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387
제386화
욱씬…
강설은 그림자가 되어 유림과 하나가 되었다.
‘누군가의 그림자가 된다는 건… 이런 느낌인 건가?’
괴로우면서도, 영에 가까운 거리감이 간지럽기도 했다.
처음의 고통은 점차 가라앉아 그것은 이제 쾌락과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미친 짓이었어….’
소중한 이를 지키기 위해 인간의 몸으로 그림자가 되려 하다니.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았다.
‘아니… 다시 하라고 하면 해야겠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유림을 구하기 위해서는.
마음이라는 것은 종잡을 수 없어, 이성과는 달리 가능성에 귀를 닫는다. 보아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이대로 의식의 바다에 몸을 맡겨야 하는 걸까?
“설아! 어딨어! 설아!”
누군가 그를 불렀다.
유림의 목소리였다.
강설은 화들짝 놀라 손을 뻗었다.
뭔가가 잡혔다.
‘…털?’
스르륵…
가면을 쓴 거대한 늑대였다.
콰직…
“으윽….”
손을 살짝 아플 정도로 깨무는 늑대.
강설은 황급히 손을 빼냈다.
스윽…
누군가 그의 몸을 잡아끌었다.
“설아, 다가가면 안 돼.”
“유림? 저 늑대는….”
유림의 목소리.
그를 잡아끈 것은 유림이었다.
그녀는 늑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야차야….”
“…야차라고?”
“응. 다가가면 모든 걸 물어뜯을 거야. 늘 그랬으니까.”
유림이 강설을 인도했다.
야차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
그렇게 둘은, 잠시 하나가 되었다.
* * *
유림이 겪게 된 변화를 지켜보던 신유가 말했다.
“강설이 그곳에 있나?”
“…여기 있어.”
신유는 강설만큼은 죽이고 싶지 않았다.
피폐해진 정신세계에서도, 현실에서부터 이어져 온 인연을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 그녀를… 그녀를 죽여.
그와 반면에, 환상은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끊임없이, 유림을 죽이라 말했다.
환상이 승리했다.
유림은 곧 죽을 것이다, 신유의 손에.
“결착을 짓자.”
끄덕…
달라진 유림의 기운.
마치 폭발하기 직전의 화산처럼 과열된 상태였다.
사박…
사박…
둘은 검을 들고 횡보하며 원을 그렸다.
설원에 곧, 동그란 달이 완성된다.
선과 선이 이어져 달덩이가 만들어졌을 때, 달 사이를 가로지르며 둘이 쇄도했다.
파아아아앙-!
파아아앙-!
눈을 박차고 서로를 향해 뛰어든 순간, 둘은 동시에 깨달았다.
‘내가 더 빨라!’
‘유림이 더 빠르다!’
밤까마귀 상태인 유림은 옷자락에서 계속해서 어둠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밤이 인간이 된 듯한 모습이었다.
어둠이 그녀를 이끌었다.
후우우우웅…
카아아앙-!
검이 맞부딪혔다.
이 싸움이 힘겨루기로 치달아도, 신유는 상관없었다.
파지지지지직…
뇌운을 몰고 다니는 그의 기운은, 막대한 힘을 뿜어낼 수 있었으니까.
끼기기긱…
끼기기기기기긱…
그런데 놀랍게도, 유림이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의 검이 처음으로 신유의 검을 피하지 않았다.
원래부터 움직임은 잘 꿰뚫어 보고 있던 유림이었다. 힘이 대등해지니 싸움의 결과가 쉽사리 예측되지 않았다.
“으음!”
파지지지지직-!
신유의 검이 발작하듯 난동을 부렸다.
따앙-!
검이 궤적에서 벗어났고 둘은 기술을 견주었다.
타다앙-
팅!
바람 빠지는 소리, 그리고 검으로 검을 후려치는 소리까지.
둘은 서로에게 제대로 된 상처 하나 입힐 수 없었다.
빠아악-!
빠악-!
서로 주고받는 발차기.
거리를 재기 위한 견제기였으나, 동시에 멀어졌기에 잠시 전투는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답답하군.”
“마찬가지야.”
유림은 야차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야차의 힘을 최대한 억눌렀고 신유는 유림이 야차의 힘을 이용해 자신의 검술을 복제해낼 것을 우려해 폭풍검의 형(形)을 감추었다.
덕분에, 교착이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먼저 결단을 내린 건 신유였다.
