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431
제430화
맨 처음, 카렌을 마주한 적은 사실 스탈렛과 실크 무리가 아니었다.
그들을 한데 모은 벤휴라는 사내였다.
그와 카렌이 마주쳤을 당시의 상황은 다소 급작스럽고 혼란스러웠다.
“응?”
“…….”
카렌은 수염이 잔뜩 난 벤휴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수사관임을 알아챘다면 이쪽을 공격해오거나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텐데.
벤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뚫어지게 카렌의 눈만 보고 있었다.
카렌은 상대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보고 그가 이곳에서 중요한 역할임을 단박에 알아챘다.
충돌은 순식간이었다.
파아아앗-!
치이이…
“큿….”
괴물같이 달려드는 카렌과 손을 교차한 벤휴는 그대로 그녀를 지나쳐 사라졌다.
“…뭐야, 싱겁게?”
카렌은 특별한 이유로 어차피 상대를 죽일 생각이 없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곧장 도주를 택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뭐, 상관없겠지. 인장을 붙여뒀으니.”
– 전부 죽이면 안 된다. 인장을 몰래 붙이든 놓친 다음 뒤를 쫓든 하나는 해야 해.
카렌이 곧장 벤휴를 쫓지 않고 다른 수뇌부를 노린 이유였다.
* * *
쉬를렌 외곽에 들어서서야 벤휴는 숨을 돌렸다.
“후우… 하마터면 죽을 뻔했군.”
그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건 그의 빠른 판단력과 상대의 실력을 가늠하는 능력 때문이었다.
“무슨 눈이….”
눈은 곧 영혼의 거울.
벤휴는 스승에게서 상대의 영혼을 가늠하는 능력을 배웠다.
지금에 와서는 큰 오차 없이 상대의 역량을 예측할 수 있었다.
‘얼마나 강한 거지? 그 괴물은….’
건물에서 마주친 수사관의 눈은 그의 스승의 눈과 비슷했다. 그 말의 의미가 둘의 경지가 비슷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벤휴가 감히 측정할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이다.
스승과, 붉은 눈의 수사관 모두.
찌이이익…
벤휴는 얼굴을 뒤덮고 있던 수염을 전부 뜯어냈다.
“아야야… 너무 오래 붙이고 있었나?”
진중했던 털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다소 가벼운 듯한 어조를 구사하는 사내가 서 있었다.
벤휴의 진짜 모습을 알고 있는 자는 그의 스승을 포함해 몇이 되지 않았다.
일을 맡기는 한 두 사람을 제외하곤 모두 가짜 모습으로 벤휴를 기억했다.
그는 가짜와 진짜 모습으로 사람들을 속인다.
다만, 그 어떤 모습이든 벤휴는 변하지 않았다. 눈이 변하지 않았으니까. 눈은 영혼의 거울, 벤휴의 모든 영혼은 그 안에 있었다.
– 벤휴, 도마뱀처럼 살아남아라.
“분부대로 했습니다, 스승님.”
몸을 툭툭 턴 벤휴가 중얼거렸다.
“지금쯤 다 죽었겠지?”
그가 모은 수하들.
겁이 없으며, 괴팍하다.
또한 강했다.
그러나 지금쯤 다 죽었을 것이다.
‘다 죽어도 상관없어. 어차피 나만 살아남으면 되니까.’
조직에서 중요한 건 손발이 아니라 지시를 내릴 머리였다. 그런 의미에서 벤휴는 살아남아야 했다.
오늘도 살아남았다.
또, 내일이 오겠지.
“음… 이제, 어떻게 한다?”
추격하는 낌새도 없고, 멀쩡히 잘 빠져나왔다. 즉, 어디로든 갈 수 있었다.
일은 실패했지만, 한 가지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
‘특대위인지 뭔지, 괴물 같은 녀석이 하나 섞여 있다. 녀석이 대장인가?’
강자의 수는 함부로 단정 짓지 않았다. 최소, 한 명 이상.
‘정보부터 전달해야 하는데… 그리로 가야겠군.’
