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428
제427화
이 공간의 벽이 원래 어떤 색이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정도로 벽이 군데군데 새빨갛게 칠해져 있었다. 모두 누군가의 피로 칠해진 것이다.
“자, 착하지. 오늘로써 마지막이야. 어때, 소감은?”
“하… 하지 마… 죽이지 마….”
“뭐야? 나랑 조금 더 있고 싶은 거였어?”
여인이 키득키득 웃으며 의자에 묶인 사내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애정도, 관심도 없는 손짓이었다.
의자에 묶인 사내는 총 셋.
“너희는 우리 같은 범죄자를 싫어하는 것 아니었어?”
“시, 싫지 않아.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으음… 그럼 조금 더 살려줄까? 어쩌면 잘 먹고 잘 자면 금방 기운을 차릴지도?”
포박된 이들의 눈에 살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 채워졌다.
여인은 그 눈들을 바라보며 황홀해했다.
“어쩜, 이 눈. 마음에 들어….”
그녀는 사내 중 가장 왼편에 묶인 이에게 다가간 후, 끔찍한 일을 자행했다.
꾸직…
“끄, 끄아아아악-!”
눈을 도려낸 여인은, 그것을 수상한 액체가 가득 담긴 병에 담갔다.
퐁…
그리곤, 간단한 지혈제를 제멋대로 사내의 눈에 뿌렸다.
“크아아악!”
사내는 고통에 몸부림치다 기절했다.
“음… 이걸 보면 불면증이 조금 나아지려나?”
“왜… 왜 이러는 거야….”
여인은 씨익 웃었다.
“재밌으니까.”
끼이익…
쿵.
여인이 문을 닫고 떠나자, 방은 또다시 시커먼 어둠이 잠식했다.
한편, 여인은 밝은 실내에 모여 있는 다른 수상한 자들과 함께 자리했다.
“적당히 해, 시끄럽잖아. 밤새 비명을 지른다고.”
“에베베… 비명을 지른다고.”
“…죽을래?”
“흥.”
이 방 안에 모인 인원은 총 여섯. 하나같이 한 번 보면 잘 잊히지 않을 만한 외관이었다.
“벤휴, 그놈들은 언제 찾아오는 거야? 얼마나 이 따분한 곳에 있어야 해?”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고 피부색이 창백한 남자, 벤휴.
그가 여인의 질문에 답했다.
“실크. 전해진 정보에 의하면 안타깝게도 귀족의 끄나풀은 오지 않을 것 같다.”
“뭐? 정말? 그럼 괜히 기다렸잖아!”
“수사국에 특대위인지 뭔지를 만든 모양이다. 귀족들은 후원하는 모양새로 말이야.”
“이른바, 공조라는 거지?”
“그래. 공조.”
“그럼, 여기엔 허섭스레기들이나 잔뜩 오겠네? 그거, 애당초 계획과는 다른 거 아니야?”
“그럴지도. 혹은 아닐지도.”
“뭐야, 그게.”
벤휴가 손을 깍지 낀 채로 턱에 괴었다.
“특대위 구성원들이 전부 알 수 없는 인물로 채워졌다. 전혀 정보가 없어.”
“어디서 굴러다니는 걸 주워온 거 아니야? 죽어도 상관없는 녀석들로 말이야.”
“글쎄… 그런 것치고는 은사자회가 꽤 공을 들인 모양이던데. 소문이 돌고 있다.”
“소문?”
“특대위가 마약 조직을 일시에 소탕할 것을 기대한다고.”
“풋… 누가 그런 개소리를 성의 있게 한대?”
“주의해서 나쁠 건 없다. 그냥 알아둬라.”
곁에 앉은 대머리의 근육질 남성이 말했다.
“그럼 오히려 환영이지. 조무래기의 피는 맛이 없으니까. 녀석들이 오면, 내가 먼저다.”
“웃기시네… 누구 마음대로?”
벤휴는 남성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래 듀렛. 네가 나서라. 나는 따로 볼 일이 있으니.”
