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379
제378화
비탄의 반응이 이상했다.
‘이 힘은… 뭐지?’
그리고 나의 몸 안에 들어온 비탄의 어둠에 반발하며 일어난 힘은 더더욱 이상했고.
휘오오오오…
온몸에 퍼지는 짜릿한 기운.
인상을 찌푸린 비탄이 황급히 팔을 거두며 소리쳤다.
【그만!】
“…….”
【확인이 끝났어. 나가봐도 좋아.】
“저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나에겐 중요한 질문이었다.
이곳에서 머물지, 아니면 다시 세상을 떠돌지.
【이곳이….】
비탄은 그런 나의 걱정을 한순간에 날려주었다.
【앞으로 너의 집이 될 거야.】
“…….”
【그리고 장막의 어둠은 모두 너의 형제가 될 것이고. 착해빠진 것 말고는 별 장점도 없는 녀석들이지만 분명히 언젠간 큰 도움이… 응?】
그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려 살포시 안았다.
【울지 마, 소년! 시, 싫었어?】
“그게 아니라….”
한 번도, 집이라 할 만한 것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나마 산토스와 있던 순간은 행복했지만, 길었던 고난 중 그와 지냈던 시간은 찰나일 뿐이었다.
그리고, 구색이야 어찌 됐든 그에게 쫓겨난 것은 맞으니까.
【싫으면 받아들이지 않아도 돼.】
“…싫지 않아요.”
【정말이야?】
“좋아서 그래요.”
이곳이 이제, 새로운 집이다.
유림과 함께할 수 있는, 새로운 둥지.
더는 쇠창살이 달린 새장들은 안녕이다.
벌컥-!
문이 열리고, 유림이 등장했다.
“정말이에요? 정말 설이가 머물 수 있는 거예요?”
【…다 듣고 있었구나!】
비탄이 나름 냉엄한 표정을 짓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양팔을 벌리며 유림이 뛰어들었다.
그리고 나와 비탄을 동시에 안았다.
‘따뜻해….’
나보다 더 슬퍼하고 나보다 더 기뻐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다.
“장막에 온 걸 환영해!”
열일곱의 생일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겨울. 나는 장막의 새로운 일원이 되었다.
* * *
시간은 쏜살같이 지났다.
벌써 다음 겨울이 왔다.
“네가 이곳에 온 지도 1년이 지났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독한 수련의 와중에도 가끔 이렇게 휴식을 취할 때가 있었다.
나는 토키, 그리고 비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두 스승을 섬겼다.
토키에게 격투술을 배웠고, 어둠의 힘과 관련된 전반적인 학문은 비탄에게 배웠다.
이곳에서 노사라 불리는 비탄은, 사실 엄청난 힘을 가졌던 마령이라고 들었다. 과거에는 숱한 잘못도 저질렀다고 하는데, 지금의 모습을 봐서는 믿기지 않았다.
대신, 그가 가진 힘만큼은 진짜였다.
나는 전과는 달라졌다.
아직 갈 길이 멀긴 했지만, 핍박받았던 과거를 생각한다면 어마어마한 변화라고 할 수 있었다.
【네게서 많은 가능성을 봤어. 그런데, 좋지 않아.】
“네? 그런….”
가능성이 없다는 얘기인가?
아니라면….
【좋은 훈련과 적당한 휴식, 특히 휴식은 거르면 안 된다고 몇 번을 말해!】
“죄, 죄송합니다.”
【음… 모르겠어, 이유를 모르겠단 말이지.】
비탄이 나를 앞에 두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강해지려는 이유 말이야. 대체 뭘까?】
토키도 옆에서 맞장구쳤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소년이 강해지고 싶어 하는 이유는 복수심도, 그렇다고 투쟁의 욕망도 아닙니다.”
【강해지는 것에 대한 지독한 열망은 있으나, 그것이 어렸을 적 경험한 지옥 때문은 아니라니… 네 내면의 뭔가가 네게 전진을 강요하고 있는 걸까?】
나는 한 마디도 제대로 꺼낼 수가 없었다.
그들의 말은 대체로 틀리지 않았다.
강해져야 한다.
그 이유를 대보라고 한다면 수십 아니, 수백 가지도 들 수 있는 게 나였다.
그러나, 그 이유가 내 진심이냐 묻는다면… 대답을 망설일 것이다.
‘모르겠어.’
내 인생을 지옥에 떨어트린 얼굴들에 복수하고 싶은가 묻는다면 그렇다. 그러나 그것이 삶의 목표가 될 순 없었다.
찌릿…
‘윽….’
또.
[중급 간파가 발동합니다.]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중급 간파 발동이 실패합니다.]
또 생각을 이어나가지 못할 정도의 두통.
【괜찮아?】
비탄의 염려에 어색하게 웃었다.
【뭐 그것이 꼭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었어!】
“저도 동감합니다. 급하게 생각하지 말아라.”
【다만, 나중에라도 명확하게 할 필요는 있을 거야. 안 그러면 금방 벽에 부딪히게 될 테니까.】
“…명심하겠습니다.”
