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411
제410화
사내의 기억은 어두컴컴한 암실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곳엔, 엽궐련을 입에 문 두꺼비 같은 사내의 뒷모습만 보이고 있었다.
철컥…
후우우…
“미셴의 여식 하나 숨죽여 처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
“…물론입니다. 오히려 저 혼자서도….”
“…….”
툭툭…
뭐가 언짢은지 의자의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는 남자.
“자신감은 좋지만, 네 만용이 일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지.”
“그…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실수 없이 처리해야 해. 카스트랭의 이권을 쥔 녀석들이 겁에 질려 스스로 도망치게 만들어야 한다고.”
“명심하겠습니다.”
두꺼운 몸과 두꺼운 손, 그리고 손가락에 낀 반지.
반지의 상징은 말라죽은 나무 같아 보였다.
“…요이, 따라가라.”
“…네.”
그들의 수장으로 보이는 자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어둠 속에서 여인이 나타났다.
얼굴을 가렸기에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평범한 기세가 아니었다.
치직…
치지지직…
명령과 꾸중을 동시에 듣고 있던 사내의 시선이 천장으로 향했다.
“허억….”
그곳엔, 용의 눈이 있었다.
치지직…
치지지지직…
곧, 공간이 깨져나갔다.
[용혈안의 첫 번째 능력이 밝혀집니다.]
[절대적 공포가 확인됩니다.]
[제압당한 상대가 용혈안의 시선에 노출될 경우, 공포에 압도당합니다.]
[절대적 공포는 상대의 기억을 끄집어냅니다.]
[이 과정에서 얻게 된 정보는 돌발 모험 및 숨겨진 모험의 단초가 될 수 있습니다.]
[절대적 공포는 같은 대상에게 단 한 번 발동합니다.]
[매우 높은 확률로 압도당한 상대에게 상태 이상 : 절대적 공포를 유발합니다.]
[상태 이상 : 절대적 공포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해소할 수 없습니다.]
“허억… 허억….”
기억을 들킨 상대가 숨을 헐떡이며 침을 흘렸다.
[돌발 모험 ‘도시의 밤’의 추가 정보를 얻었습니다.]
[조건을 충족할 경우, 돌발 모험이 발생합니다.]
“끄으으윽… 끄으윽….”
“하아악….”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자들.
“무슨… 이게 무슨….”
“실비아 님!”
알버트가 실비아를 부축했다. 자꾸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게 되는 실비아.
강설이 동공을 되돌렸다.
그에 따라 그의 사나운 기운도 점차 갈무리되었다.
‘아직 통제하기가 어렵네.’
기운과 위엄 모두 필요할 때 퍼트릴 수 있는 수준은 되었지만 세세하게 조율하는 것은 시간이 걸릴 듯했다.
강설이 중얼거리는 남자에게 물었다.
“너희는 누구냐?”
“요이가 오… 올 거야.”
“…뭐?”
“주, 죽기 싫어….”
그때, 마치 사내가 내뱉은 말이 예언이라도 되는 듯 조금 떨어진 건물에서 빛이 번쩍였다.
철컥…
[요이가 참았던 숨을 사용합니다.]
[숨을 멈췄던 시간만큼 명중률에 보정을 받습니다.]
[요이가 배제를 사용합니다.]
[투사체가 잠시 주변 환경 요소를 무시하고 경로대로 나아갑니다.]
보였다.
팔꿈치에 장총을 올려놓고 이쪽을 노리는 움직임이.
“실비아!”
기이이이이잉…
콰아아아아아앙-!
스릉-!
강설은 머뭇거리지 않고 검을 뽑았다.
파직…
[거합 : 산 휘감기를 사용합니다.]
[임의의 방향으로 검을 휘둘러 상대를 제압합니다.]
[마무리 동작에 적중당한 적은 끌려오거나 밀려납니다.]
[끌려온 적은 3초간 50%의 방어력이 감소되며 밀려난 적은 3초간 50%의 공격력이 감소됩니다.]
후우우웅-!
탄환이다.
콩알만 한 탄환이 잔뜩 부풀어 올라있는 게 보였다.