반쪽짜리 복면으로 입을 가린 단발 사내가 말했다.
“뭐, 시간 되는 사람이 나서서 하자고. 생각보다 강하면 우리도 공조… 같은 걸 해보면 되고.”
“공조? 웃기시네. 너희 같은 저열한 애들이랑 어떻게 공조를 해? 취향이 비슷한 벤휴라면 몰라도….”
여인은 벤휴를 아련하게 쳐다보았다.
벤휴는 그녀의 말을 정리했다.
“실크, 너와 난 가는 길이 다르다. 넌 단순히 눈을 도려내는 살인광에 불과하지만 난 눈 자체에 담긴 힘을 열망한다.”
“그게 그거 아니야?”
“다르다. 넌 누군가의 눈에 압도당한 적 있나?”
“아니? 그렇게 아름다운 눈이 세상에 어디 있어?”
“난 그런 눈을 바란다.”
“…스승에게 너무 영향을 받는 것도 이런 걸 보면 별로라니까.”
강한 눈을 탐하는 건 벤휴의 스승이 그에게 주입한 것 중 하나이다.
“벤휴, 그럼 넌 눈만 보아도 상대의 경지를 가늠할 수 있는 거야?”
“그래. 난 너희들 중 누가 더 강한지 알고 있다.”
흠칫…
움찔…
모두 그 말에 침을 삼키는데, 벤휴가 씨익 웃었다.
“절대로 말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실력과 살아남는 재주는 다른 거니까. 나중에, 가장 오래 살아남는 녀석에게 들려주마.”
“재수 없다고! 그거!”
실크가 투덜거렸다.
“그런데, 이 창고 꽤 정들었는데… 여기서 다 죽이면 이제 이 창고는 버리는 거겠네?”
“이미 홈은 다른 곳으로 빼돌렸다. 놈들이 나타나면 전부 죽여 본보기를 보인 후 떠나면 그만이다.”
“눈! 모두 눈을 뽑아놓으면 더 확실하지 않을까?”
“…좋을 대로 해라.”
* * *
다그닥…
다그닥…
허벅지 근육이 탄탄한 준마 4마리가 끄는 사두마차가 어두워진 도심을 달렸다.
그 안에 타 있는 강설이 신종 마약 특별 대책 위원회, 줄여서 특대위의 마스코트인 단말마 제조기 한소미에게 물었다.
“…북방엔 카스트랭이라는 멋들어진 이동 수단이 있는데 정작 전차가 없다는 건 이상한데.”
“그게, 생각만큼 수요가 안 따라주나 봐요. 시기상조인 거겠죠. 그래도 수도권으로 가면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수도에 가본 적 없어?”
“그때 돈이 똑 떨어져서….”
“…돈을 다 썼다고?”
“남부에서 동방을 거쳐 쉬를렌까지 온 걸 보면 아셨어야죠! 배낭여행처럼 알차게 아껴 썼는데도 다 썼다고요… 그래도 이번 별무덤에서 크게 한탕… 아니, 수확이 좀 있어서 밀린 월세도 내고 했어요.”
강설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월세까지 밀렸으면 말을 하지. 돈 정도는 보내줬을 텐데.”
“그걸 왜 지금 말해요오! 내가 가난할 때 말했어야지!”
강설의 판데아의 경제 관념은 지구와 많이 달랐다.
전이되기 이전은 자본이 곧 힘이었기에 돈에 민감했지만 판데아로 넘어오고 난 후엔 힘이 곧 자본이었기에, 자본은 신경 쓰지 않아도 저절로 불어나고 있었다.
한소미가 강설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 커다란 아저씨… 쟈, 쟈마드라고 하셨나? 그분은요?”
“잠깐 들어가 있어. 같이 탔다간 마차가 부서지거든.”
“하긴, 마차 끄는 말들 입장도 있으니….”
“딱히 시선 때문이 아니라도 불편한 건 불편한 거네.”
카렌이 웃으며 추임새를 넣었다.
“카하핫… 내가 말했잖아.”
