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38
제37화
“어디, …어?”
프린이라는 이름의 여자는 다중 정령함의 비상함을 눈치챘는지 한참을 조몰락댔다.
그리즈는 남들과는 다른 사고방식을 지닌 천재였다. 그가 설계한 발명품은 기존의 관념을 무시했다.
‘그리즈의 물건이라는 걸 들킨 건가?
마법사 둘이 눈빛을 교환하더니 강설에게 이렇게 말했다.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다만?”
“이 물건의 출처를 알 수 있을까요?”
강설은 예상했던 질문이라 능숙하게 둘러댔다.
“정체가 드러나는 걸 좋아하지 않으시는 분이라 함부로 말씀드리기가 곤란합니다.”
“이런… 하, 하긴. 이만한 물건을 제작하고 설계한 장인이 평범하신 분일 리가 없죠.”
“아무튼, 등록은 끝났습니까?”
남자는 강설에게서 정보를 더 얻고자 붙잡을 명분을 떠올렸지만, 이내 어차피 이곳을 떠나기 전에 여기에 한 번 더 들러야 한다는 걸 떠올린 후 안심하고 말했다.
“그… 예, 여기 있습니다. 정령함에 정령의 사체 혹은 정령을 넣어 오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아 참, 그리고 현재 인근에서 골치 아픈 문제가 발생한 모양입니다.”
“골치 아픈 문제?”
“지원을 나와주신 모험가 중 몇몇 분이 그대로 사라지셨다는….”
“실종입니까?”
“내부적으로는 그렇게 얘기가 오고 가는 상황입니다. 다만, 마탑도 여유가 없는 시기가 맞물려서 수색 작업이 이뤄지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숲에 들어갔다가 문제가 생기면 찾지 않을 것이니 알아서 생존을 도모하라는 얘기.
강설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인 후, 숲속으로 들어갔다.
* * *
이곳의 환경은 정령 홍수에 많은 영향을 받은 듯 보였다.
숲의 어떤 장소는 나무가 기괴하게 성장해있었고 작은 시내는 범람했다. 발이 푹푹 빠지는 늪은 물론이고 갈라진 땅에서 열기가 치솟는 곳도 존재했다.
‘개판이군. 얼핏 보면 대삼림인지도 모르겠어.’
정령들이 이곳을 놀이터로 사용하는 이상, 숲은 빠르게 죽어갈 것이다. 어쩌면 이미 그 숨이 간당간당할 수도 있었고.
강설은 제81 연구소에서 얻었던 다중 정령함 허리띠의 설계도를 펼쳤다.
설계도에는 그리즈가 친절하게 풀어서 설명한 내용이 가득했다.
정령 주머니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각 함에 어떤 정령이 들어가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위력이 기대되는지도.
심지어는 해당하는 정령을 어떻게 구슬릴 수 있는지 방법까지 적혀있었다.
대륙의 천재답게 내용은 재기발랄했고 그의 지성이 돋보였다.
설계도를 대강 살펴본 강설은 왜 이 허리띠가 미완성 상태로 남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귀찮았던 거군.’
그리즈가 직접 적은 해설에도 그런 부분이 나와 있었다.
– 다른 영감이 떠올라 직접 확인까지 해보지는 못했지만, 이론상으로는 완벽하니 아마도 설계도에 적힌 대로만 시행하면…
이후로는 구구절절 왜 끝까지 이 허리띠를 완성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변명이 가득했다.
‘아무튼, 우선 신록의 정령인가?’
정령함의 사용 방법을 알았으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강설이 딱히 목표가 정해졌는데 머뭇거리는 성격도 아니었고.
우선, 강설은 가장 순하다고 알려진 신록의 정령을 생포하기 위해 숲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휘이이이이…
안으로 들어갈수록 수풀은 더욱 우거졌다.
울창한 초목이 햇빛을 막아서니, 점차 빛은 줄어들었다.
강설은 오히려 그편이 편했다.
밤눈이 밝기도 했거니와 그가 찾는 정령은 오히려 어두울수록 찾기 쉬운 정령이었으니까.
썩은 나무와 나뭇잎들이 눅눅한 냄새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강설의 정령 수색 첫째 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타닥… 탁…
이날 밤, 그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한기를 몰아내며 잠이 들었다.
따로 위험에 대비해 뭔가를 준비할 필요는 없었다.
그가 잠든 사이에도 쟈마드와 카루나가 번갈아 주변을 순찰했으니까.
이럴 땐, 소환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몰려왔다.
그로부터 3일째.
계속된 강행군에 강설도 지쳐만 갔다.
‘이래서 한 달이라는 시간을 준 거군.’
대삼림은 말도 못 하게 거대했다.
그나마 경계석이 대삼림의 외부에 있어 이 정도였지 혹여라도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면 이미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였다.
휘이이.
‘음? 바람이….’
물에 젖은 나무 냄새가 코끝을 강하게 쳤다.
스으으으으…
어쩐지 으스스하다는 느낌을 받을 무렵, 시야에 숲 깊숙한 곳에서 뻗어 나온 빛이 들어왔다.
