관문을 난장판으로 만들지 않나.
‘뭐,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이 바뀌진 않으니까.’
밤짐승을 사냥하고, 능력을 보강한 상태로 두 번째 관문으로 향한다.
‘애초에 미궁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장소가 첫 번째 관문이니까.’
두 번째 관문에 문제가 생겼다고 한들 앞선 사실은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강설이 신현의 말에 동요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것이 당장 문제를 만든 것은 아니었기에 마음을 다잡고 밤사냥을 이어갔다.
그렇게 정확히 3일쯤 지났을 때.
쿵…
쿵…
그 녀석이 나타났다.
‘이 기시감….’
일부러 존재감을 드러내는 듯, 거친 호흡으로 접근하는 녀석.
‘…대응할 수 있으면 대응해보라는 거냐?’
신유다.
파아아아아앙-!
오랜만에 나타나, 또다시 다짜고짜 치러지는 시험.
녀석은 전과 같이, 단순히 맹렬하게 돌진해왔을 뿐이지만 압박감이 상당했다.
‘이번에도 당할 줄 알고?’
짜아아악-!
어둠살이에게 신호를 줘 다가올 공격에 대비하게 했다.
휘이이이이이이익-!
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양팔을 구부려 목과 머리를 방어하는 어둠살이.
이곳에서는 흙먼지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어둠살이가 한 번에 쓰러지지는 않은 듯했다.
공방이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아아아앙-!
따아아아아앙-!
따아앙!
‘버텼어!’
공방이라고 하기엔 민망할 지경의 싸움이기는 했다. 신유가 움직이는 이리가 어둠살이를 계속해서 몰아붙이고 있고 어둠살이는 방어에 급급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쉽게는 안 뚫리지… 이 녀석아.”
피와 땀의 결실이다.
이제는 절기의 수준까지 올라왔으니 그 방어력을 얕잡아 볼 수도 없다.
휘릭…
방어가 생각보다 굳건하다 느꼈는지 중심을 무너트리기 위해 어둠살이에게 다리를 걸어오는 신유.
강설이 히죽 웃었다.
어둠살이는 학습했다.
단단함과 끈질긴 활력이 그의 힘이라는 것을.
또 그것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을.
다리가 들어옴과 동시에 품으로 파고드는 신유.
넘어트린 후에 방어가 약한 부위를 공격할 심산인 것 같았다.
언뜻, 기회처럼 보였다.
‘…참아. 아직 아니야.’
어둠살이가 강설의 신호에 따라 펄쩍 물러나 나무를 등지고 몸을 보호했다.
거인들의 격투기 경기를 관람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강설은 손에서 흐르는 땀을 자각하지도 못한 채 싸움에 집중했다.
이것 자체도 굉장히 귀중한 데이터였다.
어둠살이는 학습 능력이 뛰어났으니 강자와의 싸움 자체가 녀석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신유를 힘들게 쌓은 모래성을 짓뭉개러 온 악동처럼 여겼지만, 정작 강설에게는 그를 도우러 온 손님처럼 느껴졌다.
취이익-!
파아아아앙-!
취이이익…
파아아아아아앙-!
‘스타일을 바꾼 건가? 소리가 달라졌어.’
거북이처럼 단단하게 몸을 말은 어둠살이의 방어를 흔드는 신유.
신유가 얼마나 강하든, 그가 깃든 존재는 평범한 이리였다.
어둠살이처럼 시초의 피로 몸을 수복할 수도 없었고 시초의 뼈로 몸을 보호하거나 시초의 가죽으로 몸을 단단하게 만들 수도 없었다.
‘…압도적이야.’
그런데도 신유는 시종일관 어둠살이를 압도했다. 아니, 손조차 대지 못하게 맹공했다.
파아아아아앙-!
파아아아아아아앙-!
그래도…
‘버텼어!’
기회는 온다.
강설과 어둠살이는 때를 기다렸다.
반드시 한 번의 기회 정도는 올 것이기에.
이윽고.
아래에서부터 퍼 올려 위로 치솟는 주먹. 제대로 맞으면 방어가 뚫려 그대로 함락될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빈틈이 많은 동작.
‘지금이다! 파고들어!’
파아앗-!
어둠살이가 신호와 동시에 신유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팍-!
‘잡았….’
양팔로 신유를 붙드는 것처럼 보였다. 분명히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파아아앙-!
양발을 공중에 띄운 채로 차올려 어둠살이에게서 거리를 벌리는 신유.
‘칫….’
공격은 무위로 돌아갔다.
후우… 후우…
밤짐승도 호흡을 한다.
