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40
제39화
쿵…
쿠우웅…
웅장한 울림으로 동굴을 가득 메운 존재는 생김새부터 기괴했다.
마치 고릴라가 직립 보행을 하는 것처럼 거대한 덩치에 털은 새하얬고 그 털이 온몸을 뒤덮고 있었다.
“…설인.”
“설인이라고요? 저게? 그럼 위, 위험한 거 아니에요?”
“그냥 설인이었으면 위험했겠지만, 지금은 정령이 통제하고 있습니다.”
“정령? 어? 정말이네?”
쪽빛, 남색으로 빛나는 어두운 정령이 설인의 머리에 앉아 슈파츠를 바라보고 있었다.
설인은 얌전히 동굴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고.
파지직-!
스으으으…
둘이 설전이 오가는 듯 스파크가 튀었다가 주변이 얼어붙었다가 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한서령이 강설에게 물었다.
“무슨 얘기를 하는 거죠?”
“저도 모릅니다.”
“여태까지는 다 알길래….”
“아마 신경전을 벌이는 것 같기는 한데….”
파지지직!
스으으으…
서리를 내뿜는 설인 위에 앉은 정령.
확실했다. 저 정령은 서리의 정령 프로시였다.
– 슈파츠는 영역이 매우 넓은 정령이에요. 주변에 누가 들어오면 못 견디고 내쫓으러 가죠. 유순한 정령들은 이 꼬마 정령의 요구를 들어주는 편이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도 가끔 벌어져요.
‘그리즈의 말이 맞았군.’
이건 아무래도 영역 다툼인 것 같았다. 강설은 그 사이에 끼어 눈치를 살피고 있었고.
치지직…
강설에게 전류가 흘러들었다.
어느새 대화를 마친 슈파츠가 강설에게 말을 걸어온 것이다.
「프로시는 나빠. 내 말을 안 들어.」
“내가 어떻게 해주길 원하는 거지?”
강설은 슈파츠의 요구에 귀 기울였다.
최악의 경우, 프로시와 전투를 요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슈파츠는 적당한 부탁을 해왔다.
치직…
「프로시의 꼬마와 힘 싸움을 해야 해. 슈파츠는 힘이 약해서 저 꼬마조차 못 이길 거야.」
꼬마라는 단어가 어색하게 들렸지만, 요는 저 설인과 힘겨루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팔씨름?”
치직…
「팔? 맞을 거야, 아마도.」
“조건 하나만 추가하면 널 도와줄게.”
치직…
「조건?」
“프로시를 이기면 프로시도 내 부탁을 하나 들어줘야 해.”
슈파츠가 이 말을 프로시에게 전달했는지, 설인 위에 올라선 프로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치직…
「좋대! 프로시는 꼬마가 너한테 절대 안 진다고 생각하나 봐! 근데… 사실 나도 그래… 미안.」
“그럼 내가 도와줄게. 그리고 나는 내가 직접 나선다고 한 적이 없는데.”
치직…
「응? 그러면? 옆에 저 사람?」
이미 팔씨름이 가능한 얼음 탁자까지 만들어놓은 프로시가 팔짱을 끼고 의기양양하게 이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강설이 손을 휘저었다.
휘리릭…
그의 손에서 검은빛이 일더니 곧, 설인만큼 거대한 덩치의 검은 트롤이 튀어나왔다.
“이쪽도 꼬… 아니, 친구가 대신할 거야.”
프로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다시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 해보라는 뜻이었다.
쟈마드는 강설의 부탁대로 설인의 손을 맞잡았다.
“이딴 한심한 일이나 해야 하다니.”
“지금도 목숨이 오고 가는 순간이야, 쟈마드.”
“흥.”
쟈마드의 어마어마한 크기는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한서령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세, 세상에….”
한서령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두 거인의 근육 가득한 팔만 바라보고 있었다.
슈파츠가 손을 들어 올렸다.
곧, 시작한다는 신호. 그리고.
팟!
그의 손이 내려갔다.
“흐으읍!”
“크워어억!”
그림자와 설인의 기상천외한 힘 싸움이 시작됐다.
“크와아!”
쿠우우웅!
설인은 발까지 구르며 몸을 기울여 쟈마드의 팔을 꺾으려 했다.
킁! 킁!
설인의 코에서 눈에 보일 정도의 콧김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쟈마드는 미동조차 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오히려 강설을 뒤돌아 바라보는 여유까지.
“어이, 이쯤이면 끝내도 되나?”
강설이 어깨를 으쓱했다.
설인의 괴력은 굉장했지만, 바위 어금니의 이레귤러인 쟈마드에게는 턱없이 모자랐다.
“하아!”
쟈마드의 팔이 움찔하며 폭발적으로 꺾였다.
콰아아앙!
푸스스…
얼음으로 만들어진 탁자가 깨져나갔다.
쟈마드의 팔이 설인의 팔을 넘기며 벌어진 일이었다.