혼자 움직이는 건 위험했다.
패를 손에 잔뜩 쥐고 있어야 패를 버려 또 살아남을 수 있으니.
푸르르…
“이랴!”
벤휴는 말을 타고 밤을 질주했다. 되도록 눈에 띄지 않는 길만을 골라 달리기를 몇 시간.
혹시 몰라 정체가 노출됐을 것을 우려해 일부러 길을 빙빙 돌았다. 역시나, 추격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푸르르…
벤휴의 말이 공동묘지에 도착했다.
벤휴는 흰색 헌화를 치우고 무덤을 향해 말했다.
“나다. 벤휴.”
드드드드…
흙이 불쑥 솟아오르며 문을 드러냈고,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드러났다.
“들어오시죠, 벤휴 님. 주인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등불을 든 늙은 사내가 벤휴를 향해 손짓했다.
끼이익…
쿵.
묘지의 문이 닫히고, 묘지 관리인이 나타나 흙을 메웠다.
지하에서 두 사내가 침묵한 채 걸었다.
“넌 아무것도 묻지 않는 거냐?”
“벤휴 님에게 제가 무슨 권한으로 묻겠습니까. 주인님께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일은 실패했다.”
“……주인님께서 아쉬워하시겠군요.”
“나 말고 찾아온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무도.”
벤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수하들이 죽은 건 기정사실인 듯했다.
지하에 길게 뻗은 길은, 이내 큰 문을 맞이하며 끊어졌다.
남자가 문에 부딪혀 소리를 냈다.
탁… 탁…
“주인님, 벤휴가 왔습니다.”
“들어오라고 해.”
“예….”
끼이이이익…
문이 열리자, 그 안에 원통형 공간이 드러났다. 벽마다 가득 채워진 유골함.
납골당처럼 보이는 곳.
천정과 기둥의 끄트머리만큼은 특수한 유리로 되어 밖을 비췄다.
납골함을 만지작거리는 사내가 물었다.
“그래, 벤휴. 무슨 소식을 가지고 왔지?”
“네가 싫어할 만한 소식.”
“나쁜 소식이겠군. 말해도 좋아.”
벤휴는 거리낌 없이 사내에게 말했다.
“잘 들어, 특대위인지 뭔지에 위험한 녀석이 포진해 있다.”
“위험한 녀석?”
“그래. 은사자회와 수사국이 무슨 수로 그런 자를 포섭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한 강자가 섞여 들어왔다.”
“…자세히.”
벤휴는 함정을 파두었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벌어졌던 일을 사내에게 말했다.
“지안, 네 계획 덕분에 수하들을 전부 잃었다.”
“의회의 계획이지. 애당초 내 계획은 아니었다. 근데 의외군. 네가 겁을 집어먹고 이곳까지 헐레벌떡 도주해 올 만큼 위험한 녀석이었다니. 너보다 강했겠지?”
“그래. 얼마나 강한지는 모른다. 단지, 나보다 강한 걸 아는데 싸울 만큼 멍청하지는 않아서.”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 싸우는 법도 배워둬야 할 텐데… 언젠간 그런 상대와 억지로 싸우게 될 날도 올 거야. 그때가 되어서는 연습할 기회도 없다고.”
“연습은 다음에 기회 되면.”
“평생 도망칠 작정이군.”
“들켰네? 어쩌겠어, 스승님이 그렇게 가르쳤는걸.”
“네 스승님은 이미 그런 상대와 숱하게….”
똑…
어디선가 기척이 들려왔다.
아니, 이건 기척이라고 하기엔 오묘한… 그러니까 소리다.
“꼬리냐?”
“아니, 없었어. 저길 봐.”
벤휴가 손가락으로 지면에 노출된 천장을 가리키자, 유리창에 기댄 뭔가가 계속 천장의 유리창을 두들기고 있는 게 보였다.
“그냥 새잖아.”
“…벤휴.”
“왜 그래, 지안?”
“꼬리가 맞는 것 같다.”
“…뭐?”