폐가 없는 대신, 주위의 어둠을 빨아들여 형상을 유지한다.
신유와 어둠살이는 한차례 격전을 벌였고 어둠살이는 신유가 엄청나게 퍼부어대는 공격을 받았음에도….
‘…해냈다. 내가 해냈어!’
여전히 굳건히 서 있었다.
군데군데 찌그러져 함몰된 부위, 살점이 떨어져 나간 부위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서 있었다.
그것이 강설에게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몰고 왔다. 어둠살이의 성장은 곧 강설의 성장이나 마찬가지였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신유를 상대로 아직 서 있다니….’
상대는 몸을 잃었지만 무려 전대 검성의 손이었다. 절정을 꽃피운 검객의 손속에도 쓰러지지 않은 어둠살이가 대견했다.
스윽…
물러난 신유가 어둠살이에게서 시선을 돌려 강설을 쳐다보았다.
밤짐승도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을, 강설은 이때 처음 알았다.
‘…웃어?’
비웃음은 아닌 듯했다.
그런 느낌이었다.
꼭… 즐거워하는 듯한 웃음.
뿌드드드득…
“무슨….”
신유가 그의 왼팔을 어깨 밑으로 뜯어냈다.
휘오오오오…
뜯겨나간 왼팔은 그저 어둠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내 모습이 바뀌었다.
‘…검?’
팔은 검이 되었다.
조형이 어설펐는지 상당히 뭉툭했고 군데군데 잔여물이 남아있긴 했지만, 어찌 됐든 검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스으으으으으…
이곳을 감싸던 공기가 뒤바뀌었다.
기이한 느낌이었다.
어떤 수를 쓰더라도 저 상태의 신유를 위태롭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짜아아악-!
‘시초의 뼈를….’
신유의 검이 움직였다.
아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검을 휘두른 후였다.
푸화아아아아악-!
어둠살이의 몸이 사선으로 두 동강이 났다.
시초의 가죽도, 이제 막 생성되기 시작한 시초의 뼈도 그것을 막지는 못했다.
마치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사실처럼. 그렇게 결과가 나타났다.
으지직…
신유가 검을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보냈다.
강설은 두 동강 나 바닥에서 허우적거리는 어둠살이를 눈에 담았다.
햇빛에 녹은 눈처럼, 허망한 느낌이었다.
사삭…
– 좌절했어?
신유가 남긴 문장은 그를 가장 잘 표현한 글이었다.
심성이 착한 아이.
그러나 이 아이가 가진 터무니없는 무리(武理)는 늘 주변에 좌절감을 심어주었다.
그와 같은 길을 걷는 검사들에게도, 심지어 같은 형제인 신씨들에게도.
신유는 일단 일을 저지르고 난 후에 대처를 걱정하는 어린아이처럼 머뭇거렸다.
강설이 이 일로 인해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래서 형제들의 원망을 살지도 모른다고.
그러나, 강설의 반응은 신유의 예상과는 반대였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그는 말했다.
“앞으로 나아갔다. 괜찮아.”
사삭…
– 무슨 뜻이야?
“검을 휘두르게 했잖아.”
– 그게 전부야?
“그래, 지금은 그게 전부야. 하나씩 해나가면 돼.”
신유는 강설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미 신유는 안중에도 없는 듯, 어둠살이의 꿈틀대는 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긴 그.
어쩐지 아직 살아있었다면, 보자마자 소름이 돋았을 정도로 차분한 눈이었다. 신유는 그 눈을 마주하고 누군가를 잠시 떠올렸다.
너무도 멀어져, 다시는 닿을 수 없어진 그의 셋째 형을.
마치 심해와도 같은 그의 눈을 잠시 지켜보던 신유는 그대로 몸을 돌려 멀어지려 했다.
【이녀서어억!】
강설의 어깨 위에 있던 비탄이 소리쳤다.
【지금은 이렇게 물러나지만… 다음번엔 가만두지 않을 테다! 아, 내 소개를 하자면 난 비탄이라고 해!】
악당인지 거래처 직원인지 짐작하기 어려운 말을 쏟아내는 비탄을 뒤로한 채 신유가 떠났다.
“비탄, 봤어?”
강설이 잠시 후, 신유가 떠난 뒤에 건넨 말이었다.
【응? 뭘?】
“참격 말이야.”
【아! 번쩍?】
“응.”
【번쩍하는 건 봤어!】
“너도 못 봤구나.”
털썩…
강설은 온 집중을 싸움에 쏟았다가 긴장이 풀리자 바닥에 주저앉았다.
“참격이 보이지도 않았어. 어떻게 해야 하지?”
실마리가 없었다.