‘초록빛?’
치리링…
영롱한 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청명한 소리가 그의 귀를 사로잡았다. 저 멀리 초록빛이 퍼져 나오고 있었다.
강설은 그곳을 향해 꾸준히 걸었다.
‘여기군.’
그리고 마침내 그가 빛이 퍼져 나온 곳에 도착했을 때, 그는 초록빛으로 빛나는 정령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치리링… 치링…
그들의 몸에서 아까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1m 정도의 몸집을 가진 초록빛의 정령들, 그들은 유년기의 아이 정도 되는 신장에 모습은 꼭 뚱뚱한 도토리처럼 하고 있었다.
치리링…
그들 중 한 마리가 강설에게 다가왔다. 꼭 눈으로 무언가를 말하는 것 같았다.
당연하게도 강설은 정령어를 습득하지 못했으니 상대의 의중을 짐작만 할 수 있었다.
그런 그의 불편함을 덜어주려는지, 선택지가 떠올랐다.
[신록의 정령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1. 죽인다.
2. 납치한다.
3. 대화를 시도한다.
4. 따라다닌다.
5. [필요 : 정령술사] 복종을 요구한다.
……
그나마 멀쩡한 선택지가 3번과 4번이었고, 대화라는 게 한쪽만 언어를 알고 있으면 소용없다는 것은 당연했으니 강설은 4번 선택지를 골랐다.
강설은 그때부터 행동을 조심하며 신록의 정령을 따라다녔다.
치링…
신록의 정령은 나무를 쓰다듬기도 하고, 강설의 다리를 나무로 착각해 껴안기도 했다.
– 도토리 어서 오고
– 귀… 귀여워…
– 크윽… 심장… 위험한 생명체야
– 도망쳐! 스노우맨은 잔악무도하다고!
– 널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어! 조심해!
강설은 조카를 돌본다는 마음가짐으로 신록의 정령을 쫓아다녔다.
그것이 벌써 이틀째다.
아무리 귀여운 조카라도 이틀 연속 돌봐야 한다면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 지루한 과정이 뭐가 그리 좋은지 잔잔한 미소까지 지으며 신록의 정령의 세 발짝 뒤에서 걸었다.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 순간, 강설은 꼭 이런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렇구나.’
영원의 세계 밖에서 주사위를 굴릴 때,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피가 튀고 살점이 바닥에 떨어지는 전장을 종횡하다가 잠시 세계의 중심 사건에서 멀어져 편안한 모험을 경험할 때, 지금 마음과 같은 마음을 느꼈었다.
어쩌면, 치열했던 앞선 다섯 번의 모험을 지나오면서 그 자신도 모르게 지쳐있었던 건지도 몰랐다.
잡념과 번뇌들이 씻겨 내려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신록의 정령과 장시간 접촉합니다.]
[정신력이 영구적으로 1 상승합니다.]
[정신 마법에 대한 저항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딱히 이런 것을 노리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강설은 떠오른 메시지에 또 한 번 흐뭇해졌다.
강설은 계속해서 신록의 정령을 쫓았다.
그렇게 이틀 동안 여러 소일거리를 하던 신록의 정령은 한참이 지나 말라비틀어진 땅까지 흘러왔다.
대삼림은 애초에 물이 풍부한 장소였다.
그런 장소에 이런 건조함이 국지적으로 조성되었다는 건, 다른 정령의 농간이 분명했다.
치링…
신록의 정령이 그 땅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스스스…
꽤 넓은 크기의 땅이 금세 촉촉해지며 풀과 꽃이 돋아났다.
대신, 그만큼 신록의 정령은 피로를 느끼는 것 같았다. 눈꺼풀이 아까보다 더 내려왔다.
삭… 삭…
신록의 정령이 피곤한 눈으로 마법을 사용했다. 곧, 정령의 손에 꽃으로 만들어진 화관이 쥐어졌다.
쿡, 쿡.
“숙이라고?”
끄덕.
강설이 고개를 숙이자, 머리에 화관을 씌워주는 신록의 정령.
그리고는 강설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할 일이 끝나고 어떤 말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같이 갈래?”
끄덕.
강설은 정령 주머니의 정령함 하나를 열었다.
딸칵.
스르르르…
신록의 정령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정령함이 초록빛으로 가득 채워질 무렵, 메시지가 주르륵 떠올랐다.
[신록의 정령 치링을 생포했습니다.]
[초록을 확보했습니다.]
[현재 생포한 정령의 종류 : 1]
[정령 주머니에 초록이 자리합니다.]
* * *
타닥… 탁.
모닥불 앞에 자리한 강설이 멍한 눈빛으로 모닥불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2마리가 전부인가?’
초록과 주황이 현재까지 얻은 수확이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여유롭지 못했다. 벌써 5일을 사용했으니, 지금부터라도 속도를 내야 했다.
아마 다른 모험이었다면, 벌써 노비라로 되돌아가 있었을 것이다.
“신록이랑… 아침인가.”
신록의 정령 이후로 아침의 정령인 주황을 얻었다.