“저곳엔 미미한 독기가 흩어져 있어. 여태 생물이 접근한 적이 없다.”
“…뭐? 그럼 저건….”
똑…
똑똑똑…
또또도도도독…
새의 수는 점차 불어났다.
고작해야 부리로 유리창을 쪼는 정도로 천장이 무너질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애초에 저렇게 많은 새가 천장에 몸을 들이밀 줄도 몰랐으니 확신할 건 아니었다.
쩌저저적…
유리에 금이 갔다.
곧, 천장이 무너져내렸다.
쨍그라아아앙-!
커다란 유리 조각이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이 조각나 흩어졌다.
맨발로 있었다면 한 발자국 걸었다가 다칠 정도의 유리 조각.
후두둑…
후두두둑…
새 떼가 납골당으로 돌아와 한데 모였다.
“…까마귀?”
온통 시커먼 까마귀들.
그리고 그것들은 곧 연기가 되어 형상을 이루었다.
수사관 정복을 차려입은 강설이, 그 자리에 나타났다.
“무슨… 꼬리는 없었는데!”
강설이 그의 안주머니를 가리켰다.
벤휴가 화들짝 놀라 품을 뒤적거리자, 단추처럼 생긴 인장이 손에 잡혔다.
“이게 대체 언제… 아! 이런 빌어먹을….”
그제야 카렌과 부딪혔을 때 이 인장이 품 안에 들어왔다는 걸 눈치챈 벤휴가 찔끔하며 지안을 쳐다봤다.
“뭐, 그렇게 된 것 같다.”
“…벤휴, 아까 말했지?”
“뭘?”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 억지로 싸워야 하는 날이 올 거라고.”
벤휴는 지안의 말에 강설의 눈을 보았다.
“허억…….”
그가 질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눈을 본 거군. 뭐가 보이지?”
“아, 아무것도… 아무것도 안 보여. 이런 적은 없는데….”
카렌과도 다른 케이스.
카렌이 얼마나 강한 건지 예측할 수 없는 것이었다면, 강설은 강한지 약한지조차 알 수 없었다.
“난 알아, 벤휴. 강한 녀석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냥 앞에 서 있어도 느껴지는걸. 눈까지 볼 필요도 없어.”
“…….”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걸 보면, 상대도 대화할 생각이 있는 것 같다.”
지안이 강설을 보며 물었다.
“맞지? 뭘 원하는 거야?”
“얌전히 생포 당하는 것. 아는 정보를 전부 말하면 목숨은 보장해주지.”
“수사관을 직접 마주친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꽤 전형적인 말을 하네.”
“전형적이니까.”
“…만약 거절한다면?”
“강제로 생포하겠지.”
“죽일 수도 있다는 얘기?”
강설이 싱긋 웃었다.
“저항하면 둘 중에 필요 없는 한 녀석은 죽일 거야.”
그의 말에 벤휴가 다급해졌다.
“지안! 수하들은….”
“수하들은 소용없어. 느껴져… 까마귀… 까마귀라… 인장 좀 줘볼래?”
팅-!
벤휴가 던진 인장이 지안의 손에 들어왔다.
“…그래. 네가 그 녀석이구나. 테콘과 수하들을 죽인 녀석.”
“테콘? 누구지?”
“두꺼비 말이야.”
“아아… 그래. 맞아.”
“있잖아, 난 테콘과는 달라.”
“내가 보기엔 똑같아.”
“…….”
지안은 반박하지 않았다.
“벤휴, 어떻게 할래?”
“뭘 어떻게 해?”
“이번에도 도망칠 거야?”
“……넌 어쩔 생각이지?”
벤휴의 말에 손을 움켜쥐는 지안.
쨍그라아앙-!
납골당의 모든 납골함이 깨져나가더니 곧 뼛가루가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스으으으으으…
“싸워야지. 조직을 위해. 넌 도망쳐, 늘 그랬듯이.”
“……깔보는 거냐?”
벤휴가 지안의 말에 발끈해서는 자세를 잡았다.
“나도 싸운다. 일단은 해볼 생각이야.”
