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402
제401화
방휴의 사망은 꽤 가볍게 처리되었다.
이른 노환과 평소 앓던 지병으로 하혈을 한 후, 그대로 사망했다는 소식.
그리고 많은 이들이 별다른 의심 없이 그 소식을 흘려보냈다.
하나, 진상을 알고 있음에도 침묵하는 자들 또한 존재했다.
모두 한날한시, 물밑에서 공작을 벌이며 등룡제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밝았다.
세 명의 인간이 용이 되는 그날이.
등룡제가 찾아왔다.
뿌우우우우…
뿌우우우우…
성대한 관악기 소리.
두둥…
두우우웅…
웅장한 북소리까지.
중요한 행사이기에, 새로운 용들에게 밉보이고 싶은 마음은 없기에 모두 악기 소리에 숨어 침묵했다.
전통에 걸맞은, 격식을 차린 행사.
그러나, 이런 모습이 칸의 전부는 아니었다.
기이이잉…
철컹…
기이이이이잉…
철컹…
“저, 저게….”
“신식 거병까지 때맞춰 선보이려나 보군.”
최근 개발된 새로운 거병.
토군 4호기.
하나만 하더라도 엄청난 위용을 선보이지만, 지금 행사에 동원된 토군 4호기는 무려 8기나 되었다.
이 8기가 동시에 움직인다면, 근방의 소국 따위는 하루아침에 멸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위세가 대단하군.”
“그러게….”
전통과 문명의 이기가 동시에 공존하는 제국이 바로 칸이었다.
길게 늘어선 궁궐에 거대한 거병이 자리해도 어색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없었다.
쿵!
쿵!
쿵!
거병의 밑으로 열 맞추어 늘어서는 병력.
등룡제를 위해 잠시 최전방에서 물러나 행사에 참여한 대장군도 함께였다.
그 덩치도 압도적이었지만, 일평생 전장을 전전한 자의 기도가 대단했다.
드넓은 용궁을 가득 메울 정도로 많은 사람이 등룡제에 참석했다. 칸은 압도적인 힘을 내비쳤고 모든 게 좋았다.
딱 한 가지.
우르르릉…
흐린 날씨만 빼고.
이제, 행사의 주역이 등장할 차례였다.
뿌우우우우…
관악기 소리와 함께, 3명이 동시에 걸어왔다.
용포에 면류관을 쓴 자들.
이들이 새 시대의 칸을 이끌어 나갈 용이었다.
가운데에 선 태율이 양옆의 다른 이들보다 살짝 앞서 있었는데 그 모습이 퍽 보기 좋았다.
이 모습을 제국민들이 보았다면 환호성을 내질렀을 것이다.
하지만 왕족들에겐 엄숙한 자리이니만큼 관악기의 음률을 대신할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들은 천천히 걸어가다가 도중에 멈춰 섰다.
애초에, 더 다가가지 않을 생각이기도 했고 행사도 그렇게 진행되었다.
“용제 폐하 입관이오!”
설홍을 포함한 세 명의 공왕 맞은편으로, 홍천이 스스로 걸어들어왔다.
한동안 가마에 올라탄 채로만 움직였던 그.
어딘가, 건강이 부쩍 좋아진 것처럼 보였다.
휘장으로 햇빛을 가린 그가 자리했다.
후웁…
“용제 폐하 만만세!”
누군가의 선창으로 시작한 용제 칭송.
언제나처럼 용제의 치세를 칭송하는 만세를 후창하는 용화들.
“용제 폐하 만만세!”
“용제 폐하 만만세!”
그러나, 입도 뻥긋하지 않는 자들도 분명 존재했다.
그들은 서로에게 눈짓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용제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쓴 괴물이, 뻔뻔한 낯짝을 하고 휘장 뒤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용화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설홍과 태율, 신요에게서 포섭된 자들이었다.
그들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등룡제의 규모와 웅장함에 떨고 있겠지만, 그들은 곧 다가올 순간을 위해 떨림을 아껴두었다.