파치지지지지직-!
그의 검이 울었다.
“이것도 빼앗아 갈 수 있다면… 빼앗아 가보시지.”
“…….”
파아아아앗-!
신유가 날 듯이 뛰어올랐다.
휘이이…
파아아아아앙-!
여우비.
그런데, 손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카가가가가각…
검의 빠르기가 문제가 아니었다.
검의 형상이 보이지 않았다.
훔칠 수 없는 검.
꿰뚫어 보지 못하는 검이다.
스으으…
땅-!
따당…
유림의 손을 누군가 잡아끌어 가져다 대었다.
정확히 그 자리에 신유의 검이 날아들었다.
카아앙-!
“음….”
강설이었다.
밤까마귀를 통해 합일을 이룬 둘.
당연하게도 능히 두 사람의 힘을 낼 수 있었다.
“어딜!”
파지지직…
폭풍의 기운.
찌릿하게 전해져오는 경력.
움직임은 간신히 따라올 수 있었지만, 뇌운을 몰고 다니는 그 힘에는 역부족이다.
‘흐름이야… 흐름을 잡아내지 못하는 거야.’
움직임의 흐름이 아닌, 힘의 흐름.
정확히, 신유의 계산대로였다.
쒜에에에에엑-!
유림의 가슴팍을 꿰뚫기 위한 검이 뇌전을 머금은 채 앞으로 쏘아졌다.
둔해진 검으로 방어하기엔 늦을 듯했다.
‘어깨를 대신 내주고….’
그때, 그녀의 소매에서 검은 손이 우수수 튀어나왔다.
휘리리릭-!
“큿….”
하나같이 신유의 위험한 곳을 노리는 손.
카가가강-!
신유도 검을 회수해 그림자를 걷어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공격이 아예 무위로 돌아간 건 아니었다.
파지지직…
콰아아아아아앙-!
발로 유림의 배를 걷어차는 신유.
기운이 실려있었기에 보통 충격이 아닐 것이다.
“크헉….”
콰직-!
콰직-!
유림이 바닥을 크게 구르며 나가떨어졌다.
휘오오오…
그림자가 그녀의 금이 간 뼈를 맞추고 파열된 근육을 재조율했다.
강설은, 그녀가 다치지 않게 최선을 다했다. 그림자가 되었더라도 그 행동은 여전했다.
그래도 점점 나아지는 점도 있었다.
움직임은 따라붙고 있었다.
다만, 신유가 폭풍의 기운을 머금을 땐 방어조차 버거웠다.
그 약점을 파고들기로 결심한 신유가 훌쩍 물러나 자세를 취했다.
철컥…
신유가 납검했다.
포기한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끝이야.”
신유가 손을 덜덜 떨었다.
파지지지지직…
참격이다.
일전의 참격을 또 한 번 시도하려는 모양새.
느껴지는 기운은 그때보다 훨씬 거대했다.
‘…보지 못할 거야.’
유림은 좌절했다.
그의 검을… 볼 수 없었다.
휘이이이잉…
시간의 정지.
신유의 힘도, 신유의 검도 그대로 멈춰 있었다.
강설이 때때로 경험했던, 그런 순간이 유림에게도 찾아왔다.
뭔가 주변 공기가 달라졌다.
불쾌하고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의 냄새다.
신유의 뒤쪽으로, 나무에 기댄 누군가가 있었다.
저건 환상이다.
그렇지 않다면, 신유가 곧장 뒤돌아 저자부터 갈랐을 테니까.
“…야차.”
가면을 쓴 늑대가 나무에 기대어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녀를 똑바로 보았다.
“…야차, 날 물려는 거야?”
휙…
휙…
고개를 젓는 늑대.
“…나는 네가 바라는 대로 곧 죽어.”
그녀의 가시 돋힌 말에, 늑대는 처음으로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나는 그걸 바란 적 없어.”
“…뭐? 방금… 뭐라고….”
“유림, 나는 널 물고 싶지 않아. 내가 무는 건 네가 아닌 다른 존재들뿐이야. 널 위험에 빠지게 하는 자들이지.”
야차의 간언에 유림은 발작하듯 화를 냈다.
“거짓말하지 마! 또 나를 파멸로 몰고 갈 생각이잖아! 늘 나를… 너는 늘 나를!”
북받쳐 울음을 터트려도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어쩌면 꿈속 세상이기에, 뭐든 가능한 것일지도.