지안이 강설을 보고 말했다.
“그렇다는데?”
강설이 차갑게 답했다.
“둘 중 하나는 죽는다.”
“해보시든지!”
푸쉬이이이이-!
벤휴가 연막을 터트렸다.
독이 섞여 있지 않음을 확인한 강설은 가만히 서서 상대의 공격을 기다렸다.
지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넌, 전장을 잘못 고른 것 같아.”
[지안이 뼈 맞추기를 사용합니다.]
[뼛가루, 혹은 뼈를 소재로 한 소환수를 일으킵니다.]
[소환수의 능력치는 주입된 마력에 의해 결정됩니다.]
[신성력에 취약합니다.]
다그닥…
뼈들이 분주히 일어나는 듯한 소음.
짜아아악-!
[지안이 뼈 지네를 사용합니다.]
[뼈로 움직이는 소환수를 희생하여 뼈 지네를 소환합니다.]
[뼈 지네는 빠르게 움직이며 강한 치악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뼈 지네는 마법에 저항력을 가집니다.]
드르르르륵…
수많은 다리가 한꺼번에 움직이는 소리.
지안과 벤휴가 강설의 빈틈을 확인했으나 딱히 없었다.
그렇다면 합공의 기본인, 동시에 공격하는 것을 행동 원칙으로 삼아야 했다.
그리고 벤휴는, 그런 상황에 가장 적합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지안! 지금!”
안개를 뚫고 눈을 부릅뜬 벤휴가 강설의 정면에서 나타났다.
그의 능력은 눈.
눈을 이용해 많은 것을 할 수 있었다.
그중 가장 자신 있는 건, 상대의 움직임을 봉쇄하는 것이다.
[벤휴가 심마안(心魔眼)을 사용합니다.]
[심마안을 마주한 상대는 일시적으로 움츠러들어 공격 행위를 할 수 없습니다.]
설명처럼, 공격 행위만 불가능할 뿐이지 방어 행위는 가능했다.
즉, 절대로 반격을 받지 않는다. 탐색전에 매우 적합하며 선공으로 이만한 능력이 없었다.
리스크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지이이잉…
탁하게 물든 눈이 강설의 눈을 바라보았다.
“걸렸….”
그 순간, 강설의 눈이 원초적인 공포를 자아내는 눈으로 뒤바뀌었다.
[용혈안의 두 번째 능력이 밝혀집니다.]
[용혈안은 눈을 이용한 해로운 효과에 면역입니다.]
[매우 높은 확률로 눈을 이용한 공격을 시도한 상대에게 마력 반동을 유발합니다.]
[마력 반동은 사용한 능력의 12배에 달하는 마력을 소모하게 하며 이와 동일한 피해를 줍니다.]
절대 없던 리스크가, 갑자기 생겨났다.
빠지직…
눈의 실핏줄이 터져나가는 감각과 함께, 벤휴가 휘청였다.
딱히 의도한 공격은 아니었지만, 벤휴는 스스로 치명상을 입었다.
강설은 새로운 능력을 깨닫게 해준 벤휴에게 감사의 발차기를 선사했다.
파아아앙-!
“커헉….”
콰지이익-!
벤휴가 벽에 부딪히자, 곧 그의 사지에 단검이 날아와 틀어박혔다.
피피핏-!
푸우욱…
“끄아아악-!”
벤휴가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자, 합공을 예상했던 지안이 예상 밖의 행동을 해왔다.
“날 죽이면 안 돼. 저 녀석을 죽여.”
지안의 코앞에서 강설의 주먹이 멈추었다.
“…뭐?”
“내가 더 많은 걸 알고 있거든. 저 녀석은 별 볼 일 없어.”
드르륵…
뼈 지네를 해제하며 지안이 말했다.
“엄청나네, 덕분에 지금 보인 걸로 충분해. 많은 정보를 얻었어.”
“정보?”
“너, 말도 안 되게 강하구나? 싸웠으면 내가 죽었겠어.”
지안이 손사래를 치며 물러나자, 벤휴가 소리쳤다.
