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400
제399화
용화들이 목숨을 빼앗고자 한다면, 지금이 적기였다.
원한을 가진 자라면, 누구든지 길을 막아설 것이다.
아침에 시작하여 저녁에 도착하는 길.
끝에 도달할 확률이 가장 높은 건 신요였다.
가장 냉철한 판단을 했고, 정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듯한 일 처리를 보여왔다.
칸이라는 거대한 기계 장치가 누군가의 손에 다스려진다면 그녀가 최우선으로 꼽힐 것이다.
툭…
툭…
땅을 딛는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걷고 있다는 느낌만 전해졌을 뿐.
그건 모든 용화가 마찬가지였다.
인중로를 시작하기에 앞서, 기록관들이 용화들이 착용해야 하는 주술구를 먼저 착용하고 걸어보았는데 그들이 말하기를 심해로 가라앉는 느낌이라 했다.
단순히 주술구를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만일 용화의 신분으로 걷게 된다면 더 극심한 심리적 고통을 느끼게 될 것이다.
언제 어디서 날아들지 모르는 불의의 칼날.
최소한의 방어조차 갖출 수 없는 상황.
지나간 세월을 돌이켜보며 곱씹게 되는 후회들까지.
인중로의 끝에 도달하는 자들의 정신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모두의 뇌리에, 주술로 짜낸 문장이 도착했다.
– 구원화 낙오. 사망했습니다.
흠칫…
남은 7명의 발이 멈추었다.
사망 소식을 들은 용화 중 한 명의 두려움이 폭발했다.
– 미료화 낙오. 포기했습니다.
이로써 6명이 된 상황.
그러나 지금, 경쟁자들의 상황은 이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이 길의 끝에 도달할 수 있는가였다.
스윽…
스윽…
가장 먼저 다시 걸음을 뗀 것은 태율이었다.
그 뒤를 따라 모든 용화가 다시 걸음을 움직였다.
그 와중에 한 번도 멈춰 서지 않은 이는 없었다.
그 어떤 담대함을 지녔다 한들,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사람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는 이상 머뭇거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휘이이이이…
흠칫!
바람이라도 불면 그 소름 끼치는 감촉에 줄에 바짝 달라붙어 벌벌 떨었다.
당연하게도, 그 우스꽝스러운 행동은 민중들에게 비웃음거리로 전락하게 되었다.
많은 이들에게는 모든 정보가 허락된 세상이지만, 용화들에게는 두려움의 신호만 전해지는 세상이었다.
냄새도, 풍경도, 소리도 없었다.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는 오로지 발을 굴러 땅을 밀치는 것.
남은 줄을 더욱 짧게 만드는 것.
– 변무화 낙오. 사망했습니다.
이번 소식에는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걸음을 더 빨리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다음 소식이 흘러들어왔다.
– 지안화 낙오. 사망했습니다.
우뚝…
다시 멈춰 서야 했다.
한순간에 반으로 줄어든 인원.
그중 태반이 사망이었다.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사망자가 너무 많았다.
저들은 원한을 만들었기에 죽은 것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그저 화풀이 대상이 되어 죽은 것일까.
만에 하나 후자라면, 지금 시련을 포기하는 게 맞았다.
다음 사망자가 자신이 될지도 모를 노릇이니.
하지만… 다시 걸었다.
그저 걸음에 힘을 줄 뿐이다.
“하아… 하아….”
태율이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다지 거친 행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신체가 그만큼 긴장한 것이다. 근육이 삐걱댔다.
그리고…
스륵…
태율에게 사신이 방문했다. 태율은 멈춰 섰다.
느껴졌다, 살의가.
이 앞으로 걸어가면, 사신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태율은 가만히 서서, 살의에 반응하지 않았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살의의 주인은 과격한 행동은 보이지 않았다.
귀가 멀었기에 사신이 하는 말이 들리지 않았다. 눈을 잃었기에 사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태율! 태유우우울! 이 위선자!”
사신은 날붙이를 꼭 움켜쥔 채,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다.
태율이 이대로 걷지 않는다면, 제시간에 용궁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스윽…
그렇기에 발을 옮겼다.
“오지 마!”
스윽…
“걷지 말라고! 너는… 살인자니까!”
태율이 사신의 손을 붙잡았다. 사신은 그 손길을 뿌리치지도 않았다. 절대적 위치에 선 것이 바로 그였기에. 언제라도 태율을 죽일 수 있었기에.
태율이 사신의 손을 잡은 이유는, 무기를 버리게 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사신이 누구인지를 알기 위함이었다.
사신은 떨고 있었다. 남자의 손, 거칠고 메마른 것이 나이는 중년쯤 된 것 같았다.
“…너로구나.”