치이이이…
그 콩알이 지금 폭발 일보 직전이라는 것도.
후우웅…
검의 풍압이 그것을 빨아들인 후…
끼기긱-!
투우우웅-!
하늘로 쳐내려 했다.
‘…무리.’
이미 폭발을 시작했다.
이렇게 되면, 실비아와 알버트를 지키는 것에 집중해야 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꺄아아악!”
“무, 무슨 일이야!”
“폭음이다! 뭐가 터졌어!”
곧 밤거리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암살자들이 폭발에 휘말렸다.
그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휘오오오오오오…
연기를 휘감아 하늘로 날려 보내는 강설.
일을 마친 또 다른 암살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건물을 떠나려 했다.
“일 처리가 과격하네.”
“…….”
어느새, 강설이 폭발을 일으킨 암살자의 위치까지 도달해 있었다.
‘…평범한 녀석은 아닌데.’
그리고 눈앞에 선 여인의 모습이, 아까 전 암살자의 기억에서 읽었던 요이라는 여인과 똑같았다.
철컥…
한 손으로 커다란 장총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요이.
어느새 총구가 강설을 향했다.
“…해보게?”
끄덕…
“그러든지.”
[요이가 고슴도치를 사용합니다.]
[근거리 사격이 영거리 사격으로 취급됩니다.]
콰아아앙-!
폭음과 연기 속에서 강설이 나타났다.
요이는 당황하지 않고 대응에 나섰다.
휘릭-!
팍-!
가녀린 손이 강설을 노렸다.
강설이 코웃음 치며 그녀의 육탄전을 맞받아쳤다.
파아악-!
팍!
요이는 제법, 근접전에 능숙했다. 움직임에 실린 힘도 그럭저럭 쓸 만했고.
저격수보다 도리어 숙련된 격투가라고 해도 믿을 정도.
[요이가 이판사판을 사용합니다.]
[10초 동안 공격력이 40% 상승하는 대신 사격 능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파아아악-!
파아악-!
그러나, 맥빠지는 소리만 계속해서 들려왔다.
퍼어어어어억-!
뿌드득…
꽤 깊게 들어간 듯한 소리.
“우욱….”
이건 강설의 주먹이 요이의 늑골을 부러트린 소리였다.
휘리리릭-!
뒤로 재주를 넘어 건물 밑으로 떨어지는 요이.
‘재생 쪽 능력인가?’
뼈가 부서지자마자 재생되는 듯한 감각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푸슈우웃-!
갈고리를 이용해 건물 너머로 순식간에 건너다니는 요이.
철컥…
그녀의 총구가 강설을 노렸다.
하지만 충분히 대비하고 있는 이상, 강설이 당해줄 리가 없었다.
파아아악-!
“으윽….”
강설이 던진 단검이 요이의 손가락을 수수깡 자르듯 우수수 자르고 지나갔다.
푸쉬이이이…
[요이가 비상 탈출을 사용합니다.]
[전투 중에 단 한 번, 안전한 지역으로 이동합니다.]
[비상탈출은 하루에 단 한 번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퍼엉-!
검은 연기가 터져 나오고, 요이가 사라졌다.
그녀의 기운 또한, 사라졌다.
저격수의 손가락을 모두 잘랐으니 승리한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틀린 말이었다.
‘분명히 재생했지, 손가락까지.’
이해할 수 없는 신체 재생력.
강설도 초인적인 재생력을 지녔지만, 그에 미치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재생력을 지닌 자를 만나게 될 줄이야.
‘실력도 그만하면 쓸 만하고… 한패처럼 보였는데, 누구지?’
강설이 복잡한 생각을 해결하지 못하고 돌아간 현장은 떠들썩했다.
도시 한 가운데에서 폭탄이 터진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심지어 십수 명에 달하는 암살자들의 불에 탄 시체도 나뒹굴고 있었으니.
실비아가 도시의 경비대에게 둘러싸여 한참 동안 해명하고 있었다.
* * *
며칠 뒤.
금으로 번쩍이는 이를 드러내고 과일을 씹던 남자가 어둠 속을 향해 물었다.
“트리올라 쪽은?”