“너! 너, 뭐 하는 거야! 싸울 거라고….”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면 네가 도망쳤겠지.”
“…뭐?”
“그러게, 연습 좀 해두라니까 모르니까 당하지.”
우드득…
피이이이잉-!
푸슈우우우욱…
“컥… 커억….”
뼈로 된 창이 벤휴의 가슴을 꿰뚫었다.
“너… 너… 뭐 하는….”
“이게 내가 살아남는 방식이야.”
“…….”
벤휴의 눈이 생기를 잃자, 지안이 말했다.
“이 녀석의 스승은 괴팍하고 강해. 이길 수 있겠어? 아… 이런….”
고오오오오오…
벤휴의 피에서 동그란 눈알이 만들어졌다.
흉측한 그 눈알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지안과 강설을 눈에 담았다.
– 감히… 내 제자를 죽이다니… 지안, 어째서 벤휴가 죽은 거냐?
그 말에 지안이 황급히 손에 쥔 창을 소멸시켰다.
스으으…
“아, 그거? 방금 이 친구가 죽였어.”
– 넌 어째서 살아있지?
“생포 당했어, 구해줘.”
미심쩍지만, 지안은 원래 저런 말투로 말을 하는지 눈의 주인이 강설을 쳐다보았다.
– 너…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긴 하나?
“너도 이 일과 관련이 있나?”
– 이 일이라고?
“홈.”
– …관련이 있다면?
“날 찾아와라. 언제든지.”
– 죽일 놈!
지안이 헤실헤실 웃었다.
“기다리고 있을게! 꼭 구해줘! 나 기다릴게!”
– 입 닥쳐라, 지안! 네놈에게도 죄를 물을 테니!
스르르륵…
눈알이 사라졌다.
“휴… 어쩌지. 미움받았는데.”
“왜 이렇게 협조적이지?”
“협조하지 않으면 죽일 거잖아?”
“…….”
“그리고… 하루라도 더 사는 게 내 신조니까 뭐… 의회 녀석들과의 일은 나중에 생각하면 되잖아.”
의회.
눈을 사용하는 남자의 스승.
꽤 많은 정보를 가진 듯해 보이는 지안에게 강설이 물었다.
“녀석들이 널 구할까?”
“모르지? 그래도 아마 시도는 해볼걸. 날 이송할 생각이지?”
“그래.”
“그럼 분명히 습격할 거야. 묻고 싶은 게 있으면 지금 물어봐도 돼.”
강설은 이 희한한 녀석을 데려가기 전에, 가장 큰 의문을 해소하고자 했다.
“홈.”
“홈? 아….”
“홈은 어떤 물질이지?”
“마약이지, 뭐.”
“아니, 비슷한 성분을 이용해서 신체를 강화하는 걸 봤다. 거짓말할 생각이라면 죽인다.”
“무서워… 그보다, 너. 이미 약을 복용했잖아? 알고 한 거 아니었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비슷한 냄새가 나는데… 잠시만, 냄새만 맡게 해줘. 아니지! 피를 맛보게 해줘.”
“…….”
“다른 의도는 없어. 어서.”
핏…
강설이 손바닥을 베어 피를 조금 흘렸다.
텁…
지안이 그 피를 입에 대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맞잖아, 너도.”
“대체 아까부터 무슨….”
“복용하지 않았다고? 그런데 어째서 비슷한 맛이 나는 거지? 이상하다?”
지안의 희롱에 강설이 인상을 찌푸리려는 찰나.
‘…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게 있었다.
홈과 녀석들의 피에서 어딘가 익숙한 향이 난다고 생각했었던 기억이.
불쾌하면서도 아련한 겨울의 기억이.
상처받았지만, 상처를 치유했던 꿈이.
“설마 홈과 너희들이 복용한 약의 성분이….”
강설은 눈을 부릅떠 지안을 노려보았다.
“아트로밀은 아니겠지? 꽤 변형하긴 했지만… 아트로밀인 건 변하지 않지.”
“맞아! 아트로밀!”
지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일명, 거인의 피.”