오늘, 많은 것들이 뒤바뀔 것이다.
휘익…
홍천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자가 손짓하자, 행사가 계속되었다.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나왔는지 모르는 지루한 연설문을 낭독하고, 또 그것에 감격하는 척 멋들어진 대사를 중얼거리고…
실상을 아는 자에겐 인형극이 따로 없었다.
인형들이 허울 좋은 무대 위에서 춤을 춘다.
“축포 준비!”
기이이이잉…
철컹…
기이이이잉…
철컹…
8기의 거병이 모두 하늘을 향해 한쪽 팔을 세웠다.
엄청난 양의 장약이 실린 무기. 거병은 걸어 다니는 포대였다.
“잠깐!”
태율이 치렁한 소매에도 개의치 않고 손을 들어 올렸다.
일순, 축제에 정적이 맴돌았다.
노래가 전부 멈추었다.
휘장 너머의 존재가 흥미롭다는 턱을 괴었다.
“축포에 앞서 감히,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휘젓는 손.
뜻대로 하라는 의미였다.
태율이 신룡들을 대표해 소리쳤다.
“칸이여, 불과 꽃의 제국이여! 용의 피로 세워진 역사, 그 영광된 길은 계속하여 이어질 것이리!”
뭔가, 이상했다.
철컹…
철컹…
거병의 손이 단상을 향했다.
“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악!”
미리 알고 있던 시비들이 서둘러 물러났고 그 자리에는 홍천의 껍데기를 쓴 누군가만 남겨졌다.
“무슨!”
“반역이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태율과 설홍, 그리고 신요가 소리쳤다.
“개인은 집단의 하나 된 힘을 이길 수 없다. 칸의 역사와 함께 사라져라, 화그무여!”
“격발!”
후오오오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일제히 터져 나오는 폭음.
거병엔 등룡제를 위한 축포가 아닌, 철저히 살상을 위해 만들어진 무기가 장착되어 있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궐이 통째로 날아가 버릴 정도의 위력.
“크으으윽….”
“바람이….”
엄청난 강풍이 밀어닥쳤다.
귀에서 피가 흐르는 자들도 드문드문 존재했다.
어째서 등룡제가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사태를 전해 듣지 못한 용화들은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치이이이이이이이…
주춧돌은커녕 시커먼 흙만 보이는 구덩이.
그리고 그 안에 들끓는 액체.
바위가 녹아 만들어진, 뜨겁다는 말로는 모자란 온도의 액체였다.
미리 이야기를 맞춰둔 칸의 대장군, 지명이 구덩이를 훑어보고는 중얼거렸다.
“…잘 가시게, 악룡이여.”
뒤돌아서는 지명.
그리고 그를 보며 경악하는 용화들.
“대장군!”
피싯…
지명의 고개가 돌아갔다.
뒤를 돌아보기 위함이었으나, 끝내 빙글 회전하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래, 꽤 화려하게 준비했구나. 나의 자손이여. 몇백 년이 지나도 발전이 없는 건 여전하다만.”
으득…
티끌만 한 상처도 없이, 그가 나타났다.
홍천… 아니, 화그무가.
절절 끓는 용암 따위는 심드렁한 눈으로 훑어보았을 뿐, 옷 한 자락조차 타지 않았다.
기이이이잉…
기이이이이잉…
거병의 전면이 전부 화그무를 향했다.
후우우웅…
화그무가 손을 뻗자, 어디선가 거대한 창이 날아왔다.
홍천의 활동 시절 애병이었던 물건.
척…
“오랜만이군.”
후아아아아아아앙-!
끽…
끼기긱…
홍천이 허공을 휘젓자, 거병들의 다리가 짚단처럼 쓰러졌다.
콰아아앙!
콰아아아아앙-!
“요, 용제시여….”
“용제시여! 이게 무슨….”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자들을 향해 태율이 일갈했다.
“저자는 홍천이 아니다! 화그무다! 악룡이 홍천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것이다!”