“크워어어어!”
힘 조절을 한 건지, 아니면 설인이 튼튼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둘 다 다치진 않았다.
슈파츠는 희색이 만연한 얼굴로 프로시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대충 낌새로 보아 프로시의 패배를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프로시는 놀란 얼굴로 멍하니 쟈마드와 강설을 번갈아 쳐다볼 뿐이었다.
휘리릭…
쟈마드를 되돌린 강설이 프로시와 슈파츠를 바라보았다. 약속을 떠올린 둘 중 슈파츠가 먼저 강설에게 물었다.
치지직…
「내 고민을 해결해줘서 고마워! 그런데 네 부탁은 뭐야?」
스으으…
프로시 또한 같은 눈초리로 강설을 보았다. 강설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같이 가자.”
치직…
스으으…
프로시와 슈파츠는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정령은 약속을 스스로 깨지 못한다. 이건 판데아에서 널리 알려진 상식이었다.
이미 패배하면 강설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약속한 프로시나 고민을 해결해 주면 강설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 슈파츠나 맞이한 상황은 같았다.
치직…
「…약속이니까.」
둘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철컥-
스으으으으…
곧, 두 정령이 삼정으로 빨려 들어왔다.
[정전기의 정령 슈파츠를 생포했습니다.]
[노랑을 확보했습니다.]
[현재 생포한 정령의 종류 : 4]
[삼정에 노랑이 자리합니다.]
[서리의 정령 프로시를 생포했습니다.]
[남색을 확보했습니다.]
[현재 생포한 정령의 종류 : 5]
[삼정에 남색이 자리합니다.]
그리고.
후우웅…
[삼정(三精)이 오정(五精)으로 변화합니다.]
허리띠가 크게 진동하며 오색 빛깔을 뿜어냈다.
“크워어!”
프로시의 꼬마였던 설인이 빛에 놀라 황급히 동굴 안으로 사라졌다.
강설은 설인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변화한 허리띠를 확인했다.
[오정(五精)]
등급 : 희귀
적정 레벨 : 10 – 20
방어력 : 30
내구력 : 140/140
무게 : 0.2kg
다섯 정령의 기운이 서린 허리띠. 그리즈가 설계하고 스노우맨이 완성했다.
기본 능력 : 근력 + 10, 민첩 + 10, 체력 + 10 지혜 +10 지능 + 10
특수 능력 : 정령의 가호(고유) 작용. 정령을 흡수할 때마다 변화한다.
한서령이 강설의 허리띠가 또다시 변화하자 깜짝 놀라며 말을 걸었다.
“허, 허리띠가 또 후우웅하고 울었어요!”
“네.”
“신기하지 않아요? 아저씨 허리띠가 울었다고요!”
“아저씨 아니고, 저도 신기합니다.”
– 울었으니 달래줘야죠!
– 네, 이제 조용히 해주세요.
– 와. 신·기·하·다.
– 어째서 둘 사이는 가까워지지 않는 것일까?
– 스노우맨! 이 정도 철벽이라면 하렘 청춘물 주인공으로도 손색없어!
– 쯧쯧… 젊은 남녀가 너무 내외해도 보는 맛이 없어!
벌써 다섯 마리의 정령이 강설의 허리띠에 스며들었다.
‘노랑과 남색이 가장 호전적인 정령이었으니, 남은 정령들을 생포하는 건 지금보단 편하겠군.’
이제 물방울의 정령인 파랑과 밤의 정령인 보라만 남았다.
정해둔 목표에 거의 다 도달했다는 성취감이 가슴에 차올랐다.
기쁨도 잠시, 강설은 한서령에게 물었다.
“서령 씨는 포획하지 않습니까?”
“아, 가지고 온 정령함이 다 떨어져서… 돌아가실 때 같이 돌아갈게요. 이미 대삼림에 깊게 들어온 터라….”
“그러시죠.”
그녀의 무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미 대삼림의 내부로 들어온 상황이었다.
파티원도 없이 혼자서 이 숲을 빠져나가는 것은 강설이 아닌 이상 위험한 행동이었다.
강설은 그녀를 이해했다.
* * *
강설의 강행군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다만, 이제 대낮부터 공격을 받을 위험이 있는 정령은 딱히 없었으므로 마음은 한결 편한 상태였다.
그는 하룻밤을 보낸 후, 다음 목표로 향했다. 숲에 흐르는 작은 물줄기로.
촤아악… 촤아아악…
꺄르르르…
아주 어린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 위험한 숲에 아이가 돌아다닐 일은 없을 테니, 이 웃음은 정령일 것이다.
“…찾았다.”
다음 목표인 물방울의 정령이었다.
하급 정령들은 대부분 아이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강설은 겉옷을 팽개친 후, 바지를 최대한 말아 올린 다음 시내로 들어갔다. 정전기의 정령 슈파츠를 대하던 조심스러운 태도와는 거리가 먼 친근한 행동이었다.
