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391
제390화
신현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된 신유는 몸을 움찔했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신현과 신립의 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건.
– …어째서 얘기하지 않은 거야?
몸이 사라져, 진정한 소멸로… 진정한 죽음으로 이어질 거라는 얘기를.
어째서 하지 않았는가.
신립이 눈을 감고 대꾸했다.
“그편이… 좋았으니까.”
“…형님 말이 맞아.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 서로에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 어째서!
신유가 신경질적으로 글을 썼다.
“그래야, 널 보낼 수 있을 테니까.”
– …….
“언제든,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해야 네가 마음 놓고 떠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판단은 틀렸던 것 같다.”
지금껏 말하지 않았던 이유.
신유가 필요 없는 책임감에 짓눌려 미궁에서 자신들의 죽음을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이제 알았느냐?”
신립의 말에 신유가 굳었다.
곧, 꾸역꾸역 글씨를 써 내려갔다.
– 시간이… 얼마나 남은 거야?
씨익…
신현이 웃었다.
“남겨진 시간은 이미 다 썼다. 네가 엉덩이를 붙이고 떠날 줄을 모르니, 지하 세계의 신께서 그마저도 가져가 버렸다.”
– …가지 마.
“으잉?”
– …죽지 말라고.
신현이 껄껄 웃었다.
“히히히히! 이놈아! 생명이 어찌 죽지 말라고 죽지 않는단 말이냐? 죽음은 당연한 거야, 너도 어쩔 수 없던 게 죽음 아니냐?”
죽음은 당연한 것.
받아들이는 건 남겨진 자의 몫.
“유아야, 우린 괜찮다.”
“형님, 이놈은 몇 번이고 말해도 못 들은 척한다니까?”
– …혼자는 싫어.
“…….”
– 혼자만 남겨지는 건… 싫어.
“이미 죽은 형제들이 그런다고 돌아올 것 같으냐? 틀렸다, 이놈아.”
– …….
신립이 신현의 말을 기다려준 후, 조용히 이야기했다.
“아직… 기회가 있다.”
잘못된 길에 접어든 동생을 타이르는, 아주 점잖은 말이었다.
“강설을 뒤쫓아가라. 녀석이라면, 널 미궁 밖으로 데려가 줄 거다.”
“그래, 네게 있어서 설이는 하늘에서 떨어진 구원자나 마찬가지야. 아니, 실제로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멈칫…
신유가 잠시 망설이다 이렇게 썼다.
– …강설에게는 내가 필요 없어.
“어째서? 그게 무슨 소리냐? 세상천지에 감히 신유의 도움이 필요 없다는 녀석이….”
– 졌어.
“…뭐?”
– 전력을 다했는데, 정말로 깔끔하게 졌어.
“…….”
꿈속에서의 기억.
재능이 만개하여, 일전의 자신보다도 한 단계 더 나아갔었다. 그런데, 패배했다.
강설과 유림에게.
꿈에서 빠져나오든, 빠져나오지 못하든 중요한 사실은 그가 강설에게 패했다는 사실이다.
“가까이 와라.”
신유가 줄곧 맞은편에서 글씨를 쓰다 꼼지락꼼지락 팔을 움직여 신현의 옆에 다가왔다.
“강설에게 대강 듣기는 했다만, 네 이야기는 자세히 듣지 못했구나. 어서, 얘기해봐라.”
신유는 거침없이 그날까지 있었던 감정과 서사를 써 내려갔다.
그리고 그것을 전부 확인한 신현이 이렇게 말했다.
“생각해보니 네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 녀석이 한 녀석 더 있었구나. 신강 녀석 말이다.”
신유는 오랜 기억을 끄집어냈다.
아직도, 신강이 그를 떠나보냈던 그 자리가 선명히 기억났다.
“설이 녀석… 강이를 참 많이 닮았어. 안 그렇수? 형님!”
“…맞는 말이다. 결이 같지.”
신현의 말이 맞았다.
이따금, 둘이 겹쳐 보일 때가 있었다.
“…유아야. 세상엔 아무리 노력해도 닿기 어려운 존재가 있는 법이다.”
– …강설이 그런 사람이라고?
“왜 아니겠느냐? 네 재능도 결국 그에게 패했다면서.”
– 하지만….
“하지만이 아니다. 결과가 드러났는데 살을 붙여 뭐할까. 패한 것은 패한 것이다.”
– …….
씨익…
신현이 웃었다.
“받아들이기 어렵지?”
끄덕…
손등을 끄덕였다.
“누군가가, 자신보다 우월하다는 걸 처음 경험하면 좌절할 수밖에 없다. 무력감, 공허함도 함께 찾아오지. 지금까지의 자신이… 가치 없는 삶을 살아온 것만 같기도 하고.”