한소미의 의문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 귀여운 애는 왜 데려온….”
“탄시아야!”
“그, 그래. 탄시아. 탄시아까지 데려올 필요가 있었나요?”
“돌봐줄 사람이 없어.”
“보모를 쓰면….”
“보모가 죽을 거야.”
“…….”
강설이 적당히 설명했다.
“그리고 미리미리 봐둬야지. 내가 무슨 날들을 보내고 어떤 일을 주로 하는지.”
“너무 가혹한 거 아니에요?”
“별로? 이런 일에 딱히 저항감이 없는 눈치라.”
확실히, 탄시아는 떡잎부터 남달랐다. 사람을 죽여도 별다른 죄책감이 없는 눈치라고 해야 할까.
마치 인간이 개미를 짓눌러 죽여도 그날 밤 가위에 눌리지 않는 것처럼.
푸르르…
마차가 멈추었다.
말들이 조금 더 달리고 싶다고 투레질했지만 실력 있는 마부가 있어서인지 곧 조용히 했다.
한소미가 마부에게 말했다.
“영감님, 여기 숨어 있으세요. 아셨죠?”
찡긋.
윙크하는 한소미.
마부는 특대위가 직접 고용한 숙련된 마부였다.
전쟁터에서도 보급 마차를 몰았다고 한 말이 거짓이 아닌지 언뜻언뜻 흉터들이 보였다.
씨익…
마부는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철컥…
한소미가 단말마를 장전하고 마차에서 내렸다. 표정이 가히 비장했다.
“어서 내려요, 어서!”
마치 일행의 대장처럼 구는 한소미의 행동에 모두 웃음을 지었다.
우르도 다른 건방진 인간이 이런 행동을 보였다면 그 즉시 냉동식품으로 만들어버렸을 테지만, 한소미와는 나름의 사건이 있었기에 조용히 한숨만 내뱉을 뿐이었다.
단말마를 장전한 한소미가 카렌의 곁에 딱 붙어서 이동했다.
“음? 단말마 제조기께서 왜 이래?”
“그… 살인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서… 죽일 거죠?”
카렌이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짓다가 냅다 고함을 질렀다.
“크앙!”
“윽… 놀랬잖아요.”
“죽여야지. 당연히.”
“네? 당연해요?”
“저항하면 죽이는 게 당연하잖아?”
“…그렇구나. 그럼 저항하지 않으면?”
“저항할 거잖아?”
“…그러겠죠?”
“그럼 죽여야지.”
“……네.”
은사자회의 일부는 특대위의 구성원에 회의적이었다. 강설 홀로 모든 인원을 끌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그들의 뒷배가 되어주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하는 자들이 있었다.
물론, 그들의 세는 산시 가문보다 아래였기에 조용히 투정만 부릴 뿐이었다.
“후… 후… 좋아, 준비 완료. 그럼, 담을 넘을까요?”
“굳이? 문이 저기 있는데?”
“…이 주변이 칼 맞기 딱 좋은 장소네요. 아니, 이 동네 전체가.”
“그러게. 공학 소재 창고들 틈바구니에 이런 데가 숨겨져 있었네.”
“얼마 전에 수사관 몇이 여기 잠입했다가 행방불명 됐다네요. 그들의 신변도 확인해달라는 요청이 있었어요. 내부 정보로도 이곳이 유통망 중 한 곳이라는 게 확실시되니 거리낄 필요 없을 것 같네요.”
“자, 그럼 가자.”
한소미가 손을 들며 말했다.
“우선, 숙련된 선배의 시범을 보여드리죠.”
“정말?”
카렌이 뒤에서 응원했다.
“힘내라! 단말마 제조기!”
“흐읏… 가봅니다.”
한소미가 어깨를 쭉 펴고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철문 옆에 딸린 초소의 창문을 두드렸다.
“흠흠….”
똑똑…
……
똑똑…
……
“…자리에 없나?”
분명, 인기척이 들렸다.
“이봐요, 여기 저 좀 보세요!”