그 말에 용화들이 벼락을 맞은 듯 눈이 커졌다.
“큭큭….”
콰르르릉…
쏴아아아아아…
번개가 치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화그무가 권능 : 의도하는 하늘을 사용합니다.]
[화그무가 날씨를 조율합니다.]
[현재의 날씨는 뇌우(雷雨)입니다.]
[폭풍우를 동반한 날씨가 화그무의 힘을 북돋습니다.]
[화그무의 근접 능력 숙련도가 대폭 상승하고 근접 무기에 속성력을 부여합니다.]
“꽤 성대하게 준비했군. 하나… 한 가지 오판을 했구나. 나는 개인이 아니다.”
후웅…
후우우웅…
거창이 붕붕 휘돌았다.
“아니… 인간이 아니다.”
촤르르륵…
화그무의 피부에 비늘이 뒤덮였다.
파지지직…
붉은 눈의 용인(龍人)이 우뚝 서 있었다.
설홍과 태율 일행, 그리고 사태를 깨달은 용화들이 눈빛을 교차시켰다.
불완전했다, 화그무의 부활은.
그가 완전히 부활하지 못했다는 것은, 아직 쓰러트릴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고.
“역시… 몸을 되찾지 못했구나!”
“쓰러트려라! 화그무를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해!”
“와아아아아아아아!”
수많은 병력과 장수, 그리고 용석들이 한데 어우러져 화그무를 향해 짓쳐 들었다.
콰아아아아앙-!
화그무가 강하게 진각을 밟자, 우르르 무너져 내리는 지반.
그는 달려들던 병력 태반을 그 한수로 무력화시켰다.
그뿐이 아니었다.
“몸? 아… 그것을 말하는군. 좋다. 보여주지.”
휘오오오…
화그무의 손에서 붉은 기운이 휘몰아쳤다. 대단히 끔찍한 기운이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선물한 것을 되찾아올 때로구나. 지난 세월, 너희 안의 열매가 영그는 날만을 기다려왔지.”
화그무가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커억….”
“으윽….”
동시에 심장을 부여잡는 모든 용화.
[화그무가 혈청(血淸) 흡수를 사용합니다.]
[용의 피를 거두어들입니다.]
[모든 용의 피를 회수하면, 40%의 생명력으로 부활합니다.]
풀썩…
한쪽 무릎을 꿇은 건 태율도 마찬가지였다.
화그무는, 그의 진정한 부활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찌릉…
상황을 반전시킨 건 아주 작은 소리였다.
찌르릉…
방울 소리였다.
방울 소리가, 모든 것을 어그러트렸다.
[광야령을 사용합니다.]
[모든 악한 기운이 사그라듭니다.]
……
설홍의 손에, 방울이 들려 있었다.
[혈청(血淸) 흡수가 중단됩니다.]
화그무가 설홍을 노려보았다.
“…감히!”
그 순간, 자유를 되찾은 모든 용화들이 설홍을 중심으로 방진을 만들었다.
“설홍을 지켜라!”
“화그무가 다가오지 못하도록 해!”
“이때다! 그를 포위해!”
찌릉…
찌릉…
방울 소리만으로 자유를 되찾은 용화들이 그녀의 방울 소리를 지켜야 한다는 걸 한순간에 알아차린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반대로, 화그무에게도 적용이 되었다.
그녀만 제압하면, 모든 사태가 끝나리라.
세상은 다시금, 악룡의 손에 쥐어질 것이리라.
인간이 짜낸 거미줄은 어찌나 단단해 보이는지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없어 보였다.
그러나, 상대는 용이었다.
“우우움-!”
파지지지직…
콰아아아아아아앙-!
“크아아아악!”
“커허어억….”
일격에 터져나가는 방진.
“도망쳐! 설홍!”
찌릉…
설홍과 화그무의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몸이 굳는 설홍.
바로 그때.
팟-!
누군가 설홍을 낚아채며 내달렸다.
치우였다.
“설홍, 방울을 멈추지 마.”
“응!”