태율은 말했다.
“네가 온 거구나….”
“너는… 살인자야! 내 가족이… 토창에서 죽었어… 너 때문에! 네가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태율이 칸의 도시, 차파를 순찰하던 중 그의 앞을 가로막았었던 사내.
– 네가… 네가 포기했잖아! 토창에 있는 우리 가족을….
야차 대전 중,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던 토창. 태율은 토창을 구했으나, 그곳의 사람 모두를 구하지는 못했다.
완벽하지 않기에, 사람이기에.
시체가 한 구 생겨나면 원한은 그 배로 생겨나는 법이다.
“분명… 차파에서 마주쳤었지… 날 꾸짖었었어.”
“그런… 어떻게… 날 기억하는 거야….”
태율은 지금 사내의 얘기가 들리지 않았다.
다만, 살의를 기억할 뿐.
떨고 있는 사내를, 태율이 끌어안았다.
“널 기억한다. 미안하구나… 미안해. 내가 완벽하지 않은 탓에… 최선을 다했으나 부족했다.”
“…….”
챙그랑…
날붙이가 길바닥에 떨어졌다.
딱 그 정도 가치의 흉기일 뿐이다.
“날, 용서해 줄 수 있겠나?”
팍-!
태율을 밀치고 사라지는 남자.
태율은, 사신에게서 살아남았다.
모두 태율의 대담함에 전율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그는 울고 있었다.
“미안해… 미안하다….”
그리고 걸었다.
* * *
설홍은 덜덜 떨며 걸었다.
가뜩이나 가느다란 그녀의 몸이 바람에 날아갈 것처럼 흔들렸다.
– 기요화 낙오. 포기했습니다.
이로써, 설홍과 신요 그리고 태율만이 인중로를 걷게 되었다.
모두 죽거나 포기했다.
이제 누군가 죽는다면, 설홍과 가까운 이가 죽거나 설홍 자신이 죽을 것이다.
그것이 너무도 두려웠다.
턱…
발이 어딘가 걸렸다.
‘…빈민가다.’
땅이 고르지 않다는 점, 공기의 흐름이 달라졌다는 점까지.
설홍은 단박에 이곳이 빈민가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꿀꺽…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모두가 순박한 마음을 가졌다고 판단하는 건 빈민가에서 가장 어리석은 행동일 것이다.
사람을 믿는 것.
이곳에서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었다.
퍽-!
‘엇….’
치이익…
퍼어어억…
발이 돌부리에 걸렸다.
앞을 볼 수 없기에, 더욱 심하게 넘어졌다.
“으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
아마도 이 모습을 보고 웃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조롱거리가 되는 것쯤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참을 수 없는 두려움은….
‘놓쳤어!’
줄을 놓쳤다는 것이다.
꽤 성대하게 넘어졌기에, 줄의 위치를 찾아 헤매야 했다.
“아직… 아직이야… 줄만 찾으면… 찾을 수 있어. 찾을….”
푸화아아아아악-!
그 순간, 심장이 멎어버릴 것 같은 충격이 정수리부터 시작되었다.
“어… 으어어….”
차가운 액체와 뒤섞인 무언가.
그리고 몸에 묻은 부스러기들.
이건 오물이었다.
확실했다.
눈이 보이지 않아도, 귀가 들리지 않아도, 향기가 느껴지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오물을 뒤집어쓴 것이다.
“으… 으으으….”
오물통을 바닥에 내팽개치는 누군가.
“으하하하하하하!”
“저것 봐!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호위가 없으면 저렇게 바닥이나 기어 다닐 운명이었다고!”
“사람은 모두 다 똑같아! 알겠냐, 이 얼간이들아!”
설홍에게는 들리지도 않을 말들을 잔뜩 쏟아내는 자들. 빈민가의 악마들이다.
누구도 설홍을 돕지 않았다.
“흐… 흐으….”
울지는 않았다.
서러운 게 아니라 두려운 것이기에.
빈민가의 악마들은 설홍에게 오물을 뒤집어씌운 다음, 떠났다.
“오늘을 기억해라, 설홍! 오물을 뒤집어쓴 사람의 모습이야말로 가장 자연스러우니까! 널 지켜볼 거야!”
날이 추웠다.
젖은 몸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으흑… 흑….”
도와줘.
도와줘, 강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해?
끊임없이 자신을 파고드는 그녀. 그러나, 이미 떠난 이에게서 해답이 돌아올 일은 없었다.
줄은 아무리 찾아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빈민가에 털썩 널브러진 그녀는 일어나지 못했다.
누군가 또 다가왔다.
스윽…
움직임이 느껴져 두려움에 몸을 잔뜩 움츠렸다. 설홍의 모습은 아름답지 못했고, 추했다.