비탄은 내 어깨를 꼭 붙잡고 이렇게 얘기했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켜본 비탄이 말하는데, 네겐 남들에겐 없는 재능이 있다.】
앙증맞은 손가락이 하나씩 접혀갔다.
【두려움에 맞서는 행동력, 마법적인 재능, 그리고 판을 읽는 능력까지.】
“자신감을 가져도 좋아. 넌 재능 있는 아이다. 그러니 너무 무리해서 자신을 몰아세울 필요는 없어.”
“…예.”
단체로 나를 띄워주기 위해 작정한 것 같았다. 더는 이곳에 있기 낯간지러웠다.
“저는 그럼 이만….”
【그래.】
유림의 대련 상대를 해줘야 했기에 먼저 자리를 떴다.
그러다, 흘러나온 말소리를 듣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중에서도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건 그 판단력이야. 아니, 운이라고 해야 하나?】
“맞습니다. 소년이 겪은 지옥은 백 명이 들어가면 백 명이 죽어 나올 운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치, 처음부터 길을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결국 이 장막까지 흘러들어오지 않았습니까? 유림을 구한 판단 모두, 결국 장막으로 흘러들 근거를 남겨둔 것이나 다름없었고요.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었다는 겁니다.”
유림을 구한 건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그래, 그렇기 때문인데.
【하역장에서 탈출을 결심한 녀석은 당시에 고작해야 9살이 막 되었었다고. 말이 돼? 비탄은 이해할 수 없어. 코흘리개였다고.】
“확실히 이상하긴 합니다.”
이상해?
내가?
턱을 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설은 운명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 아닐까? 자신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을 아는 거지. 가장 중요한 일 말이야.】
“…여기서부턴 과한 추론이군요.”
【그렇지? 그런데 몸에 숨겨진 힘은 또 어떻고… 어쩌면 얼굴들에게 빼앗긴 그 아이보다도 훨씬… 아니, 그건 아니네.】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다 한들, 깊은 재능과는 비교할 수 없죠. 그 아이의 재능과 비교할 수 있는 건 유림의 재능뿐입니다.”
【얼굴들과의 싸움에서 희망을 걸어볼 만한 건 미래 세대뿐이야, 저 둘뿐!】
“노사, 장막의 주인께서는 어떤 생각이신지….”
【응? 나도 몰라, 그 녀석은. 아마 이것저것 바쁘겠지. 왜? 걱정돼?】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신 지가 오래되셨으니….”
【화난 얼굴을 막을 수 있는 건 그 녀석뿐이니까, 늦지 않게 나타날 거야. 화난 얼굴은 녀석에게 맡겨두고 우리는 저 아이들을 육성해야 해. 우리가 남긴 재앙을 거두어들이기 위해. 위치는?】
“…계속해서 알아보고 있습니다.”
그 아이?
그 아이가 누구이길래, 이토록 두려워하는 건지.
* * *
시간은 공평하나, 힘든 시간을 견뎌온 나에겐 이렇게 행복한 시간은 전보다 더 빠르게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오늘로 20살의 생일을 맞이했다.
“생일 축하해, 설아!”
유림이 나를 꽉 껴안았다.
“응. 놔, 놔줄래? 숨이….”
“아! 미안!”
시간의 변화는 계절의 변화로밖에 느낄 수 없었다. 나는 이곳에 온 후, 단 한 번도 외부로 나가본 적이 없었다.
그것에 불만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
이들은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 바깥세상을 보여줬을 것이다.
정작 그것을 거부한 건 나였다.
세상은 지옥이고, 그곳에 나아가기 위해선 지금보다 훨씬 강해져야 한다고 늘 스스로를 다그쳐 왔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꽤 큰 성과를 가져왔다.
[깨달음! 새로운 능력을 깨우칩니다.]
[검은 꽃을 깨우칩니다.]
[깨달음! 새로운 능력을 깨우칩니다.]
[그림자 회피를 깨우칩니다.]
[깨달음! 새로운 능력을 깨우칩니다.]
[피조물 창조를 깨우칩니다.]
……
마치 전에 걸어왔던 길을 다시 걷는 것처럼, 내 힘은 일취월장했다.
비탄은 마령임에도 내게 어둠과 관련한 재능만큼은 자신 이상이라고 했다.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었다.
누군가가 인정해준다는 사실은.
괜히 울컥하게 된다고 해야 할까.
그렇다 해서 만족할 생각은 없었다.
비탄과 토키가 가르쳐 준 것들 외에, 나만의 무기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1년 내내, 휴식도 가끔 거르며 매진하자 그것도 진전을 보였다.
훈련에 매진할수록 두통은 잦아들었다.
나는 두통이 지독한 현실을 기피하려는 내 방어기제라 결론지었다.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는 편이 편했으니까.
“설, 생일 축하해! 다들 모여 있으니 얼른 와. 그리고 둘이 그만 좀 붙어 있고!”
“누, 누가 붙어 있었다고요!”
“떨어져! 떨어져!”
당황해서 어버버하는 유림과 그녀를 놀리는 키리. 내가 나이나 외견상으로나 완전한 어른이 되었듯이, 그녀도 청초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여성이 되었다.