찌릉…
찌르릉…
“놓칠 줄 아느냐!”
홍천의 앞을 막기 위한 수많은 저지가 이어졌다.
푸화아아악-!
“꺼어어….”
콰르으으으으응!
“으아아아악!”
그들은 벼락에 그슬리고, 거창에 베이며 막아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치우는 점차 설홍을 구할 수 없을 거란 사실에 절망했다.
바로 그때, 외딴 누각의 상층에서 이곳을 내려다보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누군가와 눈빛을 교차한 치우가 말했다.
“설홍, 부탁해. 살아있어 줘.”
“치우!”
“가! 너한테 달렸어! 네가 멈추면 칸은 끝이야!”
휘이익-!
치우가 설홍을 담장 너머로 내던지고 뒤돌아섰다.
그가 가는 길은 죽음의 길이다.
“안 돼, 치우!”
“광야령을 빼앗기면 안 돼! 가! 멈추지 마!”
으지지직…
온몸에 털이 돋아난 치우가 다른 이들에게 합류하며 화그무를 향해 돌진했다.
카아아아앙-!
“…호.”
화그무의 일격을 처음으로 막은 자는, 치우가 유일했다.
푸우우욱…
“큭… 크으으윽….”
그러나, 기적은 없었다.
거창이 한차례 치우의 배를 꿰뚫었다가 빠져나왔다.
풀썩…
온몸에 기운이 빠져나가 쓰러지는 치우.
후두둑…
화그무가 거창의 피를 털어내며 설홍을 뒤쫓으려 했다.
덥석…
치우가 바닥을 기며 화그무의 발을 붙잡았다.
퍼어억-!
그는 화그무의 발에 차여 날아갔다. 그리고 정신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계속 중얼거렸다.
“살아야 해… 설홍… 반드시… 살아야… 해….”
* * *
“허억… 허억….”
찌르응…
찌릉…
광야령은 계속해서 울렸고, 화그무는 그만큼 속도를 내어 설홍을 추격해왔다.
거리가 점차 좁혀지고 있었다.
어느새, 둘 사이의 거리가 화그무의 모습이 보이는 거리까지 좁혀졌다.
후웅…
“방울을 내….”
그 순간, 설홍은 자신의 몸이 붕 뜬다고 느꼈다.
누군가 또 그녀의 몸을 화그무에게서 낚아챈 것이다.
설홍의 몸을 잡아챈 건, 다름 아닌 진려였다.
“빌어먹으으으을!”
그녀는 소리치며 내달렸다.
정말로, 정말로 빨랐다.
그녀는 등룡제에 관심이 없었고 용궁 외곽에 숨어 잠을 청하다 폭음에 깨어나 어슬렁거리다 도망치는 설홍과 치우를 보고 뛰어든 것이다.
누각에서 치우와 눈빛을 교환한 것도 그녀였다.
“진려!”
찌릉…
찌르릉!
“도망치면 되는 거죠?”
설홍이 세차게 끄덕였다.
“…응!”
용에게서 벗어나 다음 계책을 짜낸다. 제국의 동량인 용화들이 살아있기에 가능한 일.
화그무도 이미 발을 빼기엔 늦었다. 광야령을 내버려 두자니 후에 문제가 될 것이고 이대로 다른 피부터 회수하자니 결국 나중에 혈청을 토해내야 했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설홍을 이 자리에서 붙잡아야 했다.
파아앗-!
파아아아앗-!
궐을 넘나드는 그들.
“쿤나! 나를 더 빠르게 해줘!”
– 몸에 무리가 갈 것이다.
“괜찮아!”
짤랑…
돈주머니를 허공으로 던지자, 사라졌다.
으지직…
진려의 허벅지가 크게 부풀었고 도주에 속도가 붙었다.
파지지지직…
콰아아앙-!
그녀가 있던 자리를 벼락이 치는 거창이 내리찍었다.
“허억… 허억….”
몸에 큰 부담이 찾아왔다.
하필 이때 떠오르는 건, 치우의 말이었다.