바닥에 떨어진 꽃잎처럼, 짓밟혔다. 하나, 그것이 꽃을 그리워하는 자들의 발길마저 끊지는 못했다.
스윽…
설홍의 목에 무언가 걸쳐졌다.
뭔가 하여 손으로 매만지니, 꽃이었다.
꽃으로 만든 목걸이였다.
“포기하지 마세요, 설홍.”
“힘을 내!”
또다시 들리지도 않을 말.
설홍은 냄새나는 몸으로 주변을 더듬었다.
그리고, 일어섰다.
지금 정확히 어디에 서 있는지도, 줄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그야 당연한 것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어찌 완벽하겠는가.
“도와주세요!”
쩌렁쩌렁한 그녀의 외침.
빈민가에 늘어선 사람들은 당황했다. 그녀가 이렇게 큰 목소리로 민중의 소리를 잠재울 줄이야.
“줄… 줄이 어딨는지 모르겠어요. 이대로라면 용궁으로 갈 수 없어요. 내가… 미숙해서 줄을 놓치고 말았어요. 기회를 주세요! 줄을 다시 잡으면! 이번엔 다시는 놓치지 않을 자신 있어요!”
“…….”
“기회를… 기회를 주세요…. 저를 도와주세요….”
그녀의 외침에 다들 멈칫했지만, 이어진 행동은 즉각적이었다.
짝-!
짜아악-!
누군가 줄 근처에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소리가 들릴 리 없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가치한 행동일까.
짜아아악-!
짜아아악-!
박수가 점차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줄 가까이에서 동시에 박수를 쳤다.
그러자, 하나의 흐름이 생겨났다.
공기를 울리는 진동이 설홍에게 전해졌다.
덥석-!
설홍이 더듬더듬하다 줄을 붙잡았다.
“힘을 내!”
“걸어가!”
설홍이 중얼거리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빈민가를 빠져나온 그녀를 반긴 것은, 아까의 박수보다 더 큰 진동이었다.
두우우웅…
두우우우웅…
이것은 또 무엇인가.
몸 전체를 떨어 울리는 듯한 감각.
‘…종?’
거대한 종을 후려쳐 만들어지는 진동이 설홍에게 전해졌다.
‘대체 무엇 때문에….’
두우우우우우웅…
두우우우우우웅…
종의 흔들림이, 그녀의 내면을 뒤흔들었다.
‘아….’
이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다.
자신에게 따라오라 말하는 것이다.
종소리를 향하여.
그렇다.
떠나간 자들을 아쉬워하기엔, 이미 너무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인 그녀였다.
주변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는 듯했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무어라 외치는듯했지만, 당연히 들리지는 않았다.
어둠에 갇힌 채로 길을 걸어왔지만, 그 끝에선 외롭지 않았다.
저벅…
저벅…
길의 끝에 도달하자, 누군가 안대를 벗겼다.
스르륵…
삐이이이이…
소리가, 풍경이, 향기가 돌아왔다.
“용이 되소서!”
데에에에에에엥…
“용이 되소서!”
데에에에엥…
거대한 종이 그만큼 거대한 수레에 실려 마지막 길까지 함께했다.
고약한 오물 냄새가 꽃의 향기를 모두 지웠다.
그리고, 사람들이 손을 잡고 둥그렇게 원을 만들어 설홍을 보호하고 있었다.
“아아….”
설홍이 말을 잇지 못하자, 용궁에 모인 인파와 이미 용궁 너머에 있는 태율과 신요가 유심히 그녀를 쳐다보았다.
기록관이 물었다.
“사망화, 인중로의 끝에 도달했구나. 이 문을 넘으면 너는 자격을 얻을 것이다.”
“…….”
“용이 될 자격을! 너는 그 무게를 마땅히 각오하였는가?”
오물이 굳어 얼굴이 갈색으로 물든 그녀가 히죽 웃었다.
그리고 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그녀가 용궁을 넘었다.
그녀는 비늘도 없고 불도 뿜지 못한다. 날개도 없으며 날씨를 다스리지도 못한다.
그저 오물과 꽃을 동시에 뒤집어쓴, 한낱 인간이었다.
그럼에도…
“용이 되겠습니다.”
용이 되려 한다.
“용이 되소서!”
“용이 되소서!”
데에에에에엥…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인중로라는 사람의 강을 건넌 자는 모두 3명.
태율과 신요, 그리고 설홍까지.
이 중 후계서열 최하위부터 용쟁을 치러 용이 된 자는 설홍뿐이었다.
사망화는 마침내, 진흙 속에서도 꽃을 피웠다.
대제국 칸에 3인의 공왕(公王)이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