참격의 가공할 파괴력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빠르기는 또 어찌나 빠른지.
신현의 쾌검이 가진 장점과 신립의 중검이 가진 장점을 취합하면 저런 검이 탄생할까.
‘더 단단하게? 더 빠르게?’
문제점이 그런 식으로 개선이 될까?
‘…아니, 이 방법은 슬슬 한계야. 난… 힘세고 맷집 좋은 거인을 만들었을 뿐이다.’
그것이 강설이 내린 현시점의 상황이었다.
단단하고 빠르지만, 그것 말고는 그다지 특출난 구석이 없는 인형. 그것이 어둠살이였다.
그리고 그것은 곧 자신이었고.
‘만일 쟈마드였다면….’
쟈마드가 신유에게 패했을까?
아니, 카렌이었다면.
카루나였다면.
우르였다면.
그들이 패배하는 모습이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신유는 분명 범접할 수 없는 강함을 가지고 있었지만, 강설의 소환수들 또한 역전의 용사들이었다.
아마도 좋은 승부를 펼치지 않을까.
또 원점이다.
그들과 신유에게 어떻게 하면 닿을 수 있을까.
‘어떡하면 좋지?’
강설이 범인과 다른 점은, 실패에서 좌절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좌절에서 돌파구를 찾는 점이다.
‘쓰러트리는 건 무리야. 녀석을 꼭 쓰러트려야 할 필요도 없고.’
애초에 신유와 한 내기의 조건 또한 그를 이기는 것이 아니었다. 미궁을 빠져나갈 수 있는지의 여부였지.
그래도, 강설 스스로가 납득하기 위해 방법을 궁리했다.
신유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다.
신유와의 격차는 파멸적.
녀석을 쓰러트리는 건 녀석이 자연사를 바라는 게 나을 지경.
“하아….”
강설은 한숨을 쉬며 바닥에서 허우적거리는 어둠살이의 몸을 되돌리려 했다.
“수고했다 어둠살… 응?’
녀석이 발버둥 치는 모습이 뭔가 이상했다.
후웅…
후웅…
뭔가, 특정 구역에서 버그가 생긴 것처럼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묘하게 규칙적인 움직임.
“…….”
강설은 잠시 생각하다가 회수를 포기하고 어둠살이의 하체를 움직여 쓰러진 상체와 연결했다.
쿠직…
그러자, 바닥을 짚고 일어나는 어둠살이.
강설은 어둠살이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녀석이 이런 이상을 보이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후웅…
후우웅…
고장이라도 난 걸까.
녀석은 팔을 자꾸만 사선으로 내리긋는 동작을 취했다.
공격이라 하기엔 지나치게 어설펐고 장난으로 치부하기엔 어딘가 진지했다.
너무 큰 격차에 정신을 놓아버린 건가 싶을 정도.
비탄이 어수룩한 녀석의 동작에 깔깔대며 웃었다.
【하하하! 웃겨! 붕붕거려! 붕붕!】
“…….”
【…비탄이 웃으면 안 되는 거였어? 그럼 안 웃을게. 합….】
“아냐, 그게 아니라….”
강설은 좋은 눈을 가졌음에도 신유의 참격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와 검을 맞대지도 않았고 옆에서 구경했을 뿐이니까.
그의 검은, 기세이기도 했다.
검을 맞대는 이에게만 쏘아 보내는 파멸적인 기세.
그러니 어떠한 평가도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후우웅…
후우우웅…
누군가는 보았다.
신유의 검이 움직이는 그 찰나를.
별이 번뜩이는 듯한 그 움직임에서 흘러나오는 엄청난 기운을.
“설마….”
【왜 그래?】
“…확인해봐야겠어.”
강설은 신유가 행했던 어둠의 변형을 모사했다.
휘오오오오…
밤짐승을 창조했던 때와 비교하면 그리 어렵지 않은 난도. 물론, 처음이기에 검보다는 막대의 형태의 가까울 정도로 조악하기는 했지만.
파아아악-!
휘이이이이…
강설이 어둠을 움켜쥐어 만든 조악하고 크기만 한 검이 어둠살이의 손에 들렸다.
후우우웅…
후우웅…
“…어?”
비탄이 눈을 비볐다.
줄곧 어설펐던 어둠살이의 동작이 그제야 자연스러워졌다.
녀석은 고장 난 게 아니었다.
후우우웅…
후우우우우웅…
씨익…
강설이 히죽 웃었다.
“…봤구나, 너.”
어둠은 여러 번 무너진다.
그리하여 빛을 모방한다.
“본 거야….”
도둑질에 일가견이 있는 건, 주인과 닮은 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