정복 차림의 여인이 창문을 두드리자, 초소에서 턱을 괴고 졸고 있던 경비원이 인상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뭐냐?”
경비원의 인상이 살벌했다.
얼굴에 찢어진 흉터만 해도 수 개였다.
“연방 수사국에서 나왔습니다. 협조 부탁드릴게요.”
“꺼져.”
“그럼… 네?”
“꺼지라고, 애새끼랑 놀아줄 시간 없다.”
“…저기요?”
똑똑…
드륵…
경비원이 철창이 설치된 창문을 거칠게 열어젖히며 소리쳤다.
“수사국인지 개뼉다군지, 내가 알 필요 없고. 무슨 권한으로 이곳을 시찰하려는 거지?”
“특대위 관련해서 쉬를렌 사유지 전체에 공문을 보냈을 텐데요?”
“특대위?”
“네.”
“들어 본 적 없어.”
“공문은…”
“못 받았어! 그러니까, 꺼져!”
한소미가 비장한 표정으로 품에서 공문을 꺼냈다.
“자요, 여기.”
“이게 뭐야?”
“공문. 못 받았다면서요. 이제 됐….”
찌이이익…
경비원이 공문을 부욱 찢었다.
한소미가 참다못해 소리를 질렀다.
“야! 이씨… 죽을래!?”
“죽여보든지. 문은 저거 하나니까, 알아서 열고 들어와. 그럼 내 친히 안내까지 해줄 테니까.”
“잠겨있잖아!”
“그거야 내 알 바 아니고.”
경비원이 가리킨 철문은 육중하다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두께만 해도 손바닥 크기를 훌쩍 넘는 물건이었다.
그렇게 한소미가 분통이 터져 얼굴이 토마토처럼 달아올랐을 때, 어디선가 굉음이 들려왔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뭐, 뭐야!”
“꺄아악… 뭐….”
끼이익…
끼이이익…
쿠우우웅…
거대한 철문이 뜯어져 간신히 경첩에 매달려 있다가 무게를 못 견딘 건지 그대로 넘어갔다.
“무, 무슨 짓이야! 아니, 어떻게….”
문을 시원하게 걷어찬 쟈마드가 성큼성큼 걸어갔다.
“트, 트롤? 수사관은 맞아? 이 개자식이….”
우뚝…
쟈마드가 멈칫하더니 경비원이 문을 잠근 소초에 다가갔다.
“어쩔 셈….”
으직…
후두두둑…
소초의 지붕이 쟈마드의 손짓 한 번에 뜯어져 나갔다.
“…….”
“문, 열어.”
끼, 끼이익…
소초의 문을 연 경비원이 잔뜩 주눅이 든 상태로 쟈마드를 연신 흘겨보았다.
그리고 그 존재감에 압도당했는지 전신을 떨었다.
“…안내해.”
“그런….”
“죽고 싶지 않으면, 적재물로 안내해.”
경비원이 소초에서 등불을 가져와 앞장섰다.
한소미가 강설에게 다가와 물었다.
“저 트롤, 안전한 거 맞죠?”
“…소미야.”
“어떡해요. 봐, 봤어요? 여기 화장실이 어디지… 저 너무 놀라서….”
“괜찮아?”
“…저 자식, 내가 죽인다고 할 때는 눈 하나 꿈쩍 안 하더니!”
카렌이 웃으며 말했다.
“죽인다고 말할 땐, 살기를 담아서!”
“…아!”
그 말을 들은 한소미가 뭔가를 깨달은 듯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길 안내를 하는 경비원의 곁에 다가가 귓가에 속삭였다.
“푸슉, 푸슉.”
“…뭐 하는 거냐?”
“당신, 이미 죽었어요. 내 머릿속에서.”
한소미가 눈을 찡긋하고는 싱겁다는 듯이 말했다.
“단말마가 귀엽네요?”
꽤 살벌하게 막을 올린 사찰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강설과 한소미에게 메시지가 떠올랐다.
[돌발 모험 ‘우리 집에 왜 왔니’가 발생합니다.]
[이 모험은 매우 위험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