– 노력은 습관이야. 그렇게 게으르기만 해서는 나중에 노력할 때가 와도 방법을 몰라 헤맬걸? 그러니까 방법을 알려줄게.
으드득…
치우는 죽었겠지?
죽었을 거야.
죽은 자의 말은 들을 필요 없어.
“으아아아아아!”
– 저는 나중에 뭔가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 노력을 아껴두고 있는 것 같아요. 분명 그럴 거예요!
증명해야 해.
증명하겠어!
눈에서 북받친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비와 눈물이 시야를 가렸다.
또 따라잡혔다.
‘…쿤나, 저 멀리 날아가게 해줘.’
쿤나, 저 멀리 날아가게 해줘.
– 대가는?
돈은 없다.
아니, 돈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팔, 왼팔을 가져가.’
푸화아아아악-!
“진려!”
거리가 다시 저만치 벌어졌다.
그러나 아주 먼 거리는 아니었다.
찌르릉…
찌르르릉…
“허억… 허억… 절대로 멈추지 마세요.”
“…….”
“이 진려, 태어나 처음으로 노력이란 걸 하고 있으니까… 허억… 멈추지 마… 비싼 값이라고.”
찌릉…
찌르릉…
역시나.
순식간에 따라잡히고 만다.
진려는 하나의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랬군요. 용이여.’
– 무심한 듯 보이지만, 네가 용기 있는 자임을 안다.
용기 있는 자, 진려.
– 네가 해야만 하는 일을, 해야만 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진려가 지붕과 지붕 사이를 뛰며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쿤나, 내 목숨을 가져가.’
– …….
‘설홍을 안전하게 해줘.’
– 그것은 거래인가?
‘…부탁이야.’
– …거절한다. 나는 네게 줄 게 없다.
최후의 발악마저, 거절당했다.
순간, 힘이 풀린 진려가 지붕을 뚫고 바닥으로 추락했다.
콰직…
콰지지지직…
“빌어먹을… 빌어먹을….”
뚫린 지붕으로, 누군가 뛰어내렸다.
화그무였다.
쿠우우우웅-!
진려는 다시 뛰어 건물을 벗어났다.
콰아아아아앙-!
건물이 순식간에 터져나갔다.
앞으로 2초 안에, 목숨을 잃을 것이다.
‘하나….’
그리고.
‘둘.’
이상했다.
어째선지, 죽지 않았다.
찌릉…
설홍의 손이 펴졌다.
광야령은 중요한 물건이었다.
용이 그녀에게 말했었다.
– 시기를 잘 헤아려라. 필요한 때에, 네 손에 있어야 할지니.
이보다 더 정확한 때를 헤아릴 순 없었다. 지금, 그런 물건을 쥔 손이 펴지고 있었다.
– 소녀에게 지금 무엇을 주신 겁니까?
그녀에게서 광야령을 거두어간 자는, 화그무가 아니었다.
– 허허허…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오를 시간일지니.
진려가 중얼거렸다.
“히히… 쿤나, 그렇구나… 이미….”
쿤나가 진려의 청을 거절한 이유.
설홍이 이미 용에게서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찌르릉…
광야령이 수실에 묶여 검의 손잡이에 매달렸다.
검이 말했다.
【오! 간지러, 이거.】
“조금만 참아.”
설홍이 넋을 잃은 듯 중얼거렸다.
“어째서….”
“비를 맞으면, 곤란합니다.”
– 비를 맞으면, 곤란합니다.
“어떻게… 돌아온 거야?”
“돌아오기로….”
3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흘러, 서로라는 존재의 형상이 지워질 때쯤.
“약속했으니까요.”
콰르르르릉-!
강설이 돌아왔다.
화그무의 앞에 선 그가 말했다.
“기어코 깨어났구나.”
“…넌 누구지?”
강설이 씨익 웃었다.
그는 동방에 내려오는 전설을 끄집어냈다. 화그무가 가장 두려움을 느낄 만한 문장이었다.
“용이여… 내가 왔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