그는 조용히 신현을 바라보았다.
“내겐 그게 너였다.”
– …….
“아무리 노력해도, 발끝만큼도 미치지 못하는 재능에 한탄도 제법 했지.”
빛을 향해 나아가는 누군가도, 누군가에겐 빛이었다.
– 하지만… 어떻게 벗어난 거야?
“고생 좀 했지. 방법은 쉽다. 그러나 그것을 행하는 건 어렵긴 하다만 뭐….”
신립이 대신 정답을 일러주었다.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다.”
– …….
“투쟁만이 나아갈 방법은 아니다.”
“맞아, 난 널 인정했다. 네가 나보다 강한 검사라는 것을.”
그러나, 납득할 수 없는 부분 또한 존재했다.
– 그렇게 인정하게 되어버리면… 모두 끝나는 거잖아?
“…큭큭, 누가 끝이라더냐? 정말 그렇게 생각해?”
– …….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다만, 자신의 한계가 생겨버린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앞서간 자가 걸었던 길이 갑자기 사라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하는구나.”
– …아!
“길은 언제나 그곳에 있다. 여전히. 언젠가 너도, 나도… 그 길에 도달하게 돼. 이건 거짓이 없는 진리다. 그래….”
신현이 신립을 바라보자, 신립이 빙긋 웃었다.
“길은 여전히, 그곳에 있을 뿐이다.”
“히히히! 아무래도 지금 당장 보여줘야겠구먼, 형님! 강설에게 보여주려던 그것, 준비됐습니까?”
“언제든지.”
“좋습니다!”
스릉…
둘이 동시에 검을 뽑았다.
그리고 산을 향해 휘둘렀다.
후우우욱…
파아아아아아아아앙-!
신현의 검에서 수십 번의 찌르기가 발출되었다.
그것은 모두 하나의 소리가 되었다.
“하아… 하아….”
산은 벌집처럼 구멍이 송송 뚫렸다.
“어떠냐? 이게 신현의 장대비라는 거다.”
신유는 고민했다.
분명, 강우검의 3절 장대비가 맞았다.
하지만, 그가 아는 장대비와는 사뭇 달랐다.
이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 …빠르지 않아. 아니, 빠른데 뭔가….
“히히, 제대로 봤다. 다음은 형님 차례다.”
우르르르릉…
벽력성(霹靂聲).
마치 벼락이 치는 듯한 검술.
그것이 벽력검.
키이잉…
검이 뽑혀 나옴과 동시에 미풍이 불었다.
푸화아아아아아아아아악-!
처음 견식하는, 벽력검의 3절.
거합, 보리 태우기.
– …….
잔뜩 구멍이 뚫린 동산이, 그대로 흩어지고 있었다. 특별한 파괴 없이, 특별한 진동 없이.
마치, 신강의 신풍검처럼 부드러웠다.
– 뭔가… 뭔가가… 달라.
그들의 3절은, 신유가 이제까지 경험한 그들의 검술과 달랐다.
극한의 빠르기도 아니었고, 극한의 무거움도 아니었다.
“다르지?”
“그럴 것이다.”
“그야… 달라져야 했으니까.”
신현이 말했다.
“빠르기만 한 검은 넘어지기 마련이고….”
신립이 말했다.
“강하기만 한 검은 부러지기 마련이다. 알겠느냐?”
– …….
신립은, 이것들을 하나의 문장으로 완성했다.
“모든 길은, 이어져 있다.”
파지지지직-!
파지지직!
신립과 신현이 몸에서 뇌전을 만들어냈다.
익숙한 기운.
저건, 그것이다.
– 폭풍검!
“하하, 맞다.”
“네가 깨달은 폭풍검이지.”
형제들의 무력은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무섭게 앞으로 나아가 있었다.
“나의 벽력검도, 현이의 강우검도… 그리고 강이의 신풍검도… 결국엔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그랬다.
“모두가, 교차로에서 만나게 되어 있어.”
그들은 신유가 말하기 전에는, 폭풍검의 묘리를 드러내지 않았었다. 그렇기에 신유는 좌절하지 않았었다.
“신유, 형제들은 이곳에서 널 기다리고 있었다.”
“성장했구나.”
– 어째서….
“이건 네 검이니까. 네가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검이니까.”
“탐이 나긴 했지만, 너에게 딱 맞는 검이다.”
형제들의 검은 이어져 있었다.
“우리의 검이 곧 형제의 검이고, 그 검은….”
“네 검이다, 신유.”
신유를 사이에 두고, 신립과 신현이 앉았다.
“이제, 이 앞으로 나아가는 일만 남았다.”
형제들의 뜻을 깨달았지만, 신유는 곧바로 답하지 못했다.