2종류의 정령을 이렇게 단시간 내에 생포한 것만 해도 다른 모험가들은 입을 떡 벌릴 텐데, 강설은 아쉬워했다.
‘오늘도 밤의 정령은 안 찾아오려나?’
보랏빛인 밤의 정령.
밤에 활동하다 보면 마주치는 정령인데, 벌써 마주칠 것이라 기대한 것이 잘못이었다.
아마도 이렇게 지내다 보면 적어도 제한 시간 내로는 마주치지 않을까 싶었다.
‘그건 그렇고, 그리즈의 허리띠가 효과를 발휘하는 건 3마리째부터인가?’
정령의 주머니는 정령함이 채워질 때마다 능력이 강화된다.
그 최소 기준이 정령함 3개. 강설은 아직 그 기준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후우… 음?”
바스락.
분명히 수풀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마치 일부러 일으킨 듯한 기척이었다.
“누구지?”
“아… 저… 경계하지 마세요.”
사삭…
대학교 새내기 정도로 보이는 여자가 수풀 속에서 튀어나왔다.
강설은 여기저기 긁힌 그녀의 모습을 보고 숲에서 길을 잃은 것이라 여겼다.
“죄송한데 불 좀 쬘 수 있을까요?”
강설이 잠시 입을 다물고 그녀를 보다가 고개를 불로 향했다.
“이쪽으로.”
“감사해요!”
“길을 잃은 겁니까?”
“네….”
여인은 꼭 물에 빠진 생쥐 같았다.
머리는 산발이고 군데군데 피가 배여 있었다. 등에 화살집을 메고 있는 게 궁수로 판단됐다.
둘은 잠시 마주 보고 앉아 모닥불을 쬐었다.
강설은 마침 적적했기에 물었다.
“일행은?”
“없어요. 애초에 여기에 혼자 와서….”
“그랬군요.”
“그래도 덕분에 오늘 밤은 편하게 잘 수 있겠네요….”
“이름이 뭐지?”
“한… 한서령이요. 아저씨는요?”
“아저씨 아닙니다. 강설입니다.”
“아… 네.”
“여기, 코코아.”
“감사해요….”
후르릅…
타닥… 탁…
어색한 분위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강설은 애먼 땅만 긁적였다.
– 충격! 스노우맨의 이름은 강설로 밝혀져…
– 강설? snowfall? 어쩐지! 왜 스노우맨인가 했네 ㅋㅋ
– 어떻게 사람 이름이 강설임? 앜ㅋㅋ
강설의 본명을 처음 알게 된 시청자들이 수다를 떨 때, 멀리서 소리가 들려왔다.
쿵. 쿠웅…
땅에서 느껴지는 흔들림까지.
분명, 뭔가가 접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쿠웅.
“어? 어어… 저기….”
“들었습니다.”
쿠웅…
한밤의 침입자는 잠행에는 능하지 않아 보였다.
그의 몸은 붉게 빛났으니까. 더군다나 거대하기까지.
쟈마드보다는 작았지만 카루나보다는 커다란 거인이었다.
“저, 정령인 것 같아요….”
“네.”
“여, 여러 마리인데요?”
“보입니다.”
“도, 도망칠까요? 어떻게… 저, 정령함!”
– 몬스터 볼!
– ㅋㅋㅋㅋ 호들갑 개웃기네
“아니, 가만히 있어도 됩니다.”
“네? 위험하지 않아요?”
“벌이라고 생각하면 괜찮습니다.”
– 존나 큰 벌
– 요즘엔 저런 걸 벌이라고 하냐 ㅋㅋㅋ
일렁이는 불길 대여섯 개가 강설과 한서령의 곁에 와 멈췄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 모닥불을 쬐었다.
정령들의 대부분은 먼저 공격하지 않는 이상 인간을 노리지 않는다. 장난치는 거라면 몰라도.
‘거기다, 내가 괜히 모닥불을 피워둔 게 아니니까.’
불티의 정령은 불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온다.
물론 강설도 이렇게 잔뜩 대가족이 몰려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한서령과 강설은 그대로 가만히 굳어 모닥불만 쳐다보았다.
슬슬 어깨가 뻐근해질 무렵, 강설의 옆에 앉은 불티의 정령이 강설을 내려다보았다. 덩치는 거대했지만 속은 양처럼 순한 정령이었다.
정령의 눈을 보니 졸린 것 같았다.
“들어가서 잘래?”
끄덕.
강설이 정령함을 열었다.
딸칵.
휘리리익…
한서령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강설의 행동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보기엔 강설이 마치 조련사라도 되는 것처럼 정령을 다루는 게 능숙했기 때문이었다.
‘됐어!’
[불티의 정령 포조를 생포했습니다.]
[빨강을 확보했습니다.]
[현재 생포한 정령의 종류 : 3]
[정령 주머니에 빨강이 자리합니다.]
마침내 조건이 충족되었다.
이윽고, 강설이 정령 주머니를 얻은 후로 줄곧 고대하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다중 정령함 허리띠(미완성)이 변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