“으흑… 흑….”
“울지 마, 유림. 죽는 게 두려워?”
“…행복이란 걸 알게 됐잖아.”
“…….”
“진짜 웃음을 알게 됐잖아.”
사박…
사박…
늑대가 다가왔다.
악취는 느껴지지 않았다.
“난 널 괴롭히려 한 적 없어, 유림. 만약 그렇게 느꼈다면 미안해….”
유림은 고개를 들어 늑대를 쳐다보았다.
늑대는 웃었다.
처음 가면 너머로 느껴졌다.
그녀는 그 순간, 야차의 존재를 깨닫게 되었다.
“너… 설마….”
“난 널 지키려 했을 뿐이야. 나는….”
늑대의 목소리가 변했다.
사납고, 거친 목소리에서 청량한 목소리로.
물기를 머금은, 소녀의 목소리로.
“너니까.”
유림 자신의 목소리로.
지옥에 떨어진 소녀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만든 인격, 야차.
야차는 유림을 해치려던 게 아니었다.
가시를 세워 유림을 지키려던 것일 뿐.
그 모든 게 어그러져 세상에 해악을 끼쳤을 뿐.
“아아….”
유림은 늑대를 껴안았다.
늑대는 말했다.
“날 용서해줄래?”
“미안해… 내가 널 밀쳐냈어….”
“괜찮아, 나는 너만 괜찮으면 돼.”
야차가 물었다.
“내겐 시간이 없어. 아니, 우리에게는…. 유림, 너도 느끼고 있지?”
“…….”
“나는 네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 이미 알고 있어. 그러니까, 너는 내가 어떻게 해줬으면 해?”
유림이 늑대에게 말했다.
“부탁이야, 도와줘….”
늑대가 멈췄다.
“마지막 행복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줘. 힘을 빌려줘.”
늑대가 헤벌쭉 웃었다.
“좋아! 야차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저 녀석에게 보여주자고.”
늑대는 뒤돌아 신유를 바라보았다.
“…야차의 마지막 등장이야. 검을 쥐어.”
시간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간다, 유림. 잘 따라올 수 있지?”
늑대가 묻자, 유림은 검을 똑바로 쥔 채 시선을 전방으로 향했다.
그 순간, 시간이 가속했다.
아니, 엄청난 속도로 신유의 검이 닥쳐왔다.
휘오오오오오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폭풍검의 참격.
미완성의 검이 어떻게 저렇게 완벽한 힘을 뽐낼 수 있을까.
하나의 선이, 무지막지한 힘을 담은 하나의 선이 내려왔다.
절대 대항할 수 없을 것만 같은 힘.
그야말로 폭풍이었다.
그리고, 폭풍을 향해 내달리는 두 존재.
늑대와 유림이었다.
바람을 맞으며, 기분 좋게 혀를 밖으로 빼며 사라지는 늑대.
– 유림, 보일 거야! 길을 따라가! 기분 좋은 날씨야!
스르르…
설원을 질주하던 늑대가 흐릿해지며 사라지고 있었다.
늑대가 설원에 찍은 발자국을 따라, 유림이 움직였다.
파직…
유림의 가면이 말단부터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입술이 드러나고, 그녀의 오똑한 코가 드러나며, 그녀의 타오르는 눈동자가 드러났다.
마침내 가면을 벗은 야차는, 가능성을 뛰어넘었다.
움직임이 보이는 게 아니었다.
흐름이 보였다.
힘의 흐름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흐름이 헝클어진 실처럼 보였다. 그렇기에 미완의 검.
그 부조화가 만들어내는 틈으로 검을 찔러넣었다.
투우우우웅-!
그녀의 스승. 검의 대가 유현이 완벽한 방어에 성공했을 때 나오는 청명한 소리.
그 또렷한 울림과 동시에 유림의 검이 뒤로 잡아당겨졌다가 벌새처럼 앞으로 쏘아졌다.
“으아아아아아아!”
푸우우우우우욱…
살을 파고드는 강철.
이건 그 감촉이 분명했다.
……
시간이 멈춘 게 아니었다.
둘이 그 자리에 가만히 멈추었다.
“…이것마저 읽은 거냐, 유림?”
“……응.”
“대단… 대단해… 내가 졌어….”
푸화아악…
풀썩…
신유는 검을 스스로 뽑으며 뒤로 넘어가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