“해결했습니다. 사지를 절단해 상자에 담아 저택으로 보냈으니 한동안 조용해질 겁니다.”
“잘했다. 다음.”
스윽…
앞으로 한 발 나오는, 앞서 대답한 사람과는 또 다른 여인.
“큘레아 쪽은 카스트랭 사업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손을 댔나?”
“이전에 경고장을 보내고 잠든 사이 영애의 장발을 단발로 만들어준 적은 있지만… 직접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큭큭… 장난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서 그쪽도 목숨을 건졌군. 우리도 귀찮음을 덜었고 말이야.”
끄덕이고 넘어가는 남자.
“다음.”
사내의 말에 얼굴에 큰 흉이 진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보튼은, 어떻게 됐지?”
“보튼의 일가족을 고문했습니다.”
“반발은 없었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리했습니다.”
“전부?”
“장남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럼 됐어. 처리된 거겠지?”
“예.”
두꺼비는 포도를 한 움큼 집어 입에 털어 넣고 씹었다.
으직…
으지직…
피처럼 입에서 흘러내리는 과즙.
“요이. 네 차례다.”
“……예.”
강설과 충돌했던 저격수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의 정도는?”
“심각합니다.”
콰앙-!
남자가 탁자를 후려쳐도 요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강자가 미셴의 후계자를 지키고 있습니다.”
“용병인가?”
“아닙니다, 확인했습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녀석이로군….”
“팔빈에 도착하기 전 시도했던 계획도 그자에 의해 저지된 것 같습니다.”
“흐음….”
두꺼비는 요이를 비롯한 다른 충직한 수하들에게 말했다.
“녀석이 누군지 알아내. 전부를 알아낼 필요는 없다. 관련 있는 녀석들만 추려내.”
“예.”
“…그 녀석들에게 전부 접촉해라. 그리고 경고를 남겨.”
그들만의 경고.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녀석에게 전해지도록 해. 이 일에 개입하면 재미없을 거라는 걸 알게 해주라고.”
그들에겐 이빨이 있다.
“녀석은 알아둘 필요가 있어. 우리가 사나운 개라는 걸. 계속 우리 일을 방해하면 물릴 거라는 생각을 해야지.”
* * *
며칠 동안의 조사 끝에 실비아와 강설 일행은 완벽히 자유의 몸이 되었다.
도심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이기에 가장 가까이 있던 그들이 의심을 벗기 위해선 굉장한 노력이 필요했다.
미셴 가문이라는 이름을 들먹여가면서까지 항변한 후에야 도시를 떠날 수 있었다.
치이이익…
새로운 카스트랭에 몸을 싣고 북쪽으로 향했다.
강설은 실비아를 노리는 신비 세력에 대해 그녀와 얘기를 나눴다.
“카스트랭 사업권을 노리는 자들 중 의심 가는 녀석들이 있습니까?”
“심증만 있을 뿐 확신이 드는 자들은 없어요. 가문으로 돌아가 직접 확인해보지 않는 이상은….”
“으음….”
실비아가 중얼거렸다.
“저…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까요? 습격이 점점 거세지고 있어요. 요 며칠, 다른 가문이 카스트랭 사업에서 철수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어서….”
하필, 팔빈에서 조금 떨어진 첼지아라는 도시에서 열차가 이틀 동안 정차할 예정이었다.
팔빈에서의 휴식이 의도치 않은 휴식이었기에 실비아는 속도가 나지 않아 조급해하고 있었다.
“아, 첼지아에서 만나야 하는 분이 있다고 하셨죠?”
“예, 아마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 잠시 제 일행과 함께 움직이고 계세요.”
가면을 쓴 남자도 강설에 못지않은 실력자임을 알고 있는 실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움직이시다 위험해지시는 건….”
강설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끄덕…
열차가 첼지아에 도착했다.
이틀 동안의 자유 시간이 주어졌으니 승객들은 모두 흩어져 첼지아에 숙소를 잡았다.
“이따 봐!”
탄시아가 카루나의 어깨에 올라탄 채 작은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강설과 떨어지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아이인데, 목마의 힘은 대단했다.