물론, 둘의 진정한 정체는 장막에서 육성한 신진 전투원이었지만.
어쨌든, 오늘은 생일 때문인지 다들 모여 있었다.
“짜잔!”
“…….”
은신처에서 가장 넓은 공동(空洞)에 마련된 조촐한 자리.
늘 은신처에 붙어 있는 키리, 질리악, 그리고 토키와 비탄까지.
“놀랐지? 응? 놀랐지?”
아, 유림까지.
나머지 인원은 외부 파견 인원이라 실제로 본 적은 없다. 장막의 주인을 포함해 모두 4명의 인원이 더 있다고 알고 있었다.
어쨌든, 지금은 은신처에 있는 인원들이 모두 모인 것이다.
“생일 축하해!”
“생일 축하한다, 꼬맹이.”
“소년! 훌륭하게 성인이 되었구나!”
【축하! 축하!】
“내가 제일 축하해!”
이런.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들이 이런 일을 계획하고 있었을 줄은.
【에헴….】
비탄이 슬쩍 다가오더니 내 로브의 가슴팍에 무언갈 매달았다.
붉은 루비.
까마귀의 눈.
장막의 상징이다.
【넌 이제부터 장막으로 활동을 시작할 거야.】
“…….”
【우, 울지 마!】
“안 웁니다.”
【눈가가 촉촉한데?】
“하품이 나와서….”
슬플 때는 많이 울었으니, 좋은 날엔 역시 웃는 게 맞다.
유림이 함께 웃어주었다.
【그럼… 첫 번째 임무는….】
* * *
변방의 산장.
아니, 산장의 형태를 한 객잔이었다.
산을 넘어가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객잔이었기에 왕래가 잦았다.
대도시에 있는 객잔보다 유동 인구가 많을 때도 있었다.
지금, 내 옆에는 아리따운 부인이 팔짱을 낀 채로 함께 객잔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해?’
내 물음에 조용히 귓속말하는 유림.
“당연하지! 젊은 남녀가 의심받지 않는 가장 편리한 수단인데?”
“그건 그런데….”
“우린 장막으로 여기 온 거야. 유림과 강설이 아니야.”
“…그래.”
“히힛.”
“…왜 웃어.”
“그냥.”
유림과 객잔에 앉아 음식을 주문했다.
“뭐 이렇게 많이 시켜?”
“오래 앉아 있어야 할 수도 있잖아.”
“…그렇네.”
“그리고 배도 고파.”
“역시, 그게 목적이었지?”
“쉿… 돌아보지 말고 대꾸해.”
“응.”
“왔어, 그자. 지금 돌아보면 의심할 거야.”
“인상은.”
“그대로야. 헷갈리지 않을 듯.”
“그럼 됐어.”
“방으로 들어간다.”
“그럼, 음식 취소해. 곧바로 따라붙자.”
“으….”
유림이 울상을 짓고 점원을 불렀다.
점원이 다가와 조리가 이미 들어갔다고 말하자 눈에 띄게 밝아지는 유림의 표정.
“유림, 문을 두들겨. 알지?”
“응.”
잠시 시간이 흐른 후.
유림이 입가에 뭘 잔뜩 묻히고 객실이 있는 곳까지 올라왔다.
스으읍…
똑똑똑…
“계신가요?”
“…….”
안에서 화들짝 놀라 부산을 떠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무, 무슨 일이야! 난 접객을 부른 적이 없는데?”
“저는 점원이 아니에요.”
“그럼 꺼져.”
“…곤란한데, 정말 문은 안 열어 줄 거예요?”
“꺼지라고 말했….”
유림이 문을 사이에 두고 사내와 말다툼을 하는 사이, 살짝 열린 창문 틈으로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까마귀는 뒤뚱뒤뚱 걸어 의자에 앉았다.
“히익… 뭐, 뭐야 까마귀가 왜….”
그때.
휘리리릭…
까마귀가 거대해졌다.
아니,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다.
사내는 경악한 표정 그대로 굳었다.
“…….”
문이 아닌 창문을 통해 들어온 까마귀가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 의자에 앉아 있다면 누구라도 사내와 같은 표정을 지을 것이다.
까마귀는, 나였다.
“신발, 털고 들어와야 하나?”
“…….”
드르륵…
의자를 끌어 사내에게 조금 가깝게 다가가 말했다.
“장막이다. 지금부터 묻는 말에 대답해.”
“무슨….”
이곳에 온 용건.
첫 번째 임무.
“리안 쿠르오스란 자와 접촉했지?”
– 외부 파견 인원인 리안이 실종됐다.
질문을 듣자 눈에 띄게 당황하는 남자.
“그건….”
쿵쿵쿵!
문가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잊고 있던 뭔가를 깨닫고, 문을 열었다.
철컥…
“…다음부턴 질문보다 문부터 열어줘.”
유림이 심통 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엔, 수 명의 인원들도 함께였다.
“아는 사이?”
“누구? 아 얘네들?”
“응.”
유림과 내 눈빛이 교차했다.
“…그럴 리가.”
동시에, 모든 병장기가 뽑혀 나오며 객잔에 큰 소음이 전해졌다.
콰아아아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