꺄르르…
촤르륵!
강설이 나타나자 다짜고짜 물을 끼얹는 정령.
그의 몸이 어느새 흠뻑 젖었다.
[물방울의 정령이 장난을 걸어왔습니다. 어떻게 행동하시겠습니까?]
1. 베어버린다.
2. 시내에서 벗어난다.
3. 무시한다.
4. 도전을 받아들인다.
5. [필요 : 정령술사] 복종을 요구한다.
……
“어어…?”
한서령은 강설이 화를 낼 거라 예상했는데, 강설은 오히려 반대로 행동했다.
촤르륵!
첨벙! 첨벙!
강설은 조카와 놀아주는 삼촌처럼, 정령을 물속에 패대기치기도 하고 물을 왕창 끼얹기도 했다.
꺄르르르르!
정령은 그런 강설이 좋은 건지, 쉴 새 없이 웃어대며 달라붙었다.
그렇게 강설의 눈 밑에 검은 띠가 내려올 무렵, 그제야 물방울의 정령도 지친 것처럼 늘어졌다.
“허억… 헉… 같이 갈래?”
끄덕.
물방울의 정령은 만족했는지 웃었다.
딸칵.
정령함이 열리고, 파란 기운이 그 안으로 스며들었다.
[물방울의 정령 포포를 생포했습니다.]
[파랑을 확보했습니다.]
[현재 생포한 정령의 종류 : 6]
[오정에 파랑이 자리합니다.]
* * *
타닥… 탁…
물에 젖은 몸을 말릴 겸, 날이 저물었기에 잠자리를 정할 겸 모닥불을 피웠다.
물에 흠뻑 젖은 강설의 모습을 보며 한서령이 웃었다. 그녀의 웃음은 보는 이를 기분 좋게 했다.
“조카가 있었어요? 잘 놀아주시던데.”
“고아였습니다.”
“아….”
“어린 애들이랑 놀아주는 건 보육원에 있을 때 늘 하던 일이었고요.”
“…죄송해요.”
“죄송할 것까지야. 애들이 제가 놀아줄 때 표정이 너무 무섭다고 운 적도 여러 번입니다.”
“큭… 그게… 푸훕… 고쳐지지는 않았나… 큭… 봐요?”
“아직도 그렇죠? 쉽게 고쳐질 거였으면 진작 고쳤을 겁니다. 아, 여기 코코아.”
강설이 컵을 건네자, 한서령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었다.
“잘 마실게요.”
“별말씀을.”
– 5252 그림 좋은데?
– 아래의 그림은 17세기 네덜란드의 황금기를…
– 되었다! 슬슬 그렇고 그런 분위기인가?
– 소 스윗한 남자!
– 아무리 강설이라도 이 분위기는 못 넘기지 ㅋㅋ
후르릅…
한서령이 코코아를 한 모금 마신 후, 온기를 즐겼다.
그리고 조금 얼굴을 붉히며 강설에게 말을 걸려 했다.
“저… 강설 씨, 앞으로….”
“쉿. 뭔가 옵니다.”
“네?”
“조용!”
“네….”
– 자연인 말벌 아저씨 ㅋㅋㅋ
– 정령 아저씨 등장 ㅋㅋㅋ
– 어 진짜 뭐 오는데?
– 아오, 왜 하필 이때 오냐고 ㅡㅡ
푸르릉… 푸릉…
보랏빛의 정령이 모닥불 근처로 다가왔다.
강설은 정령이 다가오자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보랏빛의 정령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함께 갈래?”
– ㅋㅋㅋ 되겠냐? 처음 보자마자 결혼하자고 하는데
– 이러니 연애를 못하지 ㅉㅉ
– 급발진 진짜;;
– 제발 눈치좀 ㅡㅡ
시청자들은 강설의 행동을 비난했다.
여태, 정령들의 특성에 따라 눈치를 살피고 물어봤었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아 안 좋은 결과가 벌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끄덕.
하지만, 그런 그들의 염려와는 달리 밤의 정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쿠우는 찾기가 어려울 뿐이지, 생포는 제일 쉬우니까.’
– 어, 어라?
– 내! 조와요^^
– 아는 척해서 죄송합니다….
– 잠깐만; 이러면…?
달칵!
휘리리릭…
[밤의 정령 쿠우를 생포했습니다.]
[보라를 확보했습니다.]
[현재 생포한 정령의 종류 : 7]
[오정에 보라가 자리합니다.]
드디어, 정령 주머니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날 것이다.
[일곱 정령의 기운이 모였습니다.]
[오정이 걸작 : 무지개로 변화합니다.]
“어어? 강설 씨! 지금 허리띠가….”
후아아아아앙…
허리띠에서 퍼져나간 일곱 빛깔의 빛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그 빛은 허리띠뿐만 아니라 강설의 몸 또한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