첼지아, 카스트랭 정거장.
시계탑의 밑.
강설은 입김을 내뿜으며 누군가를 기다렸다.
“이야아… 이게 얼마 만이야.”
누군가의 발길이 그의 앞에서 뚝 끊겼다.
투박한 야상과 꼬질꼬질한 턱수염.
“…이시이.”
“오랜만이야, 강설. 연락받았어. 마침 근방이라 다행이지… 아무튼….”
덥석 끌어안는 이시이.
휘겔텅에서 함께 많은 일을 겪은 일본인 전이자였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연락이 안 돼서 걱정했다고.”
“아….”
이시이와 떨어진 후 연락이 한동안 끊어졌으니, 상대가 죽었을 수도 있다는 오해를 할 만했다.
“예바는?”
“집에 있지. 애가 들어섰거든.”
“…축하해.”
당황스럽긴 했지만, 둘은 결혼했다고 소식을 전해왔었다.
“하하하! 결혼식에 못 불러서 미안.”
“나야말로 연락을 못 했으니….”
시계탑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둘.
“외교관이 됐다는 얘기는 들었어.”
“그거? 예바가 부풀린 거야. 그냥 휘겔텅 관련 일로 가끔 파견 나가는 정도야.”
“휘겔텅이라….”
“네 덕분이지. 연방에서 트롤 말을 할 줄 아는 녀석도 없고 트롤한테 배울 생각을 품은 녀석도 없으니깐 말이야.”
“넌 좀 할 줄 알아?”
“브론이 선생님을 붙여줬어. 근데 선생님 말을 못 알아먹겠더라고. 빌어먹을 원시 종족이 언어는 왜 이렇게 고차원적이야.”
피식…
궐련을 입에 무는 이시이.
“한 대 할래?”
“됐어.”
“후우… 선생님이 그나마 덜 무섭게 생겨서 배울 만은 해.”
“그건 다행이네.”
“큭큭… 너야말로 어떻게 지낸 거야?”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둘. 어떤 이야기가 흘러나오든 미소가 지어졌다.
“꽃 좀 사주세요… 꽃 좀 사주세요….”
청소년기에 막 접어든 아이가 시계탑을 어슬렁거리며 사람들에게 꽃을 팔고 있었다.
이시이가 인상을 찡그리더니, 아이를 불렀다.
“이봐, 꼬마야! 그 꽃, 하나 줄래?”
“정말이에요?”
“그래, 집에 있는 예바에게 가져다줘야겠어.”
강설이 웃었다.
“이런 건 왜 샀냐고 할 것 같은데.”
“정답. 그래도 굳이 꽃병에 꽂아둘걸?”
“예바가 그렇지.”
“킥킥… 어, 잔돈은 가져라.”
“감사해요! 감사해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사라지는 아이.
이시이가 꽃에 코를 가져다 대었다.
후웁…
“향기가 별로네. 진짜 혼나겠어.”
“이시이!”
“…응?”
스릉-!
강설이 검을 휘둘러 이시이가 든 꽃을 반으로 갈랐다.
“야!”
파아아악-!
그리고 꽃망울을 높이 차올렸다.
“너 인마, 뭐 하는….”
공중으로 떠오른 꽃망울.
철컥…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커다란 폭음.
뜨거운 열기.
“꺄아아아악!”
“포, 폭발이야!”
이시이가 머리를 감싸 쥐고 숙였다.
방금까지 죽음과 가까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시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헉… 허억… 뭐, 뭐야.”
그리고 그런 그들의 공포가, 강설의 잠들어 있던 폭력성을 건드렸다.
–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녀석에게 전해지도록 해. 이 일에 개입하면 재미없을 거라는 걸 알게 해주라고.
강설의 입매가 비틀렸다.
“…재밌네.”
이시이의 당혹스러워하는 얼굴을 바라보던 강설이 마음을 달리 먹었다.
이제부턴, 이 일에 발을 좀 더 깊숙이 담그기로.
– 녀석은 알아둘 필요가 있어. 우리가 사나운 개라는 걸. 계속 우리 일을 방해하면 물릴 거라는 생각을 해야지
그는, 무는 개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