– 하지만 이 검은… 강설과 유림에게 패했어. 나는 그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는….
“쯧, 강설을 그리 겪어보고도 모르느냐? 아니, 넌 너 자신조차도 제대로 인지하고 있지 않구나.”
“신유, 강설은 특별한 아이다. 알잖느냐. 네 형, 신강과 닮았다는 것을.”
– 강이 형….
“재능은 뒤떨어지고, 끝없이 실패하는 녀석 말이다.”
그런 자에게 폭풍검은 패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녀석. 어째선지 계속되지 않더냐? 그런 녀석의 길은.”
“넘어져도 털고 일어나기 때문이지. 운명은 그런 자들을 사모할 수밖에 없다.”
다시.
다시.
강설이 수도 없이 외쳤던 다시.
그것이 달랐다.
“재능만으로는 교차로를 지날 수 없어.”
“중요한 것은 그 너머를 상상하는 것이다.”
교차로 너머의 상상.
아직 보이지 않던 길.
어째서였을까.
교차로는 어째서,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폭풍검은 어째서 패배했을까.
아니, 완성조차 불가능했을까.
– 왜지… 폭풍검이 잘못된 건가? 아니면… 강설이 강한 건가?
“둘 다겠지, 이 녀석아.”
“잠시만… 혹시 너….”
신립이 벌떡 일어나, 검술을 선보였다.
파지지지직…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갑작스럽게 발출된 엄청난 양의 기운.
“으윽….”
신립이 머리가 어지러웠는지 흔들렸다.
“아! 그렇군. 너 혹시 방금 형님과 같은 검을 쓴 거냐?”
끄덕….
신립과 신현이 서로를 바라보고 박장대소했다.
“히히히히!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신유, 너답구나.”
“내가 말했지? 이 녀석은 순진해 빠져서는 적힌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을 녀석이라고.”
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신유는 아직은 깨닫지 못했다.
“유아야, 선조께서는 광인이셨다. 아니, 그렇게 알려져 있지. 또한 그 때문에 폭풍검이 실전되었다고 했고.”
끄덕.
“이상하지 않느냐?”
이상하다니?
“미친 자가 어째서 그렇게 상세히 기록을 남길 수 있는지, 또 어째서 우리는 그 기록이 정확할 것이라고 믿는지?”
– …….
설마, 기록이 거짓이라는 말인가.
그렇다면 어째서 그런 기록을 남긴 것일까.
“녀석아, 사유해라. 고민하라고! 선조께서는 우리가 사유하기를 원하셨던 거야.”
일부러 거짓을 말했다.
‘어째서?’
광인이 거짓이라면, 내용도 거짓일 수 있다.
내용을 의심해야 했다.
‘내용을… 의심해야 한다?’
그 순간, 뭔가가 떠올랐다.
부자연스러운 움직임.
광인이 거짓이라면, 내용도 거짓일 수 있다. 아니, 광인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중요한 건 하나다.
“정해진 길 따위를 따르지 말라는 거다. 네 생각대로! 네 판단대로 하라는 거다!”
신현의 고함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생각대로, 내 판단대로.
누군가 떠올랐다.
강설이었다.
강설의 행동, 그의 판단은 자신과는 거슬러 가는 것.
야차보다는, 조력자였던 자신 쪽이 훨씬 믿을만 했을 텐데도 야차를 택했다.
대립하더라도 그것이 옳다고 믿었으니까.
검이 불안정했던 이유도, 서서히 윤곽이 드러났다.
자신이 휘둘렀던 건, 폭풍검이 아니었다.
그에 미치기는커녕 고꾸라지기 일쑤인 엉터리 검술이었다.
‘아… 아아-!’
신유는 부르르 떨며 움직였다.
그리고 힘차게 글씨를 썼다.
– 갈래!
“…….”
– 가야 해! 나, 나!
그가 있어야 하는 곳으로.
그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땅 위에 새겨지는 글씨는, 형제들이 그토록 원하던 말이었다.
그에겐, 신유가 필요했다.
– 강설에게 갈 거야!
* * *
검은 기사가 검을 휘둘러왔다.
후우우우웅…
팟-!
탐색전을 가장한 검.
그럼에도 빠르다.
타아아앙-!
깔끔한 검술로 맞받아쳤다.
야차의 모든 것이 강설에게 있었다. 그러니, 검을 섞는 것 정도는 수월하게 가능했다.
미궁의 주인은 뒤로 물러나 가만히 싸움을 주시했다. 특별한 힘이 있어서 그렇다기보다는, 밤까마귀를 사용하지 않는 이상 전투에 끼어들어 효과를 거두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것이 미궁에 들어왔을 당시의 강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